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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00

   페이비로부터 바로 찾아와도 된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은 우리는 다음 날 아침이 되자마자 바로 알른 영지를 빠져나왔다.

   

   “점심에 오라고 한 거 아냐? 벌써 가도 돼?”

   “프레이 켄트. 성지에 가 본 적이 없나?”

   “있어야 해?”

   “그럴 필요는 없지. 그냥 물어본 거다.”

   “저희가 지금 움직이려는 이유는 성지의 특수성 때문입니다. 그 곳은 순간이동의 마법으로 닿을 수 없는 장소거든요.”

   

   조이가 자신의 대답을 가로챈 것이 마음에 안 드는 듯 아서가 미간을 찌푸렸지만 그렇다고 설명을 방해하진 않았다.

   

   “닿을 수 없어?”

   “정확한 이유는 모릅니다. 다만 성지 내부의 어떤 힘이 공간이동을 가로막는 것만은 분명해요.”

   

   지난번 가라드의 성이 순간이동의 마법진을 설치 할 수 없었기에 바로 찾아갈 수 없는 장소였다면 성지는 순간이동 자체가 불가능하기에 다른 수단을 강구해야 하는 장소다.

   

   그래서 이게 게임이었을 적엔 성지에 한 번 들리면 할 수 있는 모든 걸 수행하고 오는 게 기본이었지. 최선은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방문하지 않는 거고.

   

   “그럼 어떻게 가?”

   “마법이 안 된다면 물리적인 수단을 이용하는 수밖에 없죠.”

   

   조이의 설명을 뒤로 한 채 순간이동의 진 위로 발을 들인 나는 토악질이 나올 것 같은 것을 억지로 버텨내고는 바깥으로 나왔다.

   

   “처음 뵙겠습니다. 성녀님의 친우분.”

   

   방문 앞에 대기하고 있던 것은 현 주신 교회의 추기경 중 하나였다.

   

   나 이 인간 알아.

   

   허술한 할아버지인 채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주신 교회를 양분하는 두 세력의 우두머리인 사람.

   

   현재의 교황이 하야했을 때 다음 교황이 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인물.

   

   추기경 체사레.

   

   오자마자 사고를 칠 순 없단 일념으로 입을 꾹 다물었더니 그가 호쾌하게 웃었다.

   

   “실례가 될 걸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당신에 대한 이야기는 수도 없이 들었으니까요. 루엘 경의 무기를 지닌 당신이라면 어지간한 건 웃어넘겨 줄 수 있고 말고요.”

   체사레는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 보였지만 정작 내 위기감각은 결코 체사레의 말대로 해선 안 된다며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체사레 추기경님!”

   “성녀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여전히 건강해 보이셔서 이 늙은이는 기쁩니다.”

   “마중을 나오는 것이 설마 추기경님이실 줄은.”

   “하하하. 요한이 바쁘게 움직이는 걸 보고 있자니 호기심이 생겨서요. 죽을 때가 다 되어서 그런가 주책을 견딜 수가 없습니다.”

   

   페이비와의 인사를 끝마친 그는 친구들의 면면을 확인하고는 웃으며 고갤 주억였다.

   

   좋은 친구들이라 중얼거리는 그 모습은 인자한 할아버지처럼 보였지만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그를 가벼히 대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란 걸 이해했다.

   

   아주 잠시나마 스쳐 지나갔던 노인의 사나운 눈은 전선을 노려보는 장군의 눈보다도 날카로웠으니까.

   

   <기분 나쁜 영감탱이네. 교회사람다워.>

   슬그머니 페이비의 뒤 편에 숨으려 한 순간 가라드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위 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간상이긴 하지. 저런 사람이 아니면 위로 올라가기 어려우니까.>

   ‘두 분. 화해하신거에요?’

   <아니? 지금도 싸우고 있는데? 정신체라는 건 참 좋네. 포기하지 않으면 평생 움직일 수 있잖아.>

   <빌어먹을 놈. 더럽게 질겨서 열이 받는다.>

   

   아니 싸움을 시작하고 거의 이틀 째가 되어가는 데 아직도 결판이 안 났다고?

   

   그게 말이 돼?

   

   체력이나 정신력 쪽에서는 문제가 없겠지만 훈련이 아닌 전투라면 한계가 있잖아.

   

   <하여튼 저런 인간상은 친해지지 않는 게 최고다. 절대 같은 편이 될 수 없는 사람이거든.>

   <마냥 그렇지도 않을 거다. 이 능구렁이는 비교적 하얀 쪽이니.>

   

   태평한 대화 소리 너머로 희미하게 굉음이 들려온다. 철과 철이 부딪히면서 내는 소리는 아니다.

