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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00

       

        

        

        

        

        

        

        

        

        

        

       “저도 몇 년 안엔 두 분이랑 같이 버스 타고 똑같은 데서 내릴 거니까….”

        

       “그래요, 얼른 올라와요. 그렇다고 해서 여유자금 다 털어넣지는 마시고. 다이스 요즘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고 있죠?”

        

       “제, 제가 뭘요.”

        

       “뭘 시침을 뚝 떼고 있나요. 성과급 입금 전까지는 제 집에서 밥 얻어먹겠다고 노래를 불렀으면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이스특)사실 바보임

       -그…여유자금이라는 말을 모르십니까??

       -비얌 가랑이 쫓아갈려고 어떻게든 따라갈라는 새끼비얌들www

       -진짜 이정도면 찐사랑이야

        

        

        

        벌써 1월이 3일이나 지나간 한국, 인천국제공항.

        

        미국과는 다르게 한파가 영 걷히질 않는 한국은 오자마자 실로 매콤하기 짝이 없는 칼바람을 선사했고, 전용기에서 내린 10명 가량은 끔찍한 바람에 시달려야만 했다. 물론 그 다음은 게이트에 진을 치고 있는 수많은 기자들을 상대해야만 했고.

        

        아무튼 까놓고 말해서, 이번 년도에는 다들 기대 이상으로 잘 해주었다. 1년 4개월만에 전 세계에서 가장 교전에 능한 사람 5위 안에 들어버린 하모니와 기어코 본선 1등을 찍어버리고 당당하게 귀국한 다이스, 그리고 처음으로 5등에 안착한 미카엘, 10위 안에 든 갬빗과 15위 안에 든 서밋까지.

        

        독식도 이 정도면 독점금지법을 맞을지도 모르겠다.

        

        

        

       “아흐, 죽겠다. 일부러 좀 늦게 나와서 다행이네요.”

        

       “아까 힐끔 봤는데, 아예 인천공항에 기자회견장을 갖다놓은 것처럼 보였단 말이죠. 덕분에 몰래 나와서 근처에서 커피 한 잔 마셨습니다.”

        

       “시간을 알차게 보내는 법을 배웠군요. 가만히 기다렸다면 지루했을 텐데, 고생 많았어요. 저희들이야 작년에도 이랬으니 별 문제는 없지만, 여러분들은 좀 다를 거고.”

        

       “작년에는…TV로 봤었죠. 히히.”

        

        

        

        생각해보니 그렇겠네.

        

        아무튼 아까 하모니가 말한 것처럼, 나와 다이스는 내리는 곳이 같았다. 물론 어디 그 뿐이랴, 들어가는 입구도 같고, 엘리베이터도 같이 타고, 최상층 복도도 같이 걷는다. 차이점이 있다면 내가 집 문을 열 즈음 다이스는 오른쪽으로 꺾는 것 정도.

        

        얘가 양심없이 내 집에서 쉬다가 가야겠다- 하고 헛소리만 안 하면 큰 문제는 없단 말이지.

        

        이렇게 말을 꺼내버렸으니 어쩌면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싶기도 하지만, 뭐어, 그래도 오늘 다이스는 세계의 주인공이었으니까. 파이널 챔피언십의 1등을 거머쥐었으니 그에 상응하는 모티베이션을 줘야겠지.

        

        

        차가운 바람을 뚫고, 일반인들이 이용하는 주차장과는 완전히 별개의 위치에 있는 곳으로 향했다. 거기에서 기다리는 것은 하나의 대형 버스, 그리고 센테나리오 한 대. 전자는 강북으로 향했고, 다른 하나는 내가 미리 불러놓은 것이었다.

        

        아쉽겠지만, 하모니와는 여기서 작별해야만 할 시간이었다. 물론 카토 및 하모니의 지인들 역시도 마찬가지였고. 사실 이 중에서 강남으로 향하는 것은 나와 다이스밖에 없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차는 부모님이 신년 선물이라며 보내준 거지만. 정말 미치고 팔짝 뛰겠네.

        

        

        

       “타세요. 어디 한 번 달려봅시다.”

        

       “…달려요? 오후 7시에?”

        

       “말이 그렇다는 거죠.”

        

        

        

       -와 뭔차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무친비얌련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왜혼자서만재밌는거해????맨날주사위만곁에서재미보고??????왜난안대????

