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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0

       

       딸랑 –

       

       “이름은 비델루에…나이는 마흔 일곱이라 합니다.”

       

       도대체 몇 명째 일까.

       

       눈앞이 흐려진지가 한참이었다.

       

       팔과 어깨에서는 진득한 근육통이 느껴졌다.

       

       어깨 위로 팔이 올라가지 않을 정도.

       

       딸랑 –

       

       “교단에 이름을 올려주겠다며 평민의 재산을…”

       

       어쩜 이렇게 죄질이 다양한 것인지···.

       

       상상도 못 한 방법으로 죄를 지어 놓았다.

       

       사기, 횡령은 기본이었다.

       

       살인 같은 중죄가 없는 게 다행일 지경이다.

       

       어쩌면 눈을 피해 사람을 죽인 자들도 있을지 모른다.

       

       “이건 완전 쓰레기네…”

       

       이 비델루에라는 놈은 따지자면 시험관 같은 사람이다.

       

       교단에 이름을 올릴 때 그 자질을 시험하는 자.

       

       쉽게 말하면 면접관.

       

       그것도 매관매직을 일삼는 질 나쁜 놈이었다.

       

       “…이딴 식으로 이름을 올려도 신성력이 쌓인다고?”

       

       종이에 글을 적어 내려가던 알루어드가 고개를 들었다.

       

       “그런 식으로 교단에 이름을 올리면 한참이나 지나서야 겨우 신성력을 쓸 수 있습니다. 그마저도 얻지 못해 행정업무에 종사하는 신관들도 있습니다.”

       

       딱 보니 이런 식으로 이름을 올린 자들이 적지 않아 보였다.

       

       지금 나에게 오는 이름중에 상당수가 그런 느낌이리라.

       

       화르륵 –

       

       초에 종이를 올려 불을 붙인 나는 다음 종이를 주워들었다.

       

       펄럭 –

       

       손가락에 힘이 빠졌는지 바닥으로 떨어지는 종이.

       

       다시금 종이를 주워 올린 나는 적힌 것을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딸랑 –

       

       “이름은 도넬리…나이는 서른 아홉이라 합니다.”

       

       얼씨구.

       

       이놈도 이단 심문관이었다.

       

       교단에 이름을 올린 지는 십 년이 조금 넘은 사람.

       

       그런데 이 정도의 직책까지 오르다니.

       

       “신성력이 없는데 여기까지 오를 수가 있어?”

       

       “….부끄러운 일입니다만…”

       

       “다른 방법이 있나 보네?”

       

       “고위 신관들이 신성력을 불어넣으며 기도하면 다른 사람보다 수월하게 양을 늘릴 수가 있습니다.”

       

       그 과정 역시 복잡하고 어렵다고 하지만 결론은 하나였다.

       

       “돈 주고 샀네.”

       

       이놈은 출신이 상인이었다.

       

       아마 집안의 재산을 끌어모아 교단에 가입했으리라.

       

       그 재산으로 고위 성직자들을 꼬드겼을 테고.

       

       “이거 완전 쓰레기장 아니야…”

       

       “…”

       

       내가 그런 놈들의 정보만 받아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사실 털어서 먼지 안 나오는 집단은 드무니까.

       

       청렴결백한 사람만 있는 곳은 없다.

       

       그만큼 어려운 일이기도하고 말이다.

       

       하지만···.

       

       “정도가 너무 심해…”

       

       딸랑 –

       

       이런 건 남김없이 고자질을 해야 한다.

       

       “재산으로 교단의 지위를 얻었으며, 신성력 역시 같은 과정으로 얻었습니다…”

       

       딸랑 –

       

       “이와 관련된 자들의 이름은 빅터, 헬리오트, 바실례아, 크게는 베르테까지 닿아 있습니다.”

       

       딸랑 –

       

       이름의 수가 늘어나니 방울이 더 무거워졌다.

       

       투둑 –

       

       툭 –

       

       신과의 인연을 끊어놓는 소리.

       

       아니면 내 피가 떨어지는 소리일까.

