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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03

   느릿한 걸음으로 다가오는 루엘을 살핀다.

   

   악신의 기운은 느껴지지 않는다. 주신의 기운이 서린 성지에 악신이 개입하는 건 불가능하니 당연한 일이다.

   

   근데 이걸 다르게 말하면 교회의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루엘을 망가트렸단 이야기거든.

   

   당장 떠오르는 범인은 교황이지만 머리가 한 바퀴 돌아서 정상으로 보이는 그 미치광이가 성기사를 건드릴 것 같진 않단 말이지.

   

   “루시 알른! 지시를!”

   

   바람의 장벽을 활용해 루엘의 메이스를 떨친 아서가 다급히 소리를 높인다. 천천히 생각할 틈은 없나.

   

   “꼰대 할배♡ 아주 짐승이 되어버렸네?♡”

   

   루엘의 메이스를 보여주며 도발을 걸었더니 살의로 가득한 시선이 내게 꽂혔다.

   

   순식간에 방향을 틀어 달려드는 괴물을 가만 바라본다.

   

   움직임은 내가 아는 신성투술과 크게 다르지 않아.

   

   지닌 신체가 다르기에 저 쪽이 더 거친 방식으로 움직일 수 있다만 그뿐.

   

   움직임을 예측하는 건 가능해. 그리고 왼쪽 팔에서 약점이 보인다.

   

   아마 심문관 중 하나가 남긴 상처가 아닐까. 그러니 저 약점을 활용하면.

   

   <저 녀석이 보여주는 약점은 믿지마라! 의도적인 거다!>

   

   그런 거라면 좀 더 일찍 알려줬어야죠! 빌어먹을 할망구! 늙어서 반응속도까지 퇴물이 됐나!

   

   “허접 성녀! 장벽! 지금!”

   

   내 목소리가 닿는 것과 동시에 페이비가 내 앞에 신성으로 이루어진 벽을 만들어냈다.

   

   루엘의 공격이 내리찍히자 굉음과 함께 벽에 금이 갔지만 도망칠 틈을 만들기엔 충분했다.

   

   <루엘이란 성기사가 두려운 이유는 음험하기 때문이다. 저 녀석의 행동 하나하나에 함정이 있다고 생각해라.>

   ‘제가 아는 거랑은 좀 많이 다른데요!?’

   

   의도적으로 루엘에게 미움을 사는 루트를 골라도 그 정도로 패턴이 바뀌진 않는다고!

   

   <너희를 인간으로 여겨줄 때야 그렇겠지!>

   <이 놈 말이 맞다. 루시. 인간이 아닌 것을 상대할 때의 난 수단을 가리지 않는다.>

   

   그러니까 지금 저 인형은 우리를 짐승취급하고 있단 소리지?

   

   하하! 어쩐지 살기에 날이 서 있다 싶었는데 괜히 그런 게 아니었구나!

   

   “빈틈.”

   

   입술을 꾹 깨문 채 전략을 생각하던 중 툭 튀어나간 프레이가 루엘의 왼 팔을 노리고 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방금 전까지만 해도 움직이기 힘들어보이던 팔이 갑작스레 회복되더니 프레이의 목을 붙잡기 위해 움직였다.

   

   “혼자 움직이지 마라!”

   “우아아. 위험해.”

   

   재빠르게 반응한 아서가 팔을 걷어준 덕분에 프레이는 뒤로 물러날 수 있었다.

   

   음험하다는 게 저런 의미인가.

   

   좋네. 그럼 우리 쪽도 음험하게 싸워보자고.

   

   “얼빵아. 눈 가려.”

   “다른 감각은 그대로 내버려 둬도 되나요?”

   “전부 뺏을 거 아니면 하나만 없애는 게 나아. 그래야 장난감으로 만들 수 있거든.”

   “알겠습니다!”

   

   조이가 만들어낸 어둠이 루엘의 머리를 휘감는다. 루엘은 신성으로 거기에 대응하려 했지만 조이는 어렵잖게 그 방해를 무산시켰다.

   

   “상당히 까다롭네요! 모든 감각을 뺏는 건 무리겠어요!”

   

   이걸로 첫조건은 돌파했고 이제는 내 차례다.

   

   “벌레들. 일할 시간이야.”

   – 힝. 무서운데.

   – 잡아먹힐 것 같아!

   – 오들오들입니다아.

   “버려지고 싶으면 마음대로 해. 벌레들이 사라지면 나야 좋지.”

   – 그건 더 싫어!

   – 가자!

   – 뭐든 시켜주세요!