       -꼬우면 비얌꼬리 나서 오시든가ww

       -뱀꼬리가 무슨 복권이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차의 문이 하늘로 치솟듯 올라가고, 일반적인 차량에 비해 한참 아래에 있는 좌석이 나온다. 차량 전고 자체가 낮은 탓이었다.

        

        이카루스 도장을 떼고 새로이 카본 느낌으로 도색된 물건이었지만, 이전에 내가 타본 적이 있는 물건이었기에 운전수의 좌석 시트에는 꼬리가 들어갈 공간이 있었다. 이 점 역시도 실로 마음에 들었다. 아니, 당연하다고 해야 하나.

        

        지난 번에는 여기에 발현자를 태웠었는데, 지금은 다이스가 타있구만. 그녀는 멍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히히 웃었고, 나는 그 답례로 차량 특유의 배기음을 시원하게 들려주었다. 우우웅 하는 굉음이 퍼져나갔다. 이런 거 한 번쯤은 해보고 싶었단 말이지.

        

        강북으로 향하는 버스에 탑승할 예정인 이들이 개인 짐을 싣는 사이, 능숙하게 차량을 몰아 먼저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좀 막히겠지만 그 정도는 상관없죠?”

        

       “배가 아프다거나 그런 것도 없으니 괜찮아요. 유진 씨랑 떠들면서 가도 되고.”

        

       “그럼 문제는 없겠군요. 갑시다.”

        

        

        

        부아아앙!

        

        순식간에 인천공항을 빠져나가기 시작한 차량. 야생마처럼 까칠하면서도 동시에 마음먹은 대로 움직이는 차량은 깔끔한 코너링과 함께 영종도에서 인천으로 이어지는 도로로 진입한다. 당연하게도 시간대가 그닥 좋지는 않았기에 신나는 드라이빙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뭐어, 그래도 상관은 없었다. 물론 안전한 운전을 위해 드론캠은 이미 꺼버린 지 오래였고, 이제부터는 다이스와의 대화 정도만이 가면서 적당히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그것과는 별개로, 이렇게 둘만 있을 때는 분명히 나올 것 같은 안건이 있었는데-

        

        

        

       “진짜 이번 년도부터는 같이 안 가실 건가요?”

        

       “뭐어, 확실히 그런 건 아니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번 년도마저 여러분들을 지도할 생각은 없어요. 사실 작년도 딱히 열성적으로 가르친 건 아니긴 한데, 아무튼 그건 본질은 아니고…대충 무슨 소린지는 아실 거라 믿어요.”

        

       “…그렇죠. 사실 그동안 유진 씨 덕분에 엄청 편했긴 했어요. 옛날에는 적이 무슨 전략을 들고 나올지도 예상하고, 그에 어떻게 대항할지도 생각해야 하고…반대로 지금은 몸은 힘들어도 마음은 편했어요. 하라는 대로만 하면 됐었으니까.”

        

       “다시 그 시간으로 돌아갈 준비가 됐나요?”

        

       “…뭐어, 준비가 안 됐으면 어쩌겠어요. 준비가 되든 안 되든 결국 덮쳐올 파도인데.”

        

        

        

        역시, 허투루 가르친 게 아니라 다행이구만.

        

        나는 별 말 없이 다이스의 손 위로 내 손을 겹쳤고, 그녀는 부끄러워하면서도 깍지를 꼈다. 어차피 자동운전도 가능했기에 큰 문제는 없었다.

        

        그렇게 얼마쯤 겹쳐졌다가 떨어진 손을 뒤로 한 채, 차량은 인천을 넘어 서서히 강남으로 진입하고 있었다. 애시당초 이 시간엔 서울로 이어지는 길이든, 서울에서 빠져나가는 길이든 동맥경화에 걸린 혈관마냥 전부 꽉 막혔으니 별 기대는 없었다.

        

        이 이후에는 잡담 정도만이 이어졌다. 가령 자기가 살 테니 저녁이나 같이 먹자는 이야기, 혹은 좀 있으면 들어오는 성과급과 연봉, 각종 보너스 덕분에 다시 지갑이 풍족해질 거라는 이야기, 그리고 내가 선물해준 팔찌 예쁘다는 이야기 등등.

        

        

        그렇게 1시간 좀 넘게 지났을까, 차량이 꽉꽉 들어찬 강남을 힘겹게 가로지른 끝에 결국 집으로 도착할 수 있었다.

        

        펜트하우스의 지하로 내려간 후 지정주차구역에 정차. 다이스는 내 옆집이었으므로 주차장도 붙어있었다.

        

        

        

       “히히….”

