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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0

       봄이 되기는 개뿔이.

        

       윈터필드는 그 말대로 더럽게 추웠다.

        

       사실 ‘윈터’필드라고는 해도, 정말로 1년 365일 동안 계속 눈에만 덮여있는 곳은 아니다. 아무리 그래도 제국의 영토였고, 더 위쪽에 있는 리클란트 자치국으로 가지 않는 이상은 일단 봄이나 여름이 있긴 한 곳이다.

        

       하지만 봄이라고 해봐야 겨울보다 덜 추울 뿐이고, 여름이라고 해봐야 선선해서 다른 지역의 가을과 비견할 수 있는 곳이었다.

        

       역설적으로, 그렇기에 귀족들에게는 꽤 괜찮은 휴양지로 유명하기도 했다. 여름에 선선하니 푹푹 찌는 한 여름에 와서 그 선선함을 즐기다가 가는 식으로. 산 아래쪽, 사람들이 사는 도시 부근은 봄이 되면 눈이 녹지만, 산 위쪽은 언제나 눈이 쌓여있어 그 경관이 멋지기도 했다. 적어도 제국의 다른 곳에서는 보기 어려운 경관이었다.

        

       리클란트 자치국에서 군벌들과 자치국 정부, 그리고 제국 병사들이 이리저리 얽혀 싸우고 있긴 했지만 그건 영지 중심과는 멀리 떨어진 곳의 이야기였다. 윈터필드는 넓은 곳이었고, 영지 중심부는 그중에서 그나마 따뜻한 아래쪽에 자리하고 있었으니까.

        

       “추, 추워……. 5월인데도 여기는 아직 겨울인가?”

        

       봄이 되면 눈이 녹는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눈이 안 내리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내린 눈은 바로 녹지는 않는다. 하긴 강원도 정도만 되어도 지독하게 추운 해에는 5월에도 눈이 올 수 있다고 하니까.

        

       “윈터필드잖아. 이 지역 사람들이 느끼기에는 어떨지 몰라도 다른 지역 사람들이 보기에는 1년 내내 겨울인 곳이니까.”

        

       레오가 덜덜 떨고 있는 클레어에게 그렇게 말했다.

        

       “뭐, 그렇다고 정말로 겨울만 있는 건 아니다.”

        

       그리고 레오의 목소리에 이어 들리는 그 말에 레오는 흠칫 어깨를 떨었다.

        

       “나름대로 여름도 있어. 제도에 비하면 선선한 편이긴 하지만. 솔직히 여기서 나고 자란 내 기준으로는 제도가 지나치게 더운 편이다.”

        

       “……이제 막 봄이 된 곳인데요?”

        

       “그러니까 덥다는 거다. 봄에도 눈 한 번 내리지 않는 곳이니까.”

        

       “…….”

        

       제니퍼의 말에 레오와 클레어는 둘째치고, 여기 모여있던 귀족 학생들이 모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솔직히 여름이 오면 어떻게 버틸까 고민되긴 한다만…… 뭐, 상관없겠지. 어차피 여름방학이 있으니까.”

        

       별로 상관없지는 않다.

        

       제니퍼는 본격적인 여름이 오기도 전에 땀을 뻘뻘 흘리기 시작하니까.

        

       그리고 대놓고 노출도 있는 옷을 입고 다녀서 여러모로 ‘피규어 만들기 좋은 캐릭터’가 된다.

        

       물론 이 게임은 피규어가 그렇게 자주 나오는 게임은 아니었지만. 그래서 조금 아쉽기는 했다.

        

       게임에서는 춥다는 설정, 그리고 반응만 나오고 복장은 아무거나 선택할 수 있었다. 물론 내가 따로 선택하지 않으면 캐릭터들은 동복에 내가 입고 있는 코트와 같은 코트를 입고 나오지만, 그렇다고 DLC로 산 복장들을 입히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상하게 다른 캐릭터들에게 수영복을 입히고 이 지역을 돌아다니게 하면 엄청나게 어색하다는 기분이 들었지만, 제니퍼만큼은 그렇지 않았다. 아무래도 제도에서 여름 초입부터 계속 덥다고 말하고 돌아다니던 캐릭터였으니까.

        

       “좋아, 다 모였나?”

        

       윈터필드의 계절이 어떻든, 제국 내에서는 굉장히 넓은 영지에 속하기도 했고, 전략적으로도 중요한 곳이었기에 기차에서는 귀족 A반 말고도 여러 사람이 내리고 있었다.

        

       사업가로 보이는 정장 입은 사람들이 회중시계를 보며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고, 장교복을 입은 군인들 몇 명이 저 멀리서 걸어가고 있었다. 휴가에서 복귀하는 것 같은 분위기의 병사들도 있었고. 이쪽을 보는 사람은 없었다. 제니퍼도 평소의 장교복이 아니라 사복을 입고 있어서 누가 경례를 해오지는 않았다.

        

       얼굴을 봤다면 경례를 할 수도 있었겠지만, 제니퍼는 일단은 퇴역군인이다. 엄밀히 따지면 경례를 받을 사람이 아니라는 뜻이다.

