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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0

       아피스의 권왕이 사용하는 주먹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무식함이다.

       

       방어란 없다.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는 것을 자신의 몸으로 증명하려는 듯한 그 우직함은 다른 유저들이 권왕 캐릭터와의 전면전을 피하게 만드는 이유 그 자체였다.

       

       그리고 권존은 이 권왕 캐릭터의 극에 달한 사람이다.

       

       짐승 같은 직감과 압도적인 반사신경을 지닌 그는 정면에서 누군가를 찍어 누르는 것에 한해서는 누구보다 뛰어났다.

       

       대신 그는 지능적인 플레이에 능하진 않았다.

       

       맵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제대로 된 싸움도 하지 않고 승리하거나, 심리전에 능해 상대의 머리 위에서 놀거나 하진 않는다.

       

       굳이 따지자면 상대의 수에 놀아나는 경우가 더 많은 사람이다.

       

       단순 무력만 따지자면 프로 팀에 스카우트에 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권존이 아마추어로 남은 데는 본인의 의지뿐만 아니라 이런 이유도 있었다.

       

       바꾸어서 말을 하자면 권존은 단순한 무력만으로 프로가 될 뻔했단 소리다.

       

       하린은 자신의 뺨을 스쳐 지나간 주먹을 보며 식은땀을 흘렸다.

       

       더 강해진 거 같은데?

       

       조금만 더 가면 삼장로처럼 주먹에 스치기만 해도 상처가 나는 거 아냐?

       

       유효타를 한 번 허락하는 순간 그대로 게임이 기울어 질 것이라는 걸 자연스레 알 수 있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충분히 할만했다.

       

       화령이 하린을 괴롭힐 때 쓰던 주먹에 비하면 권존의 주먹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당장 얼마 전에도 신나게 얻어맞았던 하린은 여전히 화령의 주먹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녀의 주먹은 무어라 형용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분명히 느려 보이는 데 어느새인가 눈앞에 도달해 있고, 가볍게 휘두르는 것 같은데 정작 맞으면 몸이 허공으로 날아가고, 분명 피했다고 생각한 주먹이 급소에 꽂히고.

       

       화령의 권은 극에 이르러 저항하는 것조차 무의미하다 느껴지는 무언가였다.

       

       하늘에서 내리는 신벌이었다.

       

       신이 아무리 배려를 했다 한들 그것은 단순한 인간이 대처할 수 있는 게 아니었으니.

       

       그런 권을 지겹도록 경험하던 하린은 금방 권존의 주먹에 적응할 수 있었다.

       

       분명 권존의 주먹은 강맹하다.

       

       하나하나에 거대한 힘이 담겨 있어서 감히 거기에 맞붙으려 하다가는 저항의 의지 채로 부서질 것이 분명했다.

       

       그렇지만 그 뿐이었다.

       

       승리라는 것은 단순히 주먹의 강함만으로 결정나는 게 아니었다.

       

       무인과 무인이 맞붙을 때 서로의 승리를 증빙해 주는 것은 오롯이 하나. 무공 뿐이었다.

       

       지금의 하린은 알았다.

       

       권존이 무라는 것에 잘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그저 남들이 하는 것처럼 권왕의 몸에 새겨진 것을 따라할 뿐이라는 것을.

       

       자신이 다루는 무조차 이해하지 못한 사람을 상대로 패 할 만큼 하린이 받은 교육은 어설프지 않았다.

       

       또 다시 권존의 주먹이 하린의 곁을 스친다.

       

       얼핏 보기에는 권존이 흐름을 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달랐다.

       

       권존의 주먹은 그저 스치기만 할 뿐 하린에게 닿지는 못했다.

       

       하린의 몸놀림은 끝없이 움직이는 바람과 같았으니. 인간의 손으로 바람을 붙잡을 수는 없었다.

       

       “피하는 건 잘하시네요!”

       “권존님이 못 맞추시는 거 아닐까요?”

       

       또 다시 권존의 주먹이 허공을 가른다.

       

       이번엔 다른 때와 달랐다. 틈이 컸다. 이건 분명 흐름을 뒤바꿀만한 실수였다.

       

       기회라 판단한 하린이 처음으로 손을 움직인다.

       

       하린의 권이 내질러진다.

       

       자신에게 날아드는 주먹을 보며 권존은 의아함을 느꼈다.

       

       무공에 관해 잘 알지 못하는 권존이지만 지금 하린이 사용하는 무공이 천마신공이 아님은 알았다.

       

       천마 특유의 위압감이 그녀에게서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저건 뭐지?

       

       그런 생각을 할 무렵 어느새 하린의 주먹이 권존의 앞에 도달했다.

       

       빠르다.

       

       피할 수 없다 판단한 권존은 다급히 고갤 숙여 이마로 주먹을 받아냈다.

