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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0

       황실 파티가 끝나고 나는 곧장 안정을 취했다.

         

       괜찮으니 바로 카자르에게 가자고 했지만, 상태가 좋지 않아 보이니 우선 쉬는 게 어떻냐며 프란체가 만류했다.

         

       그리고 이튿날.

         

       “치료받으러 가자.”

         

       반쯤 강제로 이끌려 카자르의 집으로 향하게 되었다. 내게 그 어떤 것도 명령하지 않는 걸 보니 그때 보여준 증상 때문에 걱정이 심한 듯했다.

         

       덜컹. 마차의 바퀴가 굴러간다. 가는 길에 프란체가 물었다.

         

       “그런데 있잖아, 대체 무슨 병이길래 너 정도 되는 소드 마스터가 그렇게 되는 거니?”

         

       시한부에 관한 얘기를 할 때는 어느 정도 연출이 필요하다고 생각이 들어, 나는 최대한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초월 마법사 때문입니다. 그 탓에 저는 제국과의 전쟁에서 제대로 싸우지도 못했죠.”

         

       이는 지금까지 들은 정보와 내 상상력으로 추측한 얘기다. 그야, 왕국 최고의 소드 마스터. 대륙제일검이라는 칭호까지 있는 자가 몸에 상처도 없이 잡힐 리가 없지 않나.

         

       ‘뭐, 굳이 자세하게 파고 들자면…….’

         

       진 바렌베르크가 전쟁에 참여하기도 전에 왕국은 압도적으로 밀렸다. 그리고, 진이 전쟁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초월 마법사가 막아 세웠다.

         

       승기가 완벽하게 잡혔다고 생각이 들었을 때 말했겠지. 얌전히 잡힌다면 아직 남아 있는 바렌베르크의 국민들은 살려준다고.

         

       ‘이 정도겠네.’

         

       이 세계에 들어온 뒤, 여러 정보들을 듣고 상상하니 대략 어떻게 된 건지 이해할 수 있었다.

         

       “초월 마법사…….”

         

       프란체가 씁쓸하게 웃었다. 프란체의 삶이 달라지기 시작한 것도 내가 초월 마법사에게 잡혔기 때문이고, 내가 이렇게 된 것도 초월 마법사 때문이라고 생각했겠지.

         

       두 생각이 충돌해 복잡한 감정을 만들어냈을 거다.

         

       분위기를 환기하기 위해 다른 주제를 꺼냈다. 문득 궁금해진 얘기기도 했다.

         

       “공녀님. 한 가지 알아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뭔데?”

       “바렌베르크 국민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지금 생각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나처럼 노예가 됐다거나, 어디 변방으로 추방당했거나, 재앙의 파도를 막기 위한 희생양으로 쓰이고 있을 수도 있다.

         

       ‘비루한 삶을 살고 있진 않았으면 좋겠는데.’

         

       과거의 이야기라곤 하지만 나는 유일하게 남은 왕족이다. 백성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이런.’

         

       동기화가 심해졌군. 당장 나부터 걱정해야 할 판에 무의식적으로 이런 생각을 하다니.

         

       프란체는 곰곰이 생각하더니 피식 웃었다.

         

       “네가 걱정하는 만큼 나쁜 삶을 살고 있진 않은 거로 알아. 파티장에서 귀족들과 얘기하면서 들었는데, 변방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하더구나.”

         

       그거 다행이군. 나처럼 노예가 돼서 노동력을 착취당하거나 몹쓸 짓을 당하고 있으면 어쩌나 싶었는데.

         

       “제국의 땅이 워낙 넓고 사람도 많으니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었겠지. 어차피 그 변방은 아무도 살지 않았고, 그다지 좋은 땅도 아니었으니까.”

         

       그럼 어느 정도지? 나는 다시 물었다.

         

       “설마 사람이 살지 못하는 땅은 아니겠죠?”

       “그건 아니야. 자급자족은 가능한 땅이니까.”

         

       제국이 아예 피도 눈물도 없는 자들은 아니었나 보다. 배려까지 해가면서 그들의 땅을 만들어주다니. 근데 이러면 독립 가능성도 있는 거 아닌가?

         

       “제국은 걱정하지 않는 겁니까?”

       “어떤 거를?”

       “바렌베르크 국민이 독립을 준비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아아. 그거는 괜찮아. 제국의 감찰관이 관리하고 있어.”

         

       ……그건 그거대로 걱정인데.

         

       프란체는 이런 내 심정을 읽었는지 말을 이었다.

         

       “네가 생각하는 부조리는 없을 거야. 주기적으로 검사를 하거든. 전쟁 포로라고 해도 이제는 제국의 인력이니까.”

         

       음. 생각보다 더 융통성이 있었군. 극한의 효율 중시인가. 대륙 최고의 국가답다.

         

       그렇게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고 있자니, 덜컹. 굴러가던 마차의 바퀴가 멈췄다.

         

       “내리자.”

