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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0

       “아, 아아…! 눈물 흘리는 아이들을 위해 여신께서는 피를 흘리나니!”

       

       “뭔지 모르겠지만 그거 아니에요.”

       

       사실 잘 안다. 사랑의 여신을 믿는 성직자들은 그 교리를 바탕으로 사랑이라는 광범위한 개념은 몇 가지로 쪼갰다.

       

       인간의 몸으로 신의 사랑을 이해하기 힘들어, 자신이 받아들일 수 있는 형태로 제련한 것이다.

       

       그렇게 자신에게 맞는 몇몇 종류의 사랑을 평생 탐구하고 실천하며 살아갔으나…그중에서도 가장 위대한 것으로 치는 것이 하나 있었으니.

       

       “자애라 함은 마땅히 자신의 피로 타인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음이라!”

       

       “아니라고요….”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사랑 중 가장 여신의 그것에 닮았다는 자애가 그러하다.

       

       그래. 나도 안다. 말로는 아니라고, 관심 멈추라고 외치며 울고 싶어 하지만….

       

       난데없이 신성력을 정화하고, 피를 먹여 사람을 살리는 사람에게서 성직자들이 무엇을 보는지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애초에 그걸 노리고 넣은 마지막 치료법이니까!

       

       한번 멈췄던 심장 때문에 혼란에 빠진 저주를 타인의 피로 완전히 속여 넘긴다는 설정 같은 건 나중에 덧붙인 것에 불과하다.

       

       요는 손에서 흘러나오는 성혈(아님)을 마시자 죽은 줄 알았던 사람이 벌떡 일어나는 거 개 멋있지 않음? 이니까.

       

       그리고 이는 명백히 자애로움을 염두에 두고 넣은 설정이기도 하다.

       

       아픈 이를 긍휼히 여겨 자신의 상처로서 상대의 상처를 치유한다. 이걸 어떻게 참아!

       

       그런데 문제는 상대가 다른 누구도 아닌 카렌이라는 점이다.

       

       그녀는 감정을 볼 수 있는 가호를 받았고, 이를 바탕으로 일전에는 이 세계를 향한 내 무조건적인 사랑을 통찰한 적 있다.

       

       헌데, 이렇게 눈앞에서 자애의 기적(진짜 아님)을 보여준다?

       

       안 그래도 일반 성직자보다 한층 신앙심이 두터운 이단심문관인 카렌이 눈이 돌아버리기엔 충분하리라.

       

       “너무 부정하지 말아 주십시오. 여신께서 내려주신 눈에 사도께서 품은 연민과 자애가 보입니다. 차라리 제 눈을 멀게 할지언정 못 본 척하라는 말씀은 거두어 주소서.”

       

       “아니, 하. 진짜 이게 아닌데….”

       

       “혹여 레밀리 사제가 신경 쓰이는 것이라면 괜찮습니다. 제가 무릎을 꿇는 순간에 잠시 주변의 눈을 가려두었으니 말입니다.”

       

       “이 가까운 거리에서 그게 말이 되…는구나. 이단심문관이시니까.”

       

       이단심문관은 평범한 성직자와는 조금 다르다.

       

       황혼을 삼키는 자처럼 일그러진 신앙을 가진 이단을 사냥하기 위한 자들. 싸우는 법을 익혔을 뿐인 전투 사제나, 성기사와는 다른 것을 주로 익혔다.

       

       상대의 거짓을 꿰뚫어 보는 법. 진실을 심문하는 방법, 눈앞에서 뿌리가 같은 신성력을 보아도 흔들리지 않는 광적이지만 올곧은 신앙, 그리고 사람의 이목을 가리고 숨어드는 방법 등등.

       

       잠깐 시야를 가리는 정도는 어렵지 않겠지.

       

       “사도시여. 천년 만에 이 땅에 임하신 성자시여. 제가 어찌하면 되겠습니까.”

       

       “일단 오늘 일을 전부 없었던 일로 해주시면 안 될까요…?”

