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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0

       메리에게.

         

       집에 사정이 생겨서 당분간 학교를 못 나갈 것 같아.

         

       그런데 말이야, 지금 상황으로는 아예 아카데미에 돌아가지 못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

         

       혹시라도 내가 세 달 이내로 돌아오지 못하면 그땐 네가 내 학생들을 맡아줬으면 해.

         

       알아. 염치없는 부탁이라는 거. 그래도 내가 믿고 맡길 수 있는 친구가 너뿐이라서 그래. 그러니 내가 없는 동안에라도 특별반 학생들을 잘 부탁해.

       

       이렇게 말 놓아 부탁할게. 여기 올려놓은 돈은 민폐를 끼친 것에 대한 보상이라고 생각해 줘.

         

       저번엔 화내서 미안했어. 플레어 건으로 더는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이미 다 털어버렸으니까.

       

       다시 한 번 미안해. 10년 전 여기서 널 처음 만났을 때처럼, 우리 우정 영원하자.

       

       

       **

         

       

       오늘따라 눈이 일찍 뜨였다. 다시 누울 생각도 안 들어서 평소보다 먼저 교실에 도착했다.

       

       표준 등교 시간보다는 55분가량 이른 시각. 이 시간대에는 학생은 물론이고, 교사들도 거의 없어야 한다.

       

       없어야 할 텐데.

        

       짤랑, 짤랑, 짤랑.

         

       내 앞으로 은화 열 장이 떨어졌다. 어어, 하며 책상을 바라보고 있자니 이번엔 금화가 투두둑 떨어진다. 나는 얼빠진 표정으로 그 모든 광경을 바라보아야만 했다.

         

       [으아, 하늘에서 돈이 내린다!]

         

       헤를라인 선생님이 손을 펴며 남은 금화를 털어냈다. 내 고개가 저절로 위를 향했다.

         

       “이, 이게 뭐예요.”

        “학업장려금이야.”

       “학업장려금이요…?”

       “차석으로 입학했는데 반액 장학금은 너무 짜다고 생각하지 않아? 게다가 어렵게 만든 플레어 특허는 공짜로 풀어버렸잖아. 돈을 쓸어담을 기회도 많았는데, 공익을 위해 다 포기하는 모습이 안쓰러워서 그래.”

       “…이러면 제가 염치 없어지는데요.”

         

       이런 건 정중히 사양해야만 한다. 내 인생철칙인 기브-앤-테이크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헤를라인 선생님에게는 여태까지 받은 게 많았다. 나를 하스펠트라는 이름의 감옥에서 꺼내줬고, 플레어를 개발하는 데 간접적인 도움까지 주셨다. 그런 마당에 뭘 더 받으라고?

         

       나는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그러나 헤를라인 선생님은 내 품으로 계속 쌈짓돈을 쑤셔 넣으셨다. 뇌물을 받는 정치인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어허, 어른이 받으라면 받는 거야.”

         

       어른이라니. 제가 당신보다 나이가 많을 수도 있는데요.

         

       [아, 진짜! 통장에 얼마 들었다고 이렇게까지 뻐기시는 거예요?]

         

       통장, 그 단어가 나오자마자 내 저항은 급속도로 약해졌다. 현실의 벽에 부딪힌 것이다.

         

       [당장 이번 학기와 다음 학기는 버틴다고 쳐요. 그래도 앞으로 3년이나 남았는데 언제 돈 모아서 졸업하고 그러실래요?]

         

       아야, 뼈 때리는 거 봐라.

         

       결국 나는 현실 앞에 무릎을 꿇어야만 했다. 문득 선생님과 횟집에 갔을 때 주고받았던 말이 떠오른다.

         

       훌륭한 마도사가 돼서 이 나라를 풍요롭게 만들라는 부탁.

         

       “…….”

         

       거기까진 지켜주기 어렵다. 마법을 다 익힌 뒤로는 여길 떠나고 말 테니까.

         

       하지만 어떤 마수라도 잡아낼 결전용 병기를 만들어내는 것만이라면 어떻게든 할 수 있다. 그게 이곳에서 날 보듬어 준 사람을 위한 답례요, 작별 선물이 될 것이다.

         

       헤를라인 선생님이 교탁 앞으로 간 직후. 나는 힙색에서 통장을 꺼내 열어보았다.

         

       [예금주 : 에테르 (성씨 미기입)]

       [계좌번호 : 101-32537690-71-19596610938]

       [계좌액수 : 343,708 루브레]

         

       예금결산으로 받은 이자를 제외하면 별다른 수입은 없다. 그나마 번 돈이라고 하면 로테에게 받는 과외비인데, 이건 생활비로 쓰기 위해 쟁여두고 있는 거라 다음 학기 등록금이라 하기에는 애매하다.

