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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0

     

    “아이스볼, 마나 월.”

     

    아셀라의 지팡이에서 순식간에 그려진 마법진이 신비를 현현한다.

     

    흐르는 기운에 불과했던 마나는 얼음이 되어 적에게 쏘아지고, 방패가 되어 술자를 지켜낸다.

     

    ―파바박!

     

    아셀라의 공격마법이 훈련용 허수아비에 연달아 적중했다.

     

    그 장면을 지켜보던 시모어가 수염을 어루만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연속 시전도 꽤 익숙해졌군. 역시 자네에겐 화염이나 전격보다는 빙결 계열 마법이 적성이야. 이쪽 주문의 정밀도를 올리는데 주력하지.”

     

    “네, 스승님.”

     

    아셀라가 이마의 땀을 손등으로 훔쳤다.

     

    “조금 쉬겠나? 주치의가 한 시간에 한 번 휴식하라고 조언했었다네.”

     

    “조금만 더 해볼게요.”

     

    ―콰쾅!

     

    아셀라가 연습을 이어갔다.

    지금은 조금이라도 더 실력을 연마할 필요가 있었다.

     

    게오르크에게 절대 질 수는 없다.

     

    애초에 저쪽이나 이쪽이나 지면 모든 걸 잃는 결투다.

     

    아무리 승계권자끼리의 충돌이라도 황제가 무자비한 살인자를 고평가할 리는 없다.

     

    어지간 내몰리지 않고서야 게오르크가 정말 자신의 목숨까지 뺏지는 않겠지만, 주치의는 예외다.

     

    그는 라스를 죽일 생각이 가득하다.

     

    이번 결투에서는 반드시 압도해야만 했다.

     

     

    다행히 시모어는 마법사인 아셀라의 편이었다.

     

    “결투 재판이라고 했었나. 내 제자가 칼잡이 따위에 지는 꼴은 못 보지.”

     

    시모어가 팟, 왼손을 올려 주문을 시전했다.

    허수아비가 들고 있던 검과 방패가 튕겨나오며 땅바닥에 떨어졌다.

     

    “무장해제 주문일세. 2위계. 단독으로 전위와 싸워야 할 때 필수인 주문이야. 그러고 보면 아셀라, 자네에게 실전 주문을 그다지 알려준 적은 없었구먼.”

     

    “틈을 만들 수 있겠네요. 하지만 공방만 시전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해요. 시간을 벌어도 다음 주문을 먼저 시전하지 못하면 이쪽이 당하겠어요.”

     

    “이쪽이라. 정확히는 파트너가 당할 걸 염려하는 겐가?”

     

    눈꼬리를 찢은 시모어의 질문에 아셀라가 대답을 망설였다.

     

    “그야 뭐… 공자가 당하면 다음은 제 차례잖아요.”

     

    “하하, 전 같았으면 그를 미끼로 던져놓고 그동안 대형 마법을 시전할 생각부터 할 자네가 아니었나.”

     

    “그것도 전략 중 하나죠. 하지만 리스크가 높잖아요. 실패하면 뒤가 없어져요.”

     

    자신의 마법이 빗나간다거나, 실패한다거나 하는 전제가 들어간 것부터 아셀라 답지 않은 발상이었다.

     

    시모어는 최근 그녀가 보인 변화에 즐거워하며 아셀라에게 다가가 조용히 말했다.

     

    “내 한 가지 비밀을 알려줄까. 원래 이건 누구에게도 알려주지 않는 노하우야.”

     

    “정말이요?”

     

    “그래. 자네는 내가 어떻게 마법을 고속 시전하는지 궁금하지 않나?”

     

    “궁금하죠. 스승님은 손가락만 까딱하면 진 작성을 생략하고 주문을 발동하시잖아요.”

     

    “나는 주문을 저장해놓는다네.”

     

    “저장이요?”

     

    아셀라는 처음 듣는 희한한 소리에 고개를 갸웃했다.

     

    “정확히는 주문을 완벽하게 기억하는 걸세. 아무리 익숙한 마법이라도 진의 형태나 크기, 마나의 용량은 시전할 때마다 조금씩 달라지지 않는가.”