       

       귀가 먹먹해서 구별이 안 갔지만 난 곧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

       

       후두둑 –

       

       코에서 피가 떨어진 것이다.

       

       “…크리스! 더 이상은 무리에요. 이미 피를 너무 많이 흘렸어요.”

       

       내 몸을 잡는 세레나를 밀어내며 방울을 들어 올렸다.

       

       “너도 신가물이기는 하니까…”

       

       세레나 역시 반쯤이기는 하지만 신가물이었다.

       

       물론 내 기준에서는 반푼이 이지만, 이곳에서는 대륙을 뒤져도 손에 꼽을 것이다.

       

       세레나에게 말을 내뱉으려던 나는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내뱉으려는 말이 제법 우스웠기 때문이다.

       

       “세레나, 너는 이런 거 하지 마라.”

       

       “…크리스?”

       

       “무당 하지 말라고. 팔자가 더럽게 꼬인단 말이야.”

       

       네 개의 주를 사주라 하고, 그걸 천간과 지지로 풀면 팔자가 된다.

       

       사실은 사주나 팔자나 같은 말이다.

       

       이 팔자가 더럽게 꼬여 있는걸 바로 돌리는 게 ‘팔자를 핀다’라는 말이다.

       

       진짜로 꼬이고 구겨진 팔자를 바르게 피는 것이라 그렇다.

       

       “그런데 이놈의 무당팔자는…”

       

       남의 한이나 부정한 것을 대면하는 직업이라 그런지···.

       

       무슨 일이 있을때마다 풀렸던 팔자가 꼬여 버린다.

       

       그걸 또 피고, 꼬고, 지지고 볶는 게 무당이다.

       

       “이런 직업이 어디 있냐는 말이야…”

       

       연중 무휴.

       

       휴가 없음.

       

       궂은 일 마다 불가.

       

       대가 없이 남에게 퍼주는 직업.

       

       이러니 세레나에게 이런 말을 안 할 수가 있나.

       

       “무당 하지 마. 하이 엘프도 때려치워.”

       

       “…크리스? 괜찮은 거 맞아요? 눈이 풀렸어요.”

       

       투둑 –

       

       하루 종일 코로 피를 쏟으면, 코가 맹맹해진다.

       

       나도 오늘 처음으로 알게 된 사실이다.

       

       딸랑 –

       

       “이일 끝나고 휴가 좀 주세요.”

       

       딸랑 –

       

       이번에는 또 방울이 가벼워졌다.

       

       아까부터 이랬다면 신나게 흔들어 재꼈을 텐데.

       

       “다음거 줘 봐.”

       

       화르륵 –

       

       “크리스님! 신성력으로 치료라도…”

       

       “그거 하면 더 아파질 걸?”

       

       당장이야 피가 멈추고 몸이 개운해지겠지만···.

       

       결국 아프지 않은 만큼 아파야 할 것이다.

       

       종이를 받아들고 방울을 흔들려는 순간.

       

       세레나의 피리소리가 울려 퍼졌다.

       

       “…음?”

       

       제법 결연한 표정의 세레나가 눈을 감고 피리를 불고 있었다.

       

       나눠받겠다는 생각 같은데.

       

       “많이 힘들 텐데…”

       

       나 정도나 되니까 코피로 끝나는 거지.

       

       평범한 무당이면 엄두도 못 낼 일이다.

       

       인연을 끊어 놓는다는 게 말이 안 되는 거니까.

       

       아마 시도를 하는 즉시 온몸의 구멍에서 피를 쏟지 않았을까.

       

       다행히 신령님이 직접 나서신 일이라 가능한 거지, 아니었다면 나도 불가능하다.

       

       딸랑 –

       

       “이름은 가르체아. 나이는 쉰 셋이라 합니다.”

       

       후두둑 –

       

       이번엔 내 피가 아니었다.

       

       이름을 내뱉자 마자 세레나의 코에서 피가 흐른 것이다.

       

       입에서도 흐르는 걸 보니 벌써 시작된 모양이다.

