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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0

       

       

       “···머리 아파.”

       

       

       정신을 차리자마자 느껴지는 통증에 머리를 부여잡았다.

       

       끔찍한 고통이 머리를 휘저어 눈을 뜨기는커녕 한동안 움직일 수도 없었다.

       

       내 능력은 이래서 쓰기 싫었는데.

       

       쓰자마자 정신을 잃어버리고, 뭘 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게다가 지속시간이 끝나면 한동안 움직이기도 힘들어지고.

       

       아무리 사용해도 익숙해지지 않을 것 같았다. 어쩌면 평생 익숙해지지 않을지도 모르지.

       

       한참 동안 머리를 부여잡다가 시간이 조금 지나고서야 두통이 가라앉았다.

       

       ···뭔가 평소보다 더 아픈 것 같은데.

       

       

       “정신이 드나요? 아프지는 않나요?”

       

       “아, 아르테? 아니, 아직 아픈데···.”

       

       “으음, 그럴 만도 하죠. 깜짝 놀랐다니까요. 그렇게까지 강해질 줄은 몰랐는데. 직접 보시면 놀랄걸요?”

       

       “뭐? 그게 무슨···.”

       

       

       아르테의 목소리에 적당히 대답하고 다시 땅에 누우려고 했는데, 감탄 섞인 목소리에 무심코 두 눈을 떴다.

       

       그리고 두 눈에 담긴 광경에 어째서 아르테가 그런 말을 했는지 깨달았다.

       

       

       “뭐야. 여기 어디야?”

       

       “어디긴요? 능력을 쓰신 그곳 그대로에요?”

       

       “···이 폐허가?”

       

       “네!”

       

       

       조금 더럽긴 해도 멀쩡했던 건물들이, 무너지기 일보 직전으로 변해있었다.

       

       

       “···이걸 내가 했다고? 그럴 리가 없는데?”

       

       

       그래, 그럴 리가 없다.

       

       내 능력은 아르테처럼 응용력이 높지도 않고, 수사관처럼 강하지 않다.

       

       저번에 들었던 유시우의 능력처럼 언제나 사용 가능한데다가 우수한 능력도 아니고.

       

       ···그저 잠깐 미쳐 날뛰다가 제풀에 지쳐 쓰러지는, 그저 그뿐인 능력인데.

       

       들었던 바에 따르면 공격받아도 아픈지도 모르고 날뛴다고는 하던데, 결국 내 육체라 이 정도의 파괴력을 낼 수 없다.

       

       그런데 이걸 내가 했다고?

       

       

       “원래는 힘들었겠지만, 드셨던 게 있잖아요?”

       

       “먹었던 거?”

       

       “환약이요. 이야, 엄청 무서웠어요?”

       

       

       무심코 입술을 매만졌다.

       

       그러고 보니 그런 걸 먹었던가.

       

       정신을 잃기 전에 느껴졌던 송곳니가 어느새 사라진 상태였다.

       

       

       “능력이 강해져서 좋으시겠네요!”

       

       “···그래, 뭐. 좋네.”

       

       “선조 회귀라고, 선대의 힘을 물려받는 환약이었거든요. 깜짝 놀랐어요? 라이라 양의 선조가 웨어울프였다니.”

       

       “그렇구나. 내 선조가 웨어울프···. 잠깐, 뭐?”

       

       

       또다.

       

       오늘 들은 폭탄 발언이 도대체 몇 개인지는 기억도 나지 않았지만, 또 폭탄 발언이다.

       

       뭐? 내 선조가···뭐라고?

       

       

       “능력을 사용하자마자 웨어울프가 되어서 날뛰시더라니까요? 이야, 대단했어요.”

       

       “저, 정말로···?”

       

       “네에. 저기, 저 벽에 보이시나요? 손톱자국. 당신이 한 거에요?”

       

       

       아르테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장소에는 그녀의 말대로 손톱자국이 길게 나 있었다.

       

       흉포한 짐승이 새겨놓은 것 같은 위협적인 자국. ···저게 내가 한 거라고?

       

       

       “아무래도 능력이 변질된 것 같더라고요. 그냥 미쳐 날뛰는 광폭화가 아니라, 선조의 힘을 빌리며 미치는 느낌으로? 오늘이 보름달이라 더 강했을 수도 있겠네요!”

       

       

       아르테가 재잘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내 귀에는 잘 들어오지 않았다.

       

       ···그, 그러니까. 아르테의 말대로 내가 웨어울프로 변했고?

       

       그게 아르테가 준 환약의 성능이고? 그 환약은 선조의 능력을···.

       

       충격적이었다.

       

       내 엄마가 원래는 아빠였다는 이야기를 들어도 이 정도로 충격적일 수는 없겠지.

