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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0

       거대한 나무들이 하늘을 가렸다.

         

       그 때문인지 백리산에 들어선 신룡조는 한층 더해진 한기에 평소보다 몸이 더 움츠러드는 것을 느꼈다.

         

       앞서 걸어가는 백우진의 눈이 주변을 샅샅이 살폈다. 슬슬 겨울잠에서 깨어나 돌아다니기 시작한 작은 동물들의 발자국 하나도 놓치지 않기 위해 집중력을 한껏 끌어올린 채였다.

         

       ‘백리산을 넘어가는 목적은 청해성에 도달하기 위해서였지.’

         

       실종된 인원들 대다수가 청해성에 조금 더 빠르게 당도하기 위해 백리산을 오른 이들이었다.

         

       사람들이 자주 지나다닌 곳은 그들이 밟고 지나간 흔적을 따라 길이 생겨나는 법이다.

         

       백우진은 그 흔적을 따라 쭉 산을 넘어보기로 했다.

         

       잠시 후, 그들은 산의 반대편에 무사히 도착했다.

         

       “이상한 점은 하나도 없었어요….”

       “나도 발견하지 못했어.”

       “소인도 마찬가지요.”

         

       모두가 이상한 점이라곤 하나도 발견하지 못했다.

         

       백우진도 마찬가지였다. 눈이 빠지도록 집중했지만 특이점이라고 할 만한 것은 보이지 않았다.

         

       산의 반대편까지 오는 데에 대략 반나절 조금 넘는 시간이 지체됐다.

         

       “슬슬 해가 저물 거야.”

         

       당선영이 말했다.

         

       산의 특성상 평지에 비해 어둠이 빨리 찾아온다.

         

       “야간 수색, 할 거니?”

       “해야지.”

       “아아….”

       “이런.”

         

       백우진이 대답하기가 무섭게 앓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낮의 수색은 산세와 지리를 어느 정도 파악하기 위한 전초전에 불과했다.

         

       ‘쉽게 풀리면 나한테까지 기회가 오지도 않았겠지.’

         

       낮에 무언가를 바로 발견할 수 있을 정도로 쉬운 사건이었다면 ‘의문’이라는 단어가 붙지도 않았을 터다.

         

       밤이 되고 비로소 어둠이 내려앉아야만 녀석의 코빼기를 발견할 수 있겠지.

         

       산으로 들어서기 전, 백우진은 장삼과 구왕수를 따로 불러 그들에게 넌지시 읊조렸다.

         

       “이번 과제만 끝나면 내가 거하게 쏠 테니까 힘들 좀 내.”

         

       마을에 당도했을 때 가장 많은 음식을 먹고도 소식한다고 꿋꿋이 주장하는 장삼의 귀가 쫑긋거렸다.

         

       “거하게 쏜다면…?”

       “금양루(金陽樓).”

       “헉!”

         

       중원 제일의 상단으로 손꼽히는 황금상단. 그들이 건물을 지을 때부터 최고급 자재를 쏟아부어 만들어낸 곳이 바로 금양루다.

         

       최고의 음식, 중원의 명주, 이름 날린 기녀만으로 가득 채워진 중원 최고의 루주.

         

       하룻밤 술값으로 수백 냥은 우습게 깨진다고 알려져 웬만한 명가의 자제들도 정말 특별한 날이 아니면 들어갈 엄두도 내지 못하는 곳이었다.

         

       가난한 문파인 황산파의 제자인 장삼은 물론이요, 나름 지역 유지라 할 만한 가문의 자제인 구왕수 또한 경험하지 못한 미지의 세계였다.

         

       “당장 갑시다!”

       “그래!”

         

       어깨가 축 늘어져 있던 장삼과 구왕수의 기세가 하늘을 뚫을 기세로 치솟았다.

         

       조원들의 기세를 북돋는 것도 조장의 의무이자 필요한 능력이었다.

         

       빨리 산으로 들어가자며 일정 거리를 두고 앉아 있던 세 여인을 재촉하는 두 사람.