       

       뒷머리를 벅벅 긁으며 곤란해하자, 나를 지키듯 나섰다가 어리둥절한 표정만 짓고 있는 리디아가 인상을 찌푸렸다.

       

       “안돼.”

        

       그 단호한 말과 함께 나를 완전히 자신의 뒤에 숨겼다.

       

       “요나는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게 아냐. 그러니 그만 괴롭혀.”

       

       검은 뽑지 않았지만, 넘실거리는 오러가 눈에 보일 만큼 살벌한 기세로 말이다.

       

       “엣.”

       

       호위 기사 뭐야.

       

       너무 든든해서 반할 뻔했다.

       

       ***

       

       리디아는 열성적인 눈빛과 목소리로 요나 앞에 무릎 꿇은 카렌을 바라보았다.

       

       이단심문관이니 황혼을 삼키는 자와 요나의 연관성을 눈치채고 죽이려 드는 것보다는 나았지만….

       

       그렇다 하여 지금의 관심과 착각이 달가운 것은 아니니까. 이는 실시간으로 썩어들어가는 요나의 표정만 보아도 확실하다.

       

       그도 그럴 것이 요나는 황혼을 삼키는 자의 실험체였으니까.

       

       카렌이 본 인간이 아닌 여신에 가까운 사랑?

       

       최소한의 인간성마저 무너뜨린 뒤, 강제로 주입한 신앙 때문이다. 요나는 세상 모든 것을 사랑한다 하지만, 이는 달리 말해 무엇 하나 특별히 여기는 것이 없다는 소리다.

       

       이단의 신성력을 흡수해 순수한 신성력으로 변환하는 것?

       

       황혼의 삼키는 자의 인체실험은 때때로 상상 이상의 결과물을 내놓곤 한다. 당장 리디아 자신의 주변에 산증인이 하나 있기도 하고.

       

       요나에게 실시된 실험의 주제는 사랑을 모르는 이에게도 여신의 사랑이 깃드는가. 그 답은 ‘그렇다’ 라는 거겠지.

       

       수상할 정도로 황혼을 삼키는 자의 수법에 정통한 것?

       

       카렌은 요나가 정녕 여신의 사도라면 알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다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리디아는 안다. 그것이 단순히 가까이서 지켜보았거나, 혹은 직접 몸으로 경험해 본 것이기에 잘 알고 있는 것이라는 걸.

       

       들킬지도 모른다는 걸 알면서도 움직인 것은 쓰러진 이안에게서 과거의 자신을 겹쳐보았기 때문이리라.

       

       마지막으로 신전과 엮이는 것을 꺼리는 요나의 태도?

       

       카렌은 이를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높은 뜻 같은 식으로 형편 좋게 포장하려는 것 같지만.

       

       리디아의 눈에는 다르게 보인다. 요나는 자신의 과거가 들키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하고 있다.

       

       당연한 일이지. 까딱 잘못하면 황혼을 삼키는 자와 같은 이단으로 몰릴 수도 있으며…그렇지 않더라도 실험체로 납치되기 이전의 일이 밝혀질 수 있잖은가.

       

       리디아는 아직도 선명히 기억한다. 요나가 보여준 완벽한 고위 귀족의 예법과, 세상을 집어삼킬 것처럼 격렬하게 타오르는 복수심을.

       

       요나는 여신의 사도로 대우받으며 편하게 사는 것보다, 낮고 험한 곳에서 구르며 스스로 강해지는 것을 택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복수는 자신의 손으로 행해야만 의미 있다는 뜻이겠지.

       

       그런 의미에서 복수의 칼날은 은밀하면 은밀할수록 좋다. 그래야만 가장 연약한 급소를 가장 깊게 찌를 수 있을 테니까.

       

       어쩌면 요나가 기습과 암살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그러한 최종적인 목표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모든 사정을 모르는 카렌은 리디아가 방해라고 생각하는 걸까. 그녀의 오러에 맞서 신성력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이미 이안을 살리느라 상당히 소모했음에도 남아있는 신성력의 양이 상당하다.

