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601

        

         

       암호의 장점은 피아식별을 손쉽게 할 수 있게 하는 것.

       하지만 반대로 그 편리함이 약점이 되기도 한다.

       특히나 주술사 같은 존재를 상대할 때는 더더욱 그러했다.

         

       어떤 능력을 쓸지 예측도 불가능한 힘이 바로 주술이다.

       당장 주술사끼리 만나도 상대가 어떤 주술을 사용하는지 알기 힘든 것이 현실인데, 이런 주술사를 일반적인 능력자와 똑같이 상대한다는 것은 만용이요 무능력이었다. 적어도 주술사를 상대할 때는 ‘환각을 보거나 그에 따르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라는 가정을 해야만 했다.

         

       그렇기에 이 작전을 주도하는 이는 암호를 정해놓지 않은 것이다.

       요원 중 한 명이 주술사의 고문에 입을 연다거나, 환각이나 마약 같은 것에 당해서 암호를 술술 불게 되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런데.

       그런데….

         

       대체 저들은 왜 암호가 세 개 있다는 말에 전부 긍정을 표시하는 것인가?

         

       어째서?

         

       ‘미치겠군. 정말로 미치겠어.’

         

       숨이 가빠진다.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간다.

       손과 발끝이 차가워지고 감각이 사라지는 것이 느껴진다.

       등이 축축하다.

       온몸에 찬물을 끼얹은 것만 같다.

         

       도망가고 싶다.

         

       ‘기회를 봐서 탈출을 해야 해. 제기랄.’

         

       요원은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며 눈에 힘을 줘서 화면에 집중했다.

       혹여 무의식적으로 눈을 굴렸다가 눈이라도 마주치게 된다면,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을 ‘동료 흉내를 내는 무언가’와 눈이라도 마주치게 된다면 도저히 평정심을 유지할 자신이 없었기에.

         

       그렇게 요원은 두 눈에 힘을 준 채 카메라를 바라보았다.

       다만 대신에 온 신경은 다른 감각에 집중되어, 언제고 이상한 낌새가 느껴지면 바로 도망갈 수 있도록 몸에 팽팽하게 긴장감을 끌어올렸다.

         

       그렇게 짧지만, 영겁과도 같은 시간이 지나고….

         

       “하하하하!”

         

       “푸하하하하!”

         

       “오, 카를로스. Sorry. 진짜로 놀랐나 본데.”

         

       …그의 귀에 들려오는 것은 폭소였다.

       그것도 어마어마한.

         

       “…뭐?”

         

       그 폭소에 요원, 카를로스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고개를 돌리자마자 보인 것은 자신을 보며 웃고 있는 동료들이었다.

         

       몇몇은 정말로 웃겨 죽겠다는 듯 배를 잡고 웃고 있었고, 어떤 이는 웃고는 있지만 약간 미안함이 섞인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어떤 이는 그를 비웃듯 입꼬리만 올린 채 그를 바라보고 있기도 했고.

         

       “…잠깐만.”

         

       그 모습에 카를로스는 잠시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Hey! 암호 세 개는 무슨. 떠보는 실력이 그것밖에 안 돼?”

       

       “암호는 없었다고 친구! 오케이? 기억이 나지 않아서 물어본 거라면 So—rry!”

         

       “하, 눈치 없기는. 제기랄. 네가 늦게 눈치채서 내기에서 져버렸잖아.”

         

       “오, 이렇게 놀라게 할 생각은 없었는데. 흠.”

         

       하지만 이내 이어지는 다른 동료들의 말에 카를로스는 그제야 상황 파악을 할 수 있었다.

         

       “이런 개자식들!”

         

       속았다.

       저 동료 놈들이 똘똘 뭉쳐서 그에게 장난을 친 것이다!

         

       카를로스는 그 사실에 버럭 분노를 터뜨렸다.

       하지만 그 분노는 안도감이 포함된 것이었다.

       자신들의 동료가 ‘동료인 척하는 무언가’가 아니라는 기쁨이 묻어나오고 있었다.

         

       그 때문일까?

       개자식들이라는 욕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말에는 묘하게 물기가 서려 있는 듯했다.

         

       “오, 카를로. 우는 거야 설마?”

         

       “이런. 요원 명을 카를로스라고 했다고 감수성도 유럽 놈들처럼 변해버린 건가. 이래서 스페인 쪽 이름은 쓰면 안 된다니까. 하하!”

         

       “Oh, come on. 울지는 말아 달라고.”

         

       당연하겠지만 그것은 동료들의 또 다른 놀림감이 되기에 충분한 소재였다.

         

       동료들은 약점이 보이자 잘 되었다는 듯 카를로스를 말로 두들겨 팼고, 그 모습에 카를로스는 이 피도 눈물도 없는 동료 놈들이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하. 제기랄. 그래, 개자식들아. 놀려먹으니까 재밌냐?”