   

   요정 셋을 루엘의 주변에 풀어 신경을 갉아 먹는다. 시야가 빼앗기고 청각의 비중이 늘어난 지금이라면 루엘이라 해도 저 재잘대는 소리를 완벽히 무시할 순 없을 터.

   

   내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시야를 빼앗겼을 때까지만 해도 당연하다는 듯 아서와 프레이를 추적하던 그의 움직임이 둔해진 것이다.

   

   “허접 성녀!”

   “축복을 드리겠습니다!”

   

   지금 이 순간 페이비의 축복이 부여되면 루엘은 한층 더 우리의 움직임을 추측하기 어려워진다.

   

   성녀의 축복은 일반적인 버프와는 격을 달리할 만큼 신체능력을 상승시키니까.

   

   버프를 받기 전의 움직임만을 보았던 루엘의 입장에선 예측하기 어렵겠지.

   

   이제 남은 건 저 두 사람의 연격이다.

   

   내 지휘는 필요치 않다. 일순의 본능이 승리를 가르는 전장에서 목소리 따윈 무의미.

   

   나의 말이 괜한 혼란을 만들어낼 것뿐이란 걸 아는 난 아무 말 하지 않고 두 사람에게 눈짓으로 달려들 걸 지시했다.

   

   “여기서 프리스타일이냐!”

   “역시 루시! 최고!”

   

   소리를 꿰뚫을 것처럼 날아간 프레이의 검이 신성으로 이루어진 방패에 튕겨나간다.

   

   그 방패의 옆을 스치듯 바람의 화살이 날아들지만 루엘은 그걸 피하지 않았다.

   

   투구 아래로 파고 든 마법이 자그마한 상처와 함께 저릿한 고통을 선사한 순간 그 옆에는 아서가 검을 휘두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서의 모습 위에 다른 남자의 모습이 겹친다. 성별말고는 닮은 부분이 있기나 할까 싶은 거구의 기사. 베네딕의 모습이 말이다.

   

   저 움직임은 어디까지나 흉내에 불과할지어니 베네딕이 지닌 위력을 재현할 순 없다.

   

   그렇지만 위압감만큼은 느끼게 만들 수 있다.

   

   루엘이 다급히 방패를 치켜 들어 아서의 공격을 막으려 한다. 전설적인 성기사마저도 저를 위협으로 판단내린 것이다.

   

   허나 공격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우리 파티의 진짜 비수는 아서가 아닌 다른 쪽이었다.

   

   프레이가 검을 휘두른다.

   

   자신의 바로 앞을 향해. 아주 작은 곳을 향해. 점이라고 불러 마땅한 한 장소를 향해.

   

   한 군데에 집약된 검은 견디다 못한 공간이 붕괴 되어버린 것처럼 거대한 검격이 되어 루엘의 목을 날려 버렸다.

   

   그 여파로 뒤 편의 벽마저도 반으로 갈라져 버렸다만 다행스럽게도 건물이 흔들릴 기미는 없었다.

   

   “프레이 켄트. 그건 대체 뭐냐.”

   “검성님이 알려준 거.”

   “허어. 그새 자신의 것으로 체화한 것이냐.”

   “으음. 그건 아냐. 아직 부족해.”

   “…그게?”

   “응.”

   

   저게 아직 부족한 거라니. 완성되면 진짜 공간이라도 베어버리는 거냐.

   

   …만약 그 날이 온다면 같은 수를 써서라도 대련을 피해야겠어. 공간을 베어버리는 검이라면 방어고 나발이고 아무런 의미가 없잖아!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며 고갤 갸웃거리는 프레이를 지나쳐 루엘의 인형 앞에 도달한 나는 심호흡을 하고서 그 위에 손을 올렸다.

   

   그가 지니고 있던 신성이 포용의 권능을 따라 내 안으로 흘러들어온다.

   

   “…아.”

   

   뒤늦게 나는 스스로가 실수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포용의 권능으로 받아들이는 게 단순히 신성 뿐일 리가 있나.

   

   신앙에서 비롯되는 신성은 주인의 정신에 영향을 받으니 신성 안에 주인의 감정이 스며드는 건 당연한 일.

   

   고결했던 성기사가 녔던 분노를 느낀 나는 눈 앞이 흐려지는 걸 느꼈다.

   

   흐아. 나중에 또 잔소리 듣겠…

   

   *

   

   루시의 내면 세계 속에서 후대의 전투를 지켜보던 가라드는 자꾸만 검 손잡이를 만지작거렸다.

   

   “이게 진정 성인이 되지도 않은 아이들의 강함이란 말이냐. 놀라운 재능이군.”

   “재능이라. 그래. 저들이 천재라 불러야 할 이들이란 건 분명하지.”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제대로 해라. 그러니까 고백 한 번 제대로 못 해 본 것 아니냐.”