        

        

        

        난 가끔 얘가 무섭다.

        

        아무튼 무사히 주차도 끝났겠다, 휴대폰에 저장되어있는 전용 애플리케이션의 코드를 엘리베이터 내부에 찍고는 스르륵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에서 올라가는 층수를 멍하니 바라본다.

        

        실로 오래간만에 도착하는 집이었다. 하도 싸돌아다니는 곳이 많으니 집이라는 곳에 애착이 점점 사라지는 것 같기도 하고…아무튼 그런 쓰잘데기없는 생각과 함께 다이스와 ‘잠시나마’ 헤어진다.

        

        철컥 하고 문을 열고, 간만에 느끼는 집의 향기를 만끽-하려던 찰나,

        

        

        

       -[알림 : 전시상황 해제를 인식. 이카루스 기어의 에너지 등급이 <알파>로 고정됩니다.]

        

       -[알림 : 기기 위치를 이카루스와 동기화 중…기기 위치 찾을 수 없음.]

        

       -[알림 : 에너지 등급 제한…실패. 가까운 엔지니어를 찾아가 해당 문제를 해결하십시오.]

        

        

        

       “…전시상황 해제라.”

        

        

        

        드디어인가.

        

        슬슬 올 것이 왔다고 생각하며, 나는 다이스에게 잠깐 사소한 일이 생겼단 메시지를 전달한 후, 즉각 게이트 앱을 작동시켰다.

        

        짤막한 세계선-시간 동기화가 끝나고, 나는 문을 열어젖힌 후 세계선을 횡단했다.

        

        

        

        

        

        

        

        

        

        

        

        

        

        

        

        

        

        

        

        

        

        

       “늦었구만, 막내.”

        

       “최대한 빨리 온 거거든요. 이제 집 도착해서 짐 풀기도 전에 여기부터 온 거라구요.”

        

       “알겠다, 알겠어. 빨리 와서 앉아라.”

        

        

        

        그닥 오랜만이라고는 할 수 없는 센트럴 파크의 전경.

        

        여전히 주변은 바뀌지 않았다. 과거에는 상황이 나아지는 대로 다른 곳에 자리를 잡겠다는 이야기가 나왔다고 들은 것 같기도 한데, 벌써 이곳에서 6년이나 시간이 지났을 줄이야.

        

        문득 머리를 스쳐지나가는 그런 생각과 함께, 나는 오늘 이곳에 온 목적에 대해 말을 꺼냈다.

        

        

        

       “전시상황이 해제됐다고 들었어요. 이제는 더 이상 이카루스 기어를 운용할 필요까진 없나보네요.”

        

       “아, 그거. 마침 그에 대해서도 말하려고 했으니, 궁금한 걸 묻기 전에 먼저 설명부터 듣지.”

        

       “네에.”

        

        

        

        저들이 저렇게 말하는데 별 수 있나.

        

        나는 휴게실의 의자에 앉았고, 대거 팀은 각자 간단하게 이카루스 기어를 조작한 뒤 – 여전히 람다 등급으로 표기되어있는 에너지 제한을 내게 보여주었다. 이게 도대체 뭔가 싶었지만, 곧 설명을 해줄 거라 믿었기에 그저 눈을 끔뻑대며 기다리고 있었을까.

        

        가장 먼저 열린 건 오웬스의 입이었다.

        

        

        

       “여태까지 존재하던 대부분의 태스크포스가 해산 및 재편성을 거쳤고, 거의 대부분이 특수부대의 양성을 위한 교관 역할로 들어갈 거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지.”

        

       “그렇다면 여기서 문제. 전시상황이 해제됐음에도 우리가 여전히 람다 등급을 유지하고 있고, 팀이 해체되지 않은 이유가 뭐일 것 같나?”

        

       “…해체되지 않고 온전한 대거 팀을 여전히 세상이 필요로 하고 있어서?”

        

       “정답.”

        

        

        

        역시 그거였나.

        

        몇 가지의 키워드가 던져진 순간 내 머릿속은 빠르게 회전을 시작했다. 람다 등급을 유지하고 있다는 소리는 여전히 이카루스 기어가 제공하는 모든 편의 및 스킬을 사용할 수 있다는 소리. 거기다가 신체능력의 증강까지 포함되었을 것이다.

        

        거기다가 팀이 해체되지 않고, 교관직을 그대로 유지하는 이유는…뭐긴 뭐겠어, 제2, 혹은 제3의 대거 팀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하는 고급 오퍼레이터 교육 과정을 우리가 담당할 예정이란 뜻이다.

