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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03

    <603 – 맛있는 연계퀘스트(27)>

     

    티토소가는 커튼 너머에서 심각한 얼굴로 모여든 종교계의 거물들과 정계의 거물들을 엿보고는 기가 죽어서 입도 뻥끗하지 못했다.

     

    “힝잉잉. 여긴 내 자리가 아닌 것 같아… 지금이라도 못 하겠다고 오크노디한테 말하고 싶어.”

    “멍청한 소리 마. 우리 보려고 온 사람들이 너한테 얼마나 짜증을 느끼겠어. 여기서 찍히면 네페르템 선배의 불행이 우스울 정도로 기고한 미래가 기다릴걸?”

    “으앙. 유피 미워!”

    “티토소가 입장도 생각해주렴. 얘도 얼마나 무서우면 이러겠니. 선배인 나도 떨려 죽겠는데.”

     

    애써 대견한 척 티토소가의 편을 들어주는 네페르템의 다리는 전동 마사지기 뺨치도록 떨려서 눈을 마주치기도 힘들 지경이었다.

     

    “나 참, 무슨 말도 못 하겠네.”

     

    겉으로는 털털한 척하는 유피도 자신들을 보러 온 성녀들이 오크노디와 그녀의 집사와 엮여서 하나는 죽고, 하나는 성력을 잃고 폐인이 되고, 하나만 간신히 몸 성히 살아남아 취조를 받는 이 상황에 크게 긴장했다.

    솔직히 빈말로도 좋게 볼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성녀들을 잃은 교단에서 성녀출범식에 참석한 삼인의 성녀들에게 책임소재가 있다며 공격해 온다면 자신들의 목숨은 풍전등화, 바람 앞의 등불 신세다.

     

    “너무 긴장하지들 마세요. 워낙에 고위층들이 모인 자리이기에 학생들이 감당하기엔 힘들 듯하여 저희 아카데미에서 출범식 진행을 도와주지 않습니까.”

     

    다행히도 이들의 불우한 처지를 고려하여 아카데미에서는 불쌍한 성녀 학생들을 지원해 주었다.

     

    “불행 중 다행히도 여러분이 생각하는 만큼 괴로운 시선이 몰리지는 않을 겁니다. 굉장히 특별한 귀빈이 찾아오셔서 어그로를 분산했거든요.”

     

    오랜만에 모교에 돌아와서 신이 난 매스각키 여제와 당대 여제는 좀 귀엽지 않나 수군거리던 변방 세력을 모조리 침묵시킨 자.

    제국진영과 변방진영, 심지어는 교단진영까지 삼대세력 모두가 긴장하며 예의주시하는 인물.

    신성중앙제국의 전전대 황제이자 현재는 모두에게 <선황>이라 불리는 남자는 존재 자체만으로 다른 모든 진영을 합친 것보다도 더한 중압감을 선사했다.

     

    “선황! 무슨 낯으로 뻔뻔하게 우리들의 앞에 그 낯짝을 드러낸 거냐.”

     

    그러나 세상에는 중압감을 이겨내고 모두가 상상으로만 하던 짓을 저질러 버리는, 동경할 만한 용기의 소유자도 있기 마련이다.

    오늘의 용기상이 있다면 유력한 수상후보가 될 자의 이름은 도이치 왕국의 당대 국왕 요르제프 허니블러드였다.

     

    “당신의 잔혹한 곡물수탈정책으로 도이치 왕국의 백성들은 언제나 굶주림을 감내해야만 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모든 나라가 마찬가지다! 전세계에서 발생한 수많은 아사자가 선황 그대의 실책에서 비롯되었거늘, 제국의 황제 자리에서 물러난 지금도 우리가 순순히 고개를 조아리라 믿는가!”

     

    커튼 뒤의 성녀 3인방이 뜨악하거나 말거나 도이치 국왕은 선황의 만행을 공론화했다.

    이러다 개빡친 선황이 힘이라도 쓰고, 거기에 자극 받은 교장이 또 나서고, 세기의 강자들이 격전이라도 벌이면 그 후폭풍은 얼마나 거칠어질까.

    격돌의 여파만으로 아카데미가 초토화되고 성녀 3인방은 무너지는 건물 사이에 갇혀서 구조만 기다리며 나란히 힝잉잉 우는 신세가 될지 몰랐다.

     

    “사소하군.”

    “사소해…? 그 많은 죽음이 당신에게는 사소하단 말인가? 다시 한번 말해봐라, 히우그마그!”

    “히우그마그 일가가 제국의 황제로 즉위하기 전, 대륙에서는 해마다 전쟁이 벌어지며 전란의 시대가 한창이었다.”

     

    히우그마그.

