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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0

       경험 많은 상단원들과 대화를 마친 멜리사가 다가왔다.

         

       “크래프트, 당신의 탐욕성을 계산했어요.”

       “아, 정말?”

         

       크래프트 상단의 상행 보고를 듣고도 시간이 남아 마석 상자에 앉아 음료수나 마시던 파스텔은 반색했다.

         

       금방 온다더니 너무 안 와서 곤란했는데!

         

       그 반응을 보고 멜리사가 움찔했다.

         

       “미안해요.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어요. 뱃일에 종사하는 분들이라 그런지 말문이 트이면 내용이 길어지더라고요.”

       “에이 괜찮아.”

         

       파스텔은 사람 좋게 손사래 쳤다.

         

       “멜리사는 착하니까 남의 말을 끊기 곤란했던 거잖아. 나는 그런 멜리사가 좋아!”

       “고, 고마워요.”

         

       멜리사가 살짝 부끄러워했다.

         

       “이거 마실래? 오렌지 주스야. 상행하고 남은 음료에 설탕을 팍팍 넣어서 만든 특제 칵테일이라구!”

         

       나무잔에 주홍색 액체가 찰랑였다.

         

       “잘 마실게요. 대화를 오래 해서 그런지 마침 목이 말랐어요.”

       “여기 앉아!”

         

       파스텔은 마석 상자의 옆자리를 팡팡 두드렸다.

         

       “실례할게요.”

         

       멜리사가 마법사 로브를 조심스럽게 정리하더니 상자에 앉았다.

         

       헤에.

         

       “아무리 너라도 손수건을 깔고 앉진 않는구나?”

       “네? 그건 무례하잖아요.”

         

       잉.

         

       “그런가?”

         

       파스텔은 고개를 갸웃하며 양다리를 흔들었다.

         

       듣고 보니 그렇긴 하지. 내가 멀쩡히 앉아 있는 상자 위인데 더럽다는 양 손수건을 깔고 앉는 건. 그것도 옆자리를 권유받은 상황에.

         

       응응, 멜리사 착해.

         

       멜리사와 앉아 잠시 대화 없이 음료를 마셨다.

         

       그런데 어쩌다가 여기서 음료수를 마시게 된 거더라?

         

       기억을 더듬었다.

         

       아, 맞아!

         

       너무 거친 상행을 겪은 바람에 멜리사가 화났고 난 사과를 해야 할 상황이었어! 그래서 멜리사에게 얼마나 화났는지 물어본 거고!

         

       그런데 사차원 멜리사는 갑자기 계산해 보겠다며 상단원을 붙잡고 물어보기 시작했지. 왜 그런진 정말 모르겠지만 그러니까 사차원이 아닐까. 정상인으로서 이해하기 어려워.

         

       파스텔은 슬쩍 멜리사의 분위기를 살폈다. 마법사 소녀는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오렌지 주스를 마셨다.

         

       “멜리사?”

       “말하세요.”

       “혹시 나한테 하고 싶은 말 없어?”

       “네?”

         

       멜리사가 살짝 당황하더니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 마시던 음료를 보고 깨달았다는 듯이 말해왔다.

         

       “이 음료 정말 달콤하네요. 크래프트는 설탕 넣는 솜씨가 좋은 거 같아요.”

         

       잉.

         

       이런 반응을 원한 게 아닌데.

         

       물론 내가 준 음료수니까 감상을 들려주는 게 예의에 맞긴 하겠지만 사과해야 할 입장에선 이런 분위기는 참 곤란해.

         

       “그거 말고 뭔가 감정적이고 격렬하고 분노가 느껴지는 생각이라거나?”

       “아.”

         

       멜리사가 깨달았다. 푸른 눈동자가 냉랭하게 쳐다봤다.

         

       “크래프트, 전 분노했어요. 어떻게 밀무역을 부탁할 수가 있나요? 상상도 못 해본 일이에요.”

         

       으아아.

         

       괜히 말했어!

         

       덜덜덜.

         

       “멜리사아, 얼마나 분노한 거야?”

         

       이렇게 우리 사이가 깨지고 마는 거야?

         

       “방금 당신의 탐욕성을 계산해 왔죠. 그걸 보면 제가 얼마나 분노한 건지 알 수 있어요.”

         

       멜리사가 품에서 종이를 주섬주섬 꺼내더니 건네줬다. 탐욕성을 계산한 내용이 죽 적혀 있었다. 이런 거까지 바란 건 아니지만 어쨌든 분노가 느껴진다.

         

       멜리사가 마지막 줄의 수치를 가리켰다.

         

       “당신은 정상적인 무역상보다 50% 더 탐욕적이에요. 그래서 정상 무역인 줄 알고 참여했던 전 당신에게 50%만큼의 배신감을 느끼고 분노했다고 볼 수 있어요.”

         

       허억.

         

       파스텔은 입이 벌어졌다.

         

       멜리사가 50%만큼 분노하다니.

         

       으아아.

         

       울상을 지으며 매달렸다.

