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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1

        

         – 도시 관문에 대규모 에너지 테러 발생? 위협받는 풍요의 상징, 하베스트 플래닛! –

         – 재발방지를 약속했던 파라다이스 코퍼레이션은 단순한 기기 오작동이라 해명. –

         – 일각에서는 사고 직전, 침입자 수색을 명령받았다는 불온한 증언도 나와. 사회계몽을 주장하는 비밀결사, 파이브 아이즈의 소행일지도? –

         

         “……아.”

         

         “음? 일어났나? 발렌타인 양?”

         

         시끄러운 방송 소리에 삼도천 근처를 방황하던 의식이 되돌아왔다.

         

         전신이 욱신거리고, 아직 머리도 지끈거리는 데다 늦게까지 도시 전산망과 데이터베이스를 만지작거리느라 무리한 탓에 컨디션은 정말 최악이었다.

         

         하지만 당장 뒤질 것 같아도 은인의 말을 모른 척할 수는 없었기에,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던 담요를 치우고 대기실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덕분에 편안…하게 잤네요. 네. 그런데 그 호칭은 헬레나한테 쓰시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여전히 TV에 시선을 고정한 선생이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이제 발렌타인 자매는 한 명만 남지 않았나? 그러니 구분하기 위해 일부러 이름으로 부를 이유는 없지. 난 손님과 필요 이상으로 깊은 관계는 맺지 않는 주의야.”

         

         “…….”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다 죽어가는 헬레나를 들쳐 메고 방문했을 때 선뜻 치료를 맡아준 호의를 나는 기억한다.

         더군다나 진료기록조차 일절 남기지 않고 처리해주신 덕분에 남은 사람들끼리 말을 맞추기도 쉬워졌다.

         

         ‘헬레나 발렌타인은, 결국 관문 지하를 빠져나오지 못한 채 죽었다.’ 라는 편리한 거짓말을.

         

         본인은 아마 지금쯤 3번 게이트 구성원의 도움으로, 오랜만에 돌아간 고향집에서 할아버지에게 등짝을 맞으며 새로운 신분을 위조하느라 바쁘겠지만. 일단 공식적으로 그녀는 사망 상태.

         

         모든 사건사고의 정황을 상세히 담았어야 할 보안 카메라의 데이터들은 내가 손댄 전후로 먹통.

         

         결국 투입되었던 병사들의 증언으로 일어났던 일을 재구성해야 했는데… 그 누구도 침입자를 마주친 적이 없다 증언하고. 들어간 기록은 있어도 빠져나온 결과가 전무하니 책임자만 곤란하리라.  

         

         …책임자라는 단어가 떠올리게 만든 건데, 헬레나는 사후조사에서도 전혀 주범 취급이 아니었다.

         

         일개 경찰이 저질렀다고 하기엔 지나친 피해와 지휘부 기록을 통해 확인된 미심쩍은 명령들.

         

         마지막으로 봤을 때는 막대한 권한을 쥐고 있던 현장 책임자의 탈선, 혹은 스파이 혐의로 결론이 좁혀지고 있었다.

         

         뭐. 그런다고 헬레나의 명령위반과 무단침입이 사라지는 건 당연히 아니어서, 나는 파라다이스의 압류 처분이 들어온 집으로부터 간신히 개인물품만 챙겨서 쫓겨났다.

         

         – 발렌타인 양, 내키지는 않지만 꼭 아침식사를 제공하라는 당부가 있었습니다. 선호하는 제품군이 있으신가요? –

         

         “…주시는 대로 먹겠습니다.”

         

         “얌마?! 제니! 얘가 날이 갈수록 말버릇이 아주…!”

         

         까칠하기 그지없는 안드로이드 제니에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녀는 전에도 그렇고, 이번에도 모시는 주인에게 극심한 스트레스를 유발했다며 나를 어떻게든 배척하고 싶어했다.

         

         이쪽이 끌고 온 일거리로 인해 고생한데다 문제가 될 만한 비밀사항도 강제로 떠안겼으니 할 말은 없었지만… ‘전에도’ 내가 선생을 괴롭혔다는 듯이 말하는 건 조금 억울했다.

         

         …어쩌면 검사만 받고 홀랑 떠난 진상손님 취급일지도 모르겠다.  

         

         – 손님대접은, 어디까지나 아내의 영역이라고 학습했습니다. –

         

         “……잠깐, 뭐? 인격 설정이 또 멋대로 변경됐나…?”

         

         슬금슬금. 한 손에는 건네받은 컵라면을 구비한 채 구석으로 물러나 점점 흥미진진해지는 주종의 관찰을 이어 나갔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안드로이드의 얼굴을 이모저모 만지작거리는 선생은 감을 잡지 못한 것 같았으나 이상한 일은 아니다.

         

         인공지능이라는 꼼꼼한 포장도로에서 자아라는 싹이 트는 건 절대 흔한 일이 아니었으니까.

         

         “음… 이러면 복구된 건가? 제니?”

         

         – …다시 한번만, 만져서 수정해 주시겠습니까? –

         

         “…….”