        

       아마 그래서 일부러 사복을 입고 머리를 묶은 거겠지.

        

       “예, 다 모였습니다.”

        

       어느새 반의 대표 자리를 맡은 앨리스가 그렇게 대답했다.

        

       제니퍼는 우리를 한 번 슥 둘러보았다.

        

       군인 출신인 담임 치고는 우리더러 오와 열을 정렬하라거나 그런 말을 하지는 않았다. 이 사람은 우리 담임인 캐롤린 노스우드와는 또 다른 의미로 자유로운 사람이었으니까.

        

       “이쪽으로 오기 전에 캐롤린에게 너희들을 잘 부탁한다는 말을 들었다.”

        

       우리를 둘러본 제니퍼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는 고위 귀족이라는 사람들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다만, 캐롤린은 다르지. 너희들도 느끼고 있을 테지만 귀족은 둘째치고 사람 중에서 그렇게 좋은 사람은 별로 없다.”

        

       제니퍼의 말에 여기저기서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보였다.

        

       예쁘고, 착하고, 학생들에게 헌신적인 교사를 싫어할 아이들은 없으니까.

        

       “그러니, 나는 캐롤린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 만약 너희들이 잘못되거나 위험한 행동을 한다면 나는 너희를 호되게 혼낼 거다. 다른 교사 담당인 학생들을 다치게 해서 돌려보낼 수는 없으니까.”

        

       그리고 우리를 다시 한번 둘러보더니,

        

       “윈터필드에는 처음 오는 사람들이 가기에는 너무 위험한 곳이 많다. 세세한 것은 잠시 뒤 숙소에서 다시 모여 본격적으로 설명하겠다. 우선은…….”

        

       제니퍼는 회중시계를 꺼내 한 번 보더니,

        

       “한 시간 정도 시간이 있으니 그동안은 자유롭게 돌아다녀도 좋다. 이곳은 영지 중심에서는 조금 벗어난 지역이지만 그렇다고 마냥 한산하기만 한 곳도 아니니 윈터필드의 분위기를 알기도 좋을 거다. 군인도 많아서 치안도 괜찮아.”

        

       그리고 다시 회중시계를 품 안에 넣으며,

        

       “일단 해산!”

        

       그렇게 말하는 제니퍼였다.

        

       그 말이 진심이라는 것을 보여주겠다는 듯 우리에게 해산이라는 말만 남긴 제니퍼는 곧장 몸을 돌려서 다른 곳을 향해 걸어가 버렸다.

        

       첫 실습으로 조금 들떠 있던 학생들도 이런 것은 예상하지 못했는지 웅성댔다.

        

       “실비아.”

        

       그리고 그 웅성거리는 학생 중에는 앨리스도 있었다.

        

       앨리스는 평소와 다르게 코트까지 전부 입고 있었다. 코트 안쪽의 교복은 그래도 그럭저럭 교복이라는 느낌이 있었지만, 코트는 정말로 군용 코트 같아서 겉으로만 보면 사관생도라고 생각해도 어색하지 않았다. 하긴, 사관학교의 역할도 함께 하는 곳이었으니까.

        

       다만 앨리스는 불편하다는 이유로 목덜미의 털은 떼어낸 상태였다.

        

       “같이 식사나 할까? 점심시간이잖아.”

        

       “확실히, 식사를 끝내기에는 적절한 시간이긴 하군요.”

        

       앨리스의 말에 샤를로트가 끼어들었다.

        

       “식사 말씀이십니까?”

        

       “응. 우리 아직 식사 안 했잖아.”

        

       “…….”

        

       음.

        

       사실, 제니퍼는 그저 학생들을 자유롭게 풀어놓는 것처럼 행동하긴 했지만, 어느 정도는 이 지역에 대해서 알아보라는 의도도 섞여 있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귀족 학생들이 생각하는 ‘식사’는 여기 없다. 여기는 귀족들이 자주 다니는 곳은 아니었으니까.

        

       치안이 그렇게 나쁜 곳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부유한 곳은 아닌 곳.

        

       대부분은 군인들을 상대로 밥을 파는 것으로 장사를 하는 곳이다.

        

       북부답게 음식은 투박하고 간은 싱겁다.

        

       게다가 그 ‘밈’화 된 영국을 모티브로 한 제국이 아닌가. 제국 북부라는 설정에 그 인터넷에서 유명한 영국 요리라는 설정까지 섞여서, 이 북부지역의 음식은 솔직히 귀족들이 제대로 먹을 수 있을지나 모르겠을 음식들 뿐이었다.

        

       “오, 정말? 그럼 우리도 같이 먹자!”

        

       “그래, 따로 식사할 바에는 모여서 다 같이 먹는 쪽이 편하겠지.”

        

       이야기를 나누는 앨리스와 샤를로트를 향해 레오와 클레어가 다가오고,

        

       “그거 좋네.”

        

       그런 우리 사이로 불쑥 끼어드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마침 나도 같이 밥 먹을 사람이 없었거든. 아무래도 로티는 다른 반이라.”

        

       제이크 린드버러였다.