    그는 자신의 과오가 지적당한다고 수치스러워하거나, 진실을 묻기에 급급한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딸의 학예회에 참석하러 온 아버지.

    스스로에게 떳떳하지 않은 자는 그런 자리에 얼굴을 내비칠 수 없다.

    존재 자체가 딸의 수치이자 인생의 앞길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기에.

    그는 자신이 그런 못난 파파가 아니라는 자신감의 원천을 공개했다.

     

    “해마다 천만에 달하는 인류가 같은 인류의 손에 죽었다. 수많은 죽음과 질병, 절망이 창궐하였던 비인간의 시대였지. 인류는 수많은 적을 피해, 같은 인류끼리 죽고 죽여야만 했다.”

    “짐은 대륙 각지에 자리한 오랜 신화적 공포와 사라져야 할 옛 시대의 잔재들을 말살하여 인류의 시대를 불러왔다.”

    “제국은 부흥하였고, 변방은 제국이 주도하는 질서를 거역할 수 없었다.”

     

    요르제프 국왕이 언성을 높였다.

     

    “네놈의 선조들이 벌인 짓이 너와 무슨 상관이냐! 넌 선조들의 이름에 먹칠한 잔혹한 살인마다!”

    “그렇게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제국을 떠났으니 제국의 비밀을 더 이상 지킬 이유는 없겠지. 모처럼의 기회이니 알려주지.”

    “…?”

    “초에초 히우그마그. 우온조 히우그마그. 레알 히우그마그. 티토 히우그마그. 짧게는 수십 년, 길게는 백수십 년간 황제로 즉위했던 역대 히우그마그는 모두 짐이었다.”

    “?!”

    “하니 히우그마그의 역사란 곧 짐의 역사라고도 할 수 있다. 짐의 어리석은 아들과 나름 괜찮은 딸을 제외한다면 말이지.”

     

    수백 년을 생존하며 황제직을 연임한 제국황제.

    도시괴담 정도로 취급되었던 히우그마그 일인설이 실제로 이루어지는 순간, 성녀출범식에 참석한 모든 이들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요르제프 국왕조차도 기가 눌려 감히 입을 열지 못하고 있으니, 선황은 그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천만이 죽던 시대를 끝내고 백만의 희생으로 세계의 질서와 안정을 유지한다. 그것이 죄라면 짐은 기꺼이 세계를 위한 죄인이 되기를 자처했다. 그러니 짐을 죄인이라 탓하고 싶다면 마음껏 하여라. 대신, 각오는 해야 할 것이다.”

    “나라 잃은 황제의 보복 따윈 두렵지 않다!”

    “보복? 그렇다고 볼 수도 있겠지. 단, 그대가 받을 보복은 짐과의 전쟁이 아니라 역사의 보복이다. 백만의 희생이 사라지고 다시금 천만이 죽는 시대를 불러온 어리석은 왕, 암군에게 뒤따를 심판보다 그대를 괴롭힐 보복은 없겠지.”

     

    확실히 수백 년 전, 먼 옛적에 존재했다고 알려진 전란의 시대는 수많은 생명이 죽던 시대였다.

     

    “그 시대를 막았다는 이유로 그대가 대륙의 곡식을 수탈하여 세계를 도탄에 빠뜨린 사실이 없던 일이 되지는 않소! 당신은 현시대의 악몽이오. 우리에겐 삼대거악이 아닌 당신이야말로 진정한 적이오!”

     

    자살 시도도 이 정도로 극단적이면 행위예술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모든 군주 사이에서 맴돌았다.

    극적인 정적 끝에 선황이 피식 웃었다.

     

    “짐이 제국을 떠나니 이제 별것 아니라고 생각이 드는가? 그래서 뒤늦은 책임을 물을 자신이 생겼나?”

    “물론이오. 영지를 잃은 귀족은 ‘자동’적으로 약해지지. 영토를 잃은 군주도 이는 마찬가지. 하물며 황제라면 더욱 그렇겠지! 당신은 더 이상 세계가 경외시하던 공포의 황제가 아니오!”

     

    치적과 실정이 공존하는 황제.

    인류 역사상 가장 입체적인 제왕.

    선황은 시큰둥한 얼굴로 반문했다.

     

    “그럼 어찌하여 입만 떠들고 있는가. 짐은 어디로도 달아나지 않았다. 그대의 눈앞에 있지 않은가. 짐을 심판하고 싶다면 어디 해보아라.”

     

    뻔뻔함도 극에 달하면 감탄을 부른다.

    수많은 죄를 지었으나 누구도 그를 심판하지 못했다.

     

    -저게 정말로 약해진 사람이 맞나?

    -제국을 떠났는데 왜 전보다 더 두렵지?

