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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0

       프리덴 백작의 여동생─.

       

       줄리아 프리덴은 성실한 사람이었다. 제국의 서부에서 관료로 일하는 그녀는 꽤 유능한 행정가이기도 했다. 비록 의회랑은 성격이 맞지 않아 중앙과는 거리를 두고있었지만 말이다.

       

       그런 점에서, 줄리아 프리덴은 ‘프리덴’다운 사람이기는 했다.

       

       중앙귀족이랑 거리를 두는 것은 프리덴 가문의 오랜 전통이었으니까. 제국에 ‘의회’라는 것이 생기기 이전부터 그러했다.

       

       의회가 생긴 이후로는 특히 그러한 경향이 심해져서, 줄리아 프리덴 또한 수도의 정보에 대해서는 그리 밝지 못했다. 기껏해야 몇몇 큰 사건들에 대해서나 알고있을뿐이었다.

       

       그런 탓에, 줄리아 프리덴은 결혼식 한편에서 수군거리는 젊은 귀족들의 대화를 이해하지 못했다.

       

       

       “저기서 책 읽고있는 에릭 동생… 그 작가님 아니야? 몇 년 전 ‘홈즈X뤼팽 공모전’에서 봤던 것 같은데….”

       “그냥 닮은 사람이겠지.”

       

       “아니, 진짜라니까…. 내가 그때 시상식에서 가장 앞 줄에 앉아있었잖아. 그 자리 초대권 구하느라 내가 얼마를 썼는데.”

       “그러면 직접 가서 물어보지그래? 가서 팬이라고 해.”

       

       “어떻게 그래! 내가 직접 말을 거는 건 신성모독이라고!”

       “에릭 동생이 호메로스 님이냐? 신성모독은 무슨.”

       

       “솔직히 순수한 재미는 헤로도토스가 더 앞서지 않나…?”

       “뭣. 너 이자식 제국의 1000만 호메로스 교인이 두렵지 않은 거냐.”

       

       “그 사이비 종교 뭔데 그렇게 커졌어.”

       “아직 가입자는 몇백 명 정도지만, 모든 호메로스의 팬들은 잠재적 호메로스 교인이라고 할 수 있지.”

       

       

       조카인 에드를 힐끔거리며 수군거리는 여러 젊은 귀족들. 무언가 작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있는 것 같은데, 눈은 계속 조카인 에드를 향하고있었다.

       

       아마 조카가 잘생겨서 그런 것이겠지.

       

       어렸을 때는 그냥 순둥순둥하고 귀엽게 생겼던 것 같은데, 오랜만에 본 조카는 어린 티가 빠져서 꽤 멀끔한 모습이 되어있었다. 여자 여럿 울렸을 법한 외모구나 싶은데─.

       

       정작 사교에는 관심도 없이 연회장에서 책이나 읽고있는 걸 보면 그런 걱정은 안 해도 괜찮을 것 같다.

       

       오히려 저래서야 결혼은 하려나 걱정이 될 정도였다.

       

       한번 이야기나 꺼내볼까? 책을 읽고있는 조카에게 다가가 다시 한번 말을 걸었다.

       

       

       “우리 잘생긴 조카님, 무슨 책 읽고있어?”

       “아, 네. 고모님. 그냥 전쟁에 대한 책이요.”

       

       “그래? 남자애라 그런가 그런 걸 좋아하는구나? 고모도 책 좋아하는데 옆에서 같이 봐도 괜찮을까?”

       “네.”

       

       

       조카의 옆에 앉아서 책을 들여다보았다.

       

       하지만 책의 내용을 읽을 수는 없었다. 줄리아 프리덴이 알지 못하는 언어로 쓰여있던 탓이다.

       

       하렌어나 몇몇 공국에서 사용하는 토착어, 성경에 사용되는 고대어나 종교어 정도는 알고있는데, 이건 완전히 처음 보는 언어였다.

       

       애초에 글자의 모양이 다 제각각이라서 글자보다는 그림에 더 가까워보였다. 상형문자인가?

       

       

       “조카님? 이게 무슨 언어니?”

       “아, 하렌 왕국 남쪽의 사막에서 사용하는 ‘로아비크어’예요. 하렌 왕국에 방문했을 때 관련 서적이 몇 권 있길래 배워뒀어요.”

       

       “그렇구나…?”

       “로아비크어의 특징은 기본적으로 표어문자─, 그러니까 표의문자이면서도 동시에 표음문자적 표기 방식이 혼용된다는 건데, 아마 상형문자가 표의문자에서 표음문자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있었던 표현 방식이 그대로 굳어진 것 같아요. 읽는 순서도 좀 재미있는데, 가장 첫 글자가 가운데에서 시작하거든요? 그래서 ‘중앙’에서 ‘바깥쪽’으로 의미가 확장되는 것인데, 아마 이건 로아비크의 종교와 관련이 있는─.”

       

       “그, 그렇구나. 흥미롭네.”

       “네네. 이 페이지에는 로아비크의 중심을 가로지르는 강을 두고 발생했던 전투에 대해 적혀있는데, 병력의 숫자를 표현하는 방식이─.”