         

       “…또 돈인가.”

         

       못해도 여름방학 전엔 수입원을 하나 더 만들어야 하는데.

         

       그 고민은 길지 않았다. 운이 좋게도 곧이어 도착한 버멜이 나에게 딜을 걸어왔기 때문이다.

         

       “저번에 네가 만들었던 모기 쫓는 스크롤 말이야.”

       “그게 왜?”

       “특허출원을 하면 안 될까?”

         

       맞다, 그게 있었지. 나는 별 상관없다고 대답한 뒤 조례를 기다렸다.

         

       로테의 어리광으로 인해 나는 다시 맨 앞줄에 와 있는 상태였다. 하스펠트 교수가 없으니 플레어 사건 이후로 뒤에서 수업을 들어야 할 이유가 사라졌다.

         

       생각해보니 그동안 로테에게 많은 걸 가르쳐주고, 그 대가로 또 많은 걸 배웠다. 화계마도이론을 내가 가르쳐주면 로테가 그걸 바탕으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해주는 방식이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논의를 바탕으로 로테는 여러 연구실을 돌아다니며 마수 토벌에 도움이 될 새 마도를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 뭔지 물어봐도 안 알려주더라.

         

       한편 뒷자리를 보면 여전히 술에 찌들어 있는 프레이가 보인다. 어젯밤 숙취를 해결하지 못한 모양이다.

         

       “머리 아파….”

         

       머리는 나도 아프다.

         

       뭔 이유인지는 몰라도 요새 일어날 때마다 죽을 맛이다. 마치 머릿속에 가상의 스위치가 있어서 누가 그걸 딸깍거리는 듯한 느낌이다. 일어나고 한 10분 정도 지나면 상태가 나아지기는 하는데… 혹시 무슨 병이라고 생긴 건 아니겠지?

         

       시답잖은 조례가 끝나고, 바로 1교시. 지계마도 시간이 시작됐다.

         

       “오늘 알려줄 건 원격 연성이야. 고체계열 전투 마도에서 가장 중요한 거란다.”

         

       연성에는 재료가 필요하다. 등가교환의 법칙, 그게 연성술의 기초였으니까. 하지만 헤를라인 선생님은 오늘 연성 재료를 가져오지 않았다.

         

       “말로 설명하느니 직접 보여주는 게 좋겠지? 원래 연성은 연성하는 사람이 필요한 재료를 가져오는 게 핵심이겠지만….”

         

       푸욱, 하고 천장을 지탱하고 있던 돌가루 일부가 뾰족한 가시로 변해 떨어졌다. 마치 종유석이 제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꺼지는 듯한 모양새였다.

         

       그 모습에 아이들이 ‘오오’ 소리를 내며 신기해했다. 무영창에, 재료를 자연에서 직접 뜯어다가 쓰는 마도.

         

       “원격 연성은 이런 거야. 잘만 쓰면 남 보지 못하는 곳에서 허를 찌를 수 있단다.”

       “그럼 암살에 주로 쓰이겠네요?”

       “좌표를 잘 특정할 수만 있다면? 우선 학생이 얘기한 기술을 사용하려면 마도수학을 깊게 배워야 해. 그 재료를 연성하는 방법은 당연히 꿰뚫고 있어야 하고, 운동에너지와 위치에너지의 차이를 최소화하는 능력도 필요하단다.”

       “그래도 가능은 한 거네요?”

       “그렇지. 예시를 하나 들어줄게.”

         

       헤를라인 선생님은 뒤를 돌아 칠판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음 순간, 프레이의 책상 일부가 사람의 손 형태로 변했다. 그 손이 프레이의 양 뺨을 툭툭 건드렸다.

         

       “으게에에엑!”

         

       책상에 엎드린 채 꿈나라로 향해 있던 꼬맹이는 형언할 수 없는 비명을 내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 뭐야…!”

       “프레이, 수업 시간에 자면 안 되지. 알코올 향이 여기까지 난다?”

       “으엑.”

       

       그 모습을 본 아이들의 반응은 크게 둘로 갈렸다. 우스꽝스러운 상황에 웃음을 터뜨리거나, 신기한 눈으로 선생님이 시연한 마도를 분석하거나. 로테와 나는 후자에 가까웠다.

         

       그 와중에 둘 중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은 학생들이 있다. 한 명은 버멜이었고, 다른 한 명은 클리온 황자였다. 두 사람은 영혼 사이에 링크라도 걸린 것처럼 한결같이 똥 씹은 표정을 유지했다.

         

       한 명은 빙의자라 그러려니 하는데, 화낼 때를 제외하면 늘 능글거리는 미소를 짓고 있던 황자조차도 저런 표정을 하고 있으니 이상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꼭 이르카한테 개겼다가 얻어맞은 듯한 인상이었다.

