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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0

       

       

       

       

       첫날 입학식을 시작으로 벌써 3일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한빛예고를 다니는 것에 어느 정도 적응하고 오늘도 어김없이 평범하게 수업을 듣고 있는데……

         

         

       “…….”

         

         

       쓰으읍…….

         

       도저히 옆쪽으로 고개를 못 돌리겠다.

         

       그 이유는 내 옆자리에 앉아있는 설소영이 심심하면 내 쪽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근데 이상한 점은 그녀의 시선이 내 얼굴 쪽이 아니라 약간 대각선 아래로 향해 있다는 점이었다.

         

       바로 수업 시간의 내용을 필기한 내 노트 쪽으로.

         

       설마 수업 내용에 집중을 못 해서 필기를 전혀 못 했을 리도 없고, 나보다 공부를 월등히 잘하는 여자가 내 필기 방식을 베끼고 싶어서 그런 것도 절대 아닐 테고…….

         

       나는 속으로 깊은 한숨을 내쉬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

       “음? 왜?”

       “아니, 아까부터 계속 내 노트를 쳐다보길래 왜 그러나 궁금해서.”

       “아하.”

         

         

       내 말을 이해한 듯한 설소영.

         

       이윽고, 그녀는 능청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냥. 내 눈에는 뭔가 네 글씨가 예뻐 보여서.”

       “……?”

         

         

       대답을 들으니 오히려 의문이 더 들었다.

         

       방금의 말이 생전 처음으로 글씨에 관해 칭찬받은 것이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한땀 한땀 심혈을 기울여서 적었으면 또 모를까, 지금처럼 수업 내용을 필기하려면 자연스레 손이 빨라질 수밖에 없다.

         

       그런 상태로 적었기에 당연히 누군가에게 칭찬받을 수준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혹시 몰라 설소영의 책상 위에 펼쳐져 있는 노트를 슬쩍 쳐다봤다.

         

       음…….

         

         

       ‘설마 기만하려고 그러는 건 아니겠지?’

         

         

       당연히 그녀의 노트에는 나랑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예쁜 글씨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이건 조금 과장일지도 모르지만, 저 정도면 한 5m 떨어진 곳에서도 봐도 제대로 알아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면 나는 그녀의 필체가 아름답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야 몇 년 전에 서로 싸인을 교환하면서…….

         

       잠깐만.

       싸인?

         

       나는 다급히 내 노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대충 나만 알아볼 수 있게 휘갈겨 썼긴 했는데 얼핏 보면 싸인에 사용하는 필체랑 비슷하긴 했다.

         

       설마……

         

         

       ‘싸인의 필체와 노트에 적힌 필체를 비교해서 동일 인물인 걸 판별할 수 있다고?’

         

         

       적어도 나는 불가능할 것 같은데…….

         

       일단 조금 과장된 생각인 것 같아서 예의상의 감사 인사를 건네고 다시 수업에 집중했다.

         

       그렇게 빠르게 시간이 흘러 어느덧 오전 수업이 모두 끝났다.

         

       오전은 주로 국어, 수학, 역사 등등 보통 교과 과목이 배치되어 있고, 오후는 전공 교과 과목이 배치되어 있다.

         

       그리고 오늘의 전공 교과 과목 수업은 ‘문학비평’이라는 과목이었다.

         

         

       “오늘이 문학비평 과목 첫 시간이지? 얘들아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하나만 물을 게. 너희가 생각하는 비평이란 무엇이니?”

         

         

       문뜩 문학비평 과목의 담당 선생님께서 나를 포함한 영상제작과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졌고, 학생들이 하나하나 손을 들며 자신의 의견을 제시했다.

         

       어떤 학생은 ‘비평이란 결국 문학작품을 정의하고, 분류하고, 평가하는 작업’이라 말했고.

         

       또 어떤 학생은 ‘하나의 문학작품을 어떻게 이해하고 해석하고 평가하는가에 관한 노력의 총체’라고 표현했다.

         

         

       “좋은 문학작품과 좋지 않은 문학작품을 판단해 내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전공과목 시간 때 내 옆자리에 앉게 된 차무식의 말처럼 간단하게도 표현할 수 있겠지.

         

       이처럼 사람에 따라 ‘비평’이란 그 개념이 참으로 다양하다.