       

       그도 그럴게, 웨어울프다! 교과서에나 나오는 위험한 마수!

       

       인간과 비슷한 지능을 가지고, 사회에 섞일 수도 있지만 보름달만 되면 미쳐 날뛴다는 그 괴물!

       

       ···그게 내 선조라고?

       

       

       “그, 그렇다면···.”

       

       “라이라 양의 선조님은 취향이 독특하신 모양이네요!”

       

       “···.”

       

       

       누군지도 모르는 선조를 향해 경멸의 말을 쏟아냈다.

       

       아무래도 내 선조는 제대로 미쳤었던 모양이다.

       

       설마 사람처럼 이족보행을 한다는 것 말고는 비슷한 점도 없다시피 한 웨어울프와···그, 그걸 해?

       

       

       “내 선조님은 도대체···.”

       

       “진정한 의미의 개족보네요!”

       

       “제발 닥쳐줄래?”

       

       

       저 멀리 나뒹굴고 있는 육중한 몸의 시체를 보고 더 슬퍼졌다.

       

       아르테의 말이 사실이라는 듯, 마치 늑대가 입으로 물고 늘어진 것 같은 상처가 나 있었으니까.

       

       설마 이런 환약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는데.

       

       나를 습격한 사람이었지만, 오히려 안타까워졌다.

       

       설마 저 사람도 이런 환약을 가지고 싶지는 않았겠지···.

       

       

       “아, 고생했으니까 오늘 저녁은 스테이크로 해드릴까요?”

       

       

       아르테가 나를 놀리고 있는 거라고 생각해 짜증이 날 뻔했지만, 그녀의 표정을 보고 알아챘다.

       

       이 여자, 내가 조금 전까지 소한테 쫓기고 있었다는 걸 알고도 별생각이 없다.

       

       

       “···소는 조금 그러니까, 돼지로 해줘.”

       

       “알겠어요. 으음, 뭐가 좋을까.”

       

       

       흥얼거리며 발걸음을 옮기는 아르테는 그 나이대의 여자아이처럼 보였다.

       

       피 냄새가 짙게 배어있고, 새 옷처럼 보이는 옷에 피가 덕지덕지 묻어있는 걸 제외하면.

       

       그녀의 평범한 모습과 그렇지 못한 상황의 간극이 이질감을 자아냈다.

       

       아르테가 이 세상에 받아들여지지 않는 외부인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

       

       

       

       “야, 들었냐?”

       

       “들었어, 들었어. 요즘 그거 모르는 사람도 있어?”

       

       “그렇지?”

       

       

       학생들이 떠드는 소리가 교실에 울려 퍼졌다.

       

       저기 모여있는 남학생들뿐만이 아니다.

       

       몰려있는 여학생들도, 복도에서 떠드는 몇몇 학생들도, 심지어는 선생님들까지.

       

       온통 뉴스에 나온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하아.”

       

       “또 나타났네, 아라크네. 이번에는 어림잡아 800명 정도라던데?”

       

       “많기도 하네. 이 좁은 도시에 뭐가 그렇게 빌런이 많아?”

       

       “글쎄.”

       

       

       시우는 한숨을 내쉬었다.

       

       도무지 수업을 제대로 들을 기분이 아니었다. 학교 분위기도 그랬고.

       

       ···그래서일까, 선생님은 한숨을 내쉬며 자습을 선언했다. 그냥 마음껏 떠들다가 다음 수업부터 집중하라는 의미겠지.

       

       

       “이번 사건은 여러 명이 한꺼번에 빌런 조직을 습격한 거라던데. 인원수는 어림잡아 네 명.”

       

       “···네 명.”

       

       “그래. 살해 수법이 네 명 정도로 추려진대.”

       

       

       아멜리아가 별거 아니라는 듯 대수롭지 않게 흘리는 정보도 사실은 엄청나게 귀한 정보다.

       

       뉴스에는 아라크네가 또 빌런들을 몰살했다. ···그런 정보밖에 나오지 않았으니까.

       

       

       “있지, 유시우.”

       

       “응?”

       

       “···알지? 슬슬 포기하자.”

       

       “···.”

       

       

       아멜리아가 뭘 이야기하는지는 잘 알 것 같다.

       

       아멜리아와 내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목표. 아르테를 저지하는 걸 말하는 거겠지.

       

       정확히는 저지가 아니라, 저지하는 방법을 이야기하는 거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르테를 직접 붙잡는 건 무리야.”

       

       “하, 하지만···.”

       

       “하지만, 뭐? 벌써 1,600명이야. 천 명 단위라고. ···빌런이 이렇게까지 많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진짜.”

       

        “···.”

       

       

       아멜리아는 내게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가 원하는 건 확실했다.

