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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0

        

         “에다마츠님, 슬슬 이동하실 채비를 하셔야 늦지 않게….”

         

         감히 눈을 마주치기도 어려운 권력자이자 소속된 메가 코프 지배계층의 일원인 그에게 초조함을 감추지 못한 비서가 말을 걸어왔다.

         

         실상 재촉이나 다름없는 그 무례한 언행에, 구체적으로는 보필해야 할 자신보다도 약속 상대의 눈치를 더 보는 태도에 짙은 그늘을 느낀 에다마츠가 으르렁거렸다.

         

         “아직, 후계를 명확히 명시하지 않았을 뿐. 사장단에게 실권을 넘기고 은거하시는 회장님이 그리도 두렵더냐?”

         

         “!! 죄송합니다! 허나… 아무래도 문책성이 강한 호출이라고 판단되어… 이대로라면 에다마츠님의 이사회 지지율에도 영향이 갈 터이니 부디…!!”

         

         “…….”

         

         연신 고개를 숙이면서도.

         자기주장을 굽힐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이는 비서를 노려보던 그는 이내 안광을 거두고 처리하던 일을 끝맺었다.

         

         납득했다기보다는 하급자에게, 그것도 갈아치우게 되면 여러모로 불편사항이 꽃필 게 뻔한 직속비서에게 감정을 맞부딪혀봐야 특별히 이득도 없을뿐더러.

         자신이 민감하게 반응해서 괜히 아버지의 그림자를 더 키우는 건 아닐까 싶었기 때문이다.

         

         사각사각.

         

         그는 물리적인 도난 외에는 취득할 방법이 없도록 종이화한 데이터를 고이 접어서 양복 안주머니에 넣었다.

         

         아무리 엘리시움이 다른 메가 코프와 적대하는 것에 별다른 관심이 없다지만, 세상엔 기업에 불만을 가진 능력자나 조직이 많으니 주의해서 나쁠 건 없는 법이다.

         

         최근 다른 사장이나 이사들을 공격적으로 찔러 반감을 산 에다마츠 아마기라면 더더욱.

         

         대리석으로 마감된 바닥에 중후한 원목 책상, 여러 그림이 진짜로 끼워진 액자와 오르골.

         심미안이 부족하다 못해 없는 사람이라도 고풍스럽고, 장엄하고. 무엇보다 크레딧으로 환산하면 얼마가 될지 모르는 아득함을 느낄 자신의 집무실을 벗어난 그는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

         

         네오 헤이븐의 개국공신 중 한 곳인 에나마 코퍼레이션의 본사는 부지가 굉장히 넓었다.

         

         수요에 따라 인체공학을 주력으로 삼았어도 그 본질은 결국 생명공학.

         연구와 기술개발, 그리고 수비에 유리하도록 메트로폴리스 외각에 위치한 에나마의 부지에 인접한 바다도 포함된 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 드넓은 영토의 안쪽, 깊은 곳. 가장 풍요로운 해안가에는 정작 바닷물을 필요로 하는 시설이 아닌, 단 한 사람만을 위한 옛스러운 일본식 저택이 있었으니.

         

         “…만남이 끝나실 때까지 여기서 기다리겠습니다.”

         

         우뚝! 하고. 집무실로부터 이 고택까지 에다마츠를 호위한 추적자들이 대문 앞에서 칼같이 멈춰섰다.

         여태까지 그를 모시는 자세도 충분히 극진했다면, 이건 흡사 나무로 된 문지방이 사선이라도 되는듯 경외하는 모양새였다.

         

         

         …들어오는 자, 스스로의 분수를 알라. 이 안에 기거하는 건 이 세상에서 가장 오래 살아온 괴물.

         에나마 코퍼레이션의 창립자이자 세계를 주무르는 메가 코프의 수장 중 일인.

         

         오츠게 아마기(託宣 天城)라는 거인이 자취를 감춘 복마전일지니.

         

         자격이, 그리고 경험이 없는 이들은 이해를 벗어난 외형과 구조의 건물마저 심오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믿고 접촉하기를 꺼려 했다.

         

         

         물론… 그 혈통을 이어받은 자식들이야 이게 아버지가 품은 망향의 결과물이라는 걸 알기에.

