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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0

       -퉁!

        

       한껏 당겨진 시위가 해방되는 경쾌한 소리.

       

       예기를 품은 채 공기를 찢으며 날아간 화살이, 퍼억-하는 소리가 들려올 듯한 세기로 저 멀리 바닥에 꽂혔다.

        

       “빗나갔는데.”

        

       -쯧

        

       한 눈에도 고급스러운 윤기가 흐르는 천으로 온 몸을 두른 채 고개를 첨탑 밖으로 슬쩍 내밀더니, 바닥에 꽂히며 먼지바람을 일으킨 화살을 보고 혀를 차는 마법사.

        

       “견제니까. 뭣도 모르면서 비아냥거릴 시간에 주문이나 외워.”

        

       대꾸할 가치도 없다는 듯이 불만을 일축한 궁수는, 다음 화살을 활에 올리며 상대 성기사의 상태를 확인하려 눈을 돌렸다.

        

       과연, 움직임을 제대로 읽었다. 상대 성기사는 자신의 발치에 꽂힌 화살을 발견한 순간부터, 한층 소극적으로 변한 움직임으로 방패를 들어올린 채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원거리 저격을 의식하느라 수세에 급급해진 모습. 저격수에게 스텝을 읽혔으니, 한없이 움츠러들 수밖에.

        

       만족스럽게 입매를 비틀어 올린 궁수의 두 눈이, 짙은 푸른색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궁수의 고위 특성, 매의 시야.

        

       두 눈과 귀의 감각을 일시적으로 차단하는 대신, 아군의 시야를 빌려 지상의 전장 전체를 확인할 수 있게 된다.

        

       “공세다. 중앙에 전격마법 한 번 날리고 시작하지.”

       

       푸른 빛이 사라질 즈음, 전세를 완벽하게 파악한 궁수가 다시금 시위를 당기며 채근했으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조금 전부터, 제대로 하는게 없-’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윽박지르려던 찰나.

       

       순간적으로 떠오른 불안한 생각은,

        

       ‘……아까, 마법사의 시야가 있었나?’

        

       피거품을 물고 있는 마법사의 얼굴에 의해 확신으로 변했다.

        

       어느 틈에 나타난 걸까. 수호병. 수호병은 언제- 따위의 생각을 하는 궁수의 시야로, 죽어가는 마법사의 목에서 단검이 뽑혀져 나오는 모습이 느릿하게 늘어지듯이 들어왔다.

        

       반사적으로 몸을 틀며, 시위에 매겨두었던 화살을 쏘아냈지만-

        

       다급하고 정직하게 발사한 화살은 허탈할 정도로 무력하게 허공을 유영할 뿐이었다.

        

       도적의 후드 아래에서 날카롭게 빛나는 눈빛이, 어느새 자신의 코 앞에 도착해 있었다.

        

       후퇴할 공간도, 전열의 합류를 기대할 시간도 없다.

        

       할 수 있는 거라곤,

        

       “씨발.”

        

       외마디 유언을 남기고, 몸에 파고드는 단검을 느끼는 것 뿐.

        

       * * * *

        

       나오나에서, 안전한 포지션을 잡고 후방에서 화력 지원을 퍼붓는 법사나 궁수를 끊어내는 방법은 두 가지다.

        

       자리를 잡으러 이동할 때 덮쳐서 암살하거나,

       앞라인을 모두 죽여버린 후 힘으로 찍어누르거나.

        

       그러나 둘 중 무엇도 내가 선호하는 방법은 아니다.

        

       가장 확실하게 게임을 가져오는 방법은, 법사나 궁수가 자리잡은 첨탑을 지키는 수호병을 돌파해버리는 거다.

        

       이전 세상에서, 패러데이 게임스는 시즌 4를 기점으로 수호병의 공격력, 방어력, 체력을 모두 제법 큰 폭으로 너프하기 시작했다.

        

       2궁수 1법사로 첨탑에 알 박은 후, 무한히 ‘니가 와’를 시전하는 상대를 도저히 뚫어낼 수가 없어지자- 두 팀 모두 자기 첨탑만 끼고 있다가 마법 로또만 노리는 극한의 노잼 메타가 탄생했기 때문.

        

       안 그래도 수호병의 깡 스펙 때문에 첨탑을 뚫는 게 너무 어려운 상황에서, 시간이 흐르며 법사와 궁수 유저들의 빌드와 포지션이 최적화되어버리며 발생한 문제였다.

        

       나중에는 게임이 무슨 1차 세계대전 참호전마냥 전개되는 경우가 빈번했다.

