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60

     잠시 뒤.

     9명의 화이트는 미리 대기하고 있던 멘테 경과 로버트를 비롯한 지브롤터 기사단에 의해 압송되었다.

     어린아이의 손을 밧줄로 묶는 건 분명 좋은 일은 아니었으나, 그들이 저지른 행위를 들은 기사들은 더 이상 그들을 아이로 취급하지 않았다.

     아이의 모습을 한 암살자.

     ‘전에는 배후를 캐내지 못했지만, 이제는 다르지.’

     3년 전 누아르를 납치했던 그림자는 비록 죽었지만, 지금은 3명의 그림자와 6명의 예비 그림자를 확보했다.

     ‘그 인간이 어떻게 움직일까.’

     일단 우리는 9명의 화이트를 죽이지는 않을 것이다.

     아버지에게 말한 대로 백은을 가진 그림자 3명은 모르가니아로 보내지겠지만, 나머지 6명은 아직 갱생의 여지가 있다.

     ‘모처럼 누아르 관리용 메이드로 딱 좋은 아이들인데, 함부로 죽일 수는 없지.’

     만일 죽인다고 한다면.

     성인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죽인다고 한다면.

     나를 비롯하여 아스타시아를 직접 죽이려고 든 그림자 셋뿐.

     ‘마침 잘됐지. 전부 아스타시아보다 연하라서, 감히 아스타시아를 어떻게 할 생각은 못 할 거야.’

     메이드들은 이제 철저히 아스타시아를 위해, 그리고 지브롤터를 위해 일하게 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들의 목숨이 날아갈 수 있으니까.

     ‘순순히 지브롤터를 위해 아는 모든 걸 쏟아낸다면, 진짜 지브롤터의 사람이 될 수도 있는 거라고.’

     어디를 가도 죽을 위기라고는 하지만, 지브롤터가 자신을 보호해 줄 거라는 확신이 든다면 제국을-

     그림자들의 왕, 황태자를 배신할 것이다.

     ‘그림자들처럼 황태자에게 목숨이 저당 잡힌 것도 아니고.’

     이미 뿌리 깊게 그림자가 된 이들과 달리, 그림자가 아닌 이들은 ‘피의 서약’을 맺지는 않았으니까.

     ‘백은의 존재를 노출당한 것도 아니야.’

     황태자가 가장 신경을 많이 쓰고 있는 ‘백은’이 들킨 것도 아니니까.

     애초에 그걸 들고 온 이들은 그림자 세 명뿐이었으니.

     ‘이용 가치가 있는 한, 우리가 자기들을 숨겨주려는 의도가 있다는 걸 이해하면 좋으련만.’

     그리고 지브롤터에서도 최대한 진실을 숨기고 있을 거니까.

     ‘황태자가 눈치를 챘을 때는 이미 정신 개조와 충성 서약이 끝난 뒤가 될 거야.’

     황태자의 시선이 남부에 쏠려있는 사이.

     ‘백은의 샘플을 확보한 이상, 나머지는 이제 원료를 확보하는 일만 남았어.’

     백은을 제조한다.

     황태자를 황제로 만들어 준 그 중독성 약물이 아닌, 그레이 지브롤터식 백은으로.

     ‘필요한 재료는 이미 알고 있어.’

     백은의 은(銀).

     이는 평범한 방법으로는 쉽게 얻을 수 없는 물질이다.

     자그마치, 엘프와 관련이 있으니까.

     ‘엘프를 확보하여, 지브롤터식 백은을 만들어 낸다.’

     마침.

     협곡을 따라 남쪽으로 쭉 내려가면, 백작령보다 더 넓은 숲이 하나 존재한다.

     ‘참 할 일이 많네.’

     지브롤터 가문 사람들을 관리해야 하고.

     훗날 기사단으로 성장할 보육원 아이들도 신경을 써야 하고.

     이제는 제국에서 온 고아들을 어떻게 첩자로 키울지 고민도 해야 한다.

     무엇보다-

     “그레이 경?”

     “예, 아스타시아 전하.”

     이 소녀.

     아스타시아 황손녀.

     “그레이 경은 정말이지, 아버지인 백작님과 친해 보이시네요.”

     “…….”

     “어라. 제게는 물어보지 않는 건가요? 아버지와의 관계?”

     “마냥, 좋다고는 할 수 없지 않습니까?”

     내 질문에, 아스타시아는 씁쓸하게 미소를 지었다.

     “제 아버지가 누군지 아시나요?”

