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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0

       ‘이, 이건 내 계획에 없던 일인데….’

         

       소녀는 당혹스러웠고, 유령은 분노하며 일갈을 날렸다.

         

       [그러니까 기회가 있을 때 만졌어야지! 넌 항상 느릿해서 문제야! 이 조루야!]

         

       ‘…조루가 이럴 때 쓰는 말은 아니지 않아?’

         

       [그럼 언제 쓰는 말인데?]

         

       ‘내, 내가 어떻게 알아!’

         

       [왜 성질을 내? 그냥 모른다고 하면 되잖아? 하여튼 성격 참….]

         

       ‘!!?’

         

       아이린 윈들러는 뒷목을 잡을 뻔했다.

       먼저 시비를 건 게 누구인데 이리도 뻔뻔할 수 있을까.

       마음 같아선 작정하고 말싸움이라도 벌이고 싶긴 했으나.

         

       “기사님 저기 보세요. 레비 아가씨가 연설하고 있어요!”

       “곰순이가 말을 잘하긴 하죠.”

       “저러면 이긴 건가요?”

       “토론에 이기고 말고가 어디 있나 싶긴 한데, 논리로나, 사람들 반응으로나 곰순이가 확실히 긍정적이니까, 아마 이긴 게 아닐까 싶네요.”

       “헤헤!”

         

       당장은 방해꾼의 존재가 우선이었다.

         

       헤실헤실 웃는 시녀.

       다른 사람이 저리 웃으면 어디 모자란 사람으로 보일 테지만, 긍정과 순수함100% 자랑하는 인간 비타민답게 보는 이로 하여금 미소를 짓게 하는 선함이 절로 느껴진다.

         

       레이라 윈터.

         

       땋은 머리가 유독 잘 어울리는 어여쁜 시녀가 이한의 옆에 딱 붙어 토론회를 감상 중이었고, 이한은 그에 적당히 호응해줬다.

         

       …참고로 아이린 윈들러는 홀로 쓸쓸히 이한이 챙겨준 프레첼을 먹는 있는 중이었고.

       

       ‘시녀님을 원망할 수도 없고, 씨이! 프레첼은 또 왜 이리 맛있는 거야!’

         

       그렇게 이한이 곰돌이 7호에게 구매한 프레첼 대부분이 아이린 윈들러의 뱃속으로 들어갔으며,

       다음날 소녀는 부은 제 얼굴을 보고 비명을 지르는 건 정해진 수순이었다.

         

       * * *

         

       원래 우연으로 위장한 데이트를 꿈꾸는 아이린이었으나, 세상이란 건 계획대로 되지 않는 법.

       그의 곁에 늘 붙어 다니는 시녀의 존재를 잊고 있던 아이린의 패착이 아닐 수 없었다.

         

       “시녀님은 안 쉬세요?”

       “저는 기사님 전속 시녀라, 항상 붙어 다니는 게 당연한 건데요?”

       “아, 아까 전엔 없으셨으면서….”

       “헤헤, 집안일을 하느라 어쩔 수 없었어요. 아, 기사님! 오늘은 청소하면서 가구가 안 부서졌어요! 다행이죠?”

       “망가지지 않는 게 당연한 일이긴 한데, 왜 기쁜지 모르겠군요.”

       “그런데 망치가 부러졌어요. 머리에 떨어졌는데, 피하지 못하고 실수로 부러트렸어요, 죄송해요….”

       “…일단 우리 신관한테 가볼까요?”

       “왜요?”

       “…….”

         

       머리 위로 망치가 떨어졌는데, 머리가 다치긴커녕, 도리어 망치를 부러트린 돌머리, 아니 무쇠머리 시녀님은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그들과 함께 다니게 됐고, 아이린은 속으로 개같이 울었다.

         

       그러나.

         

       “아이린 아가씨는 공부 안 하셔도 되는 거예요?”

       “쳐야 할 시험이 있긴 하지만, 평소에 공부해 놓은 게 있으니 뭐.”

       “와! 역시 수석이네요! 멋져요!”

       “뭐, 뭘요….”

       “아이린 아가씨는 대단하신 분인 것 같아요. 예쁘시고, 머리도 좋으시고, 요리도 잘 하고, 모르는 게 있으면 배우려고 노력도 하시고…! 아가씨는 정말 대단한 분이에요.”

       “…시녀님, 혹시 뭐 갖고 싶은 거 없으세요?”

       “없는데용?”

         

       레이라 윈터는 미워하려야 미워할 수 없는 여자였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순수한 인간 비타민과 같은 그녀다.