   

   굳이 따지자면 허리케인 같은 재앙이 대지를 휩쓸 때 나는 소리에 가깝다. 오늘 밤에 훈련장에 들어가면 어떤 꼴이 되어 있을까.

   

   <같은 편이라고 인정받을 수만 있다면 괜찮아.>

   <그 인정 받는 게 어려워서 문제잖아.>

   <그건 그렇지.>

   

   결국 당장은 미움받지 않는 게 최선이라 생각한 나는 입을 다문 채로 날 선 시선을 견뎌냈다.

   

   “굉장히 무서우신 분이군.”

   “사교계에서 눈총을 받을 때만큼이나 속이 아팠어요.”

   “목덜미가 저릿저릿했어.”

   “그. 신실하신 분인 건 확실하니까요. 예의만 지킨다면 괜찮을 겁니다.”

   

   마차에 올라타기 무섭게 쏟아지는 체사레 추기경을 향한 평가를 부정할 순 없었는지 페이비는 어색하게 웃으며 그를 변호했다.

   

   뭐어. 그래. 신실하긴 하겠지. 신실한 것과 선한 것이 별개라는 게 문제지만.

   

   “아. 참. 어제 말한 절차에 대해서인데요. 모두 다 기억하고 계신가요?”

   “절차? 그게 뭐야?”

   “어제 성녀님께서 설명해주시지 않았나.”

   “그랬나?”

   “하아. 다시 설명해주마. 이번에는 기억해라.”

   

   이번에는 조이에게 설명을 빼앗기고 싶지 않아서인지 아서는 즉시 설명을 이어 나갔다.

   

   페이비가 어젯밤에 설명해준 절차는 일종의 입국심사 같은 것이었다.

   

   무기가 될 가능성이 있는 물건 소지의 금지. 아공간 주머니 또한 소지 불가. 여러 마법적 기능이 있는 물건도 소지할 수 없음.

   

   이외에도 성지에 들어가기 위해선 많은 제약 속에 몸을 던져야 했다. 누군가가 성지를 망가트리는 걸 막기 위해서.

   

   “그럼 우리 어떻게 해?”

   “루시 알른이 지닌 힘을 이용할 거다. 아무래도 저 녀석은 자신만의 아공간을 지닌 듯 하니.”

   

   여기서 내가 지닌 인벤토리 기능이 빛을 발한다.

   

   이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나만의 힘은 그 어떤 방식으로도 확인하는 게 불가능하다.

   

   여태까지 내가 만난 수많은 강자 중에서 인벤토리를 지적한 이가 아무도 없는 걸 보면 분명해.

   

   “너희들이 쓰는 개허접무기 다 넘겨. 기뻐하라고? 너희들의 허접스러움이 옮는 걸 참아주는 거니까 말야.”

   

   그러니까 나라면 성지 안에 무기를 반입할 수 있다. 성지에 들어간 후엔 쉽지.

   

   우리한테는 페이비가 있는 걸.

   

   페이비가 지닌 신뢰도를 활용해서 감시를 떨어트리고 시련의 장소에 들어가면 그걸로 끝.

   

   만약 들키더라도 루엘의 메이스와 공명해서 빨려 들어간 것 같다 이야기하면 저 쪽도 무어라고 하기 어려워.

   

   어쨌건 루엘의 메이스는 할아버지와 함께 사라졌던 무기니까. 그에 대해 자세히 아는 사람이 있을 리 없잖아.

   

   “이제 낮 동안은 평범하게 관광이다.”

   “맛있는 거 많아?”

   “글쎄다. 내가 예전에 방문했을 때는 경황이 없었거든. 어떻습니까. 성녀님?”

   “기대해도 될 곳이 몇 군데 있긴 하답니다.”

   “페이비의 말은 믿어도 좋아요. 저도 완전 만족했거든요!”

   “얼빵이의 식탐이라면 믿을만 하지.”

   “제. 제 식탐이 어때서요?!”

   “몰라서 물어봐? 얼빵돼지?”

   “돼지 아니에요!”

   

   친구들과 시시콜콜한 잡담을 나누며 마차 안에서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새 성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가장 먼저 보인 것은 하늘과 닿을 것처럼 높은 탑이었다.

   

   과거 신화의 시대에 세워졌다는 저 탑은 주신의 축복이 깃들어 긴 세월이 지난 지금도 쇠함을 몰랐다.

   

   그래봐야 지금부터 반년 내로 무너질 예정이지만.

   

   현실이라면 저 탑을 지킬 수 있을까 고민하던 나는 교황이 분탕을 치는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음을 깨닫고 고갤 저었다.

   

   “예. 확인 끝났습니다.”