         

       “Hmm. 뭐, 나름의 긴장을 풀 정도는 되는군.”

         

       카를로스가 푸념하듯 그렇게 말을 토해내자, 웃고 있던 요원 중 한 명이 그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많이 놀랐다면 다시 한번 사과하지. 하지만 음, 딱히 카를로스 너를 일부러 노리고 한 장난은 아니었어. 그저 마지막까지 화장실을 가지 않은 게 너뿐이었을 뿐이지.”

         

       “뭐? 화장실?”

         

       “그래. 화장실.”

         

       “이 개자식들, 화장실에 뭘 해놨군.”

         

       “정답이야. 화장실에 메모를 붙여놨지. 화장실에 가지 않은 사람 딱 한 명이 남으면, 귀신에라도 씐 것처럼 연기를 해서 놀라게 해주자는 그런 메모였지. 그리고 놀랍게도 우리는 모두 그 계획에 무언으로 동의했고 말이야! 하하.”

         

       요원은 즐겁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화장실에 가지 않은 사람이 한 명 한 명 줄어들 때마다 아주 장관이었지. 갔다 온 사람들끼리 몰래 눈빛을 교환하는 그 모습이라니! 그 은밀하면서도 확실한 그 찰나의 의견 교환은 정말, 와우. 첩보 영화에 나오는 요원을 보는 것 같았다니까?”

         

       “물론 그 요원이 우리지만 말이야! 하하하!”

         

       하하하하!

         

       그렇게 다시 한번 방 안은 웃음바다가 되었다.

         

       그리고 그 모습에 카를로스는 허탈한 듯 하,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잘 알겠다, 개자식들 같으니…. 그래, 이런 장난을 한 이유는 뭔데?”

         

       “흠. 장난에 이유가 있나?”

         

       “개소리하지 말고. 일하면서 이런 장난을 하는 경우가 어딨어? 쉬운 임무도 아니고….”

         

       요원은 카를로스의 그 말에 잠시 고민을 하는 듯 말을 멈췄다.

       그러다가 이렇게 말했다.

         

       “…다들 필요 이상으로 긴장해 있었거든.”

         

       필요 이상으로 긴장해 있었다.

         

       그 말에 카를로스는 저들이 왜 이런 장난을 친 것인지 깨달았다.

         

       “빌어먹을. 지금 주술사한테 필요 이상으로 겁먹고 있어서, 일부러 김 한 번 빼려고 이런 짓을 했다고?”

         

       “그래. 솔직히 부정하고 싶겠지만, 조금 전까지 우리 모습은 겁먹은 쥐새끼나 다름이 없었어. 어쩌면 병아리 같기도 했고. 치킨도 되지 못하는 병아리 말이야.”

         

       “….”

         

       “하지만 아무리 말로 해봐야 긴장이 풀리겠어? 그러니 이런 극단적인 방법이라도 쓴 거지.”

         

       카를로스는 요원의 말에 짜증을 느끼면서도 내심으로는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당장 자신만 하더라도 조금 전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겁에 질린 모습을 보여주었었으니까.

         

       이런 상황이니 주술사를 상대해야 할 때는 어떻게 상대를 할 것이며, 감시는 또 어떻게 할 것인가 이 말이다.

       주술사의 모습만 보고도 덜덜 떨거나 바짝 긴장을 하는 상황인데 말이다.

         

       “잊지 않았지? 「 최고의 성과는 게으름과 노력 사이의 어딘가에서 나온다. 」.”

         

       “하, 낙하산으로 앉았다가 순식간에 위로 간 보스가 맨날 떠들던 그거?”

         

       카를로스는 요원의 말에 어이가 없다는 듯 피식 웃었다.

       왜 그 말이 지금 나오냐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타박하면서도, 그의 말투에는 긴장감은 완전히 사라진 상태였다.

       장난의 당사자가 되어 가장 큰 피해를 보기는 했지만- 도리어 그 장난 때문에 맛본 긴장감이 그를 풀어지게 한 것이다.

         

       “기억하고 있다니 다행이군.”

         

       “그걸 왜 기억 못하겠어?”

         

       그리고 그 긴장감이 풀어지게 만든 것에는, 그들만이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 대화 안에 들어가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요원으로서, 동료로서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을 들으면서 ‘이 사람은 동료 흉내를 내는 사람이 아니다.’라는 확신이 들었다.

         

       동료를 흉내 내고 있다면 저런 것을 알 리가 없다는 그런 확신.

       그 확신이 그에게 안도감을 주고 있었다.

       뭔가 동료애도 더 진하게 느껴지는 것 같았고.

         

       “오케이. 어쨌든 긴장감이 많이 풀어진 것 같아 다행이군. 아, 그렇지. 화장실에 같이 가보는 건 어때?”

         

       “화장실에? 왜?”