         

       뭐… 사실 지금까지 나온 의견들을 몇 종류로 묶어 분류하면 결국은 비슷비슷한 뜻이 되긴 한다.

         

       순서대로.

         

       판단하고, 가치를 평가하고, 분석하고, 감상한다. 이어서 결점을 찾고, 작품에 관한 칭찬과 종류를 나누며 다른 작품들과 비교해본다.

         

       이렇게만 나열해보면 비평이라는 것은 그리 특이하거나 어려운 일이 아니다.

         

       솔직히 영상제작과의 취지에 맞는 나름 나쁘지 않은 교과라고 생각한다.

         

         

       “이게 5년 전만 해도 교육부 쪽에서 별 관심이 없어서 리뉴얼을 잘 안 해줬는데 어느 작가분 덕분에 2년 전부터 해마다 계속 갱신되고 있단다. 다들 한번 첫 장을 넘겨볼래?”

         

         

       나는 선생님의 말을 따라 목차 바로 다음 장을 넘겼다.

         

       그곳에는 첫 비평을 할 영상 문학작품이 실려있었는데 어째 작품의 제목이랑 저자가 이상했다.

         

         

       “다들 익숙한 작품이지? 그래도 시험 문제로 출제될 예정이니까 너무 안일하게 생각하면 안 된다?”

         

         

       선생님의 흐뭇한 미소. 그것과 비슷하게 근처에 있던 학생들 역시 대부분 흥미로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나만 빼고.

         

         

       “키야~ 수업 시간에 927 작가님의 작품을 가지고 학생들끼리 토론을 한다고? 이거 기대했던 것보다 전공 시간이 더 재밌어지겠는데?”

         

         

       옆에서 세상 태평한 얼굴로 차무식이 말했다.

         

       그래…….

         

       녀석의 말대로 지금 이 상황이 나름 재밌긴 하네.

         

       어서오세요 카페 바이올렛이 무려 교과서 가장 앞부분에 실려있다는 점이.

         

       나는 혹시 몰라 교과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빠르게 훑어봤다.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 다른 두 작품 역시 똑같이 교과서에 실려있었다.

         

       국민의 교육권을 보장하기 위해 저자의 허락을 받지 않고 작품을 교과서에 실을 수 있다.

         

       이것은 전생과 마찬가지로 나도 익히 들어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근데…….

         

       아무리 내 작품이 전 세계적으로 흥행했다고는 하지만, 지금처럼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교육적인 내용인가?

         

       여기서 더 어지러운 점은 살다 살다 내 작품을 내가 비평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 그나마 긍정적인 소식은 하나 있네.

         

       아까 선생님이 언급했던 것처럼 만약 내 작품이 시험 문제로 출제되면 공부 안 해도 다 맞추긴 할 거다.

         

         

       ‘설마 내가 저자인데 작품의 본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겠어?’

         

         

       그건 그거 나름대로 문제다.

         

       근데 만약 내 의도랑 전혀 다른 의도가 정답인 문제가 있다?

         

       그때는 진심으로 바로 교육부 엎으러 간다…….

         

         

       “야, 근데 마침 927 작가 얘기 나와서 하는 말인데 이제 슬슬 다음 작품 낼 때 되지 않았냐?”

       “그니까. 내가 봤을 때 다음 작품도 내년에 바로 교과서에 실릴 듯.”

       “하하. 리얼.”

         

         

       문뜩 앞자리에서 다른 학생들의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뭐… 아마 내일부터는 저 대화 내용이 많이 달라지지 않을까 싶은데.

         

       나는 쓴 미소를 지으며 멍하니 창문 밖을 바라보았다.

         

       하늘에 둥둥 떠다니는 저 햐안 구름과는 다르게 새삼 시간이 참 빠르게 흘러가는 것이 느껴진다.

         

       벌써 내일이 ‘그날’이라니…….

         

       음?

         

       근데 내일이 무슨 날이냐고?

         

       글쎄…….

         

       아마 몇몇 사람들에게 ‘익숙함에 속아 소중한 것을 잊지 말자.’라는 교훈을 깨우쳐주게 하는 뜻깊은 날이 아닐까 싶은데.

         

       일단 나 PD님이 예상한 바로는 내일이 오면 말 그대로 아주 난리가 날 거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덧붙여서 최소 몇 달간은 그게 계속 이어질 거라고 예상하셨고.