   

   가라드의 방패를 인벤토리에 넣고 루엘의 메이스는 여느 때처럼 목걸이 크기로 만들어서 검문을 통과한 나는 검문 과정에서 내 매도를 수도 없이 듣고 얼굴이 벌개진 수녀에게서 도망치듯 앞으로 걸었다.

   

   “아! 알른 영애! 잠시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뭐. 뭔데!? 설마 들킨 거야!? 아르테아 백작에게서 선물 받은 성물이란 내 변명이 먹히지 않은 건가!

   “마지막 절차가 남아서요. 여기!”

   

   속으로 긴장하고 있던 나는 수녀가 대뜸 내민 수녀복을 보고서 눈을 깜빡였다.

   

   마지막 절차라니? 내가 게임 속에서 성지에 방문한 횟수만 해도 수천 수만번에 달할 텐데 그 중에서 이런 이벤트는 없었단 말야.

   

   “이거 입어주셔야 해요!”

   

   …응? 그걸로 끝이야?

   

   뭐. 그 정도라면 변태사도한테 곤욕을 치렀던 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

   

   *

   

   “갑자기 수녀복이라니 뭔가요. 페이비.”

   

   마음에 들던 드레스를 반강제로 벗게 된 조이는 상대의 눈을 바라보질 못하는 페이비에게 투덜투덜거렸다.

   

   “성지에 새로운 규칙이 생겼다는 말은 들어본 적 없는데요.”

   “그. 그게. 더 철저한 안전을 위해서.”

   “성녀님께서는 참 거짓말을 못 하시는군요.”

   

   사제복이 갑갑한 듯 소매나 목덜미를 자꾸만 매만지던 아서가 자신을 바라보자 또 다시 페이비가 눈동자를 돌렸다.

   

   “아뇨. 평소에는 이 정도까진 아니에요. 정말 필요한 거짓말이라고 생각하면 페이비는 꽤 잘 하거든요.”

   “그렇단 소리는 이번 거짓말이 필요하지 않은 것이란 말이군요.”

   “무.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건지 전 모르겠는데욧?!”

   “이거 꼭 입어야 해? 움직이기 불편한데.”

   

   눈동자가 향한 곳에서 엉성하게 옷을 입은 프레이가 투정을 부리자 눈동자를 떨던 페이비는 이내 눈을 꾹 감아버렸다.

   

   “아마 이번에 저희는 휘말린 거겠죠?”

   “그렇겠지. 성녀님께서 이렇게까지 억지를 부릴 이유는 하나뿐이니까.”

   “응? 그게 뭔데?”

   

   친구들의 대화가 이어짐에 따라 페이비의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흐른다.

   

   “멍청아. 생각해봐라. 성녀님이 욕망에 패할 이유를.”

   “그냥 솔직하게 말했다면 기꺼이 협조했을 텐데 말이죠.”

   “응?”

   “여러모로 성녀님께 어리광을 부리던 우리다. 이 정도 부탁은 얼마든 들어드릴 수 있지.”

   “으으음. 아. 루시구나?”

   “왜. 바보검사.”

   

   온 세월을 바쳐서라도 반복해서 듣고 싶은 목소리에 어깨를 움찔한 페이비는 자그마한 걸음이 다가오는 것을 들으며 고뇌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에라도 눈을 뜨고 싶어요!

   

   그렇지만 이렇게 불안정한 마음 상태로 영애님을 뵈어도 괜찮은 걸까요?

   

   제가 영애님의 빛나는 모습을 마주하고 견딜 수 있을까요?

   

   제 욕망의 결과를 마주하고서 버텨낼 수 있을까요!?

   

   “…꺄아!”

   

   욕망와 망설임 사이에서 수도 없이 고민하던 페이비는 자신의 배를 붙잡는 감촉에 놀라 비명과 함께 눈을 떴다.

   

   “기도하기엔 애매한 시간이잖아. 그것도 몰라. 허접 성녀?”

   

   수녀복을 걸친 루시를 마주한 페이비는 볼품없이 올라가고자 하는 입꼬리를 억누르느라 필사적이었다.

   

   조금이라도 신경을 늦추면 리나님처럼 웃게 될 것 같아요!

   

   그것만큼은 막아야 합니다!

   

   다른 곳이면 몰라도 이곳은 성지! 전 결코 이 곳에서 위엄을 잃어선 안 됩니다! 성녀니까요!

   

   “빨리 안내해. 허접성녀. 잔챙이들이 얼마나 노력했는지 구경해 줄 테니까.”

   “…네. 네혯!!”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느새 이 소설을 연재하고서 600화가 되었습니다!

자꾸만 늦어지는 연재에도 꾸준히 작품을 봐주시는 분들께 감사합니다!

결말이 나는 그 날까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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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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