     

    “맞아요.”

     

    “주문이 완벽하고 일정해지면 신체의 자동반사로 입력해 놓는걸세. 날아오는 공을 피할 때 생각을 하진 않잖는가?”

     

    “특정 행동을 하면 몸이 절로 주문을 시전하고 있게 훈련한단 말인가요?”

     

    “그걸세. 내 경험에서 가장 좋은 건 특정 손가락의 두 번째 마디를 접어 표시하는 것이었네.”

     

    시모어가 왼손을 펴보였다. 그가 헛기침을 하고는 약지를 슬쩍 굽혔다.

     

    그러자 화아악! 예고도 없이 하늘에서 구멍이 뚫리고 비둘기 떼가 우르르 나타나 쏟아지더니 금방 각자 갈 길을 찾아 날아갔다.

     

    “흠, 폭풍 정령을 소환할 생각이었는데 둥지 위치가 바뀌었나 보구먼.”

     

    “서먼을 저장해놓으셨어요?”

     

    “그뿐만이 아니라네. 양 손가락을 접는 조합에 따라 수백 가지의 마법을 저장할 수 있지.”

     

    “일상생활 중에 잘못해서 시전해버리면요?”

     

    “사전 동작도 준비하면 된다네. 내 경우는 헛기침을 한 번 해야 하지.”

     

    “이해했어요.”

     

    아셀라가 팟, 절도 있게 양팔을 가슴 아래에서 나란히 교차시켰다.

    왼손의 약지를 접으며 동시에 무장해제 주문을 연습한다.

     

    “멋은 있지만 한쪽 팔이라도 잃으면 쓸 수 없겠구먼.”

     

    “그런 단점이 있긴 하네요.”

     

    아셀라는 결투에서 사용할 주문 연습을 이어갔다.

     

     

     

    시모어의 수업이 끝나고서도 아셀라는 마법 훈련을 멈추지 않았다.

     

    오늘 배운 내용을 복습하고 반복해서 훈련한다.

     

    시모어가 알려준 주문 저장을 활용해보지만 쉽지는 않다. 하긴 사람의 자동반사가 하루아침에 생겨날 리도 없었다.

     

    “후우.”

     

    반복작업에 지친 아셀라는 라스의 조언대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그녀의 휴식, 좋아하는 마법 연습하기다.

     

    다른 황자나 황녀처럼 승마, 사냥 같은 취미를 가질 법도 했지만 아셀라는 마법을 쓸 때가 가장 즐거웠다.

     

    특히나 요즘엔 하루빨리 쓰고 싶은 마법도 있다.

     

    “천리안.”

     

    평범한 인간은 도달할 수조차 없는 5위계의 마법이다.

     

    기초적인 생활용이 아니면 마법도 계열이 무수하게 갈린다.

     

    가장 기초적인 건 원소이지만, 원소에도 계열이 수도 없이 있고 보통 한 마법사는 많아야 평생 세 계열의 마법을 배운다.

     

    천리안은 시간 계열의 마법. 시모어도 시간 계열은 통달하지 않았기에 천리안은 서적을 통해 연구하여 알려주었다.

     

    아셀라에게도 어려운 마법이었기에 아직은 연습하는 단계였다.

     

    “기본진을 고차원에 설치하는 감각이면 어떨까.”

     

    자신 나름대로 진을 해석하고 변형해서 구축해본다.

     

    다섯 개는 어렵다. 진은 원이 아니라 128각형에 그친다.

     

    아셀라는 마나를 불어넣으면 격렬히 회전하는 마법진이 늘 사랑스러웠다.

     

    ―화아악!

     

    “어?”

     

    평소엔 여기서 연결이 파기되던 천리안이었지만, 오늘은 초기 시전의 현상이 일어났다.

     

    아셀라의 시야와 청각, 모든 오감이 갑자기 뒤바뀐다.

     

    잠시 당황한 아셀라였지만 곧 그녀는 천리안에 성공했음을 깨달았다.

