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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0

    아침을 먹는동안 루크는 가만히 기다려보았다.

    일시아가 밥을 먹으러 올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식사를 거른건가.’

    아이가 밥을 굶는것은 참으로 슬픈 일이다.

    식사는 언제나 제때 해야하는 법이거늘.

    “루크,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밤에 같이 연주를 했던 아이가 있는데……. 식사는 했는지 궁금해서 말이다.”

    “연주를 했다고? 난 못들었는데……. 그건 누구야?”

    “너는 그때 곤히 자고있었지않느냐. 그 아이는 ‘일시아’라는 학생이었다.”

    “일시아? 우리 학년에 그런 애가 있던가? 흐음, 모르겠어.”

    “아…….”

    나이에 대한 주제는 일부러 자신을 ’10살’이라고 말하고싶지 않은 루크가 피했기에 자세한 나이를 알 수는 없었다.

    10살에 아카데미에 입학하는것이 보통인 이 시대에선, 아카데미에 자신보다 어린 아이는 없을 테니까.

    그야, 아이취급따위를 받기엔 너무도 낯이 가려웠으므로.

    그러다 루크는 문득, 일시아의 넥스카프의 브로치색이 달랐다는것을 기억해냈다.

    그 색상은 청록색.

    청록색은 분명…….

    “그는 3학년인 것 같더군.”

    “선배였구나. 그럼 내가 모를수도 있겠네.”

    메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친구가 많고 아이들과 두루두루 친하게 지낸다지만, 학년이 다르면 접점이 거의 없어진다.

    애초에 학년별로 사용하는 교실도 멀리 분리되어있는데다, 교육과정또한 달라지니 마주칠 일도 거의 없으니.

    메리는 곰곰히 생각하다가, 도저히 모르겠다는 듯 포기를 선언했다.

    “아, 맞다. 그러고보니, 그거 뭐라고 했더라? 첼로? 나 그거 루크가 연주하는거 듣고싶어!”

    루크는 어차피 연주할 생각이었으므로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그럼 방에서 첼로를 갖고 오자꾸나.”

    “와!”

    기숙사로 발걸음을 향하는 둘 앞에,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웠다.

    빛을 등지고 선, 체육복을 입은 170센티미터의 여성이었다.

    “아, 메리. 오늘은 주말인데 일찍이네.”

    튼튼하고 긴 다리, 흑장발의 머릿결 사이로 작게 튀어나온 귀, 그리고 바지 위로 삐쳐나온 붓 같은 꼬리, 길고 튼튼한 허벅지와 날렵한 인상.

    그녀는 한눈에 보아도 말 수인의 모습이다.

    “에이미언니! 어디가시는 길이에요?”

    “가볍게 몸풀기로 달리기좀 하려구. 너야말로, 교복입고 어딜 가려는거니?”

    “그냥 걷고 있었어요. 방금 밥먹고.”

    “그래? 그럼 이따가 같이 뛸래?”

    “아뇨! 친구랑 할 일이 있어서!”

    “그래? 그럼 어쩔 수 없지. 재밌게 놀아라.”

    “네, 잘가요, 언니!”

    메리의 인사가 마치 출발신호라도 되는 양, 에이미라 불린 그녀는 순식간에 거리를 벌려 저만치 멀어지고 만다.

    상당히 빠르다.

    루크는 그녀의 엉덩이 뒤쪽으로 흩날리는 곱게 땋여진 말총을 보다가, 메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메리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7학년 육상부 언니야. 말 수인인데, 엄청 빨라. 대회나가서 1등도 한적 있대.”

    “육상부?”

    “응! 나도 육상부거든. 그래서 나도 발은 꽤 빠르다구.”

    메리가 통통 뛰어오르는 모습을 보며 루크는 고개를 끄덕여준다.

    육상부라, 자신도 달리기엔 그리 자신은 없지만, 헤이스트와 인핸스바디를 비롯한 육체강화에, 윈드를 사용해 공기저항까지 줄인다면야 저 속도를  내지 못할건 없다.

    하지만 루크는 고개를 저었다.

    굳이 그러고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순수하게 땀흘려 노력하여 몸을 단련한 아이들을 바보로 만드는 행위다.

    할 필요도 없고, 해서도 안된다.

    그런 생각을 하며, 이제는 거의 점으로 보이는 에이미의 등을 본다.

    그런 루크를 보고 메리는 알 만 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루크도 저 언니 꼬리에 관심이 있구나? 하긴, 너도 수인이니까.”

    “……그런건 아니다만.”

    “나는 저렇게 다듬는건 못하겠지? 아쉬워.”

    메리는 에휴,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꼬리, 꼬리라…….

    “그러고보니, 루크. 너는 혼혈이었지? 혼혈은 어떤 꼬리가 날지 기대된다!”

    “허허……. 글쎄.”

    루크는 난처하게 웃었다.

    수인은 어린 시절엔 보통 꼬리가 없다.

    수인의 꼬리는 수인으로써 완벽해진다는 상징.