         

       “미안해 멜리사!”

         

       진심을 다해 사과했다.

         

       “50%만큼 미안해애!”

         

       파스텔은 50%만큼 미안해졌다.

         

       “50%만큼요……?”

         

       멜리사가 듣고 느리게 눈을 깜빡이더니 멍해졌다. 50%만큼 분노했으니 50%만큼 미안한 게 맞는 거 같기도 하고 아닌 거 같기도 하고.

         

       파스텔도 덩달아 멍해졌다.

         

       뭐가 뭔지 모르겠엉.

         

       “50%만큼…….”

         

       멜리사가 종이에 적힌 자기 계산을 뚫어져라 봤다.

         

       멜리사 왈, 나는 50%만큼 분노했어요~.

         

       흑역사를 갱신한 금발의 소녀는 서서히 얼굴이 붉어졌다. 그러더니 손가락을 꼼지락대다가 나무잔으로 얼굴을 가리듯이 주스를 홀짝였다.

         

       나무잔 속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오늘 일은 잊어주세요…….”

         

       앗.

         

       “알겠어!”

         

       무조건 기억해야지!

         

         

         

       #

         

         

         

       파스텔은 멜리사가 상행 동안 겪은 고난과 역경을 들었다.

         

       해적선 무리를 피해 도망치고 그러다 하늘길을 이탈해 비행고등어에게 휩쓸리는 등.

         

       이미 들은 내용이라 새 소식이랄 건 비공정을 수리하려 마계에 정박하였던 시간 동안 멜리사가 프레스턴 조직의 확장을 도왔다는 정도다.

         

       “어쩌다가?!”

         

       밀무역만 부탁했는데 마계의 협력업체까지 도와주다니.

         

       이것이 절친?

         

       “다인전에 마법사는 강력한 패니까요. 조직 항쟁으로 곤란해 보이길래 한번 소탕해 줬어요. 어차피 소탕할 만한 저열한 조직이기도 했고요.”

         

       소탕.

         

       멜리사는 의외로 살인 경험이 풍부한 듯했다.

         

       우와아, 남부 사령관의 후계자님 무서워.

         

       파스텔은 멜리사를 끌어안았다.

         

       “고마워! 프레스턴 조직이 커지면 무역이 원활해질 거야.”

         

       내 주머니도 든든!

         

       멜리사가 꺼림칙해했다.

         

       “크래프트 가문이 이런 식으로 돈을 번다는 건 짐작하긴 했지만, 적당히 해주세요. 정도를 두고 사도를 걸을 필요는 없잖아요.”

       “응!”

         

       생각보다 화를 안 낸 건 크래프트 가문의 몰락을 감안해서 그런 것도 있나 보다.

         

       멜리사 다정해!

         

       멜리사의 얘기를 듣곤 파스텔이 아카데미 근황을 말해줬다. 하늘고래를 말하고 편입생과 일대일 토너먼트를 얘기했다.

         

       “벨라몬트요?”

         

       멜리사가 굉장히 불쾌해하기 시작한 건 이때부터였다.

         

       잉.

         

       “앨시어 벨라몬트가 왜 입학한 거죠? 여생 동안 북부에만 있으면 좋을 텐데요.”

       “으응, 몰라!”

         

       멜리사가 미간을 좁혔다.

         

       “파스텔, 설마 당신 그 벨라몬트와 친구가 된 건 아니겠죠?”

         

       허억.

         

       어떻게 알았지?

         

       파스텔은 입이 벌어졌다.

         

       비록 대결 요청을 받아주지 않았지만 처음 만난 순간 깊은 대화를 통해 친구가 됐다. 분명 앨시어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거야.

         

       멜리사가 인상을 찌푸렸다.

         

       “제가 당신의 무분별한 사교 행위에 왈가왈부할 순 없겠지만 이번만은 다르네요. 벨라몬트와는 친하게 지내지 않는 게 좋아요.”

         

       파스텔은 고개를 갸웃했다.

         

       “왜애? 너희 사이 안 좋아?”

       “사이요?”

         

       멜리사가 한쪽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평소 하던 표정이 아니라 익숙하지 않은지 좀 어색하긴 했지만 어쨌든 비웃는 표정이었다.

         

       비웃는 표정!

         

       착한 멜리사가 비웃는 거 처음 봐!

         

       “어머니가 말씀하셨죠. 크래프트는 그림자도 밟지 마라.”

         

       엣.

         

       가만히 있다가 얻어맞은 파스텔.

         

       멜리사가 말하곤 움찔했다.

         

       “아, 미안해요. 말버릇처럼 나왔네요. 뭐라 하려던 건 아니었어요. 밀무역을 겪고 보니 다시 꺼림칙한 건 사실이지만 당신에게도 사정이 있으니까요.”

         

       소녀가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하여튼 어머니가 말씀하셨어요. 크래프트는 그림자도 밟지 마라. 그리고.”

         

       푸른 눈동자가 냉혹해졌다.

         

       “벨라몬트와는 같은 공간에도 있지 마라.”