       

       

       그렇게 줄리아 프리덴은 한참 동안 ‘로아비크어’와 ‘로아비크 상형 문자’, ‘로아비크 숫자’ 등에 대한 강의를 들어야만했다.

       

       그 과정에서 로아비크의 언어와 종교, 표기 방식이 어떤 식으로 서로 연결되어있는지, 이를 통해 어떻게 로아비크의 사람들이 어떤 세계관과 문화를 가지고 있는지 추측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들었다.

       

       

       “그래. 굉장히 흥미롭네….”

       “네네. 아, 죄송해요. 설명이 너무 길었죠?”

       

       “아냐아냐. 재미있었는걸? 그, 그런데 조카님. 책 얘기도 좋지만, 우리 오랜만에 만났으니 근황에 대한 이야기라도 잠시 나누는 게 어떨까?”

       “네.”

       

       “예를 들어, 이제 에릭 조카님도 결혼했는데, 우리 잘생긴 조카님은 만나고있는 여자는 없니?”

       “아, 네.”

       

       “여자 취향이나 선호하는 만남 방식 같은 건…? 정략결혼 같은 건 어떻게 생각하니?”

       “어, 글쎄요.”

       

       “괜찮다면 고모가 몇 명 정도 주선해줄 수도 있는데….”

       “아직 생각이 없어서요.”

       

       “그렇구나….”

       “네.”

       

       

       단답. ‘책’에 대한 주제 말고는 관심이 없다는듯한 반응에 줄리아 프리덴이 힘 빠진 웃음을 흘렸다.

       

       생각해보면 조카님은 어릴 때부터 그랬었다.

       

       어느정도 자란 이후로는 프리덴 저택에 방문했을 때마다 서고에 앉아있었고, 외출이라도 할 때에는 그 손에 항상 책 두 권이 들려있었다. 책을 읽고있는 조카님의 손에서 장난 삼아 책을 빼앗으면, 아무 말도 없이 고개를 들어 서늘한 눈빛으로 빤히 바라보다가, 책장에서 다른 책을 한 권 가져와서 또다시 앉아 책을 읽었다.

       

       몇 번이고 말이다.

       

       그때와 비교하면 지금의 조카님은 오히려 굉장히 인간적으로 느껴졌다. 그때의 조카님은… 조금….

       

       귀신 같았으니까.

       

       무표정으로 멍하니 있던 어린애가 부모의 앞에서 갑작스레 미소지으며 가족을 사랑하는 ‘연기’를 하는 모습을 보았다면, 누구나 본능적인 두려움을 느낄 것이었다.

       

       다행히 자라면서 그런 느낌은 점차 사라졌다. 그래서 줄리아 프리덴 또한 까맣게 잊고있었다. 가끔씩 그때의 기억이 떠오를 때에도 그냥 착각이었으리라 여기면서 말이다.

       

       그런 복잡미묘한 심정이 담긴 말이 줄리아 프리덴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우리 조카님은 책 말고는 관심이 없구나…?”

       “그냥 취미 정도죠, 뭐.”

       

       “취미 생활을 즐기는 것도 좋지만, 너무 취미에 몰두하느라 다른 것들을 놓치면 안 된다?”

       “그게 생각처럼 잘 안 되네요…. 그래도 최근에는 가족들끼리 공연도 보러가고 그랬었는데, 음.”

       

       “응?”

       “생각해보니 그게 4년 전… 아니, 5년 전이었나?”

       

       “응?”

       

       

       아무래도 글렀다.

       

       우리 조카님께서는 평생 책과 함께할 예정인듯했다. 책 말고는 이렇게 관심이 없어서야 아무리 주변에서 혼담을 넣어도 의미가 없었다.

       

       그래도 결혼은 해야할 텐데…, 아니, 차라리 수도자가 되는 것도 나쁘지는 않으려나? 책을 읽는 걸 좋아하니까 어쩌면 적성에 맞을지도 모르고.

       

       한참이나 고민하던 줄리아 프리덴의 머릿속에.

       

       문득 하나의 기억이 스치고 지나갔다.

       

       

       “아! 조카님. 그러면 우리 아이솔렛은 어때?”

       “네?”

       

       “두 사람 어렸을 때 꽤 친하지 않았니?”

       

       

       .

       .

       .

       

       아이솔렛. 꽤 오랜만에 듣는 이름이었다.

       

       그러고보니 어렸을 때 그런 이름의 여자아이와 친하게 지낸 적이 있었다. 그 아이는 그러니까─.

       

       

       “고모님 딸이요?”

       

       

       내 사촌이었다.

       

       

       “그래. 그 아이도 책을 좋아하거든. 지금은 우리 그이─, 윌리엄 씨랑 함께 카페터 공작령에 가있어서 결혼식에는 못 왔지만.”

       “…그러니까, 사촌이랑 선을 보라고요?”

       

       “꼭 그런 의미는 아니고. 친하게 지내면 좋잖니. 그냥 편하게 만나보고 이야기도 나누면 좋을 것 같아서!”

