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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0

       

       

       “무, 무슨 짓이…… 무슨 짓이오?”

       

       반말을 하던 조선인 순사가, 따귀를 맞자 당황하며 격식을 한 단계 높여서 물어온다. 다짜고짜 따귀를 때렸으니 필시 자신보다 높은 사람이리라 짐작하는 것이리라.

       

       갑작스러운 검문에 웅성거리던 영화관 내부도 쥐죽은 듯이 조용해진 가운데, 나는 덤덤하게 말했다.

       

       “백노평 남작의 차남 백철연이다. 일본식 성씨로는 시라바야시라고 하지.”

       “예?…… 아이고, 귀족 나으리셨습니까! 죄송합니다! 제가 귀하신 분인 줄을 몰라뵙고……”

       

       조선인 순사는 허리를 90도로 숙이며 금세 굽실거렸다. 나는 비록 귀족 작위 중에서 가장 끕 떨어지는 남작의, 그것도 작위를 물려받을 장남도 아니고 차남이었지만,

       

       그래도 대부분의 조선인들에게 있어서 일제에게 작위를 받은 조선귀족이라는 것은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존재였던 것이다.

       

       조선인 순사가 뺨을 얻어맞고 허리까지 숙이는 소란에, 옆 줄에 있던 일본인 순사가 다가와서 말했다. 

       

       『조선 귀족이십니까? 그래도 좀, 협조를……』

       

       ‘옳지.’

       

       조선인 순사를 붙잡고 실랑이를 벌이느니 좀 더 급이 높은 일본인 순사를 상대하는 것이 더 빠를 것이다. 나는 일본인 순사에게도,

       

       짝-!

       

       거침없이 따귀를 갈기고는 대뜸 물었다.

       

       『너 소속이 어디야?』

       『예, 예? 본정서 소속입니다만……』

       『본정서? 그래…… 종로서의 무라사끼 서장 알지?』

       

       나는 이번에는 무라사끼를 들먹거렸다. 비록 관할구역은 다를지라도 종로경찰서는 경성에서 가장 영향력이 높은 경찰서였다. 일본인 순사는 눈을 꿈뻑거리며 대답했다.

       

       『예, 예! 물론 압니다만…… 혹시 귀 생도께서는 종로서장과의 관계가 어떻게—』

       『고라(이놈)! 내가 무라사끼 서장의 아들하고도……』

       

       나는 일본인 순사에게 윽박지르며 말했다. 무라사끼 종로경찰서장의 아들과 매우 절친한 관계이며, 바로 어젯밤까지도 밤새도록 술 먹고 놀았다고.

       

       『진짜라니까? 믿지 못하겠다면 전화로 확인해 봐.』

       『……!』

       『뭐 해? 어서! 시라바야시라고 하면 알아들을 거다.』

       

       일본인 순사는 아직도 얼얼한 뺨을 매만지며 쩔쩔매다가 결국 부하 중 하나에게 외쳤다.

       

       『하시다 순사보! 전화해 봐!』

       『예!』

       

       부하 하나가 영화관에서 뛰쳐나갔다. 한참 뒤에 돌아온 부하는 숨을 헐떡거리며 돌아와 보고했다.

       

       『예……. 종로서에 전화를 했더니 사실입니다. 무라사끼 서장의 말로는, 아들인 무라사끼 겐지 군이 교우인 시라바야시 데쓰젠 군과 함께 오늘 아침까지 밤을 새워 놀았답니다.』

       『이런! 정말로 죄송합니다!』

       

       그제서야 일본인 순사도 허리를 깊이 숙이며 사과를 해 온다. 나는 순사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주며 격려하듯이 말했다.

       

       『뭐, 그래. 일에 열중하다보면 실수할 수도 있지.』

       『예! 예!……』

       

       역시 친구는 잘 두고 볼 일이다. 나는 내 곁에 서서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는 함서주에게 입모양으로 말했다.

       

       ‘봤지?’

       

       누가 친구가 없어? 내가 이렇게 친구도 있고 경찰 친구도 있다. 나는 함서주에게 씩 웃어보이고는 다시 순사에게 물었다.

       

       『그나저나, 이게 다 무슨 일인가? 검문이라니. 테러 첩보는 또 뭐고?』

       『저, 자세한 것은 내부 사정인지라……』

       『뭐야? 지금 내가 귀족은 커녕 일반 시민으로서의 권리도 침해받고 있는데, 그 합당한 이유도 알지 못한단 말인가? 자네 이름이 뭐지? 지금 바로 무라사끼 경찰서장에게 민원을 넣어야겠어.』 

       『이야이야(아뇨아뇨)!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결국 일본인 순사는 조선인 순사에게 턱짓을 한다.