       

       “…그러게 힘들다니까.”

       

       인연을 끊어 놓는 순간에는 피를 토하지 싶었다.

       

       딸랑 –

       

       “교단의 규칙을 이용하여 교묘하게 상단을 운영하였으며..”

       

       딸랑 –

       

       “신전의 구축비용을 횡령하여 상단을 키우는 것에 사용하였습니다.”

       

       몇 가지의 죄를 더 일러바치자 인연이 끊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주르륵 –

       

       세레나의 입에서 피가 줄줄 흐르기 시작했다.

       

       피가 묻은 나뭇잎이 소리를 내지 못하고 바람 빠지는 소리를 만들어 냈다.

       

       원래도 하얗던 얼굴이 이제는 창백해져 핏줄마저 비치기 시작했다.

       

       “오늘 엘프 하나 잡겠네.”

       

       덕분에 방울이 조금 가벼워지기는 했다.

       

       코에서 흐르던 피도 조금 줄어들었고.

       

       아주 효과가 없지는 않다는 것이다.

       

       “법사가 나눠 받기도 하나보네.”

       

       옆에서 피리 하나 부는 것치고는 과한 느낌이지만···.

       

       나중에 북치고 장구치는 놈들을 구하면 제법 도움이 되려나?

       

       “야, 몇 명 남았냐?”

       

       “…아직 반도 안 했습니다.”

       

       “….”

       

       “반나절에 이 정도면, 내일 중으로 끝나겠네.”

       

       고생만 조금 더 하면 빠르게 끝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알루어드가 이상한 말을 내뱉었다.

       

       “….반나절이라뇨?”

       

       “더 짧았냐?”

       

       힘들었으니 체감되는 시간이 길었으려나.

       

       알루어드가 괴상한 얼굴을 하고는 입을 열었다.

       

       “이미 하루가 훌쩍 지났습니다.”

       

       “….?”

       

       이건 또 무슨 말인가.

       

       방울 몇 번 흔들고 종이 몇 장 읽었는데 하루가 지나?

       

       중간에 쉬지도 않았는데,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소리였다.

       

       내가 했던 행위로는 그 시간을 채울 수가 없었으니까.

       

       “이거 하는데 무슨 하루가 지나?”

       

       더 이상해지는 알루어드의 얼굴.

       

       그제야 나는 깨달을 수 있었다.

       

       초의 길이가 엄청나게 짧아졌다는 것을.

       

       “….”

       

       새로 꺼낸 초가 어느새 짧게 변해 있었다.

       

       “크리스님께서는 굉장히 느린 속도로 방울을 흔드셨습니다.”

       

       평소처럼 한 번에 흔들었던 게 아니었던가?

       

       “이름을 부르실때도 느린 속도였습니다.”

       

       어쩐지 목이 심하게 칼칼하더라니.

       

       “그리고는 한참이나 지나서 죄명을 읊기 시작하셨습니다.”

       

       머릿속으로 지나다니는 장면들이 내 생각보다 시간이 길었던 것 같다.

       

       뭔가에 홀린 기분이랄까.

       

       세레나 역시 알루어드의 말이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신탁은 언제 받는데?”

       

       “…아직 연락은 없습니다.”

       

       할 일이 산더미였다.

       

       지금 적는 종이도 고르고 고른 죄인들이라 이 정도지.

       

       사실은 더 많을 것이다.

       

       핵심인물들만 추려 놓은 것이니까.

       

       이걸 다하고 입도 열어 주려면···.

       

       찌릿.

       

       움찔.

       

       알루어드를 째려보니 화들짝 놀라며 눈을 돌렸다.

       

       “야.”

       

       “예…?”

       

       “신성력 좀 부어봐.”

       

       “아까 더 힘들어진다고 하셨지 않습니까?”

       

       “며칠 자고 일어나면 될 걸?”

       

       물론, 기절로 잠드는 거겠지만.

       

       “서두르실 필요 없습니다.”

       

       “없기는 왜 없어? 지금도 한창 전투 중일 텐데.”

       

       “….”