       

       골이 울렸다.

       

       분명 한없이 가벼워 보이는 주먹이었는데 그 안에는 충분한 위력이 담겨 있었다.

       

       공세는 끝없이 이어졌다.

       

       하린의 공격은 전체적으로 보면 가벼웠다.

       

       스쳐가는 바람처럼 신경을 쓰이게는 만들어도 위협을 주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중간중간에 숨어 있는 칼바람들은 달랐다. 그것은 분명 피부를 찢고 뼈를 갈라버릴 강맹한 바람이었다.

       

       문제는 어느 것이 산들바람이고 어느 것이 칼바람인지를 구분할 수 없단 점이었다. 권존이 보기에 그 모든 주먹은 똑같은 바람이었으니까.

       

       덕분에 권존은 모든 주먹을 신경쓸 수밖에 없었다.

       

       수세가 이어졌다.

       

       권존은 주먹을 받아내고 또 받아내기를 반복하다 이를 악물었다.

       

       당장에 올바른 행동은 하린을 떨쳐내는 것이었다.

       

       상대의 흐름에서 빠져나와 승부를 원점으로 돌리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권존의 자존심이 그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가 보기에 하린은 얼마 전까지 자신의 아래에 이던 사람이었다.

       

       하수였다.

       

       몇 번이고 맞붙어도 이기리란 확신이 서는 이였다.

       

       그런 사람에게 다른 무엇도 아닌 자신이 가장 자신있어하는 정면전으로 밀린단 사실이 권존의 이성을 앗아갔다.

       

       그래서 권존은 도박을 택했다.

       

       얼굴을 향해 날아드는 하린의 주먹이 산들바람 일 것이라 예측했다.

       

       주먹을 피하는 대신 받아내겠다 생각하며 앞으로 한걸음을 내딛었다.

       

       그의 도박은 성공했다.

       

       하린의 주먹은 봄바람이었다.

       

       정면으로 주먹에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피해는 크지 않았다.

       

       얻은 것은 컸다.

       

       방어 대신 공세의 준비를 택했기에 권존은 주먹을 내지를 틈을 얻었다.

       

       필살의 일격을 준비할 시간을 얻었다.

       

       날려버릴테다.

       

       권존의 눈에 의지가 새겨진다. 그의 주먹에 내기가 실린다.

       

       입가에 웃음이 지어지고 내딛은 발이 땅을 파고든다.

       

       전력을 다한 권존의 주먹이 세상을 뒤흔든다.

       

       권의 결과는 파괴적이었다.

       

       공기를 터트리며 쏘아진 주먹은 대지를 뒤엎었고, 진로를 막는 병사들을 날려버렸고, 수 개의 나무를 박살낸 후에야 멈춰 섰다.

       

       허나 기이했다.

       

       본래라면 적을 박살냈어야 할 주먹의 끝에선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흘러가는 바람에 주먹을 내질렀을 때처럼.

       

       그 순간 권존은 권의 옆에 서서 미소를 짓고 있는 하린을 발견했다.

       

       탄성이 새나왔다.

       

       하린은 단순한 천마 캐릭터 유저가 아니었다.

       

       그녀는 무인이었고.

       

       바람이었다.

       

       

       *

       

       데케이는 해설을 해야 한다는 사실조차 잊고 하린과 권존이 싸우는 모습을 지켜봤다.

       

       한치의 물러섬도 없는 권과 권의 대결은 그야말로 아피스 유저들의 로망을 채현한 풍경이었다.

       

       모두들 아피스에 처음 입문할 때는 저런 모습을 기대한다.

       

       서로가 판타지 속의 영웅이 되어 치열한 싸움을 벌이기를 바란다.

       

       허나 현실의 앞에서는 무력하다.

       

       현실은 다르다.

       

       아피스에서 승리를 거두기 위해서는 흙탕물 위를 구를 필요가 없다.

       

       다른 편하고 좋은 수단이 얼마든 있으니 정면전에 목을 맬 필요가 없다.

       

       처음엔 로망에 가득 차 상대에게 정면전을 하자 외치던 이들도 현실을 겪다 보면 자연스레 승리를 위한 수단을 갈구하게 됐다.

       

       다른 이와 경쟁한다는 것은 어쩔 수 없이 결과의 앞에서 현실을 마주하게 되는 법이었다.

       

       그렇지만 저 둘은 달랐다.

       

       그 어떤 곳보다 변수가 많은 전장의 한 가운데에 선 둘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가장 비효율적인 방법을 택했다.

       

       “난타전! 난타전입니다! 서로 물러서지 않습니다! 처음 공세를 붙잡은 것은 권존! 그의 주먹이 냥냥을 향해 쏟아집니다!”