   “다시 시작할까?”

   “싸움이라면 지겹도록 할 수 있잖나. 말이나 계속해라.”

   

   가라드가 눈을 좁히자 루엘은 이를 갈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저 아이들의 재능이 본래부터 뛰어났던 것은 사실이다만 급격하게 성장한 것은 루시를 만나고 나서다.”

   “그게 뭐가 문제지?”

   “용사를 만나고서 급격하게 성장했던 우리와 닮았다고 생각하지 않나?”

   

   그제서야 가라드는 루엘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이해했다. 우리들은 이전에도 각자의 분야에서 천재란 소리를 듣고 자랐다.

   

   허나 진정으로 개화한 것은 용사라는 자를 만나 그 곁에서 함께 고난을 겪은 후의 일.

   

   “너 아직도 저 아이가 용사를 만나게 내버려둬도 되는 건가 망설이고 있는 거냐?”

   “내가 보았던 그 놈의 마지막은 너무도 추악했다. 용사 녀석을 위해서라도 내 기억에서 지워버리고 싶을 만큼. 만약 루시가 그 말에 영향을 받는다면.”

   “하이고. 넌 결혼 안 하길 잘했다. 자식이 있었으면 죽을 때까지 품에 안고 다니려고 했을 거야.”

   

   키득거리며 루엘의 옆구리에 주먹을 꽂아 넣은 가라드는 욕으로 눈을 하는 그를 보면서도 당당했다.

   

   “좀 믿고 기다려라. 팔불출 노친네.”

   “내가 뭔…”

   “흐갸악!?”

   

   뒤 편에서 들려온 여자아이의 비명에 고갤 돌린 두 사람은 루시를 발견하곤 눈을 끔뻑였다.

   

   “루시야. 네가 왜 여기 있는 거냐.”

   “아마 꼰대 할배가 치매 걸려서 저지른 일 때문일 걸.”

   “…에르기누스가 만든 인형을 말하는 게지?”

   “응. 또 다른 꼰대 할배말야. 완전 허접하더라. 전성기 때 할배도 저랬어?”

   “무슨 소릴. 저렇게 허약한 놈이 악신을 상대할 수 있을 리 있나.”

   “동의하긴 싫지만 사실이야. 진짜 루엘에 비하면 저 인형은 허접이란 말도 아까울 정도지.”

   

   악신의 군세를 상대하는 전장에서 선두에 서는 자가 지녔던 강함은 절대 거짓일 수 없다.

   

   인형이 루엘만큼이나 막대한 강함을 지니고 있었다면 루시와 친구들은 주신의 품에 안겨야 했겠지.

   

   “팔불출의 옛날이 어땠는지는 그렇다 치고 설명 좀 자세히 해 봐.”

   “내가 대신 설명하지. 대충 무슨 상황인지 알 것 같으니.”

   

   루엘이 혀를 차며 손을 움직이자 그들의 앞에 던전의 입구와 비슷하게 생긴 문이 나타났다.

   

   “인형에 담긴 신성을 포용하다 그 분노도 함께 끌어 안았군. 그렇지?”

   “맞아. 꼰대할배는 원본도 가짜도 더럽게 질기다니까. 이러니 인기가 없었지.”

   “…크흠! 아무튼 그 성기사가 지니고 있던 분노는 네가 마주하기 편한 방식으로 바뀐 모양이다. 가라드를 포용하며 권능이 성장한 덕분이겠지.”

   

   보통이라면 책이나 연극 같은 형식일 터인데 던전이라니. 참 루시답다면 루시다운 광경이군.

   

   “흐으응. 그러니까 이 안에 들어가면 꼰대 할배의 비밀을 잔뜩 알 수 있단 거네?”

   “내가 아니라 에르기누스가 만들어낸 인형의 내면이다.”

   “그거나 그거나. 푸하핳. 재밌겠다. 얼마나 한심한 게 많을까. 완전 기대 돼.”

   “나도 기대돼. 저 안에 있는 걸 보면서 루엘이 어떤 변명을 할까.”

    “…같이 들어간다고?”

    “설마 혼자 보낼 생각이었어?”

   “누구는 꼰대 할배 때문에 고생하고 있는데 꼰대 할배는 그냥 구경만 하려고? 푸하핳. 진짜 무책임하네.”

    “그런 게 아니라! 제기랄! 들어가마! 뭐가 기다리고 있는지 한 번 보자꾸나!”

   

   두 사람의 협공에 체념한 루엘은 메이스를 움켜쥐며 불안한 눈으로 저 문을 바라봤다.

   

   제발 멀쩡한 게 들어 있어야 할 터인데.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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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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