         단순한 구조물에 겁을 먹는 못난이는 없었지만. 십년 가까이 모습을 보이지 않았음에도 여전히 회사를 지배하는 노인 자체는 두려워하고, 또 뒤로는 그 권력을 탐냈다.

         

         “……꿀꺽.”

         

         그를 모시고 몇 번이나 방문해 봤음에도 익숙해지지 않는 고즈넉한 분위기에 마른 침을 삼킨 비서가 앞서가는 에다마츠와 거리가 벌어질라 재빨리 따라붙었다.

         

         “…여긴 항상 공기만은 맑군.”

         

         언제나 뿌리를 잊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로 화원에 심어진 꽃이 만개한 벚나무를 지나쳐, 잉어가 뛰노는 연못을 따라 돌 박힌 오솔길을 일주한 그들은 저택 내부로 들어설 수 있었다.

         

         통로 곳곳에 걸린 족자엔 이제는 돌아가기 힘든 극동의 풍경이.

         은은하게 켜진 등은 신비로운 분위기를.

         용도를 짐작할 수 없는 닫힌 방들은 호기심을 자극했으나.

         

         몸에 품은 피 그 자체가 정당함을 증명하는 에다마츠는 곁눈질할 관심이 없었고, 비서는 제 목숨이 아까웠으니 그들은 곧장 가주가 기다리고 있을 토코노마(손님을 맞이하는 상징적인 방)로 향했다.

         

         “아마기 회장님. 호출을 명 받은 사장단의 에다마츠가 왔습니다. 입실하겠습니다.”

         

         간결한 인사와 함께 미닫이 문이 스르륵 열렸고.

         정갈하게 꾸며진, 다다미 깔린 방안에는 단아한 흑발 미녀가 시립해 있었다.

         

         키는 크지 않아도 모든 것을 포용해줄 모성애를 휘감은.

         많아 봐야 스물다섯은 되었을까? 젊음은 당연, 아직 앳됨마저 남아있는 동양 미녀를 확인한 비서는 그 곁에 있는 노인에게 인사를 올리기 전, 먼저 그녀에게 존중을 표했다.

         

         “평안하셨습니까, 스즈나시(鈴無) 사모님.”

         

         “…….”

         

         스즈나시라 불린 여인은 말없이 빙그레 웃어 보였고, 그 꼴을 본 에다마츠는 노골적으로 얼굴을 굳혔다.

         천하의 냉혈한이라도 어머니를 보고 지을 만한 반응은 절대 아니었지만 이 자리에 있는 모두는 내막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아니, 저 역겨운 건 클론(Clone; 복제품)이다.

         입을 열면 기억과 괴리감이 느껴진다는 이유로 언어능력마저 제거된 피가 흐르는 인형.

         

         오츠게 아마기의 무수한 집착이 낳은 모조품 중 하나.

         

         이번에 공개될 초재생 기술마저 사별한 아내를 부활시키려는 실험 과정에서 나온 부산물에 불과하다면 다른 메가 코프들도 그럴싸한 자료를 가져오라며 믿지 않으리라.

         

         “이 자리에서는 그냥 아버지라고 불러도 된다.”

         

         “…송구합니다. 아마기 회장님.”

         

         반면 깡마르고 늘어진 피부에 검버섯까지 줄줄이 피어난 노인, 오츠게 회장은 입실한 아들도 공경을 표하길 원하는 눈치였으나…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만 재차 확인하고 순순히 용건을 꺼냈다.

         

         “너에게 맡긴 연구소의 경과. 왜 나한테도 숨겼느냐?”

         

         순순히라고 표현하기엔, 간략한 말 한마디에 공기가 두 배는 무거워졌다.

         

         소용돌이치는 탁한 기운에 비서는 고개를 푹 숙여버렸다. 눈을 뜨되 그건 감은 거나 마찬가지였고 귀는 달려 있으되 거기로 들어오는 감각은 뇌까지 닿지 못했다.

         

         “…아무런 반응이 없어야 미지의 흉수가 더 조급해하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네 형과 누이들을 개새끼 마냥 물어 뜯고 치부를 캐냈다고?”

         

         “어차피 전부 성과를 위한 밥그릇 싸움 아니겠습니까.”