       “우직하고도 강맹하군. 아주 정석적인 권의 형태다. 담긴 위력도 만만찮으니 한 번이라도 유효타를 허용하는 순간 승부가 기울어지겠구나.”

       “그렇지만 냥냥은 주먹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피하고! 피하고! 또 피합니다! 스칠 지언정 유효타를 내주지 않습니다!”

       

       화령은 하린의 모습을 보며 슬며시 입꼬리를 올렸다.

       

       하린은 지금 자신이 가진 무공이 뭔지를 이해하고 펼치고 있었다.

       

       끝없이 흐르는 바람이 되어 상대의 공격을 흘려내는 법을 이해하고 있었다.

       

       깨달음을 얻었음에도 그게 깨달음이라는 것조차 알지 못하던 여자아이는 더 이상 없었다.

       

       하린은 지금 분명 무인이었다.

       

       “권존의 주먹이 크게 빗나갔구나. 이러면 공방의 주인이 바뀌지.”

       “냥냥은 자신에게 주어진 공격의 기회를 놓치지 않습니다! 난타! 난타가 이어집니다!”

       

       하린이 펼치는 권은 여타 천마 유저들이 사용하는 것과는 달랐다.

       

       그녀의 주먹은 가볍고 빨랐다.

       

       천마의 몸에 새겨진 권과는 전혀 다른 형태의 주먹이었다.

       

       “지금 냥냥님이 사용하는 게 뭐죠?! 천마에게 저런 기술도 있었나요?!”

       “저것은 천마의 기술이 아니다.”

       “그러면.”

       “하린의 기술이지.”

       

       화령이 단언한 순간 데케이는 아무런 부연설명 없이 그 말을 이해했다.

       

       하린이라는 게이머는 단순히 아피스에서만 유명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다른 무협게임에서 명성을 떨친 플레이어였다.

       

       화룡무인이라는 게임을 초창기부터 플레이 해오며 무협에 대한 열정을 인정받은 유저였다.

       

       그 게임에서 하린이 사용하는 무공의 이름은 분명.

       

       “풍류권.”

       “정확하다. 지금 그녀는 풍류의 이치를 사용하고 있다.”

       “보정 없이 천마의 몸으로 자신이 쓰는 무공을 사용하고 있다고요?!”

       “그렇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각 캐릭터에게는 그 캐릭터에 맞는 기술이 정해져 있었다.

       

       용사냥꾼이 창을 쓰고, 검방기사가 검과 방패를 사용하듯 천마가 천마신공을 쓰는 것도 게임이 정한 일이었다.

       

       화령의 말이 사실이라면 지금 하린은 시스템을 무시하고 있었다.

       

       게임의 규칙을 파괴하고 있었다.

       

       “비효율적이에요!”

       

       효율이 나올 리가 없었다.

       

       검을 쓰라 정해둔 캐릭터에게 몽둥이를 쥐어줘 봐야 제 성능을 낼 리가 없듯이.

       

       천마의 몸으로 풍류권을 쓴다는 건 너무도 바보 같은 일이었다.

       

       “그렇지만 멋지지 않느냐.”

       

       허나 때로는 효율이란 단어가 의미를 가지지 못하는 순간도 있는 법이다.

       

       비효율적이기에 사람의 마음을 자극하는 순간도 있는 법이다.

       

       지금처럼.

       

       끊임없이 이어지는 하린의 공세를 견디다 못한 권존이 승부수를 띄웠다.

       

       하린의 공격을 받아내며 공격의 준비에 나선 것이다.

       

       그 승부수는 성공한 도박이었다.

       

       파괴되어버린 대지가.

       

       저 멀리로 날아가는 병사들이.

       

       초토화 되어버린 숲이.

       

       그를 증빙했다.

       

       그렇지만 권존의 주먹은 가장 중요한 것을 가격하지 못했다.

       

       하린은 권존의 주먹 옆에 선 채로 웃고 있었다.

       

       “천마가 천마신공을 써야 한다고 누가 법으로 정해두었더냐?”

       “아니죠.”

       “천마신공을 쓰지 않는다 하여 게임에서 패배하기라도 하더냐?”

       “아닙니다.”

       “그럼 제멋대로 해도 상관없지 않느냐. 이것은 현실이 아니다. 게임이다. 게임은 결국 본인이 즐거우라 하는 것이잖느냐.”

       

       화령의 말대로였다.

       

       게임의 본질은 결국 즐기기 위한 것. 효율이니 비효율이니 하는 것은 중요치 않았다.

       

       데케이는 웃음을 지으며 목소리에 힘을 더했다.

       

       

       “또 다시 냥냥의 공세가 이어집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또 다시 에피소드가 길어지고 있네요!

    다음화 보기


           


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천마님 방송하신다
Status: Completed Author:
He couldn't pass his habits to others upon his return. The Heavenly Demon remained a martial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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