       “아, 네.”

       

       “그 아이도 소설을 쓰기도 하고….”

       “당장 보러가죠.”

       

       “응?”

       

       .

       .

       .

       

       

       생각해보면, 내가 이 세계에서 처음으로 표절했던 문학은 ‘돈키호테’가 아니었다.

       

       어쩐지 형을 위해 ‘안데르센 동화집’을 쓰면서도 익숙하다 싶더라니, 내가 아주 어렸을 때 이미 동화 하나를 표절했던 적이 있었다.

       

       친하게 지내던 한 아이를 위해서 말이다.

       

       그때는 고모님과 아버지가 꽤 흔하게 교류했던 것 같다. 고모님이 행정관으로서 제국 서부로 발령받기도 전이었고, 고모부인 윌리엄 라인하르트 자작 역시 카페터 공작령이 아닌 수도에서 살고있었다.

       

       그래서 고모님의 딸인 아이솔렛도 프리덴 저택에 자주 놀러왔었다. 그리고 나이 비슷한 아이들끼리 친하게 지내라고 방에 넣어놨는데─.

       

       내가 ‘진짜’ 어린애는 아니었던 탓에 어려움이 있었다.

       

       아이랑 놀아주는 일에는 재능이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평소처럼 책이나 읽고 있었다. 읽으려고 했다.

       

       

       – “왜 나랑 안 놀아줘…? 나 싫어해…?”

       – “…….”

       

       – “흐이잉….”

       

       

       하지만 아이솔렛은 울음을 터트렸고, 아무리 내가 주변에 관심이 없다고 해도 우는 아이를 옆에 두고 책이나 읽고있을 정도로 냉혈한은 아니었다.

       

       그래서 우는 아이를 달래주기 위해 쓴 동화가 바로 [인어 공주]였다.

       

       

       – “아이솔렛. 동화는 어땠어?”

       – “응! 인어 공주의 사랑이 이루어지지 못한 건 슬프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웃으면서 보내주는 것도 어른의 일이니까! 헤헤. 인어공주는 바람이 되어서도 행복했을 거라고 생각해….”

       

       – “어? 어째서 그렇게 생각했어?”

       – “응…? 그, 그냥, 나라면 그랬을 것 같아서어…. 인어공주의 사랑은 실패했지만 그 마음은 무척이나 아름다웠으니까…. 인어공주는 스스로의 사랑이 이루어지기 어려운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혀를 자르고 사람이 되는 걸 선택했고, 또 모든 걸 되돌릴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칼로 왕자를 찌르는 대신 바다에 몸을 던지는 걸 선택했어. 그렇다면 중요한 건 결과가 아니라 그 마음 자체가 아니었을까…?”

       

       – “…하하!”

       – “웅?”

       

       – “너 대단한 녀석이었구나!”

       – “에?”

       

       

       즉, 아이솔렛은 내가 ‘표절’한 이야기의 첫 번째 독자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사람보다 훨씬 긴 수명을 가지지만, 영혼이 없는 탓에 죽으면 영원을 누리지 못하는 정령”의 존재는 독문학의 단골 소재 중 하나입니다. 이러한 정령은 근본적으로 불완전한 존재인 탓에, 완전하고 불멸하는 영혼을 가진 인간을 선망하고 질투합니다.

    인어공주 이야기 역시 이러한 신화에서 유래합니다. 인어공주가 추구하는 ‘인간과의 사랑’은 불멸이라는 ‘이상’의 투영이고, 이는 미숙하고 어린 감정입니다. 사랑은 근본적으로 불완전한 감정인 탓에, 인어공주는 결국 이러한 ‘이상’을 이루지 못하고 좌절하게 됩니다.

    불완전한 것으로 완전한 것을 이루기란 불가능하니까요.

    이는 양성애자였던 안데르센이 실연했던 경험이 반영된 것인데… 동성애자에 가까운 양성애자였던 안데르센의 사랑은 한번도 이루어진 적이 없거든요.

    (이러한 해석은 티스토리의 ‘인어공주, 실연을 통한 성숙의 미학’이라는 글을 참고했습니다. 관심이 있으신 분은 한번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네요.)

    #####

    작중 몇 번이고 강조된 ‘반인반수’의 영혼에 대한 설정은 이러한 신화 등을 참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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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쩐지 이미 읽어본 내용인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면, 기분 탓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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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일은 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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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rviving as a Plagiarist in Another World

Surviving as a Plagiarist in Another World

Surviving as a Plagiarizing Author in This World 이세계에서 표절 작가로 살아남기
Score 4.6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literature of this other world was atrocious.

So, I plagiarized.

Don Quixote, Anna Karenina, Alice’s Adventures in Wonderland, The Metamorphosis… I thought that unraveling the literature of the original world would advance the literature of this other world.

“Those who dream and those who do not, who really is the mad one?”

“To live or to die, that is the question.”

“No matter how fatal the mistake, it is different from a sin.”

But then, people began to immerse themselves too deeply in the novels I plagiarized.

Can’t a novel just be seen as a no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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