       만약 꼬리가 있다면 지금도 쉴 새 없이 흔들리지 않을까 싶은 골든 리트리버 같은 여성이기도 했고.

         

       모든 말이 아부가 아닌 순도 1,000% 진심이며, 칭찬 받는 이는 성격이 배배 꼬여 있지 않는 이상 절로 경계심이 풀릴 수밖에 없으리라.

         

       그녀가 머리는 부족하더라도, 어찌 하여 왕녀의 신임을 받을 수 있는지 증명하는 천연의 재능.

         

       그런 골든 리트리버가 아이린 윈들러를 무장해제 하는 시간은 10분이면 충분했다.

         

       [아린이 단순해….]

         

       ‘너 같으면 저 사람을 싫어할 수 있겠어?’

         

       […….]

         

       항상 꼬박꼬박 반박하던 유령이 처음으로 말문이 막혔다.

         

       레이라 윈터.

       그녀는 유령에게도 강적이었다.

         

       * * *

         

       “가, 감사해요, 교관님. 이렇게 직접 와주셔서.”

         

       레비 폴트가 쑥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이한은 뭘 이런 걸로 다 감사하냐며 퉁명스레 대하면서도 꽃을 건넸다.

       소녀의 머리칼과 대비되는 붉은 장미가 제법 잘 어우러진다.

         

       “한가해서 왔으니 감사할 것도 없다. 그보다 제법 언변이 좋더군.”

       “뭐, 뭘요. 그저 아는 걸 내뱉은 것에 불과한데. 별것도 아니에요.”

       “그게 대단하다는 거다.”

       “맞아요, 레비! 훌륭했어요!”

       “레비 아가씨, 멋졌어요. 무슨 주제인지 하나도 모르겠지만!”

       “…하하.”

         

       레비 폴트는 높은 점수를 받으며 토론회를 마쳤다.

       언변도 물론이지만, 소녀는 공부한 만큼 성과를 내는 사람이었다.

       누군가는 공부를 해도 제 실력을 못 내지만, 때론 공부한 만큼의 성과를 내는 이도 있으니.

       그런 의미에서 레비 폴트는 우수한 노력가이자 미래가 기대되는 재원이 아닐 수 없으리라.

         

       자신이 맡은 바 일은 무조건 해니니 말이다.

         

       “한가하면 같이 밥이나 먹도록 하자.”

       “그, 그럼 다음 토론회만 보고 가면 안 될까요? 꼭 보고 싶은 분이 있어서….”

       “호오, 남자냐?”

       “아, 아니에요! 그런 거!”

         

       레비 폴트가 당황하며 드물게 언성을 높였다.

       허나 소녀의 당황스러움이 도리어 의심만 사게 할 따름인지 기사의 시선이 좁혀졌다.

         

       ‘곰순이 녀석에게도 청춘이 오나?’

         

       소녀에게도 봄날이 오는가.

         

       제 연애는 관심 없지만, 남 연애사만큼은 흥미로운 못난 어른이 흐뭇함을 느낄 시점, 토론회장에서 다음 토론자들이 나타났다.

         

       “…여자들?”

         

       이한의 얼굴에 실망감이 번져갔다.

         

       “그, 그러니까 말했잖아요. 그런 게 아니라고….”

         

       레비 폴트는 괜한 멋쩍음과 함께 소곤거리듯 투덜거렸다.

         

       “제가 보고 싶었던 건 저분이에요. 카린 영애님이요.”

       “흠, 쟤를 말하는 거냐?”

       “정확히 짚으시네요? 혹시 이미 안면이 있으셨나요?”

       “아니, 그냥 혼자만 아우라가 다르다 싶어서.”

         

       그는 정확히 레비 폴트가 관심 있는 대상을 특정했다.

       그도 그럴 게 유난히 눈에 띄는 여성이 있었었으니까.

       도리어 아니라면 더 이상하지 않을까 싶다.

         

       ‘거 색깔 한 번 거창하다.’

         

       진보라색 머리칼과 눈동자가 인상적인 생도.

       딱 봐도 미인인 느낌이 강했으며, 보고 있노라면 싱그러운 매력이 점차 느껴진다.

       허나 미색보다 강렬한 건 카린이란 여성의 존재감이었다.

         

       마치 현대의 톱스타를 연상케 하는 독보적인 아우라.

         

       “카린 알렌시아 드 귀네비어 후작 영애세요. 현 재상님의 따님이시고도 하고요.”