     “당연히 알죠. 누구보다도 더.”

     이 세상에서.

     “아마 저만큼 전하의 아버지를 잘 아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에엣, 거짓말. 그렇다면…혹시, 이름은 알고 있나요?”

     “물론입니다.”

     나보다 그를 더 잘 아는 사람은 없다.

     “전하의 아버지, 현 황태자의 이름은-”

     * * *

     그 시각, 남부 해협. 왕국-제국 국경지.

     중년의 한 남자와 20대처럼 보이는 여인이 손을 잡고 해변을 걷는다.

     

     둘의 의복은 몹시 가벼워 보였고, 특히 여인은 얇은 원피스만 입고 있다.

     “장군님.”

     여인, 세이레네 백작 영애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새삼스럽지만, 구해주셔서 감사해요.”

     “별말씀을.”

     장군이라 불린 남자, 하이레딘 해군 대장은 세이레네 영애의 걸음에 맞춰 모래사장을 걸었다.

     “그보다, 밤공기가 차갑군. 어서 들어가는 게 좋겠소.”

     “저야 돌아가면 된다고 하지만, 장군께서는 헤엄쳐서 돌아가셔야 하잖아요.”

     “그거야 문제없소. 저기 근처에 우리 군의 배가 기다리고 있으니.”

     “장군….”

     세이레네 영애는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배 위에 손을 올렸다.

     “저희, 함께 할 수 있는 거죠?”

     “물론이오. 설령 제국이 다시 왕국과 전쟁을 일으키려고 한다면.”

     하이레딘은 세이레네 영애의 손에 가볍게 입술을 맞췄다.

     “내가 제국의 모든 관직과 재산을 내려놓더라도, 반드시 그대를 위해 이곳으로 돌아오리다.”

     “네. 꼭…그렇게 해주셔야 해요. 당신을 위해, 기다리고 있을게요.”

     세이레네 영애의 눈에서 굵은 물방울이 떨어졌다.

     뿌우우.

     어둠이 짙은 바다에서 들려오는 미약한 호각 소리.

     “돌아갈 때가 되었군.”

     슬슬 ‘귀환’하라는 신호에 하이레딘은 손을 들어 세이레네 영애의 눈물을 닦은 뒤, 그대로 바다를 향해 달렸다.

     “장군!”

     세이레네 영애가 뒤에서 크게 외쳤으나, 하이레딘은 그대로 바다를 달려 헤엄쳤다.

     “사…!”

     첨벙, 첨벙.

     물소리 때문에 잘 들리지는 않았지만, 분명 무슨 말을 했는지는 짐작할 수 있었다.

     “크흡.”

     하이레딘은 자신도 모르게 터져 나온 웃음에 바닷물을 잠시 들이켰고, 열렸던 입을 꽉 닫고는 수평선 너머를 향해 계속 헤엄치고 또 헤엄쳤다.

     약, 10분.

     안개 속, 검은색만 자욱하게 깔린 바다에 한 형체가 흔들리고 있었다.

     하이레딘은 그 형체를 향해 즉시 계속 헤엄을 쳤고, 곧 그 형체에서 떨어진 밧줄을 붙잡고 위로 올라갔다.

     “고맙다. 기다려줘서.”

     형체는 배였고, 갑판 위에서 밧줄을 내려준 해군 제복의 병사 하나가 심각한 얼굴로 하이레딘을 기다리고 있었다.

     “장군. 그….”

     “왜 그러지?”

     “…전하께서 오셨습니다.”

     움찔.

     ‘전하’라는 말에 하이레딘은 잠시 몸이 굳었다.

     “괜찮다.”

     하지만, 곧 호흡을 가다듬으며 병사의 어깨를 두드렸다.

     “전하께서도 알고 계신 부분이니까.”

     “…….”

     “어디 계시지?”

     “함장실에….”

     “알겠다. 옷을 갈아입은 뒤-”

     “그대로, 귀환하는 대로 즉시 오라고 하셨습니다.”

     “…실례지만, 어쩔 수 없군.”

     하이레딘은 물이 뚝뚝 떨어지는 옷을 가볍게 털어낸 뒤, 갑판을 지나 배 안쪽으로 걸어갔다.

     조금은, 을씨년스러운 분위기.

     함장실이라는 곳은 곧 자신이 기거하는 곳과 같았으나, 오늘따라 유독 그곳까지 가는 길이 멀게만 느껴졌다.

     똑똑똑.