       

       ‘보통 이단심문관은 아니야.’

       

       속으로 각오를 마친 리디아가 허공에 손을 뻗었다. 언제든 검을 뽑을 수 있도록. 하지만.

       

       “리디아 씨. 당신이 요나 님을 지키려 하는 것을 비난하진 않겠습니다. 하지만 그 과보호가 때로는 사람을 가둬두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요나 님은 훨씬 큰 곳에서 훨씬 큰일을 하실 분입니다.”

       

       “아니. 넌 아무것도 몰라. 그런 녀석에게 요나를 맡길 수는 없어.”

       

       “마치 자신은 다르다는 듯한 발언이시군요. 그래봐야 결국 당신도 엘리 씨처럼 어른이 된 요나 님의 몸이 목적 아닙니까.”

       

       “틀려.”

       

       고개를 저은 리디아가 슬쩍 고개를 돌려 자신의 뒤에 숨은 요나를 바라보았다. 

       

       어리둥절한 표정. 하지만 이 와중에도 자신의 허리춤을 꽉 붙잡고 있다. 마치 리디아의 뒤에 있다면 어떤 역경도 헤쳐 나갈 수 있다는 것처럼.

       

       그 모습에서 언젠가의 숲속이 떠올랐다.

       

       단순한 장난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하나, 요나는 자신을 향한 믿음을 보여주었고 리디아는 이에 응했다.

       

       요나 본인조차 알아주지 않는다 해도 그날의 맹세는 진짜였다.

       

       “나는 요나의 기사.”

       

       자신을 알아주는 이를 위해 기꺼이 충성을 바치며, 설령 세상을 적으로 돌리더라도 쥐고있는 검의 방향을 돌리지 않는 것이 기사다.

       

       “적을 베는 검이자, 결코 부서지지 않는 방패.”

       

       리디아의 심장이 묵직하게 뛰었다. 오러의 흐름이 불꽃처럼 격렬하게 타올랐고, 특유의 적발적안은 화려하게 빛난다.

       

       언제든 자기 자신을 불태울 수 있는 인간에게서 종종 보이는 선명한 의지.

       

       “요나가 원하지 않는다면 누구도 요나를 강제할 수 없어.”

       

       리디아는 기사가 되고 싶었다. 무너진 가문을 재건하고, 자신을 비웃던 이들을 역으로 비웃어 주고 싶었다.

       

       지체 높은 영식을 모시는 것도, 전장에서 명예를 떨치는 것도, 심지어는 살짝 불순한 로맨스도 좋아한다.

       

       하지만 그 모든 것 이상으로 원하는 것은 따로 있었으니.

       

       리디아는 이 불완전하고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믿을 수 있는 유일한 것을 원했다.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것.

       

       달리 이르기를 신념.

       

       “설령 여신이라도 예외는 아냐.”

       

       기사는 신념에 살고 신념에 죽는다.

       

       그리고 그녀는 누구보다도 고결한 기사였다.

       

       “당신…!”

       

       신성모독이라도 당한 것처럼 이를 악무는 카렌. 리디아가 각오를 굳힌 채, 허공에서 근거리에서 쓰기 좋은 레이피어를 꺼내려던 차였다.

       

       빼꼼!

       

       리디아의 겨드랑이 사이로 머리를 내민 요나가 평소의 익살스러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카렌 심문관님! 저희 싸우지 말고 비밀 친구 할까요?”

       

       “…예?”

       

       “비밀 친구 말이에요 비밀 친구. 이렇게 가끔 남몰래 이야기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고….”

       

       불순하기 짝이 없는 단어 선정에 카렌도 리디아도 얼어붙은 사이. 요나가 히죽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말을 이었다.

       

       “같이 이단자들을 때려잡기도 하고 말이죠.”

       

       “…….”

       “…….”

       

       리디아는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녀가 선택한 주군인 것을.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이 와중에 숨쉬듯 음해 당하는 엘리…

    그래도 내가 많이 사랑하는 거 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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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0

EP.60





       “아, 아아…! 눈물 흘리는 아이들을 위해 여신께서는 피를 흘리나니!”