         

         티격태격보다도 꽁냥꽁냥이 훨씬 어울리는 풍경에서 눈을 돌려버렸다.

         

         이 꼴을 보려고 구태여 하베스트 플래닛에 남은 건 아니다.

         기왕 이리된 거. 이 참에 네오 헤이븐으로 떠나버릴까 고민했지만, 하필 지금 나까지 빠져나갔다가는 꼬리를 잡힐 위험도 있었을뿐더러.

         

         자칫 기나긴 악연을 만들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취업이 아니었던 만큼 이쪽에서 먼저 연락을 하는게 맞다는 건 안다.

         

         하지만 파라다이스도 충분히 수습하느라 바쁠 텐데, 흥미가 사라졌을지도 모르는 해커 따위가 주제넘게 먼저 나서서 주절주절 떠들어대는 것도 과연 어떨까… 하는 생각 끝에.

         

         도망쳤다는 인상을 주지 않고자 도시에 남되, 함부로 나서지는 않기로 했고.

         완전 결과론이긴 해도. 이 선택은 옳았다.

         

         삐리리릭!

         

         “!!”

         

         돌연 걸려온 화상통화 요청이 눈앞을 채웠다.

         

         발신자는 불명으로 가려져 있어도 누구인지 알 것만 같았기에 각오를 마치고 연결을 수락했다.

         

         – 우리…… 아나스타샤 해커님? 어느새 사표를 제출하셨더군요? –

         

         딱히 자주 만나거나, 친근한 사이가 아니었지만 첫 문장과 태도만으로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아, 이 인간은 존나 화난 상태라고.

         

         나는 완전 기초 임플란트라, 저편에 제공되는 화상 데이터가 전혀 없음을 아는데도. 그의 눈이 건너편을 살피듯 굴러갈 때마다 소름이 돋았다.

         

         “……워낙 정신적인 충격이 커서, 요양이 좀 필요해서요.”

         

         – 아하… 요양입니까? 그런 거라면 저희 파라다이스의 전문분야나 다름없으니,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해드릴 수 있습니다만? –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언니의 장례도 치러야 하기에 호화로운 생활은 힘들 것 같네요.”

         

         부주의한 사고에 휘말려 더는 그쪽이 협박할 가족도 남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하자 상대방을 잡아먹을 기세로 쏠려 있던 아론 드레이퓨스의 몸이 살짝 힘을 빼고 의자 등받이에 기대졌다.

         

         – …제가 분명히 경고하지 않았나요? 파라다이스의 사업을 방해하지 말라고. –

         

         “방해하지 않았습니다! 진술서에도 적어 냈듯이, 저는 업무 도중 지휘부에서 일방적으로 납치당해 지하로 옮겨졌습니다. ……심지어 그 과정에서 저를 구출하러 온 유일한 가족이 사망하기까지 했고요.”

         

         – ……. –

         

         기억을 최대한 되살려 그때 느꼈던 분노와 절망감을 표출한다.

         더 나아가 파라다이스의 무신경함에 기가 질린다는 듯이 말하자, 그의 얼굴에서 감정이 완전히 사라졌다.

         

         걸리는 점은 많겠지. 당연히 많을 수밖에 없다.

         우연이라 하기엔 지나치게 공교롭고, 고의라 하기엔 이득을 보는 사람이 없어서 앞뒤가 안 맞는다.

         

         그러나 남은 기록도, 살아남은 생존자들의 증언도.

         문제가 일어난 순서나 인과를 꼼꼼하게 따져봐도. 이만큼 명확하게 모든 걸 설명해주는 길은 없었다.

         

         – 지휘부 블랙박스에 당신 소유 단말기의 접속기록이 있었습니다만? –

         

         “제가 한 게 아니라 거기 계시던 관계자분께서 직접 하신 겁니다. …이것도 진술서에 적었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아무래도 불쾌함도 한 스푼 추가해야겠다.

         

         증언이나 진술을 계속 되물어서 모순점을 찾아보려는 모양인데, 진짜 엉뚱하게 휘말린 입장에서는 이걸 수백 번 반복한들 허점 같은 게 드러날 리가 없었다.

         

         – …그럼 깨어났을 시점에,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전투를 했다고 하셨는데. 지하가 초토화된 경위는 전혀 목격하지 못하신 겁니까? –

         

         어, 시발. 이건 빼고!

         

         “뒤늦게 마취제 효과가 올라와서 그만…. 다시 깨어났을 때는 이미 막사로 이송된 후였습니다.”

         

         내가 살인광선을 쏘는 걸 목도해버린 작업자의 증언이 발목을 잡았다.

         

         사실 그 친구의 목격담 덕택에 헬레나를 불행한 피해자 취급하기 쉬워지긴 했으나, 정당방위로 넘어가기는 힘든 피해현황이 나랑 엮이는 순간… 망한다. 그냥도 아니고 철저하게 망한다.