        

        내 지인들, 혹은 선임들이 더 이상의 설명이 없었기에, 앉은 채로 내 추측을 말했고,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다들 만족하는 표정을 지으며 한 마디씩을 덧붙였다.

        

        

        

       “역시 한 번 설명해주면 많이 깨닫는 막내답구만. 똑똑한 애 한 명 데리고 있으면 이런 게 편해.”

        

       “…근데 저는 교관 역으로 재직할 수가 없을 텐데, 저는 별개인가요?”

        

       “별개라, 말 자체는 틀리지 않지. 하지만 별개가 되었다고 해서 너만 알파급 에너지 제한으로 내려가는 건 아니야. 오히려 그 자리에 남아있어야만 하는 별도의 이유가 있거든.”

        

       “그것까지는…잘 모르겠네요. 뭔가요?”

        

        

        

        상어는 내 말에 대답하지 않고 팝업을 띄웠고, 나는 그 순간 모든 전말을 알게 되었다.

        

        그림자.

        

        미 서부 공략전에 혁혁한 공을 세우다 못해 거의 모든 것을 담당했고, 미군을 갈아넣기가 힘든 대단위 규모의 전투가 발생할 때마다 어김없이 투입되었던 유저들 – 나는 그 중심축을 유지할 수 있도록 여전히 기어의 출력을 제한받지 않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하고 생각한 순간 이어지는 말.

        

        

        

       “물론 그 정체불명의 친구들만 믿고 의지할 생각은 없다는 게 상부의 지침이다. 애시당초 네가 하는 그건 일종의…게임이고, 이곳의 상황과 부합하지 않을 수도 있을 테니까. 그럼에도 아예 손을 놔버리는 것보단 불확실하더라도 보험을 들어놓는 게 더 낫겠지.”

        

       “…그렇겠네요. 이해가 가요.”

        

       “그럼 됐다.”

        

        

        

        그와 동시에 모두가 일어섰고, 밖으로 슬그머니 나갔다.

        

        바깥에는 메카 막내들이 일제히 대기 중이었다. 이들과 함께 센트럴 파크를 걷고 있자니 안 그래도 각종 건물과 자재로 가득차 좁아터진 동네가 더욱 좁아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것과는 별개로 이어지는 말.

        

        

        

       “요즘 그레이 하우스에서 무슨 문제로 골머리를 썩이고 있는지 아나?”

        

       “뭔가요?”

        

       “주거 문제야.”

        

       “아.”

        

        

        

        그 말을 들은 순간 머리가 욱신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맨해튼은, 그리고 뉴욕 시는 까놓고 말해 엄청난 대도시긴 하지만, 거의 모든 인프라가 소멸되고, 사회 자체가 제대로 굴러가지를 않는 이상 주변에 있는 건물들은 죄다 빛 좋은 개살구일 뿐이었다.

        

        그런 곳에 입점해있던 금융자문, 식당, 서점, 어학원, 변호사 사무실, 병원, 각종 전문 기기를 취급하는 곳들과 컨설턴업, 그 외에도 셀 수조차 없이 많은 인간을 위한 편의시설들은 반쯤 존재할 이유가 사라졌고, 그저 텅 빈 채로 남아있다.

        

        그런 주제에 또 크기는 어마어마하게 커서, 공간을 엄청나게 차지하기까지.

        

        오직 아무런 것도 지어지지 않았던 단순한 공원이었던 센트럴 파크였기에 새로운 무언가를 창조해낼 수 있는 것이었으니.

        

        

        

       “건물 투성이기도 하고, 그만큼 빈 집도 많을 테니, 적당히 다들 들어가서 살 수 있겠지만…그것만으로는 해결 안 되는 문제가 참 많겠지요.”

        

       “주택도시개발부의 전원이 밤낮으로 달려들어 계획을 짜내고 있다고는 하지만, 몇 가지를 제외하면 확정된 건 그닥 많지 않아.”

        

       “몇 가지?”

        

       “가령, 센트럴 파크에 거주하는 민간인들을 근방으로 이주시킨다든지.”

        

       “…가능할까요?”

        

       “글쎄다. 준비할 게 많겠지.”

        

        

        

        하긴, 뭐어. 그 이상으로는 신경쓸 필요가 없기도 하고.