       


       “뭔지 모르겠지만 그거 아니에요.”


       


       사실 잘 안다. 사랑의 여신을 믿는 성직자들은 그 교리를 바탕으로 사랑이라는 광범위한 개념은 몇 가지로 쪼갰다.


       


       인간의 몸으로 신의 사랑을 이해하기 힘들어, 자신이 받아들일 수 있는 형태로 제련한 것이다.


       


       그렇게 자신에게 맞는 몇몇 종류의 사랑을 평생 탐구하고 실천하며 살아갔으나…그중에서도 가장 위대한 것으로 치는 것이 하나 있었으니.


       


       “자애라 함은 마땅히 자신의 피로 타인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음이라!”


       


       “아니라고요….”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사랑 중 가장 여신의 그것에 닮았다는 자애가 그러하다.


       


       그래. 나도 안다. 말로는 아니라고, 관심 멈추라고 외치며 울고 싶어 하지만….


       


       난데없이 신성력을 정화하고, 피를 먹여 사람을 살리는 사람에게서 성직자들이 무엇을 보는지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애초에 그걸 노리고 넣은 마지막 치료법이니까!


       


       한번 멈췄던 심장 때문에 혼란에 빠진 저주를 타인의 피로 완전히 속여 넘긴다는 설정 같은 건 나중에 덧붙인 것에 불과하다.


       


       요는 손에서 흘러나오는 성혈(아님)을 마시자 죽은 줄 알았던 사람이 벌떡 일어나는 거 개 멋있지 않음? 이니까.


       


       그리고 이는 명백히 자애로움을 염두에 두고 넣은 설정이기도 하다.


       


       아픈 이를 긍휼히 여겨 자신의 상처로서 상대의 상처를 치유한다. 이걸 어떻게 참아!


       


       그런데 문제는 상대가 다른 누구도 아닌 카렌이라는 점이다.


       


       그녀는 감정을 볼 수 있는 가호를 받았고, 이를 바탕으로 일전에는 이 세계를 향한 내 무조건적인 사랑을 통찰한 적 있다.


       


       헌데, 이렇게 눈앞에서 자애의 기적(진짜 아님)을 보여준다?


       


       안 그래도 일반 성직자보다 한층 신앙심이 두터운 이단심문관인 카렌이 눈이 돌아버리기엔 충분하리라.


       


       “너무 부정하지 말아 주십시오. 여신께서 내려주신 눈에 사도께서 품은 연민과 자애가 보입니다. 차라리 제 눈을 멀게 할지언정 못 본 척하라는 말씀은 거두어 주소서.”


       


       “아니, 하. 진짜 이게 아닌데….”


       


       “혹여 레밀리 사제가 신경 쓰이는 것이라면 괜찮습니다. 제가 무릎을 꿇는 순간에 잠시 주변의 눈을 가려두었으니 말입니다.”


       


       “이 가까운 거리에서 그게 말이 되…는구나. 이단심문관이시니까.”


       


       이단심문관은 평범한 성직자와는 조금 다르다.


       


       황혼을 삼키는 자처럼 일그러진 신앙을 가진 이단을 사냥하기 위한 자들. 싸우는 법을 익혔을 뿐인 전투 사제나, 성기사와는 다른 것을 주로 익혔다.


       


       상대의 거짓을 꿰뚫어 보는 법. 진실을 심문하는 방법, 눈앞에서 뿌리가 같은 신성력을 보아도 흔들리지 않는 광적이지만 올곧은 신앙, 그리고 사람의 이목을 가리고 숨어드는 방법 등등.


       


       잠깐 시야를 가리는 정도는 어렵지 않겠지.


       


       “사도시여. 천년 만에 이 땅에 임하신 성자시여. 제가 어찌하면 되겠습니까.”


       


       “일단 오늘 일을 전부 없었던 일로 해주시면 안 될까요…?”