        

       로티가 제이크의 하녀 역할로 이 아카데미에 들어왔다고는 하지만, 결국 다른 반이다. 로티는 일단은 평민이었으니까.

        

       그리고 이 학교의 학생들은 명목상으로는 평등하다. 어느 학생도 하인이나 하녀를 두어서는 안 되고, 하물며 그 존재가 같은 학생이어서는 안 된다. 명목상으로는 제이크와 로티는 같은 학생이었으니까.

        

       “린드버러?”

        

       앨리스가 조금 놀란 표정으로 제이크를 보았다. 샤를로트는 그 가벼운 모습을 보고 어딘가 마음에 들지 않은 모양이었다.

        

       “괜찮지, 실비아?”

        

       “실비아?”

        

       앨리스의 눈이 더욱 커졌다.

        

       “지난번에 대화하고 친해졌거든.”

        

       제이크가 하는 말에 앨리스가 거의 경악에 찬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사실 앨리스뿐만이 아니라 주변에 있던 아이들이 죄다 나를 그렇게 보고 있었다.

        

       ……내가 생각해도 언제나 별다른 말 없이 교실 구석에 조용히 앉아있던 여자애가 어느 순간부터 태도가 엄청나게 경박한 금발 태닝 양아치와 놀고 있다고 하면 깜짝 놀라기는 했을 거다.

        

       그런데 그거 아니잖아.

        

       “응? 왜?”

        

       내가 제이크를 쳐다보니, 제이크가 어깨를 살짝 으쓱해 보이며 말했다.

        

       “친한 거 아니었어?”

        

       아니, 우리 2주 만에 처음 이야기해보는데.

        

       그리고 2주 전에 이야기했던 것도 사실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눴다기보다는 그냥 제이크가 일방적으로 나에게 인사를 건넸을 뿐이다.

        

       그러니까……따지자면 친하다기보다는 그냥 얼굴만 아는 사이라고 하는 게 맞지 않을까.

        

       “실비아.”

        

       대체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고민하는 나에게 샤를로트가 슬쩍 다가왔다.

        

       그리고 내 팔을 잡아 살짝 끌면서 말했다.

        

       “당신은 남자에 대해서 잘 모르니 그렇게 넘어간 거겠지만, 저런 남자일수록 가까워지면 안 되는 거예요. 자, 이쪽으로.”

        

       아니, 그러니까 딱히 가깝지도 않다니까. 저쪽에서 일방적으로 아는 척하는 거라고.

        

       나는 제이크 뒤쪽을 슬쩍 보았다.

        

       이쪽을 보며 안절부절못하는 여자애들 몇 명이 보였다.

        

       ……그렇네.

        

       제이크는 자기 주변에 바글거리는 여자애들로부터 도망 온 것이다. 여기 있는 여자들은 죄다 나라의 높은 사람들 뿐이니까.

        

       게다가 높기만 할 뿐만이 아니라 무척 아름답기까지 하고.

        

       그러니 이쪽으로 오면 다른 여자애들은 자연스럽게 우리와 자신들을 비교하고 떨어져 나갈 것이 분명했다.

        

       “…….”

        

       샤를로트가 초반에 제이크와 부딪히긴 했다. 뭐, 엄밀히 따지자면 서로 부딪혔다기보다는 샤를로트가 귀족답지 못하게 가벼운 태도를 유지하는 제이크를 일방적으로 싫어했다. 특히 피부를 태닝해서 다니는 걸 엄청나게 싫어했다.

        

       하지만 후에 제이크가 좋아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고 나서는 그 태도가 많이 변한다. 여전히 그 가벼운 태도에는 기겁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일방적으로 탐탁지 않게 보는 태도는 많이 사라진다. 제이크가 어째서 그런 분위기로 있을 수밖에 없었는지 알게 되었으니까.

        

       “아, 그런가.”

        

       하지만 그런 샤를로트의 태도와는 다르게, 앨리스는 내 표정을 보고 금방 알아차린 것 같았다.

        

       내가 제이크와 별로 친하지 않고, 제이크가 일방적으로 나에게 말을 걸고 있다는 것을. 내 표정에 귀찮음이라도 묻어나온 걸까.

        

       다른 사람들은 못 알아봤더라도 앨리스는 알아봤겠지.

        

       “만약 네가 일방적으로 실비아에게 접근하는 거라면 조금 말리고 싶은데.”

        

       앨리스는 샤를로트가 벌려둔 나와 제이크 사이에 들어와서 제이크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실비아는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쉬운 애가 아니니까.”

        

       “…….”

        

       대체 나의 이미지는 이 애들 사이에서 어떻게 되어있는 걸까.

        

       아니, 시간까지 돌려가면서 나름대로 완벽한 이미지를 쌓아왔는데—

        

       —라고 생각한 순간, 어느새 말없이 우리 사이에 섞여 있던 미아 크로우필드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

        

       “…….”

        

       음, 뭐, 완벽하게, 는 아닌가.

        

       그렇다면 ‘완벽에 가깝게’라고 하도록 하자.

        

       그래도 한 사람 빼고 다른 사람들한테는 전혀 들키지 않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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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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