         

         헬레나가 명령불복종에 징수 부대 살해로 부동산을 다 뜯겼는데, 가게에 불을 지른 방화범은 과연 어떤 대우를 받을까? …너무 궁금해서 당장 전화를 끊고 조사하러 훌쩍 떠나고 싶었다.

         

         – ……. –

         “….”

         

         고요하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와 대화 내용을 들은 외야의 커플도 숨을 죽이긴 했지만, 그 이상으로 드레이퓨스가 아무 반응이 없어서 무서웠다.

         

         지금 흘러가는 일분 일초에도 괘씸죄라는 명목 하에 실시간으로 처벌 수위가 높아지는 것만 같았다.

         

         ……차라리 자수할까?

         

         어차피 심증만 가지고도 시민 몇 명 담그고 없던 일로 만들 수 있는 인간이랑 기싸움을 해서 뭐하냐, 이쪽의 가치를 고평가해주는 기회를 놓치지 말고 적당한 관계를 묶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였다.

         

         먼저 입을 열려던 순간.

         아주… 우연찮게도. 저쪽도 나와 비슷한 결론에 도달한 모양이다.

         

         – 뭐, 좋습니다. –

         

         “……?”

         

         어리둥절한 표정이 보이지 않아서 다행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협상이 파토 날 뻔했으니까.

         

         – 시민권도 못 구해… 적법한 노동력도 제공하기 힘들어… 파라다이스의 상품을 소비하지도 않아. 그런 인간들이라도 사회에 공헌할 방도를 만들고자, 야심 차게 수확(Harvest) 당하기라도 하라고 준비한 프로젝트였는데… 엉뚱한 피해자가 발생하게 된 점 진심으로 사과드리겠습니다. –

         

         무거운 고개가 꾸벅 숙여진다.

         흡사 내 비위를 맞춰주려는 듯한 정중한 태도, 그가 사과를 건넸다는 게 충격적이었다.

         

         더군다나 시원하게 풀어버리는 내용은 이미 내가 모든 걸 다 알고 있을 거라 가정하고 있었다.

         

         “……수확?”

         

         어떻게 반응해야 좋을지 몰라서, 일단 처음 듣는 단어라는 것처럼 대화를 이어 나갔다.

         정확히는, 다음 문장을 듣기 전까지 계속 하려고 노력했다.

         

         – 예, 수확이죠. 살아있을 때보다 죽었을 때가 더 부가가치가 높다면 이윤을 쫓는 저희는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내가 그냥 고개를 끄덕이고 넘어간다면, 일주일도 채 안 돼서 동일한 시설이 또 관문 밑에 세워지지 않을까 하는 삿된 망상.

         

         누군가 근본적인 결함을 지적하지 않는다면 단순한 파괴공작으로는 결코 회전을 멈추지 않을 거대한 톱니바퀴가 아른거렸다.

         

         “……장담하는데 그런 장사는 2년 내로 망해. 에나마에서 개발한 재생기술이 댁들이 깨작거리는 인체실험이나 장기밀매보다 훨씬 간편할 테니까.”

         

         아, 저질러버렸다.

         미래지식을 이용한 충고, 충고를 가장한 긍정.

         

         어떤 경로를 통했건 프로젝트에 대해 어렴풋이 알고 있었음을 시인해버렸지만 후회는 없었다.

         좆 같은 걸 보고도 잘 참고 넘어갈 성질머리였다면 애당초 이 자리에 있기는커녕, 그와 대립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한데, 마치 내려다보는 듯한 잘난 충고에. 드레이퓨스는 오히려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 하핫! 정말… 쓸모없는 사업의 폐기 결정을 내리는데 여러모로 도움을 주시는군요? 파라다이스를 위하는 마음이 이리도 넘치셔서 기쁩니다! –

         

         “…여러모로?”

         

         방금 내 말 중에서 중의적인 표현이 있었나?

         이 자리에서 쓰기엔 영 어울리지 않는 수식어라고 여겼지만 그도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 굳이… 기업측에서 이런 과투자를 하면서까지 발굴하려 하지 않아도, 쓸 만한 인재는 알아서 튀어나온다는 걸 보여주시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조만간 본사에서 뵙도록 하겠습니다. –

         

         일시적으로 말문이 막혔다.

         이 인간이 뭘 자연스럽게 초대장을 날리고 있어?!

         

         “……파라다이스 본사? 제가 거기를 왜 가야하….”

         

         – 업무상재해로 직원이 사망 시, 유족에게 지급할 위자료(Blood Money)는 대면해서 정산해드리는 걸 원칙으로 삼고 있으니까요! –

         

         …거짓말이다.

         헬레나는 사망 전에 이미 직위해제 당했기에 위자료 같은 게 따로 나올 리가 없었다.

         

         이건 부드러운 권유다.

         내가 가족의 죽음으로 인해 자신들에게 어떤 앙심을 품었다한들, 반드시 헐겁게라도 목줄을 채우고야 말겠다는 집념이 느껴졌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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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쓰고도 어이없는데 저는 또 지각했네요 이히히흐으흐ㅏㅇ각흑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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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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