       


       뒷머리를 벅벅 긁으며 곤란해하자, 나를 지키듯 나섰다가 어리둥절한 표정만 짓고 있는 리디아가 인상을 찌푸렸다.


       


       “안돼.”


        


       그 단호한 말과 함께 나를 완전히 자신의 뒤에 숨겼다.


       


       “요나는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게 아냐. 그러니 그만 괴롭혀.”


       


       검은 뽑지 않았지만, 넘실거리는 오러가 눈에 보일 만큼 살벌한 기세로 말이다.


       


       “엣.”


       


       호위 기사 뭐야.


       


       너무 든든해서 반할 뻔했다.


       


       ***


       


       리디아는 열성적인 눈빛과 목소리로 요나 앞에 무릎 꿇은 카렌을 바라보았다.


       


       이단심문관이니 황혼을 삼키는 자와 요나의 연관성을 눈치채고 죽이려 드는 것보다는 나았지만….


       


       그렇다 하여 지금의 관심과 착각이 달가운 것은 아니니까. 이는 실시간으로 썩어들어가는 요나의 표정만 보아도 확실하다.


       


       그도 그럴 것이 요나는 황혼을 삼키는 자의 실험체였으니까.


       


       카렌이 본 인간이 아닌 여신에 가까운 사랑?


       


       최소한의 인간성마저 무너뜨린 뒤, 강제로 주입한 신앙 때문이다. 요나는 세상 모든 것을 사랑한다 하지만, 이는 달리 말해 무엇 하나 특별히 여기는 것이 없다는 소리다.


       


       이단의 신성력을 흡수해 순수한 신성력으로 변환하는 것?


       


       황혼의 삼키는 자의 인체실험은 때때로 상상 이상의 결과물을 내놓곤 한다. 당장 리디아 자신의 주변에 산증인이 하나 있기도 하고.


       


       요나에게 실시된 실험의 주제는 사랑을 모르는 이에게도 여신의 사랑이 깃드는가. 그 답은 ‘그렇다’ 라는 거겠지.


       


       수상할 정도로 황혼을 삼키는 자의 수법에 정통한 것?


       


       카렌은 요나가 정녕 여신의 사도라면 알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다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리디아는 안다. 그것이 단순히 가까이서 지켜보았거나, 혹은 직접 몸으로 경험해 본 것이기에 잘 알고 있는 것이라는 걸.


       


       들킬지도 모른다는 걸 알면서도 움직인 것은 쓰러진 이안에게서 과거의 자신을 겹쳐보았기 때문이리라.


       


       마지막으로 신전과 엮이는 것을 꺼리는 요나의 태도?


       


       카렌은 이를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높은 뜻 같은 식으로 형편 좋게 포장하려는 것 같지만.


       


       리디아의 눈에는 다르게 보인다. 요나는 자신의 과거가 들키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하고 있다.


       


       당연한 일이지. 까딱 잘못하면 황혼을 삼키는 자와 같은 이단으로 몰릴 수도 있으며…그렇지 않더라도 실험체로 납치되기 이전의 일이 밝혀질 수 있잖은가.


       


       리디아는 아직도 선명히 기억한다. 요나가 보여준 완벽한 고위 귀족의 예법과, 세상을 집어삼킬 것처럼 격렬하게 타오르는 복수심을.


       


       요나는 여신의 사도로 대우받으며 편하게 사는 것보다, 낮고 험한 곳에서 구르며 스스로 강해지는 것을 택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복수는 자신의 손으로 행해야만 의미 있다는 뜻이겠지.


       


       그런 의미에서 복수의 칼날은 은밀하면 은밀할수록 좋다. 그래야만 가장 연약한 급소를 가장 깊게 찌를 수 있을 테니까.


       


       어쩌면 요나가 기습과 암살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그러한 최종적인 목표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모든 사정을 모르는 카렌은 리디아가 방해라고 생각하는 걸까. 그녀의 오러에 맞서 신성력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이미 이안을 살리느라 상당히 소모했음에도 남아있는 신성력의 양이 상당하다.