        

        게다가 센트럴 파크 HQ는 까놓고 말해 민간인이 살기 그닥 좋은 곳은 아니다. 늘 전시 태세를 갖추고 있는 군부대의 옆에서 산다고 생각해보자. 항상 불빛이 반짝거리고, 근방에 사람들이 돌아다니며, 때로는 온갖 군 차량과 중장비, 대형 드론이 돌아다니는 그런 곳 말이다.

        

        소음 방벽을 쳐놓긴 했지만, 결국 종합적으로 보았을 때 이곳은오래 살 만한 곳은 못 되었다. 그 무슨 일이 있더라도 어지간하면 함락되지 않는다는 얼마 남지 않은 세상의 안전지대였기 때문에 6년씩이나 사는 게 가능한 거였기도 하고.

        

        아무튼, 나로서는 그저 잘 되길 바랄 뿐이다.

        

        

        그 이후로도 내 지인들이자 선임들, 요컨대 대거 팀은 곳곳을 돌아다니며 앞으로 세상이 어떻게 바뀔지를, 그리고 센트럴 파크가 어떻게 바뀔지에 대해서도 알려주었다.

        

        적어도 뉴욕은 이곳을 기준으로 재건될 것이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슬림하면서도 효율적으로 개선해야만 했다. 요컨대 HQ의 가혹한 구조조정이 시작되는 것이었다.

        

        센트럴 파크의 좌측 영역인 어퍼웨스트 사이드와 어퍼이스트 사이드를 시작으로 하나씩 기능을 되찾고, 교통망을 재정비하며, 빠른 이동이 가능하도록 지하철을 보수하고 기존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확충하며, 허드슨 강 위에 자기부상-공항을 짓겠단다.

        

        한 5년쯤 지나면 뭐가 뭔지도 모르게 되겠구만.

        

        

        그렇게 대략 10분 가량 과거의 추억을 되짚고 있었을까, 뒤에서 우리를 졸졸 따라오던 메카 막내들이 새로이 덧붙였다.

        

        

        

       “그러고 보니, 정확히…과거에는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요 몇 년 사이의 전투 녹화 영상은 종종 봤습니다만, 구체적으로 얼마나 난장판이었길래…인류의 세력권이 이렇게나 축소된 것입니까?”

        

       “뭐어, 지금 당장 네트워크에 접속해서 검색을 해보면 되는 일이 아닐까.”

        

       “우리가 궁금한 건 그런 게 아니야.”

        

        

        

        그와 동시에 모두가 멈춰서고, 레인은 담대하게 덧붙였다.

        

        

        

       “과거의 찬란함을 기억하고, 그 찬란하던 세상이 어떻게 몰락했는지를 두 눈으로 직접 보고, 그 사이에서 고군분투하며 이곳까지 온 너희들의, 그리고 주인의 시각이 궁금한 거지.”

        

       “….”

        

       “실례라는 건 알고 있지만, 작년…12월 31일에 했던 그 대통령이라는 사람의 연설을 듣고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어. 세상이 어떠한 형태로 무너져갔는지를, 그 사이에서 다들 어떤 고군분투를 했는지….”

        

       “까놓고 말하자면, 이전의 세상이 얼마나 활기로 넘치는지는 아키타입 덕분에 아주 잘 알게 됐거든. 그동안 디즈니 월드라는 곳도 가보고, 다크 존 타운이란 곳도 가봤으니까.”

        

        

        

        하지만, 얼핏 모두에게 말하는 것처럼 보여도.

        

        그 자리에 있는 메카 막내들의 시선은 정확히 나를 향하고 있었다.

        

        

        

       “….”

        

        

        

        그래. 꺼낼 수밖에 없는 건가.

        

        그 당시의 쓰라린 기억들을.

        

        고통스러웠기에 더더욱 찬란하게 빛나던 시간들을.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바로 이럴 때였기에…어쩌면 이들에게 그 당시의 장대한 기록을 말해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리하여 나는 입을 열었다.

        

        

        

       “좋아요. 대신 하루이틀로 끝날 이야기가 아니니, 다들 마음 다잡고 들어야할 거예요.”

        

       “막내.”

        

       “…뭐어, 다른 분들은 좀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저는….”

        

        

        

        짤막한 정적.

        

        그리고 입을 연다.

        

        

        

       “이제는 말할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이어지는 적막.

        

        그러나 다음 순간, 그 자리에 있는 이들은 내게 아무런 말조차 하지 않는다. 그저 피식 웃으며 나를 바라보고, 이어 머리를 쓰다듬거나, 어깨를 툭툭 치거나, 등을 살살 어루만질 뿐.