         

       마차에서 내리고, 카자르의 집 문을 두들겼다.

         

       “카자르. 급한 용건이야.”

         

       잠잠하다. 이른 아침이라 아직도 자고 있는 건가.

         

       “어쩔 수 없네. 얘는 잠이 많으니까.”

         

       프란체의 손에 마력이 깃들었다. 흑색의 연기가 문고리로 들어가더니, 철컥. 문이 열렸다.

         

       “…….”

         

       벌써 마력을 저 정도까지 활용할 수 있는 건가. 재능은 재능이군.

         

       그렇게 카자르의 집으로 들어섰더니만, 악취가 코를 찔렀다. 프란체는 얼굴을 찡그리며 코를 막았다.

         

       “…좀 치우고 살라니까.”

       “그러게나 말입니다…….”

         

       완전 난장판 그 자체. 연구에 필요한 도구들은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고, 책들은 그대로 펼쳐져 있다. 심지어 먹다 남은 음식까지…….

         

       “내가 카자르를 깨울 테니 기다리고 있으렴.”

       “청소라도 하고 있겠습니다.”

       “아니, 환자한테 그런 걸 시킬 순 없지.”

         

       프란체는 그리 말하고 2층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쿠당탕! 뭔가 굴러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뭐야?”

         

       뭔진 모르겠다만, 평화로워 보이진 않는다. 카자르가 아무리 깨워도 일어나질 않아서 이불 통째로 날려버린 건 아닐까…….

         

       잠시 기다리자 부스스한 카자르와 프란체가 내려왔다.

         

       “…이른 아침부터 무슨 일이세요?”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얼굴을 일그러트리는 카자르.

         

       “진의 상태가 나빠졌어.”

       “…네?”

         

       프란체의 말에 잠이 확 달아난 듯, 동그랗게 뜬 눈으로 나를 응시했다.

         

       “상태가 나빠졌다고요? 구체적으로 어떻게요?”

       “고통 때문에 쓰러지고 각혈까지 하더구나.”

         

       카자르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소드 마스터가 고통에 몸부림치며 각혈까지. 일반적으로 절대 말이 안 되는 상황이다.

         

       “…정말 드래곤이라도 만난 거예요?”

         

       이윽고 얼빠진 얼굴로 묻는다. 여기엔 깊은 사정이 있어…….

         

       “드래곤?”

         

       프란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웬 갑자기 드래곤?”

       “아, 아니요. 생각보다 더 심각한 거 같아서요.”

         

       눈알을 굴리며 프란체의 시선을 피하는 카자르. 프란체는 고개를 휘젓곤 의자에 앉았다.

         

       “아무튼. 진의 상태를 말해줘.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건지.”

         

       카자르는 얼떨떨하게 고개를 끄덕이곤 조용히 나를 바라봤다. 이거 어떻게 하냐는 눈빛. 나는 조용히 읊조렸다.

         

       “적당히 지어내.”

       “……네.”

         

       나는 정좌를 유지한 채 바닥에 앉았다. 뭐라도 하는 시늉은 보여줘야 했기에 카자르는 내 등에 손을 올리고 마력을 활성화했다.

         

       꿈틀거리는 무언가가 몸에 흐르는 피와 함께 이동하는 느낌.

         

       “…음?”

         

       카자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를 본 프란체가 황급히 물었다.

         

       “혹시 뭔가 발견한 거니?”

       “어…….”

         

       카자르는 머리를 벅벅 긁더니 내 등에 다시 마력을 흘려 넣었다. 우우웅! 아까와는 차원이 다른 양의 마력이 들어왔다.

         

       이젠 아예 몸속을 헤집는다. 마치 숨겨진 무언가를 찾는 것처럼.

         

       “…찾았어요.”

         

       뭐? 뭘 찾아?

         

       “뭔데? 왜 이러는지 정확하게 안 거니?”

       “네. 근데 이거 생각보다 더 심각해요.”

       “뭐길래? 불안하게 하지 말고 빨리 말해줘.”

         

       카자르는 얼굴을 찡그린 채 입술을 머금더니 다시 한번 마력을 흘려 넣었다.

         

       “이거, 단순한 병이 아니에요.”

       “그러면? 저주라는 소리야?”

         

       카자르는 고개를 휘저었다.

         

       “저주도 아니에요. 제가 지금까지 온갖 마법을 연구하면서 지냈는데, 전혀 해석할 수가 없어요.”

         

       설마 시스템 메시지처럼 울리는 걸 말하는 건가? 일단 얘기를 더 들어봐야 하기에 가만히 있었다.

         

       “그럼, 방법이 없다는 말이야?”

       “자세하게 설명하기가 좀 어려워요.”

       “좀 더 정보를 말해 봐.”

       

       카자르가 반쯤 넋을 잃었다. 눈동자는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렸으며, 고개를 계속 갸웃거렸다.

       

       “아예 처음 보는 형태의 마력이에요. 이런 경우는 본 적도 없어요. 마치 인간이 용언을 해석할 수 없는 것과 같죠. 완전 다른 차원의 마법이라고 해야 하나…….”