       


       ‘보통 이단심문관은 아니야.’


       


       속으로 각오를 마친 리디아가 허공에 손을 뻗었다. 언제든 검을 뽑을 수 있도록. 하지만.


       


       “리디아 씨. 당신이 요나 님을 지키려 하는 것을 비난하진 않겠습니다. 하지만 그 과보호가 때로는 사람을 가둬두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요나 님은 훨씬 큰 곳에서 훨씬 큰일을 하실 분입니다.”


       


       “아니. 넌 아무것도 몰라. 그런 녀석에게 요나를 맡길 수는 없어.”


       


       “마치 자신은 다르다는 듯한 발언이시군요. 그래봐야 결국 당신도 엘리 씨처럼 어른이 된 요나 님의 몸이 목적 아닙니까.”


       


       “틀려.”


       


       고개를 저은 리디아가 슬쩍 고개를 돌려 자신의 뒤에 숨은 요나를 바라보았다. 


       


       어리둥절한 표정. 하지만 이 와중에도 자신의 허리춤을 꽉 붙잡고 있다. 마치 리디아의 뒤에 있다면 어떤 역경도 헤쳐 나갈 수 있다는 것처럼.


       


       그 모습에서 언젠가의 숲속이 떠올랐다.


       


       단순한 장난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하나, 요나는 자신을 향한 믿음을 보여주었고 리디아는 이에 응했다.


       


       요나 본인조차 알아주지 않는다 해도 그날의 맹세는 진짜였다.


       


       “나는 요나의 기사.”


       


       자신을 알아주는 이를 위해 기꺼이 충성을 바치며, 설령 세상을 적으로 돌리더라도 쥐고있는 검의 방향을 돌리지 않는 것이 기사다.


       


       “적을 베는 검이자, 결코 부서지지 않는 방패.”


       


       리디아의 심장이 묵직하게 뛰었다. 오러의 흐름이 불꽃처럼 격렬하게 타올랐고, 특유의 적발적안은 화려하게 빛난다.


       


       언제든 자기 자신을 불태울 수 있는 인간에게서 종종 보이는 선명한 의지.


       


       “요나가 원하지 않는다면 누구도 요나를 강제할 수 없어.”


       


       리디아는 기사가 되고 싶었다. 무너진 가문을 재건하고, 자신을 비웃던 이들을 역으로 비웃어 주고 싶었다.


       


       지체 높은 영식을 모시는 것도, 전장에서 명예를 떨치는 것도, 심지어는 살짝 불순한 로맨스도 좋아한다.


       


       하지만 그 모든 것 이상으로 원하는 것은 따로 있었으니.


       


       리디아는 이 불완전하고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믿을 수 있는 유일한 것을 원했다.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것.


       


       달리 이르기를 신념.


       


       “설령 여신이라도 예외는 아냐.”


       


       기사는 신념에 살고 신념에 죽는다.


       


       그리고 그녀는 누구보다도 고결한 기사였다.


       


       “당신…!”


       


       신성모독이라도 당한 것처럼 이를 악무는 카렌. 리디아가 각오를 굳힌 채, 허공에서 근거리에서 쓰기 좋은 레이피어를 꺼내려던 차였다.


       


       빼꼼!


       


       리디아의 겨드랑이 사이로 머리를 내민 요나가 평소의 익살스러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카렌 심문관님! 저희 싸우지 말고 비밀 친구 할까요?”


       


       “…예?”


       


       “비밀 친구 말이에요 비밀 친구. 이렇게 가끔 남몰래 이야기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고….”


       


       불순하기 짝이 없는 단어 선정에 카렌도 리디아도 얼어붙은 사이. 요나가 히죽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말을 이었다.


       


       “같이 이단자들을 때려잡기도 하고 말이죠.”


       


       “…….”


       “…….”


       


       리디아는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녀가 선택한 주군인 것을.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이 와중에 숨쉬듯 음해 당하는 엘리...

    그래도 내가 많이 사랑하는 거 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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