         

       파스텔은 눈이 동그랗게 됐다.

         

       그 정도?!

         

       “얼마나 사이가 안 좋은 거야?!”

         

       멜리사가 대답 없이 고개를 저었다.

         

       “먼저 실례할게요. 파스텔 당신과 깊은 얘기를 나누고 싶지만 벨라몬트가 무슨 속셈인지 알아봐야 해서요.”

         

       마법사 소녀가 또각또각 떠났다.

         

       오잉.

         

       파스텔은 벙찐 상태가 됐다.

         

       캐머롯은 남부 사령관이고 벨라몬트는 북부 공작가 아닌가?

         

       도대체 무슨 일이야.

         

       으잉으잉.

         

       모를 땐?

         

       “악마님! 악마님!”

         

       알려주세요, 악마님!

         

       『두 가문은 원수지간이다.』

       “어쩌다가요?”

       『둘 다 제국의 변경이라 중앙정계로 진입하고 싶어 하지. 하지만 두 세력이 모두 정계 진출을 하면 황실에 너무 큰 부담이 생긴다. 기껏해야 한 세력만 가능할까. 그러다 보니 서로가 중앙정계로 진출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형편이지.』

       “서로 방해하는 역사가 쌓이다 보니 원한이 너무 커진 건가요?”

       『그래. 벨라몬트와는 같은 공간에도 있지 말라는 소리는 같이 중앙정계에 진출할 수 없다는 얘기다.』

         

       으아.

         

       “사이 좋게 협력하면 안 돼요? 막막! 여러 방법을 고심한다던가!”

         

       친구친구 방법!

         

       『그 여러 방법이 황실이 두려워하는 시나리오 중 하나다. 캐머롯과 벨라몬트는 남부와 북부의 군사력을 담당하고 있다. 둘이 연합해 양면 전선을 형성하고 수도로 몰아치면 제국이 뒤집히게 돼. 둘 중 누가 황관을 쓸진 몰라도 황제는 확실히 바뀌겠지.』

         

       엇, 갑자기 두뇌 용량 초과의 이야기가.

         

       친구 사귀길 좋아할 뿐인 파스텔은 이런 거 몰라아.

         

       『그래서 그럴 가능성이 생길 때마다 황실의 사주를 받은 크래프트 가문이 둘을 이간질했지. 서로 협력하기로 했다가 크래프트의 이간질로 상대를 배신하는 경우가 몇 차례 생기자 철천지원수가 된 거다.』

         

       “우와앗!”

         

       또다시 밝혀지는 크래프트 가문의 사악한 과거사.

         

       가만히 있던 파스텔은 양심이 찌르르!

         

       숨만 쉬어도 잘못한 기분!

         

       양쪽 귀를 눌렀다.

         

       “못 들은 거로 할래요오!”

       『마음대로 해라.』

         

         

         

       #

         

         

         

       북부 벨라몬트 공작가엔 눈보라가 몰아쳤다. 혹한의 냉기는 유리창을 하얗게 물들이고 실내에서조차 입김을 만들게 했다.

         

       소파에 앉은 남자가 와인잔을 든 채 다리를 꼬았다. 근처의 주홍색 모닥불이 타닥이는 소리를 냈다.

         

       “그래서 앨시어는 언제 죽여줄 거지? 이렇게 느린 거래가 교단이 말하는 신성한 거래인가? 아니면, 아카데미로 쫓아낸 정도론 너희 역량이 부족한가?”

         

       반대편에 무릎 꿇은 검은 로브가 고개를 숙였다.

         

       “마족들을 보냈습니다. 곧 소식이 있을 겁니다.”

       “마족?”

         

       벨라몬트 공작가의 장남은 눈살을 찌푸렸다. 와인잔이 느긋하게 돌려졌다. 붉은 액체가 회전했다.

         

       “열등한 마족의 뭘 믿고.”

         

       비릿한 비아냥이었다.

         

       “아카데미는 본래 마족의 성지였습니다. 과거 하수도 시설을 통해 잠입하면 수월히 암살할 수 있습니다.”

       “수월히 암살한다라.”

         

       장남은 잠시 와인잔과 붉은 액체를 응시했다.

         

       그러다 모닥불을 향해 액체를 뿌렸다. 액체가 모닥불을 덮쳤다. 큰 불길이 일었다. 거센 불길에 사람 그림자가 일렁였다.

         

       “후계 구도만 마무리하면 교단의 거래 따윈 얼마든지 들어줄 수 있어.”

         

       빈 와인잔이 테이블에 놓였다.

         

       “그러니, 실망시키지 않았으면 좋겠군.”

         

       장남은 소파에 기대며 손을 휘저었다. 검은 로브가 고개를 숙이곤 떠났다.

         

       고요가 찾아왔다.

         

       모닥불이 홀로 타닥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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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It’s Mental Immun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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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us: Ongoing Author:
The guardian demonic sword is troubled and in distress, believing it has been ruined because of me. Does striving for advancement through consuming demonic energy seem too ev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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