         

         내놓은 탕아나 진배없는 자신마저 견제하겠다면, 상응하는 상처를 입을 각오를 하라는 의미에서 보여준 작은 일탈일 뿐이라고. 에다마츠는 당당하게 선언했다.

         

         그 꼴을 본 회장은 조용히 키세루(곰방대)를 물고 한 모금 머금었다.

         

         재능 있는 망나니, 우수한 광견, 아버지를 혐오하는 아들.

         

         세상을 글씨를 썼다가 지워버리는 칠판이나, 모래성을 지었다 허무는 놀이터로 여기는 그를. 어머니의 임종을 지켰던 에다마츠는 평생 증오하고, 기피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츠게는 에다마츠를 아낄 수밖에 없는 이유가 명확했다.

         

         “무슨 까닭으로 너에게 거기를 맡겼는지 아느냐?”

         

         “…삼가 경청하겠습니다.”

         

         “수익도 안 나오는 시설을, 내 자리에 가장 관심이 적은 너를 굳이 자극할 머저리는 이 존엄한 혈통에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반쯤은 영생하는 군주 밑의 후계자들은 얼마나 애가 타고 피가 마를까?

         더군다나 매일매일, 시간이 지나갈수록 새로운 기술이 개발돼서 왕의 죽음이 멀어져만 간다면 선을 넘는 이가 나와도 이상하지 않았다.

         

         뿜어진 담배연기가 금세 천장에 드러나지 않도록 설치된 정화기에 빨려 들어갔다.

         

         “……그래. 박사를 포함한 연구원들이 전부 죽은 데다, 자료까지 남김없이 제거됐다고?”

         

         “병력이 교전한 규모와 시설 재확보에 걸린 시간을 고려하면 외부 유출이나 강탈이 아닌, 자료 소실을 목적으로 삼은 테러라고 판단했습니다.”

         

         자료 소실, 테러. 불온한 단어가 줄줄이 열거될 때마다 노인의 낯이 붉어지고 희끄무레한 눈썹이 하늘로 치솟았다.

         

         “거기에…! 그곳에!! 뭐가 있었는지, 어떤 백년대계가 진행되고 있었는지 아느냐?”

         

         공손하지만 어딘가 반항적인 자세로 에다마츠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그러자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한 그가 답답했는지 회장이 격한 감정을 숨기지도 않고 정답을 토해냈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 기계장치에 의해 강림한 신). 속칭, 여신의 부활 프로젝트를 닥터 마카로비치가 진행하고 있었단 말이다!”

         

         “……그렇군요.”

         

         아아, 또 위대한 선지자의 망집이 만들어낸 개미지옥이었군.

         회장 본인이 알았다면 피가래를 토했을 불경한 비웃음을 속에만 담아둔 에다마츠가 건성으로 맞장구 쳤다.

         

         “나를, 네 어미를 완벽한 상태로 영원히 살게 해줄 해커를 키워내야 할 요람이 사라진 건 절대로 좌시할 수 없다…!!”

         

         …정녕 자기자신에게 미완성 기술을 적용하지 않겠다며 노화방지수술도, 임플란트도 거부하고 약물과 의료기기로 200년 가까이 살아온 결과 미쳐버렸단 말인가?

         

         “…만드시려던 게 여신인데. 동시에 해커입니까…?”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모순된 표현에, 적당히 혼나고 자리를 모면하려던 그가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젊었던 시절에는 일선 과학자였던 노인이 눈에 불을 키고 흥미를 보인 아들을 가르치려 들었다.  

         

         “너는 인간이, 몸을 이루는 세포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세포는 생물학적 로봇이다! 그 무엇도 원하지 않고, 그 무엇도 느끼지 않으며 주어진 명령만을 반복하는 로봇! 그리고 그 집대성인 인간이야말로 가장 완벽하고 탄생할 확률이 낮았던 기적의 기계 생명체지!!”

         

         클론 스즈나시가 열변을 토하는 그의 앞에 공손히 잔을 내려놓았다.

         

         헌신적인 아내라기보단 노예에 가까운 모습에 에다마츠가 질겁하거나 말거나. 미리 준비된 차로, 갈라지려는 목을 축인 노인이 평생의 역작과도 같은 가설을 이어서 설명해 나갔다.