        

        그것이 긍정의 의사라는 것을 알게 된 순간, 나는 그 자리에서 기대에 가득 찬 메카 막내들을 보며 – 악동스럽게 웃었다.

        

        입이 열렸다.

        

        

        

       “하지만 선약을 하고 온 게 있어서, 여러분들은 조금 기다리셔야 할 거예요. 대략 1시간 정도. 그래도 상관없겠죠?”

        

       “에, 아니, 잠깐만. 지금 당장 들려주는 거 아니었어?”

        

       “말은 해줄 수 있죠. 하지만 지금 당장 말해주겠다고 말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답니다.”

        

       “하하! 우리 막내가 아주 메카 꼬맹이들을 들었다 놨다 하는구만!”

        

       “이, 이건 비겁합니다, 아키타입…!”

        

        

        

        물론 씨알도 통하지 않았고, 저들에겐 아쉽게도,나는 느낌표로 가득한 다이스의 분노에 가득 찬 메시지를 거스를 수 없었다.

        

        근방의 문을 지정하여 게이트로 만듬과 동시에 덧붙였다.

        

        

        

       “그럼, 저녁식사를 하고 오겠습니다. 이따 보자구요”

        

       “아앗, 같이 가! 이렇게 기대감만 증폭시키고 가는 게 어딨어!?”

        

       “우우, 분합니다. 분한데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아무래도 우리 메카 막내들은 참을성부터 길러야할 것 같은데.”

        

        

        

        그리고 그 말을 마지막으로 문이 쿵 닫히고, 나는 익숙한 청담동의 내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럼….

        

        

        

       “저녁식사를 하면서, 저 친구들에게 어디부터 말해줘야만 할지 생각해봐야겠네.”

        

        

        

        뭐라고 해야 할까.

        

        아주 긴 이야기가 될 것 같았다.

        

        정말로.

        

        

        

        

        

        

        

        

        

        

        

        

       “…그래서 그냥 저러고 갔다고?”

        

       “예압, 보시는 대로.”

        

       “…처음 여기 왔을 때와는 완전 딴판이구만.”

        

        

        

        한편, 건너편 세계.

        

        씩씩대는 메카 막내들을 보던 대거 팀의 일원들은 웃음을 터뜨렸고, 이어 이들은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만 같은 세 기체를 다독이며 휴게실로 들어갔다.

        

        

         

       “그럼 막내가 다시 오기 전까지 부연설명해줄 친구 있나? 막내 처음으로 만난 사람?”

        

       “놀랍게도 이 자리엔 저밖에 없답니다. 올리비아는 저쪽 어딘가에 처박혀있을 거고.”

        

       “이 꼴통한테 이야기를 맡겨야만 한다니, 말세가 따로 없구만.”

        

        

        

        물론, 유진이 사라졌다고 하여 이야기는 끝나지 않는다.

        

        각자가 6년간 쌓아왔던 시간을 담고 있던 상자가 열리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이것으로 외전이 마무리됩니다.

    이 이후로는 에필로그인 메카유진-엑스포, 그리고 지난 번에 말했던 대로 발현자가 된 하모니와 다이스, (???)의 IF 스토리가 있을 예정입니다.
    스트리머를 안 하고 계속해서 군인으로 남는다거나, 하모니가 납치당한 후 시카리오 한 편 찍는다거나, 좀비 사태가 발생하거나 하는 IF 시나리오를 생각해보긴 했지만 시나리오를 짜기가 조금 귀찮을지도오…

    지난 번에도 살짝 말하긴 했지만 댓글로 적어주신다면 한 번 고려해보겠습니다.

    정말 길고 길었습니다.

    엄밀하게 따지면 이번 화를, 그리고 에필로그를 마지막으로 유진의 일대기는 끝납니다. 여러분들도 보면서 즐거웠다면 좋겠습니다.

    연재하는 회차를 보고 600화에 완결 아닌 완결을 내려고 했던 것은 본의는 아닙니다만 노리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직 써야 할 내용이 많네요. 언제나 봐주셔서 감사하고, 앞으로도 봐주시면 무척이나 감사할 것 같습니다.

    좋은 설날 되시길 바랍니다. 물론 저는 설날에도 연재합니다.

    다음화 보기


           


I Have Returned, but I Cannot Lay down My Gun

I Have Returned, but I Cannot Lay down My Gun

귀환했지만, 총을 놓을 수는 없습니다
Score 4.1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Just the fact that I came back couldn’t be the end of ever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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