         

       “왜냐니. 이봐 친구. 그런 장난에 당하게 만든 그 저주받은 메모를 확인해보고 싶지 않은 거야?”

         

       “오.”

         

       저주받은 메모라니.

       카를로스는 동료의 표현에 피식 웃고 말았다.

         

       그래.

       저주받은 메모라는 표현이 아예 틀린 것은 아니었다.

       그를 이렇게 깜짝 놀라게 만든 장난에 당하게 만든 메모면, 저주받은 메모라고 칭해도 무방했다.

         

       “그래. 보러 가자고.”

         

       “오케이. 그럼 내가 안내해주지.”

         

       “안내를?”

         

       “오, Come on. 도슨트(Docent)로 위장해서 잠입도 해본 몸이라고. 나만 믿고 따라오도록 해.”

         

       카를로스는 능청 떠는 동료의 모습에 피식 웃으며 화장실로 향했다.

       그리고 어서 들어가라는 듯 턱짓하는 동료의 모습에 천천히 화장실의 문을 열었고, 그 안으로 들어갔다.

       낮이었지만 불이 꺼져있어서 그런지 화장실 안은 꽤 깜깜했다.

         

       카를로스는 자연스럽게 벽을 더듬거리며 스위치를 찾아 눌렀고.

         

       틱.

         

       -하는 작은 소리와 함께 화장실에 불이 켜졌다.

         

       불이 밝혀지고 그리 크다고는 할 수 없는 화장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거울, 세면대, 샤워 커튼….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일반적인 화장실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여기 있어야 할 것이 보이질 않았다.

         

       메모.

       그를 조금 심하다 싶은 장난에 당하게 했던 그 메모가 보이지 않았다.

         

       “흠? 헤이! 메모가 안 보이는데?”

         

       “무슨 말이야? 거기 거울에 붙어있잖아! 무려 투명 실리콘 메모지로 적은 거라고! 거울에 붙어있을 테니 자세히 잘 봐봐.”

         

       “투명 실리콘 메모지? 하, 장난도 진짜 공들여서 했군. 정말 개자식들이야.”

         

       카를로스는 그 말에 헛웃음을 터뜨리며 거울을 잘 관찰하기 시작했다.

       투명 실리콘 메모지로 붙여놓을 정도라면, 그 메모지에 쓴 글 역시 일반적인 펜이 아니라 잘 보이지 않는 잉크로 썼을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봐도 메모지는 보이지 않았다.

         

       “…없는데?”

         

       “하, 그게 없을 리가 없다니까! 이봐들! 카를로가 메모를 찾지를 못하고 있어. 저 눈이 침침한 불쌍한 늙은이를 위해 우리가 나서주자고. Come On!”

         

       카를로스는 화장실 밖에서 소리치는 동료의 말에 ‘이것도 장난인가?’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다시 생각했다.

         

       ‘이것도 장난이 맞나보군. 이 개자식들이 진짜.’

         

       이러한 생각은 동료들이 좁아터진 화장실에 우르르 들어오기 시작하자 확신으로 변했다.

         

       저 개자식들이 사람을 두 번이나 낚은 것이다!

         

       카를로스는 그 사실을 깨닫고 버럭 소리를 치려고 했다.

         

       그런데 그 순간.

         

       텁.

         

       무언가가, 그의 입을 틀어막았다.

         

       ‘…뭐?’

         

       이상하다.

       동료들은 눈앞에 있는데.

       화장실에는 아무도 없었는데.

         

       등 뒤에는 분명, 거울이 걸려있는 벽밖에 없었는데…?

         

       “….”

         

       “….”

         

       “….”

         

       몸을 움직일 수가 없다.

       벽에서 손이 쉴 새 없이 솟아나기라도 한 것인지, 그의 온몸을 단단히 붙잡고 있는 것 같았다. 팔 한쪽에 손이 셋, 넷…. 다리 하나에 손이 넷, 다섯….

       대체 몇 개의 손이 몸을 붙잡고 있는 건지 제대로 알 수조차 없을 정도였다.

         

       거기에 입을 틀어막고 있는 손은 어찌나 억센지.

       고개를 돌리는 것조차 할 수가 없다.

         

       “….”

         

       “….”

         

       “….”

         

       동료들이 보인다.

         

       동료들이 자신을 보고 있다.

       아까 장난을 칠 때처럼 이질적인 분위기를 풍기면서.

         

       “….”

         

       “….”

         

       “….”

         

       보인다.

       동료들의 눈동자가 보인다.

       동료들의 눈동자에 비친, 자기 모습이 보인다.

         

       “…!”

         

       눈동자.

       그 작은 거울 안에 보인 그의 모습은….

         

       “…!!!”

         

       거울 속에서 튀어나온 수많은 손에 붙잡힌…가련한 먹잇감 같은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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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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