        

       안전한 곳에 자리잡은 기관총인 법사와 궁수는 한없이 총알만 갈겨대고,

       한 치라도 더 점령하려 나아가는 근접 캐릭터들은 계속하여 스러져가는 장면의 반복.

        

       모두가 짜증나는 노잼 메타였지만, 가장 큰 피해자는 최전방에서 땀내나는 상남자의 라인전을 하고 싶었던 성기사들이었다.

        

       기사대 기사의 결투를 하러 왔다가 비행기 폭격맞는 알보병을 체험하는 것이 일상이 되자, 대부분의 성기사 유저들이 ‘꼬우니 접을게’를 시전했으니까.

        

       6차례에 걸쳐 연속으로 너프된 수호병이 비교적 손쉽게 돌파 가능해지고 나서야 밸런스가 맞아 돌아갔으니, 말 다했지.

        

       광전사……그런 건 난 몰라. 광전사도 근접 캐릭이다보니 많이 접었다고 본 것 같긴 한데, 그거야 자연사……아니, 호상 아닐까.

        

       아무튼,

        

       그 광란의 시대를 살아남고 상위권에 이름을 박아 넣은 지하 유저라면, 누구나 수호병 공략은 이골이 나도록 한 달인들이었다.

        

       시즌 4를 기준으로는, (상대 궁수 혹은 법사가 수호병을 지원하지 않는 이상) 수호병을 50초 이내로 돌파 못하면 인게임 채팅창에 갈고리가 도배될 정도였으니까.

        

       만에 하나 수호병과 일대일을 실패해서 후퇴라도 한다? 그 즉시 자신과 자신의 혈육들의 직업이 다채롭게 변화할 뿐만 아니라, 그 종(種)조차 인간이 아닌 다양한 동물로 변하는 광경을 관람할 수 있었다.

        

       다만,

        

       나는 시즌 4는 물론이고, 시즌 2에도 너프 전 수호병을 뚫고 들어가서 후열의 목을 따던 사람이다. 

        

       처참한 반응속도로 인하여 사람의 변칙적인 움직임과 페이크 모션에 순간적으로 대처하는 능력이 부족했던 거지, 공격 패턴이 정해져 있는 적이라면 그 무엇이든 잡아낼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반응속도까지 극한으로 끌어올려진 지금은, 시즌 1의 수호병이라고 해봤자 타임어택 대상에 불과했고-

        

       『수호병 너프됨?』

       『클라스 미쳤네 진짜』

       『잘하긴 존나 잘함 진짜』

       『ㅈㄴ 멋있다』

       『나와의 결혼을 허락한다 아따먹! 나와의 결혼을 허락한다 아따먹! 나와의 결혼을 허락한다 아따먹! 나와의 결혼을 허락한다 아따먹! 나와의 결혼을 허락한다 아따먹!』

       『수호병 1분컷 미쳤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응애 캠 다시 켜줘』

       『프로 데뷔는 언제입니까 선생님! 프로 데뷔는 언제입니까 선생님! 프로 데뷔는 언제입니까 선생님! 프로 데뷔는 언제입니까 선생님! 프로 데뷔는 언제입니까 선생님!』

        

       수호병이 없는 첨탑은, 더 이상 안전한 기관총포대가 아니다. 퇴로조차 없는 무덤이지.

        

       [안지키면죽어야지(마법사)님이 처치되었습니다!]

       [아따먹(도적) → 안지키면죽어야지(마법사)]

        

       [챌찍고채팅침(궁수)님이 처치되었습니다!]

       [아따먹(도적) → 챌찍고채팅침(궁수)]

        

       그렇게 한 번 첨탑을 박살내고 나면, 게임은 너무나 쉬워진다.

        

       첨탑을 공략당하고, 방어하고, 뚫린 후에 수습하고, 수습하는 척 역습하는 게 일상이 되어버린 시즌 7, 8의 유저들이라면 모를까.

        

       시즌 1 마스터에서 놀고 있는 사람들 수준에서, 철썩같이 믿고 있던 첨탑이 이딴 식으로 도적 한 명한테 기습적으로 뚫렸을 때의 대처가 가능할 리가.

        

       불안해진 궁수와 법사는 첨탑을 버리고 다른 곳에 자리잡다가 잘려대고,

        

       상대 전열은 눈 앞의 적에 집중을 못하고 후열을 지키러 가야 하나 갈팡질팡 하면,

        

       애초에 별 생각이 없었을 사제도 여기 붙을까 저기 붙을까 우왕좌왕 거리게 되고-

        

       =승리!=

        

       결국 모두가 서로를 탓하는 내분 끝에, 이렇게 게임이 끝나는 것이다. 