         

       내 생각에도 몇 주 정도는 화제가 될 거라고 예상 중인데, 솔직히 몇 달 단위는 조금 과장이라고 생각했다.

         

       어쨌든.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며 그날은 매우 평온하게 지나갔다.

         

       ……마치 태풍이 몰아치기 전날 밤처럼.

         

       물론 태풍은커녕 다음 날의 날씨는 더럽게 맑았다.

         

       이제 서서히 기온이 올라 가로수 길에 벚꽃이 피어나기 시작했고, 봄의 향기가 물씬 나는 참으로 포근하고 따스한 날이었다.

         

         

       [속보! 927 작가, 은퇴 선언!]

         

         

       하지만 그런 좋은 날에 대한민국은,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태풍을 맞이했다.

         

       아니.

       어쩌면…….

         

         

       [시바 927 작가 다음 작품 내라고 독촉한 새끼들 다 죽여버리고 싶으면 일단 나부터 개추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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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풍보다 더한 자연재해라고도 표현할 수 있겠다.

         

         

         

       ***

         

         

         

       돌연 927 작가의 은퇴 소식이 선언되고 대한민국은 말 그대로 뒤집어졌다.

         

         

       <ㅁㅊ 927 작가 은퇴 이유 밝혀짐>

         

       스튜디오엔믹스 측에서 밝혔는데 지나친 관심과 압박이 심리적 부담감과 스트레스로 다가왔다는데? 이거 민원 전화 걸었던 거랑 국민청원 건 때문에 그런 거 아님?

         

         

       -댓글-

         

         

       [거짓말거짓말거짓말거짓말거짓말거짓말거짓말]

       [돌아와돌아와돌아와돌아와돌아와돌아와돌아와]

       [나도 다시 927 돌아올 때까지 숨 참는다. 사망 뉴스 나오면 일단 나인 줄 아셈]

       [아니, 시바 아무런 전조도 없이 갑자기 심리적 압박감이라 말하고 은퇴하는 게 상식적으로 말이 된다고 생각함? 스튜디오엔믹스는 안 붙잡고 뭐한 거냐?]

       [윗 댓글 정신상태 보니까 국민청원이랑 민원 전화 말고 커뮤니티도 한몫한 듯.]

       [얘들아 나 927 작가 다음 작품 못 본다는 생각에 지금 온몸이 벌벌 떨려. 이미 중독됐는데 이거 어떻게 치료해?]

       [이 새끼 유병민임?]

       [속보! 스튜디오엔믹스 현재 민원 서비스 전면 차단함. 어지간히도 전화 많이 때려서 통신 서비스 먹통 된 듯 ㅋㅋㅋㅋㅋㅋㅋㅋ]

       [이미 자기들 때문에 배는 떠났는데 그걸 붙잡으려고 한다고? ㅈㄴ 이기적이네]

       [그래서 927 작가가 은퇴한 거지 뭐. 근데 피해는 왜 우리도 나눠서 받냐고 시발!!!]

         

         

       상황이 이런 것은 커뮤니티뿐만이 아니었다.

         

       뉴스, SNS, 사람들끼리 나누는 대화의 주제마저도 모두 927 작가에 관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 유일한 동아줄은 927 작가의 은퇴에 관한 모든 사정을 알고 있는 스튜디오엔믹스였다.

         

       덕분에 스튜디오엔믹스의 현 상황은 통신 서비스가 먹통이 될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

         

         

       “유연정 국장님. 본사 정문에 이미 매스컴들이 쫙 깔렸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후… 예상대로 난리가 났군요. 일단 앞으로를 위해서라도 마중을 나가줘야겠죠. 나 PD는 박용오 국장을 도와 신문사 인터뷰에 응해주세요.”

       “알겠습니다.”

         

         

       나영진이 다급히 국장실을 뛰쳐나가는 모습을 보며, 유연정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현 스튜디오엔믹스가 처한 상황을 보면 이제는 진짜 드라마 제작사의 범주를 넘어선 것 같았다.

       

       

       

       

       


           


I Became a Genius Writer Obsessed With a Popular Act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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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She likes me enough to win an award. Meet Seo Eun-Woo, a passionate K-Drama fan turned writer, whose life takes an unexpected twist when he awakens in a world of mediocre dramas. Frustrated and desperate for the perfect storyline, he stumbles upon a former actress who sparks his creative genius. Watch as their fateful encounter turns his life into a captivating drama of its 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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