     

    자신의 몸은 그대로다. 다만 마음대로 움직일 수가 없다. 숨조차 다른 의지가 멋대로 쉬고 있다.

     

    ‘여긴…’

     

    아는 경치였다.

    아직 겨울의 한기가 다 가시기 전에 와 본적 있는 곳이다.

     

    고트베르크 후작가다.

     

    “아셀라, 정신 차려라.”

     

    그녀의 옆에서 주의를 주는 목소리. 카밀라 황비였다.

     

    아셀라는 조금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천리안이 보여주는 건 수많은 가능성 중에 하나.

     

    있었을지도 모르는 미래, 찾아올 수 있는 장면이다.

     

    “그간 신세 졌습니다. 옥체 건강히 지내시옵소서.”

     

    자신의 주치의가 꾸벅 인사를 하고는 후작가로 떠나간다.

     

    아셀라는 잠깐 놀랐지만 금방 고개를 갸웃했다.

     

    주치의는 가운이 아닌 성의를 입었다.

     

    선발시험 최종후보에 있었던 얼굴이었다.

     

    기스, 그런 이름이었던가.

     

    주치의가 직무에서 해임된 상황이다.

    그도 여느 치유사와 다름 없이 아셀라에게 아무 도움이 되지 못했다.

     

    “유감입니다, 황비 전하.”

     

    고트베르크 후작이 고개를 숙여 사과했다.

    후작령 육성소 최고의 인재가 무능력함이 밝혀졌으니 카밀라에게 빚을 지게 됐다.

     

    “후작님. 안타깝게도 저 주치의는 내의원에서조차 쫓겨난 무능력자였습니다. 아셀라의 마력회로 하나 측정하지 못했죠.”

     

    “으음.”

     

    “이번 건은 월광궁에 있어 큰 손실입니다. 보상이 필요하겠군요.”

     

    “…가능한 한도 내에서라면.”

     

    “영애님의 성녀 계시는 아직입니까?”

     

    “그건….”

     

    “앞으로는 월광궁에서 모셨으면 좋겠군요.”

     

    카밀라는 주치의 건을 빌미로 후작가에 우위를 점했다.

    처음부터 계획한 건 아니었어도 언제든 이런 트집을 잡을 기회를 노렸으리라.

     

    카밀라가 자신을 이용해 온갖 이득을 취하는 건 잔뜩 봐온 아셀라였기에 그녀의 목적은 잘 알 수 있었다.

     

    ‘내가 라스를 안 뽑았으면.’

     

    이런 일도 있을 수 있었다는 걸까.

     

    월광궁은 아직도… 어마마마의 의지대로 흘러가고 있어.

     

    ‘그럼 라스는 어디에 있지?’

     

    아셀라가 궁금해하는 순간 쾅!

     

    응접실의 문이 열리고 더벅머리를 한 청년이 술병을 든 채 비틀거리며 들어왔다.

     

    “이봐, 혼약자가 왔으면 서방님부터 모셔야 하는 게 도리 아니야? 어?!”

     

    술에 잔뜩 취해 얼굴이 시뻘겋다.

    대낮부터 헛소리를 지껄이는 그를 보니 아셀라는 무심코 피식 웃음이 나왔다.

     

    “라스! 귀빈께서 계신 자리다. 썩 자리에서 꺼지거라!”

     

    “하, 제가 언제까지 아버지 명령대로 집안에 갇혀 있기만 할 줄 아십… 아셨셔요? 두고 보십쇼, 저 여자애가 황제가 되면 어? 내가 그 뭐냐… 하여튼 높으신 분이야!”

     

    “기사, 당장 라스를 치워라!”

     

    타냐가 주정을 부리는 라스를 끌고 나간다.

     

    몸도 못 가누는 한심한 꼴이란.

     

    아셀라는 그의 모습을 보니 가슴 속 깊은 곳에서 희열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라스, 넌 정말 나에게 감사해야 해.’

     

    내가 널 안 뽑았으면 넌 지금도 후작가의 망나니로 망가져 있었겠지.

     

    내가 널 사람 구실하게 만들었잖아.