         

       “쟤들 왜 저래…?”

         

       어리둥절한 신예화의 물음에 백우진은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냥 몇 마디 해줬더니 저러네.”

       “…아닌 것 같은데.”

         

       의심어린 눈초리가 쏟아지자 백우진이 소리쳤다.

         

       “자, 다시 출발!”

         

       당선영이 묘한 미소를 그리며 앞서 걸어가는 백우진의 곁에 따라붙었다.

         

       “응큼하긴.”

         

       아무래도 다 들었나 보다.

         

         

       * * *

         

         

       장삼과 구왕수를 필두로 호기롭게 시작한 야간 수색이 허무하게 막을 내렸다.

         

       지나온 길을 중심으로 산 주변을 샅샅이 살폈지만 유의미한 흔적을 찾지 못한 것이다.

         

       조원들은 조금 가라앉은 분위기로 야영 준비를 끝마친 뒤, 작게 피운 불 주변으로 모여앉아 건량으로 배를 채웠다.

         

       “너무 깨끗해요….”

         

       제갈연지가 한숨을 내쉬었다.

         

       백우진 또한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하오문 지부에서 왜 의문의 실종 사건으로 이를 분류했는지 알 것 같았다.

         

       ‘그야말로 의문 투성이구만.’

         

       몇 달 사이에 사라진 이들만 서른이 넘는다.

         

       누구 하나쯤 작은 흔적이라도 남겼어도 이상하지 않을 숫자가 사라졌음에도 백리산은 너무나도 깨끗했다.

         

       “하지만 그래서 더 이상해.”

         

       당선영이 말을 받았다.

         

       “서른이 넘도록 사라졌는데 아무 흔적도 없다는 건 다시 말해서 그만큼 용의주도하고, 위험한 무언가가 이곳에 도사리고 있다는 증거 아닐까?”

         

       어떻게 생각하니?

         

       싱긋 웃는 당선영의 얼굴이 제갈연지에게로 향했다. 그녀는 주먹을 꼭 그러쥐었다.

         

       “…당 선배님 말이 맞아요.”

         

       이것이 연륜이라는 걸까.

         

       그녀의 말이라면 일단 딴지부터 걸고 싶은 제갈연지였지만, 전부 맞는 말이라 불가능했다.

         

       작게 한숨을 내쉰 그녀가 말을 이었다.

         

       “흔적 위주로 찾기보다…, 이곳에 무언가가 있다는 걸 확신하고…, 조사 방향을 다시 잡는 건 어떨까요…?”

         

       제법 긴 문장을 말하는 것이 그리도 힘들었는지 몇 번이나 쉬어가며 말을 마친 제갈연지.

         

       “놈의 흔적을 찾을 게 아니라, 놈이 숨어 있을 만한 곳을 뒤지자?”

       “네에….”

         

       충분히 일리 있는 말이었다.

         

       놀랍도록 깨끗하기에 도리어 무언가가 있을 거라는 확신이 섰다. 그러니 그것의 흔적을 찾기보다 산을 샅샅이 뒤져 범인이 숨어 있을 만한 장소나, 숨기 좋아 보이는 장소를 찾자는 것이다.

         

       “난 찬성이야.”

         

       당선영이 먼저 찬성에 표를 던졌다.

         

         

       “나도 그게 나을 것 같아.”

         

       신예화도 동의하자 백우진의 시선이 붙어 앉아 건량을 나눠 먹고 있는 장삼과 구왕수에게로 향했다.

         

       “우린 뭐든 상관없소.”

       “해결만 가능하다면 뭐든 좋아.”

         

       부리기 참 좋은 놈들이다.

         

       불 앞에 모여앉은 이들이 하나둘씩 머리를 꾸벅꾸벅 조아리기 시작했다.

         

       피곤할 만도 했다. 온종일 긴장감을 유지한 채로 산을 돌아다닌 직후에 따뜻한 불 앞에 앉아 있으니 잠이 솔솔 올 테지.