       “대단한 신분이군.”

       “마냥 신분만 대단하신 분이 아니세요. 명석하시긴 얼마나 명석하신지, 명석한 학자들과 토론을 벌이실 정도로 두뇌가 뛰어나신 분이니까요.”

       “…생각보다 잘 아는군?”

       “제 동년배 여성 중, 저분을 동경하지 않는 분은 없을 거랍니다. 아, 물론 아이린 영애님도 동경의 대상이긴 하세요!”

       “……쟤가?”

       “네에, 마법학부 수석이시잖아요? 갈라하드 가문의 따님이기도 하시고.”

       “…….”

         

       …병든 병아리가 동경의 대상?

         

       이한으로선 마법사가 어디 존경할 구석이 있나 싶어 어안이 벙벙하다.

       마법사란 인종은 잘해주면 안 되는 인종인데, 왜 그걸 모르는 걸까?

         

       ‘하여간 젊은 애들 감성은 이해하기 힘들어….’

         

       이한이 떨떠름한 표정을 짓기도 잠시, 곧 토론회가 시작되며 정숙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그리고 잠시 후.

         

       “…이거 보라돌이 단독 콘서트였냐?”

         

       이한은 다른 의미로 떨떠름한 기색을 보였다.

         

       “보, 보라돌이라뇨….”

         

       레비 폴트의 반론을 듣지 않으며, 이한은 주변의 분위기가 보라돌이, 그러니까 카린에게만 집중되는 현장의 반응을 실시간으로 관측했다.

         

       – [카린 알렌시아 드 귀네비어가 인사드려요. 오늘 우리의 토론 주제는 다름 아닌 <브리튼과 팬드래건의 진정한 융화를 위해서 어찌 해야 하는가?>에 대한 토론입니다. 저는 ‘반대파’ 대표를 맡고 있으며, 지금부터 ‘브리튼과 팬드래건이 왜 합치하여선 안 되는지에 대하여’ 주장하겠어요.]

         

       …자극적인 주제였다.

         

       여전히 브리튼 왕국의 잔당이 난동을 부리며, 브리튼의 시민들이 언제 봉기(蜂起)를 일으켜도 이상하지 않을 현재.

         

       지난 3년간 기껏 먹은 브리튼을 어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열렬한 토론은 상류층에서도 격렬하게 다뤄지는 문제였고, 왕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골치 아픈 난제이기도 했다.

         

       한데 그 예민한 문제를 지금 이 자리에서 다루었고, 하물며 현 재상의 딸이 ‘반대파’라니.

         

       정말이지….

         

       “깡 한 번 좋네, 그렇게 생각 안 하냐.”

         

       “…….”

         

       “모른 척하지 말고, 너한테 묻고 있는 거잖아.”

         

       “…저, 저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래, 너.”

         

       “…….”

         

       “바보인 척 굴지 마라. 보라돌이랑 관계없는 척하려는 건 알겠다만, 걱정하는 티가 팍팍 난다.”

         

       “…….”

         

       “그리고, 그렇게 부담스러운 시선을 보내면서 들켰다는 표정 짓는 건 또 뭐냐? 이 수상한 놈아.”

         

       “…….”

         

       이한은 슬금슬금 그의 옆에 앉은 채, 물끄러미 시선을 주는 소년을 보았다.

       어딘지 유약한 자로 보인다.

       허나 이한은 안광을 빛내며 조소를 머금었다.

         

       이 녀석….

         

       ‘내 옆에 앉으면서 [스테이터스]라고 외쳤지, 지금?’

         

       이한의 귀는 벙긋거리던 작은 속삭임조차 놓치지 않았고, 순간적으로 직감하며 깨달았다.

         

       ‘이 자식이구나.’

         

       …상태창이.

         

       * * *

         

       데릭은 진땀을 흘렀다.

         

       극도로 소심하여, 지인과 마주하는 상황조차 힘겨운 그다.

       그러니 생판 타인과 마주한 현 상황 자체가 극심한 공포일 수밖에 없었으나, 그는 확연히 평소보다 땀을 많이 흘렸다.

         

       이유?

       다른 게 아니었다.

         

       ‘이, 이게…. 사람의 스펙이 맞아?’

         

       <스테이터스 스킬>로 확인한 상대방의 스테이터는 등골이 서늘해질 정도로 경이로운 것이기에.

       

       ━

       이름 : [이한 터틀]

         

       종족 : [??]