     

    이 장면을 꼭 네가 봐야 하는데.

     

    “못난 꼴을 보여 송구스럽습니다. 주치의 건은 어떻게든 배상을…”

     

    ―화악!

     

    짧은 시전이 끝나고 다시 아셀라의 시야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손을 살짝 쥐어본다.

     

    “음… 완벽한 시전은 아니었어.”

     

    완전한 천리안은 수많은 가능성을 동시에 보고 원하는 시간대나 자신이 위치한 장소를 얼추 지정할 수 있다고 했다.

     

    어디까지나 용도는 승계를 위한 정치적인 단서를 찾기 위해.

     

    하지만.

     

    “라스, 한심한 남자 같으니.”

     

    아셀라는 천리안으로 보는 장면을 수정구에 녹화할 방법부터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가 방금 장면을 봤으면 막스처럼 순종적으로 변할 텐데.

     

    즐거운 취미 시간을 끝낸 아셀라는 결투 재판을 준비하며 다시 실전 연습에 들어갔다.

     

     

     

    ***

     

     

     

    결투 재판 때문에 일정이 꽤 바빠졌다.

    타냐에게 검술 수련을 받고, 아셀라의 용태를 검사하고, 약제와 주사 용액을 제작하고.

     

    그 와중에도 한 가지 일을 더 해야 했다. 내의원 별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별관은 입원실이다. 일반인은 쓸 수 없고 황족 전용이다.

     

    지금은 외부 환자가 한 명 들어와 있다.

    말할 것도 없이 서부 공작이다.

     

    기사들이 호위하는 병실 앞에 서서 문지방을 노크했다.

    안에서 공작을 치유하던 알베리치 주교가 인상을 찌푸리며 튀어나왔다.

     

    “무슨 일이요. 공작 각하의 신변은 목휘궁에서 맡았소. 폐하의 황명이오.”

     

    “압니다. 상태만 확인하지요.”

     

    “내가 맡았다니까 왜 끼어드시오! 또 민간요법을 사용하려고 그러시오?”

     

    “의학입니다.”

     

    “그게 그거…!”

     

    “혹시 고트베르크 선생님이오?”

     

    병실 안에서 목소리가 들려온다. 알베리치도 더 나를 막아서지 못하고 길을 비켰다.

     

    안으로 들어가니 공작은 핼쭉해진 얼굴로 침상에 누워있었다. 그가 나를 보더니 반갑게 웃었다.

     

    “선생님이시군. 뵙고 싶었소이다. 큰일이 있었다고 들었소.”

     

    “하하, 별일 아닙니다. 몸은 어떠십니까?”

     

    “덕분에 많이 좋아졌소. 선생님이 아니었다면 이미 땅속에 들어갔겠지. 치명적인 흑마술이었소. 술을 마신 순간 죽음이 턱밑까지 차오른 게 느껴지더군.”

     

    “고생하셨습니다. 증상에 도움될 처방과 약제입니다. 지키시면 회복이 빨라질 겁니다.”

     

    공작에게 처방전을 넘겨주었다. 해독에 도움이 될 식재료와 운동법 등을 적어놨다.

    약제는 상태가 안 좋아졌을 때 복용하도록 주의를 줬다.

     

    “고맙소. 선생님의 지시라면 믿고 따를 수 있겠소. 황녀님께 직접 감사를 전하지 못한 무례를 전해주시오.”

     

    “맡겨주시죠.”

     

    이제 공작은 치유사들에게 맡겨놔도 되겠다 판단했다.

     

    나는 계속 민간요법 운운하며 못마땅해하는 알베리치를 내버려두고 병실을 나섰다.

     

     

    독은 멀쩡한 사람의 신체를 망가뜨리는 악질적인 수단이다.

     

    게오르크도 직접 몸으로 체험해 보면 좀 반성하지 않을까 싶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파페포포님 후원 감사해요! 항상 읽어주셔서 기뻐요!! :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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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주치의는 악녀를 고치고 도망쳤다
Score 3.6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Becoming the physician of the villainess who brought about the world’s destruction, I tried to escape to survive, but the reactions were st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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