         

       ‘오늘 하루만 쉬게 해줄까.’

         

       병든 닭마냥 고개를 픽픽 숙이며 졸고 있는 이들을 보고 있자니 측은지심이 몰려왔다.

         

       “오늘 불침번은 내가 설 테니까 다들 자라.”

       “아, 아니에요. 저도 불침번 설 수 있어요.”

       “나도 괜찮아….”

         

       졸린 눈을 애써 뜨며 말하는 제갈연지와 눈을 비비는 신예화.

         

       “내일부터 다 세울 테니까 오늘은 그냥 자.”

       “그래도….”

       “응, 명령이야.”

         

       지난 몇 달 동안 빡세게 굴린 덕분에 조장의 권위는 드높았다.

         

       장삼과 구왕수는 기다렸다는 듯이 드러누웠고, 제갈연지와 신예화 또한 미안한 표정을 짓다가 백우진의 으름장에 몸을 뉘었다.

         

       “나는 도와줄 수 있는데.”

         

       그와 마찬가지로 그나마 체력적으로 여유가 있었던 당선영이 턱을 괸 채 웃고 있었다.

         

       “당 소저도 지금은 내 조원이라는 거, 알지?”

         

       이곳에 출발하기 전 합의한 사안이었다.

         

       지휘계통이 둘로 나뉘거나 통제할 수 없는 인원이 존재하는 것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벽력탄을 품에 넣어두는 것과 마찬가지다.

         

       백우진은 당선영에게 당당히 지휘권을 요구했고, 그녀는 순순히 응했다.

         

       “조장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면 어쩔 수 없네.”

         

       요염하게 미소 짓던 그녀도 마침내 자리에서 일어나 한쪽에 깔아둔 피풍의 위에 몸을 뉘었다.

         

       틱, 틱.

         

       불편한 잠자리지만 그들의 피로도는 그런 것을 따지지 않을 정도로 무거웠다.

         

       금세 잠이 든 이들의 쌔근거리는 숨소리가 들려왔다.

         

       백우진은 기감을 넓게 퍼뜨린 채로 앉아 타오르는 모닥불이 일정 크기로 유지되도록 땔감을 하나씩 집어던졌다.

         

       ‘확실히 뭔가가 있긴 있어.’

         

       무섭도록 고요하다. 그 흔한 풀벌레 소리도 들려오지 않고 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에 이 산 전체가 짓눌려 있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인간은 아니야.’

         

       일정 구역에 압도적인 힘을 지닌 맹수가 등장했을 때, 피식자들은 살아남기 위해 숨을 죽이거나 조용히 제 터전을 옮긴다.

         

       인간이 산 전체에 이러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분명 마인 또는 마물, 아니면 그에 준하는 무언가일 터.

         

       생각을 마친 백우진의 시선이 조금 떨어진 곳에 잠들어 있는 제갈연지에게 닿았다. 그의 입가에는 미처 숨기지 못한 미소가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역시 훌륭한 참모감이었어.’

         

       조금 전 그녀가 제안했던 작전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인간은 모든 걸 혼자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것은 용사로서 오랜 시간을 보내온 백우진에게도 통용되는 말이었다.

         

       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있는 법.

         

       마왕의 목을 칠 수 있었던 것도 백우진의 주변으로 그의 단점을 메꿔줄 다양한 재능들이 모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녀가 없었다면 보다 오랜 시간을 헤맸을지도 모른다.

         

       약해진 불을 확인하고 큼지막한 땔감을 하나 집어던질 때였다.

         

       바스락

         

       주변에 펼쳐진 기감에 낙엽 바스라지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사박 사박

         

       가벼운 발걸음.

         

       네 발이 아닌 두 발로 걸어 다니는 생물체의 걸음이다.

         

       ‘인간.’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바로 옆에 놓아둔 검을 허리에 찼다.

         

       발걸음 소리가 더욱 가까워졌다. 만약의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 백우진은 그가 다가오는 방향을 향해 나아갔다.