       

       『오이! 보꾸(朴) 순사! 조선인 취체는 하시다 순사보에게 맡기고, 이 분께 자네가 설명해 드려.』

       『예에…….』

       

       앞서 나에게 뺨을 얻어맞은 조선인 순사—박씨인 모양이었다—는 검문 대열과 다소 떨어진 구석으로 나를 이끌고는, 작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고것이, 실은. 경찰서로 투서가 날아들었지 뭡니까요.”

       “투서?”

       “예. 본정(혼마찌)부터 명치정(메이지마찌) 처럼 일본 사람들이 많은 곳에 폭탄 테로를 하겠다고…… 그래서 저희도 아주 비상입니다, 아이고.”

       

       폭탄 테러라니? 어느 정신나간 놈들이 자기들이 테러를 하겠다고 경찰서에 선전포고까지 하고 테러를 한단 말인가? 내가 묻자 순사는 다시 입을 열었다.

       

       “고것이, 자칭 태극단이라고 하는 놈들인데……”

       

       ‘태극단?’

       

       태극단이라면 분명 홍옥례가 속한 단체다. 홍옥례는 원산에 갔을텐데. 얘네 또 뭔가 꾸미고 있는 건가?

       

       ‘시발, 왜 또 쓸데없는 짓을……’

       

       교내 신사에 테러를 하려던 홍옥례를 막은 게 고작 며칠전인데, 이번에는 경성 시내에 테러라고?

       

       게다가 이렇게 사람이 드글드글한 번화가에 테러라니?

        

       번화가와 일본인 거주구역에 테러를 한다니까 얼핏 일본인들만을 노린 것 같지만, 이런 번화가에는 조선인들도 많이 섞여있을뿐더러 타겟이 되는 일본인들도 대부분 민간인들이다. 

       

       ‘미친놈들인가, 진짜.’

       

       아무리 독립운동하는 녀석들이라지만 이건 아니지. 하지만 내가 구태여 위험을 무릅쓰고 그 태극단인가 뭔가 하는 녀석들을 막을 이유도 명분도 없었고, 애초에 막을 방도도 없었다. 당장 녀석들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나와 유일한 접점인 홍옥례는 원산으로 떠났으니.

       

       그러니 나로서는 그저 몸을 사리는 수밖에. 나는 순사와의 대화를 마치고, 다시 대열에 서 있는 함서주에게 돌아와 말했다.

       

       “돌아가자.”

       “어, 어? 네에? 어디루,”

       

       어디긴, 하숙집이지. 함서주는 아직도 얼떨떨해서 뭐가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는 모양이었다. 나는 함서주의 손을 잡고, 등 뒤로

       

       『실례가 많았습니다! 편히 돌아가십시오!』

       

       하는 일본인 순사의 인사를 받으며 영화관 밖으로 나왔다.

       

       내내 쏟아지던 비는 어느새 늦은 오후가 되어 어두워지기 시작한 지금도 여전히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나는 금방 택시를 잡아 함서주를 뒷좌석에 태우고 나도 그 옆으로 앉았다.

       

       “이랏샤이…… 아, 조선분이시군요.”

       “돈암정 종점이요.”

       

       택시가 출발하자 그제서야 함서주가 얼떨떨한 목소리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 아까…… 손님이, 순사를 때리셨던 거죠……?”

       

       나는 대답했다.

       

       “응.”

       “조선사람이랑 일본사람 순사 둘 다……”

       “응. 너도 봤잖아?”

       “……아휴, 내가 제 명에 못 살아!”

       

       그러더니, 조그만 손을 쥐고는 내 팔뚝을 투닥투닥 때리는 것이 아닌가.

       

       “악! 왜 그래?”

       “손님, 돌으셨어요? 어떻게 겁두 없이 순사를 때릴 생각을 해요? 저까지 깜방엘 들어가는줄 알았잖아요! 그저 심장이 떨려서……”

       

       하긴, 얘 같은 소시민에게 있어서, 순사 그것도 일본인 순사라면 우는 아이도 멈추게 하는 존재일텐데, 그런 순사를 내가 다짜고짜 때리니 경악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그나저나 감방이라니. 아무래도 제 아버지가 징역을 살던 경력이 있으니 이런 문제에 대해서 좀 더 민감할 수밖에 없는 걸까.