         

       특성 : [금강승(Lv.7), 강한 재생력(Lv.5), 맹수의 육감(Lv.6), 노련한 직감(Lv.6), 독 내성(Lv.4), 종사의 자질(Lv.7), 주문 학살자(Lv.5)]

         

       금강승 : 육체를 부수고 목숨을 담보로 한 역경에서 살아남은 수도승(修道僧)만이 가질 수 있는 특성. 육체능력 상승, 여성을 돌같이 볼수록 색욕이 내구력으로 전환된다.

         

       강한 재생력 : 육체의 제련(製鍊)을 성공한 자만이 가질 수 있는 특성. 피부와 뼈, 근육, 신경, 장기 등 육체 전신의 재생력이 증가하며, 고통이 수반된 육체 단련을 반복할수록 육체는 질겨진다.

         

       맹수의 육감 : 맹수의 피를 가진 자만이 얻을 수 있는 특성. 짐승과 같은 육감이 부여된다.

         

       노련한 직감 : 전쟁에서 사지육신 멀쩡히 열 번 이상 살아남았을 때 주어지는 특성. 위기감지에 도움이 되며, 참과 거짓을 판별한다.

         

       독 내성 : 독을 복용하여 살아남을 때 주어지는 특성. 웬만한 독에 대한 저항력을 준다.

         

       종사의 자질 : 새로운 무학을 전파하고 탄생시키는 자에게 주어지는 특성. 독자적인 무학을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부족한 기술의 재능을 보조해준다.

         

       주문 학살자 : 마법사의 천적 퀘스트를 달성한 자에게 주어지는 특성. 마력저항력을 비롯하여 마법사에게 심리적 공포를 안긴다.

       ━

         

       쩌어억….

         

       다시금 봐도 입이 쩍 벌어진다.

         

       특성의 개수가 무려 7개!?

         

       보통 인간이 가진 특성은 아무리 많아봤자 3개가 넘어가지 않음을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수치다.

         

       특성이란 건 그 인간이 살아온 ‘세월’과 ‘노력’ 그리고 ‘시련’과 ‘고통’에 따라 결정되기에 대부분 그 수가 적은 것이었다.

         

       한데 무려 7개라니?

       태어날 때부터 고문당하며 살기라도 한 건가?

         

       ‘트, 특성 개수도 개수지만, 특성 레벨이 뭐 저렇게 다 높아…?’

         

       엘리트 기사의 [특성 Level] 평균이 기껏해야 3에서 4인 것을 감안하면 까무러칠 노릇이다.

       게임 캐릭터로 따지면 4차 전직을 끝낸 게임 캐릭터의 스펙이 Lv.4란 뜻.

       한데 이 사람의 특성 레벨 중엔 ‘Lv.7’이 있다.

         

       이 뜻은 실상 이 사람은 7차 전직을 완료한 전사 캐릭터란 뜻이 된다.

         

       Lv.5가 한 영지의 기사단장이 될 수준이며.

       Lv.6이 한 영지를 대표할 할 만한 챔피언 클래스이며.

       Lv.7은…!

         

       ‘영웅 클래스.’

         

       이 ‘게임’에서도 얼마 없는 히든 클래스!

         

       허나 모든 영웅 클래스를 기억하는 데릭으로선 이한이란 영웅 캐릭터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아니 그 전에…!?

         

       ‘왜 종족명이 물음표지? 금강승은 또 뭐야? 무협도 아니고…, 그리고 주문 학살자? …저 특성 얻으려면 마법사를 기본적으로 30명 이상은 죽여야 하는 히든 특성인 걸로 아는데, 그걸 Lv.5까지 올렸다고…?!’

         

       마법사를 대체 얼마나 죽이고 다녀야 저렇게 레벨 업을 하는 거지-?

         

       데릭은 뒤늦게 재능이 부족한 둔재에게 특별한 재능을 부여하는 유니크 특성 ‘종사의 자질’마저 확인하며 마른침을 삼켰다.

         

       왜 [개발자]인 그조차 처음 보는 특성과, 그 특성을 지닌 영웅 클래스가 있는 건지 여전히 이해는 안 가지만.

         

       ‘존나 무섭네.’

         

       이 양반이 마법사 백 명은 거뜬히 학살한 인물임은 분명했으니까.

         

       ……데릭은 본능적으로 눈을 깔았다.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환생 30년, 알고 보니 장르가 로판이었다?
Status: Ongoing Author: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the genre was romance fantasy? ...Really, how? I lived as a magician's slave, experimented on, then as an assassin, mercenary, soldier, and even a knight. This is a story where I'm in a genre all by my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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