         

       저 멀리서 작은 불빛이 일렁인다.

         

       정확히 사람의 어깨 높이 즈음에서 흔들리는 불빛, 횃불이다.

         

       이윽고 모습을 나타낸 것은 밤중에 산속을 돌아다니는 이라곤 믿기 힘든 마의(麻衣)차림을 한 중년 사내였다.

         

       자신을 발견하고 일정 거리에서 멈춰 선 사내가 입을 열었다.

         

       “늦은 밤중에 사람을 만날 줄은 몰랐구려.”

       “나도 마찬가지요.”

       “혹 산에서 길이라도 잃은 거요?”

         

       그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그렇소. 일행이 길을 잘못 드는 바람에 잠깐 헤매다 보니 밤이 되었지 뭐요.”

       “일행이 있소?”

       “저 뒤에 자고 있소. 나는 불침번을 서는 중이었고.”

       “그렇군.”

         

       중년 사내의 고개가 미약하게 움직였다.

         

       백우진이 물었다.

         

       “헌데 형장은 어이하여 이 밤중에 산길을 오가시오? 그것도 그런 차림새로 말이오.”

         

       오히려 상대가 수상스럽다는 듯, 경계심 가득한 눈빛을 쏘아보냈다.

         

       그러자 중년 사내가 손을 흔들었다.

         

       “오해 마시오. 산속에 내가 사는 마을이 있소. 밤중에 나온 것은 그저 먹을거리를 찾으러 나왔다 돌아가는 길일 뿐이오.”

         

       그의 대답에 백우진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이 산에 마을이 있단 말이오?”

       “그렇소. 적은 인원에 불과하지만 사람이 모여 사니 마을이 아니면 뭐겠소.”

         

       백우진은 속으로 크게 당황하는 중이었다.

         

       ‘이 산에 마을이 있었다고?’

         

       하오문이 전해준 정보에는 없는 내용이었다.

         

       녀석들이 일을 대충 한 걸까 생각이 들었지만, 그렇다고 하기엔 석연찮은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산속에 사람이 모여 산다면 그 수가 많든 적든 간에 흔적이 남아야 하는데, 이 산에는 백리산을 넘어간 사람들의 발자취만 겨우 보일 뿐, 다른 흔적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여러모로 신경이 쓰여.’

         

       백우진이 금세 웃는 표정을 지었다.

         

       “잘됐구려. 혹 나와 일행이 마을에서 하룻밤 머물 수 있겠소? 내 사례는 톡톡히 치르겠소.”

         

       중년 사내 또한 가볍게 웃어 보였다. 그리고선 걱정하지 말라는 듯, 가벼운 어조로 대답했다.

         

       “나 또한 돌아가는 길이니 어렵지 않은 일이오.”

         

       자, 어서 일행들을 깨워 나를 따라오시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연참을 하려 노력 했습니다만,,, 낮에 한의원 가서 물리치료를 받고 왔는데도 아직 저림 증세가 남아 있네요.

    조금 쉬엄쉬엄 마무리해서 내일 연참이 가능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해오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하루도 고생 많으셨고, 저는 내일 또 찾아 뵙겠습니다.

    가시기 전에 선작, 댓글, 추천, 알람 설정 한번씩만 부탁드립니다…ㅎㅎ!

    P.s 후원 감사의 말씀

    모코박스 님!

    연타 후원 감사합니다! 재미있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힘이 마구 솟구칩니다…! 더욱 열심히 쓰도록 하겠습니다!

    주인님임 님!

    후원 감사합니다!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걱정 마십시오! 최대한 제가 준비한 이야기들 맛있게 풀어낼 수 있도록 노력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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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지 속 주정뱅이가 되었다
Score 7.6
Status: Completed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sent a 5,700-character message and ended up transported into a novel world once. Then after returning, I got reincarnated into a second martial arts novel by the same damn author. Only this time, I really didn’t write an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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