       

       ···아르테를 제압할 생각은 접고, 아르테를 유혹하는 걸 메인으로 삼고 싶어 하는 거겠지.

       

       

       “정말 그래야만 할까?”

       

       “그럼? 조금씩 멀어지고 있는 거 안 보여? 애초에 불가능했을 거야.”

       

       “하아···.”

       

       

       아멜리아의 말은 틀린 게 단 하나도 없었다.

       

       아르테를 막기 위해서 아르테 한 명만 막으면 될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으니까.

       

       사실은 아르테도 조직의 일원이고, 그 조직은 다른 빌런 조직 수천 명을 도륙 낼 수 있는 집단이라니.

       

       애초에 목표로 하고 있던 것보다 난이도가 아득히 높았던 거다.

       

       

       “그 방법밖에는 없어.”

       

       “···후우.”

       

       

       그에 비해서, 아르테를 꼬시는 난이도는 언제나 한결같다.

       

       효율을 중시하는 아멜리아로서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겠지. 어째서 내가 망설이는 건지.

       

       ···하지만, 하지만. 생각해보라고.

       

       

       “아르테를 꼬실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오만한 게 아닐까?”

       

       “또 무슨 헛소리야? 얼굴은 봐줄 만하니까 그냥 하라는 대로 해.”

       

       “네···.”

       

       

       안 통하네.

       

       결국 아멜리아의 열렬한 지지 하에, 반 아르테 동맹(인원수 두 명)은 대 아르테 정책을 변경하기로 했다.

       

       아르테 저지 노선에서, 아르테 유혹 노선으로.

       

       

       “···그래서 뭐 어떻게 할건데.”

       

       “으음, 정석적으로 가면 데이트를 계속해서 반복하는 건데···.”

       

       

       아르테는 정석으로 통할 것 같지 않다며, 아멜리아는 고민을 시작했다.

       

       하긴, 내가 생각해도 그럴 것 같긴 하다.

       

       애초에 내게 관심을 가지는 이유조차도 의문인 마당에, 정석적으로 꼬시려 든다?

       

       ···글쎄. 연애 한번 해본 적 없는 나지만, 좋은 반응은 나오지 않을 것 같은데.

       

       애초에 내 연애 경험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아르테가 불편하다고 느껴도 나는 알 방법이 없다.

       

       

       “우선 가랑비에 옷 젖는 노선으로 가자고.”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반 친구가 친구로, 친구가 오빠로, 오빠가 여보로, 여보가 아빠가 되는 작전이야.”

       

       “?”

       

       

       아멜리아는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걸까···.

       

       분명히 나와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있을 텐데, 한참이나 무슨 말을 들은 건지 생각했다.

       

       

       “내일이면 방학식이잖아?”

       

       “응, 그렇지.”

       

       “여름방학 하면, 너는 뭐가 떠올라?”

       

       “···글쎄?”

       

       “바다지, 바다!”

       

       

       잔뜩 흥분한 채로 내게 손짓하는 아멜리아를 보며 생각했다.

       

       ···사실 아멜리아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게 아닐까?

       

       나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항상 고민하고 있는데, 아멜리아는 항상 즐기고 있는 게 아닐까?

       

       그런 의문이 생길 무렵, 아멜리아가 내게 말했다.

       

       

       “방학에는 아르테와 만나기 힘들지! ···하지만, 우리는 같은 동아리야! 만날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거든!”

       

       “그래서, 바다는 왜?”

       

       “바다로 여행을 가자.”

       

       “여행?”

       

       “응. 친목을 겸해서, 우리끼리 놀러 가는 거야. 어때?”

       

       

       놀랐다.

       

       생각보다 아멜리아치고는 정상적인 이야기라서.

       

       바다로 여행을 가는 건 그렇게 이상한 이야기는 아니니까.

       

       아멜리아도 정상적인 사고를···.

       

       

       “그리고 너는 수영복을 입은 아르테를 덮치는 거야···. 그러면 아르테는 옷도 없으니까 반항하지도 못하겠지···!”

       

       

       취소.

       

       역시 제정신이 아니었구나.

       

       그러면 그렇지.

       

       

       “아니, 어쩌면 탈의실에 너를 집어넣는 방법도···?”

       

       “···아멜리아. 정말 아르테를 꼬실 생각이야, 아니면 나를 죽이려는 생각이야?”

       

       

       헛소리를 하는 아멜리아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내일이 벌써 방학식이구나.

       

       코앞까지 다가온 방학에, 어느새 나도 기분이 들뜨기 시작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라이라의 선조님은 억울합니다.

    한 적도 없는 행위가지고 후손에게 미친놈이라고 매도당하는 선조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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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실눈이라고 흑막은 아니에요!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Why are you treating only me like this!

I’m not suspicious, believe me.

I’m a harmless person.

“A villain? Not at 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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