       

       나는 줄무늬 죄수복을 입은 함서주의 모습을 상상하다가, 함서주를 안심시키기 위해 웃으며 말했다. 

       

       “뭐, 그럴 수도 있지. 종로경찰서장 아들놈 따귀를 때리고도 친구로 지내는데.”

       “네에?” 

       

       함서주는 이번에야말로 정말 놀란 듯이 눈이 휘둥그래해지더니, 다시 그 조그만 손으로 다시 나를 두들긴다.

       

       “대체 무슨 생각으루 사시는 거예요? 목숨 아깐 줄두 모르구!……”

       “알았어! 알았으니까 진정해!”

       

       지금 네가 때리고 있는 나야말로, 일개 순사보다는 훨씬 높은 사람이라고……! 

       

       

       

       ***

       

       

       

       같은 시간, 교내 기숙사의 방.

       

       창 밖으로부터 들어오는 저녁노을에, 이유하의 물빛이 서린 은발이 마치 노을빛을 받은 호수처럼 물들었다. 이유하는 여전히 긴 은발을 길게 풀어해친 채로, 벽에 걸린 거울 앞에 서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내 어찌 그에게 서울을 함께 구경하자고 했단 말인가.’

       

       하지만, 신의가 있다면 이미 했던 말을 무를 수도 없는 일. 그리고 백철연과 함께 구경을 가기로 한 것이 이제와서 싫어진 것도 아니었다. 아니, 내심을 말하자면 오히려 바라고 있던 일이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백철연이라면 진정으로 믿고 따를 수 있었으며, 세상 문물에 미숙하여 헤매는 자신을 이끌어줄 수 있는 사내였으니까.

       

       다만 한 가지 고민으로 막막할 뿐이었다.

       

       ‘이 머리를 어찌 해야.’

       

       백철연같이 일찌감치 개화한 집에서 자라온 모던 보이라면, 고루한 댕기머리와는 함께 다니기를 필히 부끄러워하리라. 벗을 욕되게 하고 싶지 않아 이유하는 머리를 풀어해쳐놓고 거울을 들여다보며 한참을 고민하고 있었다.

       

       하지만 17년 평생을 머리를 땋아오기만 했던 이유하였던지라, 지금에 이르러 마땅히 무엇이 좋을까 생각되는 머리가 없었던 것이다.

       

       ‘역시…… 단발인가?’ 

       

       수십 년 전에는 소위 ‘모던 걸’이라는 족속들만 단발을 했다지만, 지금은 보통학교를 들어가지도 않은 어린 계집들도 머리를 귀 밑으로 싹둑 잘라 단발을 하지 않던가.

       

       하지만 이유하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자르기는 싫었다. 부모님이 남겨주신 머리카락을 어찌 함부로 자른단 말인가.

       

       ‘하면, 양가처럼 귀 옆으로 둥글게 감아올릴까.’

        

       양복자처럼 귀 옆으로 땋아서 둥그렇게 감아올리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너무 요란하다. 우선 왜인의 기생집 부인이나 할 법한 머리였고, 어떻게 보면 꼭 옛날 기생의 가채(加髢)같지나 않은가.

       

       아니면 아이까와처럼 양갈래로 땋을까. 아이까와뿐만 아니라, 점잖은 조선인 여학생들도 양갈래는 많이들 하는 머리였다.

       

       이유하는 양 손으로 각각 귀 옆으로 머리카락을 모아쥐고, 거울 속의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 보았다.

       

       “…….”

       

       하지만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저 어울리지 않는 것 뿐인가? 아니면 이렇게 임시로 손에 쥐어보는 것이 아니라 실질로 땋아 보면 조금 다를런지? 아이까와에게 부탁해서……

       

       —똑, 똑.

       

       그때, 이유하의 방 문을 두드리는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이번에도 6000자가 넘어서 반으로 삭/삭……!
    후편이 바로 이어집니다!

    * 저번에도 일러드린 TMI 입니다만 다시 올립니당.

    실제 역사 속에서 ‘태극단’이라는 이름을 사용했던 단체들은 각각 1919년 만주에서 조직된 무장독립운동단체 태극단과 1942년 항일학생결사 태극단이 있으나, ‘태극’이라는 명칭 자체가 대한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태극기에서 따 온 보편적인 명칭이니만큼, 작중 언급하는 ‘태극단’은 실존했던 특정 단체가 아닌 가상의 단체임을 다시 한 번 일러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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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yeongseong’s Hunter Academy

Gyeongseong’s Hunter Academy

경성의 헌터 아카데미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Native Language: Korean

I woke up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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