       

       우리 영감님들이 얼마나 고생을 하고 있겠냐는 말이다.

       

       그리고 저놈을 위해서라도 이 방법이 맞았다.

       

       차기 교황이랬으니, 교황이 되기 전에 죄 짓는 일은 없어야지.

       

       “니가 성기사들 끌고 가서 다 구하란 말이야.”

       

       아까부터 표정이 이상했지만 지금의 알루어드는 훨씬 심했다.

       

       충격을 받은 모습이랄까.

       

       “크리스님은….”

       

       “음?”

       

       “그렇게 피를 흘리면서도 사람을 구하려고 하시는군요.”

       

       어디선가 본 표정이다.

       

       영감들이 나에 대해 오해할 때 지었던 표정.

       

       “자신의 안위와 상관없이 남을 위하는 삶…”

       

       알루어드가 갑자기 고개를 꾸벅 숙였다.

       

       “감사합니다. 큰 걸 배웠습니다.”

       

       번쩍 –

       

       알루어드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빛이 한층 더 강해졌다.

       

       눈부시고 환한 느낌.

       

       어딘가에서 보고 있을 얘네 할아버지가 춤을 추고 있지 않을까.

       

       그리고 빛이나고 있는 건 하나 더 있었다.

       

       알루어드의 품 안.

       

       “야, 연락오는 거 같은데?”

       

       “….엇!”

       

       수정구를 다급하게 꺼내는 알루어드.

       

       그곳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신탁의 일정이 앞당겨졌다.

       

       “클라인님?”

       

       – 저들이 굉장히 다급해 보이더군. 도대체 무얼 하는 것이냐?

       

       “곧 저들의 신성력이 흩어지기 시작할 것입니다.”

       

       – …믿을 수가 없군.

       

       “전부 다 사실입니다.”

       

       – 사실인 것은 알고 있다. 다만, 지금은 신탁에 관한 것부터 해결해야 한다.

       

       저들의 움직임이 다급해졌다면 이유는 하나다.

       

       그들도 신성력이 사라지고 있음을 느낀 것이겠지.

       

       신탁의 일정을 앞당겨 교황을 끌어내리려는 게 확실했다.

       

       – 신탁의 일정은 내일 저녁. 이미 저들이 모든 준비를 마쳐 놓았더군.

       

       도대체 무슨 준비를 해야 한다는 걸까.

       

       얼핏 듣기로는 그 과정이 쉽지 않다고 들었는데···.

       

       – 제대로 준비를 했을 리가 없다. 이미 저들은 신탁을 받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있을 테니.

       

       “…최악의 경우엔.”

       

       알루어드가 표정을 굳혔다.

       

       “전투가 벌어지겠군요.”

       

       웃기는 상황이다.

       

       신성력이 사라지고 있어 다급한 저들.

       

       제대로 된 준비도 없어 신탁을 받지 못할 확률이 높아진 교황.

       

       버티는 쪽이 이기는 싸움이다.

       

       그 마지막은 무력 충돌이 확실하고.

       

       나는 한마디를 안 할 수가 없었다.

       

       “웃기고 앉았네.”

       

       – ….크리스인가?

       

       “알아서 진행하라 그래요. 어차피 신탁은 받을 수 있어요.”

       

       – 확실한 것인가? 아니…그렇겠군.

       

       “제가 그거 하려고 왔거든요.”

       

       책임을 지게 했으니 이제는 입만 열어 주면 된다.

       

       아직 한참 남기는 했지만···.

       

       또 쓸데없이 대비하겠다는 내용이 오고 가며 연락이 끊어졌다.

       

       “야, 알루어드.”

       

       “예, 크리스님.”

       

       “있는 힘껏, 신성력 퍼부어.”

       

       세레나의 피리 소리가 시작되고, 알루어드에게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할부로 받는 고통을 일시불로 받아야겠지만···.

       

       몸으로 때워야지 별 수 있겠는가.

       

       딸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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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haman in a Fantasy World

I Became a Shaman in a Fantasy World

판타지 세계의 무당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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