         

       깊이 신경쓸 만한 일은 아니었다. 나는 침을 흘리고 있는 프레이에게 티슈를 건네준 뒤 다시 정면을 향했다.

         

       “당연하지만 처음부터 이 정도 수준의 마도를 사용하는 건 어려워. 더 복잡한 수학을 배우고, 실전 경험이 쌓이면 저절로 할 수 있게 되는 친구들이 늘어날 거야. 물론 이건 지계마도뿐만 아니라 다른 마도에도 적용되는 기술이니까 훌륭한 마도사가 되고 싶으면 전공에 상관없이 언제든 익혀둘 준비를 하렴.”

         

       헤를라인의 교수법은 이런 식이다. 먼저 실험을 한 뒤, 제반 이론을 가르쳐주는 방식. 오전 수업으로 피곤해하는 학생들의 집중력을 높여주는 좋은 방법이다.

         

       그 때문일까. 헤를라인 선생님의 수업에는 흡입력이 있다. 정신없이 들으며 필기를 하고 있자니 벌써 두 시간이 지났다. 수업은 그것으로 끝났다.

         

       그래봤자 1교시가 끝난 것에 불과하다. 한 수업이 끝나면 다음 수업이 기다리고 있다.

         

       연강이라니, 나 죽어.

         

       그나마 다음 수업은 목소리 큰 선생님이 하는 마수 이야기 시간이다. 일명 ‘마수의 이해’ 과목.

         

       헬창… 아니, 알렉스 노엘하임 선생님이 들려주는 마수 이야기는 반에서 나조차도 흥미를 갖고 들을 정도로 엄청난 흡입력을 자랑한다. 하기야 목소리가 크시니까. 집중 못 하면 그건 그것대로 이상하다.

         

       그러나 쉬는 시간이 끝난 뒤 들어온 사람은 헤를라인 선생님이었다. 그녀가 얼굴을 어둡게 한 채로 교탁의 양 사이드를 잡았다.

         

       학생 중 누군가가 물었다.

         

       “왜 선생님이 들어오세요?”

         

       나도 그 점이 의문이었다.

         

       헤를라인 선생님은 기초지계마도를 가르치시긴 하지만, 얼마 전부터는 우리 특별반의 담임을 맡는 일도 시작하셨다. 때문에 다른 선생님의 수업 시간에 그녀가 들어온다는 건, 강사가 아닌 담임으로서 무언가 전할 일이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헤를라인은 사족을 붙이지 않고 곧장 입을 열었다.

         

       “오늘 마수의 이해 수업은 휴강이란다.”

       “네?”

       “갑자기요?”

       “나도 방금 전해 들었어. 알렉스 선생님께서 몸이 많이 안 좋으신 모양이야.”

         

       이해할 수 없었다. 그 헬스 중독자 선생님이? 상반신 하반신 골고루 조져서 몸을 구성하고 있는 모든 세포에 박힌 미토콘드리아 하나하나가 근육질일 것만 같았던 인간 프로틴 알렉스 선생님이 병환이라고?

         

       …뭐, 그럴 수도 있지. 건강한 사람이라도 일단은 사람. 병을 어떻게 이기나.

         

       “그래서 오늘은 휴강이야. 따로 수업을 맡으실 분도 없으니 자유롭게 자습하고 있으렴.”

         

       헤를라인 선생님은 그 말만을 전하고 자리를 뜨셨다. 그 직후, 쿠당탕 하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버멜이었다. 빙의자 녀석이 갑자기 급발진을 했다.

         

       그가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주변 학생들이 무슨 일 있냐며, 뭐가 문제냐며 조심스레 물어보았지만 버멜은 괜찮다고 말한 뒤 다시 자리에 앉았다.

         

       남들은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그의 얼굴을 읽은 나라면 알 수 있었다.

         

       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는 걸.

         

         

       **

         

         

       ─ SYSTEM : 지역 최초 발병자 보고입니다.

         

       ─ SYSTEM : 다음의 병원균이 국가명 ‘필리우트 제국’의 수도 내 침입했습니다.

         

       [질병분류코드 : T-2DE6Q-1QCS3H5-03 (법정지정 제1군 감염병) ─ 통칭 ‘흑사병’]

         

       ─ SYSTEM : 질병대책 매뉴얼(공략집)을 사용자에게 부과합니다. 모든 플레이어는 이 지침을 바탕으로 앞으로의 펜데믹에 신속히 대응하시길 바랍니다.

         

       ─ SYSTEM : 매뉴얼 불이행 시 세계 멸망 확률이 상향 조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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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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