    수인들의 진정한 모습으로 변하는 능력, ‘수인화’를 사용할 수 있는 근원이 그들의 꼬리였다.

    따라서 그토록 신경이 많이 분포되어있는 것이고, 약점으로 취급되는 것이었다.

    인간으로치자면 2차성징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을까.

    오랜세월 여러 종족과 피가 섞이며 수인화가 불가능해진 지금은 그저 흔적기관이 되고 말았다고 하지만.

    ‘헌데, 내게도 꼬리가 나는겐가?’

    글쎄, 그건 알 수 없는 일이다.

    자신의 근원조차 모르는데, 어찌 판단을 할 수 있을까.

    루크는 자신의 꼬리뼈 부분에 손을 대며 중얼거렸다.

    “난다고 해도, 너무 불편하지만 않으면 좋겠구나…….”

    “루크, 정말 괜한 걱정이야!”

    메리는 피식 웃어버렸다.

    ———–

    방에서 첼로를 챙겨서 음악동아리실로 돌아온 루크는 새벽에 연주했던 곡들을 연주하였다. 그 분위기와는 천차만별인 아침이라 그런지 그때같은 감정은 실려있지 않았지만, 그저 어린아이가 감상하기엔 충분히 좋았다.

    연주를 마치곤 조금 쑥쓰러워져서 메리를 바라본다.

    살짝 예의를 차리며 가볍게 묻는다.

    “그래, 관객분은 연주가 어땠는가?”

    메리는 당연하다는 듯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너무 좋았어! 되게 잘 한다!”

    “하하. 과찬이다.”

    뭐, 메리라면 당연히 쓴소리는 하지 않겠지.

    하지만 요즘 자꾸 칭찬만을 듣다보니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과거에도 음악에는 문외한이었으니, 실제로 잘하는지 어떤지는 잘 모르지않나.

    그저 타고난 정령친화력으로, 떠오르는대로 연주를 할 뿐이다.

    물론 그것은 이상적인 화음이므로 듣기에 나쁘진 않지만, 연주하다보면 의문이 드는것이다.

    내가 듣는 이 음율을 상대가 들었을때 어떤 감정이 드는가는 직접 알 수가 없잖은가.

    사람과 사람은 생각하는게 각자 모두 다르다.

    내가 괜찮다고 생각한 말이, 상대에겐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는것 처럼, 내게는 듣기 좋은 음악일지라도 상대에게는 그렇지 않을수도 있겠지.

    ‘메리는 실제로 좋았다고 생각하는것이겠지만.’

    이 아이는 애초에 자신에게 호감을 가진 상태.

    만일 엉망진창으로 연주를 했어도 기쁘게 웃어보였으리라. 뭐! 못할수도 있지, 하고.

    한번 얻은 감정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첫인상이 그토록 중요한 것이고, 첫사랑이 그토록 애틋한 법.

    그래서 루크는 일시아가 말했던 콩쿠르가 떠올랐다.

    과연 자신을 처음보는 심사위원들은, 이 음악을 어떻게 생각할까, 하고 호기심이 드는 것이다.

    “뭘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해?”

    “아, 콩쿠르를 생각하고 있었단다. 내가 거기서 상을 탈 수 있을지.”

    “루크라면 분명 탈 수 있을걸! 그거, 되게 듣기 좋았거든!”

    “그렇느냐.”

    뭐, 그다지 걱정되는것은 아니었다만, 그래도 위안을 받는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살짝 홀가분해진 기분으로 루크는 첼로를 내려놓는다.

    “이제 쉬려고?”

    “그래야겠지. 슬슬 피로하기도 하고.”

    루크는 밤을 샌 여파가 이제서야 오는것이 느껴졌다.

    역시 사람은 밤에 자고 낮에 생활해야하거늘…….

    어린아이의 체력은 일견 무한해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 체력의 비밀은 사실, 거의 마지막까지 일정한 체력을 낼 수 있는 것 뿐이다.

    몰려오는 피로감에 눈가를 누르고 정신을 다잡는다. 낮잠이라도 잠깐 자는게 좋을까.

    “메리, 미안하네만……. 기숙사로 돌아가서 쉬고싶구나. 한숨 재워줄 수 있겠느냐?”

    “졸리구나, 아참. 루크는 완전히 밤을 샜다고 했지. 미안, 내가 먼저 자버려서…….”

    “괜찮다. 하암……. 이제, 돌아가서 쉬자꾸나.”

    “그래! 돌아가서 쉬자!”

    루크는 첼로를 들쳐메며 생각했다.

    ‘일시아는 보이질 않는군. 밤새 연습하느라 피곤했던건가.’

    ——–

    ‘메리는 육상부 언니와 함께 운동이라도 한다던가.’

    루크는 점심시간이되면 깨워달라고 당부하고는, 메리의 방에서 눈을 감았다.

    과도하게 포근한 침대는 루크의 눈꺼풀을 강제로 끌어내리는 듯 했다.

    간헐적인 새소리와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는 평소라면 불편했을 방해요소지만, 적당한 피로감을 곁들이니 그것은 여타 자장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렇게 루크가 잠에 빠지는건 금방이었다.

