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60

       출발 전 예나가 했던 걱정이 무색하게, 언뜻 무인지대와 접경한 최전방 도시라고는 전혀 믿기지 않는 평화로운 풍경이다.

         

       방벽 주변 평원으로는 듬성듬성 세워진 높은 구조물들이 눈에 띈다. 하나같이 두세 사람이 위에 올라 무언가 열심히 작업을 하고 있는 게 보인다.

         

         

       “저게 뭔가요?”

         

       “농작물들의 수분 공급을 위한 기상 마법을 작성할 때 사용하는 타워들입니다. 지금도 그를 위해 며칠에 걸쳐 대규모로 마법식을 작성하고 있지요. 혹시 운이 나쁘면 떠나실 때 비를 좀 맞을 수도 있겠네요.”

         

       어느 학생의 질문에, 천화성 주임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도시의 방벽과 거대한 게이트의 그늘을 지나니, 이윽고 넓게 뻗은 대로와 탁 트인 도시의 풍경이 눈 앞에 펼쳐진다.

         

       건물이나 시설들이 좀 낡은 감이 있기는 하지만, 수도와는 다른 기풍과 전통이 잘 보존되어 녹아있는 느낌이다.

         

       무엇보다 특이한 건, 골목의 곳곳에 한집마다 걸쳐 들어서 있는 빵집들이다.

         

       온통 버터와 빵을 굽는 고소한 냄새에, 긴 여행에 지친 일행들이 눈을 반짝이며 주변을 둘러본다.

         

         

       “우와…”

       

       “제법…”

         

       “진령은 구 문명 때부터 빵이 특산물로 나던 도시입니다. 우스갯소리로, 당시 진령에서 가장 권력이 강한 사람은 빵집 사장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죠. 혹시 관심이 있으시면, 관련 투어를 즐겨보시는 것도 추천드립니다.”

         

       천 주임의 이어진 설명에 신입생들의 눈이 더욱 빛난다. 2학년들은 입술로 스읍-등의 소리를 내며 그들을 저지한다.

         

       그렇게 나아간 광장에는 또다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도열해 우리를 환영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들 중 가장 앞에 서 있던 나이 든 노인 한 명이 나와 연민하에게 깍듯이 인사를 한다.

         

         

       “어서 오시오. 남부 총독 양정철이라고 합니다. 이리 적화의 영애를 뵙게 되어 참으로 영광이외다.”

       

       그리고 연민하는 그 예의바른 인사를 너무나 당연하게 받는다. 남부 총독이라면 최소한 이 도시 내에서는 그보다 높은 사람이 없다는 뜻일 텐데.

         

       최근의 적화는 패천의 공세에 밀려 점점 영향력을 잃고 있던 상황이라고 하지 않았나. 그럼에도 이런 대접을 당연하게 받을 정도면, 그녀가 가진 다섯 가문이라는 배경이 얼마나 강력한 힘인지 새삼 알만하다.

         

       그런 사람에게 그동안 내가 한 대우를 생각하니, 문득 현실감각이 조금은 무뎌지는 듯한 기분이 드는 것 같기도 하고…

         

         

       “적화의 아가씨께서는 부디 아무런 걱정도 하지 마시오. 반란군 놈들은 보이는 족족 모조리 이 양 모가 족쳐버리고 있으니. 일행분들과 편히 계시다 마지막 수송 물량이 준비되는 대로 다시 올라가시기만 하면 될 것입니다.”

         

       꼬장꼬장한 노인이 가슴팍을 두드리며 호언장담을 한다. 어지간하면 은퇴할 나이임에도 손목에 입자배열기를 차고 있는 게, 본인의 실력에 제법 자신이 있는 마법사로 보인다.

         

       그러니 이런 곳의 총독직을 맡고 있는 거 같기도 하고.

         

       이미 노을이 지려 하는 시간대였기에, 우리는 극진한 환영식을 마치고 곧장 숙소가 마련된 구획으로 이동했다.

         

       풍선을 들고 뛰어노는 아이들, 넓고 곧게 뻗은 고식적인 집들과 골목이 끝없이 이어진다.

         

       저 멀리 무인지대를 향해 세워진 이중장벽과 그 위에서 펼쳐지는 삼엄한 경계를 제외하면, 정말 최전방 지역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평온한 풍경이다.

         

       그런데 갈수록, 무언가 우리를 보는 시선에서 위화감이 조금씩 느껴지는 기분이 든다.

         

       두려움, 공포, 증오. 혹은 그 모두.

         

       나만 이런 생각을 한 게 아닌지, 앞서 걷던 어느 여학생이 길 안내를 하던 천 주임에게 조심스레 말을 건다.