     노크와 함께 문을 열자, 안에는 군청색 머리칼의 남자-제국의 황태자가 검은 정장을 입고 기다리고 있었다.

     “전하…?”

     “마지막 인사는 잘 나누고 오셨나?”

     그는 원형의 테이블에 앉은 채, 열려있는 와인과 빈 와인잔 두 개를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어떤 일로, 이곳까지 오셨습니까? 항구에서 쉬고 계시던 게-”

     “장군의 사랑을 멀리서 지켜보고 싶어서? 하하. 앉게.”

     하이레딘은 고개를 숙이고는 의자에 앉았다.

     “모처럼 마개를 열었는데 혼자서 자작해야 하는 게 아닐까했지. 다행이야. 조금만 더 늦었으면…흐흐흐.”

     도대체 왜 황태자가 여기에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으나, 다행히 황태자는 약간 술에 취한 것처럼 기분이 좋아 보였다.

     “한잔하셨습니까?”

     “아아. 그래. 한 잔, 미리 했지. 와서 마시게.”

     “감사히 받겠습니다.”

     황태자는 한 손으로 와인병을 들어, 하이레딘이 든 빈 잔에 냅다 와인을 들이부었다.

     “전하…?”

     “내가 그대를 아끼는 만큼 주는 거야. 와인이라고 꼭 잔을 가득 채워서 마시지 말라는 법, 없잖나?”

     왕국의 예법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아니면 뱃사람들처럼 맥주잔을 가득 채워 마시듯 마시고 싶어서?

     이해할 수 없다.

     “잔을 들게.”

     하지만 황태자가 어디 이런 기행을 벌이는 게 하루 이틀 일도 아니니, 하이레딘은 그저 잔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경.”

     황태자는 진지한 목소리로 자신의 잔을 들었다.

     “인간은 무엇으로 완성된다고 생각하나?”

     “…소장은 철학자가 아닌지라, 짧은 식견으로 말씀드릴 수밖에 없겠습니다만.”

     벌컥, 벌컥.

     “가정, 입니다.”

     하이레딘은 단숨에 와인잔을 비웠다.

     “한 여인과 사랑을 나누고, 그 여인과 자식을 낳고, 가정을 이루는 것이야말로 한 인간의 완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유부남이 되는 것이?”

     “…죄송합니다. 제게는 이번이 처음인지라.”

     “흐흐흐. 아니야. 죄송할 건 없지. 그냥, 의견을 묻고 싶었을 뿐이거든.”

     황태자는 자신의 빈 잔을 빙글빙글 돌리며 옅게 웃었다.

     “권력. 부. 명예. 신분. 사랑. 나는 지금까지 수많은 이들에게 인간의 완성이 무엇인지 물었지만, 단 한 명도 나와 같은 답을 내놓는 이는 없었어.”

     “…….”

     “왜 그러나? 아. 내가 이런 거 묻고 다녔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어서 그러나?”

     황태자는 여전히 술기운이 가득한 얼굴로 웃고 있었다.

     “답을 알려주지.”

     “…….”

     뭔가.

     등골이 서늘해진다.

     “나는 말이야, 그렇게 생각해. 그리고 이건 진리지.”

     술에 약을 태웠다거나 하는 건 전혀 없는데, 입 안에 남은 와인이 전투 중에 적의 피가 입에 튄 것처럼 텁텁하다.

     “인간은 죽음으로 완성된다.”

     “……!!”

     “경.”

     하이레딘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전하-”

     “느려.”

     콰ㅡㅡ앙!

     몸을 일으킨 순간, 이미 하이레딘은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째서? 왜? 그런 질문은 하지 말게. 다 내가 계획이 있어서 그런 것이니.”

     꾸우욱.

     황태자가 발로 하이레딘의 가슴을 짓누른다.

     “크, 허억, 으으윽…!”

     “그래도 이왕 가는 길, 알려는 주고 보내는 게 사람의 도리 아니겠나.”

     어떻게든 두 손으로 발을 붙잡아 떼어내려고 하지만, 인간의 힘으로 어떻게 움직일 수 없는 바윗덩어리처럼 무거웠다.

     “자네는 죽음으로서, 노스트럼과 우리 위대한 제국-‘테르시안’의 평화를 잇는 가교가 될 것이야.”

     “저, 전하…?!”

     “하이레딘 장군. 제국의 주전파에 의해 암살당하다.”

     하이레딘은 이해할 수 없었다.