    -지금의 황제에게는 비인간적인 무언가가 느껴진다. 우리는 그를 제국이라는 사슬로부터 해방해서 더욱 두려운 존재로 만들지는 않았나?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불안과 공포.

    분위기를 바꾼 것은 교단세력이었다.

     

    “인간은 힘의 논리에 지배받는 생물. 인간의 힘으로는 당신을 심판할 수 없겠지. 하지만 천상의 신들께서는 당신을 심판할 수 있소.”

    “호오. 선험의 임마누엘의 종자인가.”

    “거룩하신 어머니 임마누엘께서는 의지의 준칙이 보편의 원리에 위배 되지 않는 자의 손을 들어주시니, 인류의 존속을 원하는 어머니께서는 기꺼이 당신을 이단이라 받아들일 것이오.”

     

    이 자리에서 선황을 상대로 <이단선포>를 가하여 영구적인 페널티를 입힐 수도 있다고 선언하는 임마누엘 교단 소속 교황의 과감한 선언!

    성녀출범식이고 나발이고 학부모 싸움으로 개판이 되려는 분위기에 달아나려던 티토소가가 너만 어딜 도망치냐며 유피의 손에 뒷덜미가 붙잡히고 이거 놓으라고 조명대를 반짝거리고 눈뽕을 당한 네페르템 선배가 비명을 지르며 개판이 벌어졌다.

     

    “…”

     

    아주 요란하기 짝이 없는 커튼 뒤의 소란을 애써 모르는 척하며 히우그마그는 당당하게 두 손을 벌리며 자신을 내세웠다.

     

    “얼마든지 해보아라. 신의 심판이 두렵다면 짐은 황제가 되기를 자처하지도 않았다.”

     

    교황은 망설이지 않았다.

     

    “어머니 임마누엘이시여, 여기 당신의 오랜 충복이 교단의 적을 마주했나이다. 본 교황의 오랜 충심을 제물로 여기, <이단선포>를 요청하나이다!”

     

    모든 교황이 손에 땀을 쥐고 기도했다.

    모든 군주가 황제를 노려보며 저주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모든 고위성직자, 고위공직자, 고위귀족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선황의 몰락을, 신에 의한 징벌을 바랐다.

     

    [선신 임마누엘이 크나큰 고민에 빠집니다.]

    [심판이 진행 중입니다.]

     

    성스러운 광휘가 황제를 둘러싸며 그의 이단 유무를 심사하기 시작했다.

     

    [죽음의 신이 황제의 만행을 폭로합니다.]

    [선신들이 제국의 오랜 유일신앙을 잊지 말라 조언합니다.]

    [대륙 각지의 수많은 민중이 선황의 폭거를 원망하는 기도의 목소리를 보냅니다.]

     

    허공에 떠오른 임마누엘의 성스러운 자태가 분노로 일그러졌다.

    점차 허공에 떠오른 검이 황제의 머리 위로 내려가던 도중이었다.

     

    [어느 신이 다크프린세스의 파파가 황제임을 잊지 말라고 귀띔합니다.]

    [어느 신이 다크프린세스의 존재로 인해 회피한 미래를 잊지 말라고 귀띔합니다.]

     

    내려오던 검이 멈추었다.

     

    [어느 신이 다크프린세스의 <악몽 속의 종말>에 대한 목격담을 누설합니다.]

    [어느 신이 다크프린세스의 <잠꼬대하는 사진>을 슬쩍 소매넣기합니다.]

    [어느 신이 다크프린세스의 <돌 먹는 불쌍한 사진>을 보여주며 동정심을 유발합니다.]

     

    역으로 검이 서서히 올라가기 시작했다.

    화려하게 등장했던 자태가 역순으로 하늘을 향해 거슬러 올라가며 빛무리와 함께 흩어지더니, 교황이 피를 토하며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이단선포>

    [이 존재를 향한 이단선포는 의지의 준칙이 보편의 원리에 위배되는 비선험적인 기도입니다.]

    [당신의 기도에 바쳐진 신성력이 소멸합니다.]

    [선신 임마누엘이 당신의 교황직을 박탈합니다.]

     

    신벌을 내려야 할 신에게서 역으로 무고함을 공인받은 히우그마그 황제!

    충격에 휩싸인 만인의 앞에서 홀로 당당한 선황이 입을 열었다.

     

    “신조차도 짐의 무고함을 인정하였으니, 이제 짐의 양녀가 벌일 재롱잔치를 보아야겠다. 불만이 있다면 임마누엘의 이름이 너희를 용서치 않으리라.”

     

    신성력을 상실하고 교황의 지위까지 잃어버린 자가 홧병을 참지 못해 쓰러질 발언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붕어빵처럼 닮은 부녀지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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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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