       

       무력하고, 혼란스러우며, 분노로 가득 찰 수밖에 없는, 그런 게임 양상.

       

       상대 팀의 채팅에서는 온갖 욕설과 극찬이 오가고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상대 팀 채팅 보기 기능은 왜 안 파는 걸까.

       

       게임이 끝나고 나서, 상대 팀에서 서로에게 어떤 말을 했는지 보게 해주는 아이템……상상만 해도, 너무 좋은 컨텐츠잖아. 

       

       캐시로 팔면 당장……아니, 가챠로 뽑는 거여도 무조건 돈을 퍼부을 텐데.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12명이 잠시나마 모이는 결과창으로 이동했다.

        

       “이론의…여지가…없는, 도적…캐리네요.”

       [아따먹(도적): 이론의 여지가 없는 도적 캐리네요]

        

       『채팅치면서 한 마디씩 말하는거 왜케 커여움』

       『파멸적인 6연승 ㄷㄷㄷㄷㄷ』

       『진짜 챌 가나?』

       『아따먹 챌린저 간다!!』

        

       11승 3패.

        

       예상했던 것보다도 높은 승률이다.

        

       아직은 마스터 중상위권이기 때문이겠지만- 앞으로도, 어지간해서는 게임을 질 것 같지가 않았다.

        

       실력이 올랐다- 라는 느낌보다는, 몸을 다루는데 익숙해졌다는 느낌이지만.

        

       팔을 위로 쭈욱 뻗고 어깨를 스트레칭하며 슬쩍 시계를 향해 고개를 돌리니, 어느덧 8시.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눈부시다.  

        

       밥 먹을 시간이 한참 지났네.

        

       허기를 잘 느끼지 않는 탓에, 끼니는 배고프지 않더라도 의식적으로라도 챙기고 있다. 건강한 편도 아니고, 생활 습관이 좋지도 않으니까.

        

       먹는 거라도 제때 먹어야지. 

        

       “……늦었네요. 일단, 저녁부터 좀 먹어야겠어요.”

        

       『먹방 가자』

       『부추전 먹으면 안 됨?』

       『먹방 드가자~~』

       『소통방송 ON』

       『쿡방? 쿡방? 쿡방? 쿡방? 쿡방?』

       『얘들아 기대할 걸 기대하자』

       『캠 다시 키자 48번 말했다』

        

       쿡방……여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수요다. 언젠간 해볼 생각이 있지만, 지금은 무리다.

        

       무엇보다, 오늘은 방송을 시작할 때 친근한 도적의 고민상담을 해주느라 이미 시간을 많이 썼고.

        

       이렇게 오랜만에 방송을 하면서, 도적 플레이 비율이 너무 낮은 건 좀 문제가 있지 않을까.

        

       실력방송을 보며 도적 플레이 팁을 얻고 싶었던 시청자들이 얼마나 실망하겠어.

        

       트위트 스튜디오를 조작해서, 방제를 바꾸고-

        

       [(핫)(생)(녹) 도적부흥운동 – 도적은 끈기있게 (챌까지 노방종)]

        

       컴퓨터에 저장된 다시보기 동영상들을 연속, 반복 재생으로 설정된 재생목록에 추가했다.

        

       아, 첫날 방송은 빼야지.

        

       머리에 카메라를 달고 찍은 결과물은……내가 봐도 좀 어지럽더라.

        

       저 정도일 줄은 몰랐어.

        

       “자, 여러분. 복습 시간이에요.”

        

       『??』

       『핫생녹 이지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선생님 연세가 어떻게 되십니까』

       『???』

       『어디가……』

       『엄마 나 추워 가지마』

       『오는 거지? 돌아오긴 오는 거지? 이거 계속 틀어놓는 거 아니지?』

       『한 판만 더 돌리자 방송 19일만이자나…』

       

       “저녁 먹고……좀 자고, 올게요. 복습의 가치가 있는 도적 영상 위주로 엄선했으니까……지각생이 오면 생방송인 척 해서 꼼꼼히 보게 유도해주세요.”

       

       시청자들에게 당부의 한 마디를 남긴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복습, 꼼꼼하게 잘 하고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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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s Not That Kind of Malicious Broadcast

It’s Not That Kind of Malicious Broadcast

그런 악질 방송 안ㅣ에요
Score 3.7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am a healthy skill-based broadcaster.

I don’t hate priests.

It’s not that kind of broadcast.

What?

Clarify the controversy that’s been posted on the community?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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