     설명을 듣고 있지만, 왜 자신이 죽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마침 왕궁에 시끄럽게 땍땍거리는 여자가 하나 있는데, 그 여자 오른팔이랑 같이 엮어서 보내버리려고.”

     “크, 크으윽…!”

     “뭔가, 그 눈빛은. 꼭 본인이 죽지 않더라도 다른 방법이 많지 않냐는 눈빛인데.”

     황태자는 눈을 깜빡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유언은 이미 다 생각해뒀네. 하나는 제국의 군인으로서. 하나는 왕국의 귀족 영애와 사랑에 빠진 남자로서. 어느 쪽이 좋겠나? 아, 둘 다 좋다고? 그래. 내가 다 알아서 해주지.”

     “전하, 어째서…!”

     “긍정적으로 생각하시게. 자네는 역사서에 이름이 남게 될 거야. 두 나라의 평화를 만들어 낸 상징으로서.”

     “크, 크으윽…!”

     이해할 수 없다.

     논리, 이성, 모든 것을 동원해봐도 저 존재의 말을 받아들일 수 없다.

     “왜 그렇게 거부를 하는 거지? 이해할 수 없군.”

     단 하나.

     오랜 기간 하이레딘 자신에게 도움을 줬던 하나의 감각이, 정답을 찾아냈다.

     “진심으로, 그게, 저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직감.

     “제가 죽어서, 죽음으로 이름을 남기는 것이, 제 완성이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당연하지.”

     황태자는.

     “적국의 귀족 영애와 눈 맞아서 어디 조용히 사는 것보다, 죽음으로서 화려하게 인생을 마무리하는 게 더 낫지. 그렇고말고.”

     그저, 나지막하게 책을 읽듯이 말할 뿐이었다.

     “안심하시게. 최대한 잘 꾸며주지. 주전파 암살자들 여럿을 상대로 필사의 각오로 싸우다 살해당했다고 말이야.”

     “크, 크아아악!!”

     하이레딘은 괴성을 지르며 벗어나려고 했으나, 그저 팔다리를 아등바등하는 것이 한계였다.

     “너, 너 이…!”

     “다들, 어째 똑같군. 항상 이렇게 마지막 순간에 왔을 때는 반말을 찍찍 지껄이지 않나. 후.”

     황태자는 헛웃음을 흘리며, 와인병을 들었다.

     “죽은 놈 중의 몇몇이 그러더군. 죽기 전에 남긴 유언으로, 내 이름을 외치고 가더란 말이지?”

     서걱.

     손날을 세워 와인병의 목을 가르자, 곧 와인병의 목이 비스듬히 잘려 날카롭게 빛나기 시작했다.

     “어디 한 번, 외쳐봐라. 나의 이름을.”

     “너, 너 이…! 테르시안…!!”

     “그건, 제국의 이름이고.”

     황태자가, 히죽 웃으며 유리병을 거꾸로 붙잡았다.

     “이 저주받을, 합스베르크ㅡㅡㅡ!!”

     “정답.”

     황태자는 환한 미소와 함께.

     “포상이다.”

     와인병을 놓았다.

     푸ㅡㅡ욱.

     “…….”

     빈 와인병 안에 붉은 액체가 튀어 안쪽 벽에 흐른다.

     “테르시안 제국이라. 흠. 시조 테르시안의 이름이지.”

     황태자는 간헐적으로 펄떡거림에, 가슴에 올린 발에 힘을 주며 가볍게 지르밟았다.

     “오래 쓰기는 했지. 그러니 바꿔야겠어. 이왕이면, 노스트럼을 정복하고 대륙 전체를 통일한 위대한 존재의 이름으로.”

     황태자가 두 팔을 벌리며 환하게 웃었다.

     “모든 것은 통일제국, 합스베르크.”

     함장실의 창으로, 달빛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나의 제국을 위하여.”

     * * *

     테르시안 제국의 황태자.

     미래, 자신의 이름을 건 통일 제국을 열려고 하는 자.

     합스베르크 폰 테르시안.

     나는 그를 죽여야 한다.

     당신을 위하여.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2권 끄으으읏!!

    예선 마지막날이네요.

    예선-본선에 관계없이, 매국명가 간신천재 연재는

    1일 2편, 0시 1편 12시 1편 기조를 최대한 유지하도록 하겠습니다.

    만 11월 2일 하루는 오전에 좀 쉬겠습니다.
    11월 2일 61화는 오후에 업로드 됩니다.

    그러면 3권에서 뵙겠습니다.

    다음화 보기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