         

         “허황된 완전 전뇌화를 쫓는 엘리시움의 창녀도. 살점의 기계대체를 주장하는 엑사테크의 통 속의 뇌도. 내가 세운 근본회귀 이론을 부정하지는 못했다! 우리의 육신은 감옥 같은 게 아니라, 단순히 설계가 잘못된 한 척의 배일 뿐이라는 걸!”

         

         “그러면 배를 고치는데 필요한 게 무엇이냐? 바로 맞는 도구다. 우주 전체에 흩어진 별보다도 많은 생명의 언어, 미천한 탄소 생물을 이루는 단백질 체계는 결국 전기 신호로 구성되어 있으니. 그 신비를 유린하고, 지배할 수 있는 절대적인 왕홀을 만들어야 하지 않겠느냐?!”

         

         “수천년이 걸린 진화의 과정에서 어리석은 인간의 뇌가 내렸던 수많은 잘못된 결정과 명령들을 번복할 수 있다면, 임플란트나 유전자 조작 같은 불완전한 수단에 기대지 않고도! 순수성(Purity)을 간직한 채로 우리는 무결해질 수 있단 말이다!”

         

         저택 전체를 울리는 카랑카랑한 광란의 물결이 지나갔다.

         다시금 좁은 노구에 갇힌 비운의 천재가 이글거리는 눈으로 수족이 되어줄 자식을 바라보았다.

         

         “그러니… 범인을 찾아내라. 에나마에 불만을 품은 지하조직이든, 다른 기업이나… 설령 네 믿음처럼 내부자의 소행이라고 여겨도 상관없다. 찾아내는 모든 걸 회수해서 내게 가져와라…!!”

         

         묵묵히, 이마를 상에 닿을 정도로 숙여 뜻을 받들 의지를 보인 에다마츠가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그에겐 고분고분 따를 생각 따위는 전혀 없었다.

         그저 합법적으로 임원들을 괴롭히고 늙은이를 애타게 만들 수 있다는 기쁨만이 존재했을 뿐.

         

         하지만 마지막으로. 떠나는 길에 에다마츠는 설명을 듣기 전까지는 떠올리지 못했던 경우의 수를 떠올렸다.

         조사를 하면 할수록 미궁속으로만 빠져들던 사고를 빈틈없이 설명할 수 있는 길을.

         

         “…만약, 그 잘난 여신께서. 하찮은 인간과 연구소에 분노하셔서 스스로 탈출하셨을 가능성은 없습니까?”

         

         한바탕 쏟아낸 기력을 보충하고자 아내로부터 건네지는 약들을 받아 들던 노인이 그 말을 듣고는 코웃음을 쳤다.

         

         “흥! 마카로비치 그 놈 같은 말을 하는구나. 내 프로젝트의 중요도를 고려하여 거창하게 표현하기는 했다만, 한낱 수술도구 따위가! 시험관 안의 살덩어리가 어찌 영혼을 가질 수 있더냐?

         

         “…알겠습니다.”

         

         텅 빈 미소를 지우지 못하는 스즈나시를 일견한 그는 초점이 사라진 비서를 데리고 시대와 어긋난 집을 벗어났다.

         

         

         

         한편 그 시각, 출생의 비밀이니 숨겨진 능력 같은 건 상상조차 못하는 한 해커는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우리…… 아나스타샤 해커님? 어느새 사표를 제출하셨더군요?”

         

         “……워낙 정신적인 충격이 커서, 요양이 좀 필요해서요.”

         

         무시무시한 삼백안이 구석구석을 훑고, 날름거리는 혓바닥과 대조되듯 깍지 껴진 손이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으니. 그녀는 열심히 준비한 알리바이가 제발 먹히길 바랄 수밖에 없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짐승과는 다르게 십여년을 보살핌 받아야 겨우 제 몫을 다할 수 있는 인간.
    돌연 자가복제와 증식을 멈추고 죽어버리는 세포와 그로 인한 질병.

    뇌의 가소성과 세포 오류는 무섭네요!

    그리고 두 시간 지각은 더더 무섭고요!! 죄송합니다잘못했어요용서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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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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