    고요한 방에 루크의 규칙적인 숨소리만이 들려온다.

    한가로움.

    마치, 잔잔한 호숫가를 연상시키던 그 분위기는, 날아드는 돌멩이 하나에 커다란 파문이 이는 것처럼 요란스러워졌다.

    우당탕탕!

    “루크, 얼른 일어나! 속보야, 속보!!”

    흔들흔들, 메리는 마구 루크를 흔든다.

    당장 깨어나라는 의미로.

    물론 루크는 잠에서 깨었다.

    “아, 메리. 대체 무슨 일이길래.”

    ‘이건마치 불침번이라도 선 기분이로군…….’

    풀리지 않은 피로감에 하품을 하고 있으니, 메리의 새하얗게 변한 표정이 마음에 걸렸다.

    마치 못볼것을 봤다는 표정.

    “음악동아리실에 귀신이 있어, 진짜야!”

    “귀신? 그게 무슨 소리인가?”

    “빨리 따라와봐!”

    “갑자기 그런…….”

    루크는 당황해 이끌려가면서도 머리를 굴렸다.

    피로에 사고력이 저하되는게 느껴지지만, 괜찮다. 과거에도 이런 컨디션에서 생각하는것은 얼마든지 했던 것이니.

    ‘귀신이라? 유령형 몬스터를 이야기하는가? 밴시나 레이스같은? 글쎄, 이 시대에 이런 도시 한복판에서 그런 생명에 적대적인 영체형 몬스터가 있을리는 없다고 생각한다만…….’

    하지만 만약 그렇다면 분명 큰일이기는 하다. 루크는 가슴에 서클을 미약하게 회전시키면서 언제든 마법을 쏘아낼 준비를 했다.

    그게 무엇이든 위험한 것이라면, 얼마든지 배제해야한다.

    음악동아리실 근처로 가자, 수많은 아이들이 웅성웅성거리면서 모여있는것이 보였다.

    동아리실 안쪽에선 꽤 경쾌한 음악이 피아노로 연주되고 있었다.

    누군가 연주하는걸까?

    그러나 루크와 메리가 양해를 구하며 인파를 헤치고 들어가자, 드러나는 광경은 생각과는 달랐다.

    “저기, 저 피아노가 제멋대로 연주하고 있다니까! 저건 음악실의 귀신이 분명해……!”

    “아. 저건…….”

    루크는 홀린듯이 피아노로 다가갔다.

    “루크, 뭐하는거야, 위험해! 귀신이라니까! 저주당할지도 몰라……! 지금 누가 경비아저씨를 부르러 갔으니까, 가까이가면……!”

    메리는 소리죽여 외쳤다.

    그러나 루크는 아랑곳않고 피아노로 다가가 속삭였다.

    “파이, 그대는 대체 왜 이러고있는겐가……!”

    -루크, ……!

    “하나도 재미 없다네……! 장난은 그만치게! 다른 아이들이 무서워하잖은가!”

    -…….

    구슬픈 바이올린소리를 흉내내며, 파이가 추욱 처져서는 루크의 옆으로 날아왔다.

    이제 그만하겠다는 뜻이리라.

    루크는 후우, 하고 한숨을 내쉬며 몸을 돌렸다.

    “……?”

    허나 몸을 돌리자 자신을 향하는 수많은 시선…….

    루크는 문득 실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기, 이건 귀신이 아니라 정령이었다네.”

    루크가 입을 열어 침묵을 깨자, 메리가 드문드문 중얼거렸다.

    “네가 귀신을 퇴치한거야……?”

    “아니 글쎄, 이건 귀신이 아니라 정령…….”

    루크가 해명했지만, 그 이야기를 듣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정령이 세상에 어딨어!”

    “뭐?”

    루크는 그 말에 머리를 때려맞은듯한 충격에 휩싸였다.

    “정령이 어디 있냐니, 그야…….”

    루크는 파이를 쳐다본다.

    파이도 루크를 쳐다본다.

    -……?

    파이는 잘 모르겠다는 듯 머쓱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하는 것 같이 살짝 위로 떴다가 가라앚았다.

    ‘설마, 정령은 내게만 보이는게 아니라, 애초에 존재 자체가 알려지지 않은겐가……?’

    예르나가 내게 거짓말을 했다.

    “방금 뭐라고 해서 쫓아낸거야? 나도 알려줘.”

    “너, 귀신퇴치에 재능이있네!”

    “저절로 연주되는 피아노라니, 어으. 너무 오싹해.”

    “풉. 그럼 넌 마법피아노도 무섭겠다.”

    “죽을래?”

    왁자해진 분위기속, 루크는 완전히 이방인이 되었다.

    피곤함이 느껴지며, 머리가 아파온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하하 일시아인줄 알았죠? 유감! 파이였습니다.

    루크가 왜 꼬리가 없는가에 대한 대답은 그냥 덜 자라서 그렇습니다!

    예르나의 정령적인 거짓말을 이제야 알게된 루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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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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