         

         

       “저…”

         

       “무슨 일로…아.”

       

       용무를 묻던 그가 주위를 둘러보고는 곧 분위기를 눈치챈 듯 멋쩍은 듯한 웃음을 짓는다.

         

         

       “…아마 원래 이곳에 살던 원주민들일 겁니다. 그런 이들은 수도 출신 분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죠. 아마 여러분의 복장이 상당히 눈에 띄어서 더 그럴 수도 있고요.”

         

       지금 남부로 내려온 일행은 요람의 표준 장비가 아닌, 각각 기업에서 후원받은 휘황찬란한 장비를 갖추고 있어 누가 봐도 외지인 티가 나기는 했다.

         

         

       “왜 그렇죠…?”

         

       “이곳의 원주민들은 몇 년 전 반란군의 토벌에 엮어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두 집 걸러 한 집마다 이적 혐의로 중앙군에게 처형당한 이들이 있을 정도죠. 지금은 행정청이 설치되고 치안이 어느 정도 안정되기는 했지만, 그런 반감까지 잠재우려면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할 겁니다.”

         

       그의 말에 다른 남학생 한 명이 질문을 다시 이어간다.

         

         

       “제가 알기로 그건 반란군에게 협력을 넘어 적극 가담한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 걸로 알고 있는데요? 스스로 흑마법사가 된 이들의 숫자도 상당하다고 알고 있고요.”

         

       “물론 반역임을 부정할 수는 없지요. 하지만 여러분도 나중에 알게 되실 테지만, 일반인이 변방에서 삶을 꾸려나가기는 정말 힘든 일입니다. 각종 혜택이나 정책들이 수도에 집중되어 더욱 소외감이 있기도 하죠. 따지고 보면 농업지구의 조성도 중앙을 위한 일이니 토착민들에게 썩 좋게 보이지는 않을 겁니다. 반란군은 그 점을 파고들어 민중을 선동한 것이고요.”

         

       남자가 더욱 난처한 표정을 짓는다.

         

         

       “갈수록 흑마법에 몸을 담는 이들이 많아지는 것도 같은 이치이지요. 흔히 신의 선택을 받은 인간이 마법사라고 이야기들 하지만, 흑마법사는 ‘전이’를 받는 것만으로도 간단히 탄생할 수 있으니까요. 그 과정에서 8할이 장애를 가지거나 돌연변이가 된다고는 하지만, 당장 한 치 앞의 삶의 고달픈 민중이 그런 점을 고려할 리가 없죠. 밑바닥의 삶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아마 흑마법사들은 잡아도 잡아도 계속해서 나타날 겁니다…”

       

       그의 설명을 듣다 보니, 어느새 우리가 지낼 숙소가 멀리서 보이기 시작한다. 하얀 대리석으로 외벽이 장식된 유난히 깨끗하고 현대적으로 보이는 건물이다.

         

         

       “흠흠, 말이 좀 많았네요. 안으로 들어가시면 저희 측 지배인이 응대해드릴 겁니다. 오늘은 아무 걱정 없이 여독을 푸시고, 자세한 업무보고는 내일부터 드리겠습니다. 다시 한번 진령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그가 연민하와 일행에게 깍듯이 인사를 한다.

         

       이어 숙소로 들어가니 지배인이 허리를 숙이며 우리를 연회장으로 인도한다.

         

       시간을 맞춰 따끈하게 준비된 각종 음식에, 여로에 지친 이들의 눈동자가 다시 한번 빛난다.

         

       나름대로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저녁 식사가 시작된다. 멀리 남부까지 의뢰를 왔다는 자각은 어느새 편안함과 함께 순식간에 녹아버린다.

         

       취하지 않을 정도로 한 순배 술이 돌기도 하고, 연민하도 작은 입술을 오물거리며 우아한 자세로 식사를 이어간다.

         

       시간이 흘러 파하는 분위기가 되자, 연민하를 대신해 다른 2학년 여학생이 나서 신입생들에게 각종 주의사항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통금시간 이후에는 절대 바깥으로 나서는 일이 없도록 하고. 그리고 이제부터 방을 배정해줄 건데…남자애들? 여학생들 묵는 구역으로 넘어오기만 해봐. 현장에서 바로 벌점 부여할 거고, 요람에 돌아가면 바로 징계위원회에 넘겨버릴 줄 알아.”

       

       “진짜 너무하네. 여자애들은 뭐 안 넘어오는 줄 아나? 꼭 유난 떠는 애들이…”

         

       뒤에서 작게 들려오는 키득거림에, 여학생이 그쪽을 째릿-노려보고는 말을 덧붙였다.