         

       혹시 내가 이곳에 끌려온 이유와 관계가 있는 건가? 지금은 그리 생각할 수밖에 없다. 애초에 게임과도 같은 시스템 메시지가 마법으로 존재할 리가 없잖나.

         

       “진이 느끼는 고통도 거기서 나오는 거야?”

       “아마도 그럴 거예요.”

         

       몸 구석구석을 휘젓던 마력이 빠져나갔다. 확인이 끝난 카자르는 내 등에서 손을 뗐다.

         

       “형태가 인간의 마법이기도 하면서, 용언에 가깝기도 해요. 모순적이고 형용할 수 없는 무언가죠. 도저히 해석할 수가 없네요.”

         

       적당히 지어내라 했건만, 의외의 사실을 알아버렸다. 그나저나, 뭔가 있다는 걸 알아채도 해결은 불가능한 건가.

         

       “그럼, 증상을 줄일 순 있는 거니?”

       “그건 더 알아봐야 할 거 같아요.”

       “진…….”

         

       프란체가 무릎을 꿇으며 내 손을 부여잡았다.

         

       “제발 아프지 말렴. 나는 너밖에 없다는 걸 알잖니.”

       “걱정 마세요. 공녀님을 두고 갈 생각은 없으니까.”

         

       당장이라도 울 것만 같은 프란체. 카자르는 그녀를 안심시키기 위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제가 어떻게든 해볼게요. 너무 염려 마세요.”

       “그래, 네가 있어 다행이구나…….”

         

       푹 가라앉은 분위기에, 짝. 카자르가 손뼉을 마주쳤다.

         

       “자, 검사가 필요한 진 씨는 남으시고. 공녀님은 일 보러 가셔도 좋아요.”

       “뭐? 진이 이런 상황인데 나 혼자 갈 수는…….”

         

       나는 프란체를 바라보며 싱긋 웃었다.

         

       “공녀님, 이제 매장 열 준비를 해야죠? 잘 하실 거라 믿고 맡길게요.”

       “나 혼자?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네가 없으면 나는 아무 것도……”

       “잘 하실 수 있어요. 지금까지 배운 것도 있고, 여태까지 잘 해오셨잖아요?”

         

       오들오들 떠는 프란체. 나는 그녀의 손을 맞잡고 싱긋 웃어주었다. 그러자 입술을 삐죽이던 프란체는 마지 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네 덕에 모처럼 여기까지 왔는데 일을 망치면 안 되지.”

       “잘 선택하셨어요. 검사가 끝나면 바로 갈 테니까 먼저 가 계세요.”

         

       조용히 나를 응시하는 프란체. 그녀의 눈동자에는 여러 감정이 섞여 있었다. 걱정. 불안. 두려움. 카자르도 이걸 눈치챘는지 웃으며 얘기했다.

         

       “공녀님, 저 못 믿으세요? 미래에 초월 마법사가 될 카자르 유플레인이라고요? 레이디 유플레인! 이 사람은 제가 잘 고칠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밝게 웃는 카자르의 위로가 통했는지 프란체는 애써 미소를 지었다.

         

       “그래. 믿을게. 진을 잘 부탁해.”

         

       프란체는 무언가 결심한 듯 한껏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곧장 집을 나갔다.

         

       창밖에서 덜컹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바로 의류점으로 향했나 보다. 매장을 운영하기 위한 준비는 내가 다 해뒀으니 손님 접대만 하면 될 거다.

         

       그리고 잠시 후. 카자르가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어떻게 된 거예요?”

       “뭐가?”

       “이런 마법을 대체 어디서 새겼는지…….”

         

       고개를 휘저으며 관자를 짓누르는 카자르.

         

       “솔직히 말할게요. 답이 없어요.”

       “답이 없다고?”

       “네. 마법 구조 해석이 전혀 안 돼요.”

       “원인은 알았는데, 해결은 못 하는 건가.”

         

       카자르가 씁쓸하게 웃었다.

         

       “맞아요. 안타깝지만… 조건을 확실하게 알고, 증상이 발현되지 않게 조심하는 수밖에 없어요.”

         

       결국엔 내가 하는 행동에 따라 정해지는 건가.

         

       이러면 프란체에게서 떠나는 수밖에 없는데. 나는 복잡한 심정을 숨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미소를 지었다.

         

       “그래, 알아 봐줘서 고맙다.”

       “…조심하셔야 해요. 그거, 심상치 않으니까.”

       “나도 알고 있어. 이만 가본다.”

         

       카자르의 걱정어린 눈빛을 뒤로한 채, 나는 집 밖으로 나와 조용히 하늘을 바라봤다.

       

       ‘과연 지금의 나는 진과 얼마나 섞였을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감사함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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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악역 영애를 키우고 도망쳤다
Score 8.6
Status: Ongoing Author:
I made a villainess destined for death into the most powerful person in the empire and then f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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