         

         

       “…물론 반대도 마찬가지야. 그럼 바로 배정을 시작하겠다. 우선 2층…”

         

       여학생의 설명을 듣다 보니 곤란한 점을 하나 깨달았다. 내게 배정된 객실은 3층. 반면 연민하의 객실은 최상층에 있다.

         

       사이에 다른 이들이 있어 봉쇄를 펼칠 수 없는 건 물론이고, 애초에 전혀 닿을 거리도 아니다.

         

       지난번 연민하의 반응으로 봐서는 봉쇄 없이 하룻밤을 버티는 건 힘들 거 같은데. 그러다 그때처럼 발작 비슷한 반응을 일으킬 수도 있다.

         

       잠시 가벼운 고민에 빠졌지만,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나는 막 식사를 마무리하고 객실로 올라가려는 연민하의 뒤에 따라붙었다. 그리고 남들한테 들리지 않게, 연민하의 귀에 가까이 대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있다가 눈을 피해서 올라가겠습니다. 창문 열어 두세요.”

       

       “히…히윽…”

       

       갑자기 들려오는 소곤거림에 깜짝 놀랐는지 연민하가 몸을 부르르-떤다. 그리고 가벼운 딸꾹질로 대답을 대신했다.

         

         

       ***

         

         

       객실의 주변은 온통 깜깜하다. 긴 여정에 지쳐 다들 일찍 잠자리에 든 게 아닌가 싶었다.

         

       나는 객실의 문을 잠근 뒤 그대로 창문을 열고 난간을 통해 바깥으로 빠져나왔다.

         

       위를 힐끗-올려보니 연민하에게 배정된 최상층의 객실이 보인다. 역시 아직 잠에 들지 못했는지, 미약하게 밝혀진 실내등 불빛이 커튼 사이로 새 나오고 있었다.

         

       나는 그대로 숙소 외벽의 틈을 잡으며 벽을 타고 올라갔다. 마치 좀도둑이 된 기분이 썩 좋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당당하게 복도로 출입하다가 난데없는 추문에 빠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는 그대로 발코니의 난간을 잡고 뛰어들었다. 창문의 잠금쇠가 열려 있는 걸 확인했지만, 혹시 몰라 두 번 두드려 확인을 더했다.

         

         

       -힉…

         

       곧 안에서 누군가의 인기척이 들려오더니, 곧 작은 소리와 함께 창문이 스르륵-열린다.

         

       나는 커튼을 걷고 그대로 들어섰다. 어두운 실내등으로 밝혀진 객실의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너…너어…”

         

       옆에서 누군가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몸을 돌리니, 자리에 우뚝 서서 나를 보고 있는 연민하의 모습이 보였다.

         

       몸을 씻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듯, 뽀얀 피부에는 홍조가 가볍게 올라와 있었다. 아직 살짝 물기에 젖은 머리카락에는 더욱 윤기가 흐른다.

         

       레이스 장식이 달린 얇은 캐미솔 하나만을 입고 있는 탓에, 평소에 나던 달콤한 향기가 거의 머리가 아플 지경으로 더욱 독하게 풍겨온다.

         

         

       “좋은 밤입니다, 선배님.”

       

       “…”

         

       연민하가 대답도 없이 자리에서 나를 쳐다본다. 그러고는 후다닥 침대로 뛰어든다. 이어 온몸을 이불로 돌돌 말아서 감싸더니, 달달 떠는 두 눈동자에는 눈물이 방울방울 맺히기 시작한다.

         

         

       “…?”

         

       유난히 두려워하는 그 태도에 의문이 서린다. 요즘은 그렇게 험하게 대한 적이 없는데…?

         

         

       “이, 이건 아니야…”

         

       “뭡니까?”

         

       “아무리 그래도…난…네 선배잖아…”

         

       “그러니까 무슨…”

         

       “내…내 몸은 그렇게 막, 막 굴릴 수 있는 게 아니야…장기적으로 보면…너, 너한테도 손해야…그러니까…”

         

       큼지막하게 맺힌 눈물은 어느새 또록-떨어지기 직전이다.

         

       나는 그제야 그녀의 걱정거리를 어렴풋이 깨달을 수 있었다.

         

       내가 연민하에게 봉쇄의 사정거리를 말해준 적이 있던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레치하님 54코인 감사합니다 그리고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편안한 밤 되세요

    *

    지난화 말미에 언급된 현재 남부의 상황 부분을 조금 수정했습니다 읽는데 혼란을 드려 죄송합니다

    다음화 보기


           


Correcting the Villainess of the Academy

Correcting the Villainess of the Academy

아카데미 악당영애 교정하기
Score 3.8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reunited with the girl who left me when I lost everything.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