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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1

     제2차 리큐르 사태.

     과거.

     크림슨 지브롤터와 샤를로트 남작 영애가 결혼을 한 이후.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은 카르멘 모르가니아와 혼인했다.

     당시에는 그다지 직접적인 전투가 있던 때는 아니었던 터라, 제국은 이웃 나라 국왕의 취임 및 결혼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리큐르를 선물로 보냈다.

     다양한 과일과 허브로 향을 낸 술은 도수가 그렇게 강하지 않았다.

     그래서 왕국의 남자들에게는 ‘이게 무슨 술이냐?’라는 소리를 들었으나, 여인들에게는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에게도.

     그는 제국의 사신이 선물로 보낸 그 자리에서 전부 들이켰다.

     곧 제국 사신에게 리큐르를 대량으로 사들이겠다고 선언했다.

     혹시, 지브롤터 협곡을 열어주는 걸까?

     그런 일은 없었다.

     변경백은 협곡을 열어주지 않았고, 다른 길을 물색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배를 통해 남부 해협을 거쳐 가장 제국과 가까운 세이레네 항구에 리큐르를 싣고 온 배가 정박했다.

     캐러벨 5대.

     창고는 물론이거니와 선원들이 지낼 휴게실까지 전부 주류 보관용 창고로 개조하여 리큐르를 가져왔다.

     그만큼, 제국은 왕국과의 교류에 진심이었다.

     제국은 리큐르 판매를 통해 왕국과의 관계 개선에 나서려고 했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가?

     왕국은 리큐르를 꿀꺽 삼켜버렸다.

     술을 뱃속에 들이부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캐러벨 다섯 대가 싣고 온 리큐르 수천 병을 받아놓고 대금을 치르지 않았다.

     제국은 리큐르 대금을 요구했으나,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은 이를 무시.

     자존심이 상한 제국은 지브롤터와 세이레네 두 곳을 동시에 공격하였으나, 결국 실패했다.

     그 이외에도 자잘한 사건사고가 있었으나, 그렇게 노스트럼 왕국과 테르시안 제국의 교류는 끝났다.

     끝난 줄로만 알았다.

     어느 한 제국 군인과 왕국 영애의 만남으로 인해, 교류의 문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협곡은 열리지 않았으나.

     제국은, 기어이 왕국으로 향하는 길을 여는 데 성공했다.

     한 제국 군인의 비극적인 죽음으로서.

     * * *

     [황태자 “하이레딘 장군의 죽음에 통탄스러워.”]

     “악어의 눈물이군.”

     제국신문을 보자마자 바로 그림이 그려진다.

     [황궁 “전쟁은 어떠한 경우에서도 있어서는 안 돼.”]

     [주전파는 어디에? 여론에 뭇매.]

     [이사벨라 황태자비 “루머에 정면 대응.” 자신은 관계없어.]

     ‘신문만 봐도 딱 보인다니까.’

     사람의 성향을 알고 그가 세운 전략을 바탕으로 하여, 제국의 국민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 하는지 분석한다.

     ‘내부의 정적을 여론으로 제거하고.’

     주전파에 대한 여론 악화.

     황태자비를 비롯한 주전파 억제.

     화평 내지는 친화적 분위기 조성.

     ‘외부로는 왕국과 협상을 통해, 정식으로 왕국에 진입한다.’

     노스트럼 왕국과 물밑 협상 개시.

     세이레네 항구의 개방.

     세이레네 영애와 함께 하는 하이레딘 장군에 대한 추모식.

     [故 하이레딘 “더 이상 나 같은 비극이 없기를. 제국과 대륙에 영광이 있으라.]

     이건 과연 이 죽었다고 하는 하이레딘의 유언인가?

     아니다.

     ‘악취미 또 도졌네.’

     이런 취향의 대사는 언제나 황태자가 조작한 유언이다.

     ‘유언이야말로 인간이 가장 마지막에 남기는 화려한 흔적이라고 했던가.’

     실제로는 아마도 황태자를 향해 쌍욕이나 저주를 퍼붓거나, 혹은 의문을 가진 채 즉사했을 것이다.

     ‘하이레딘을 잘 모르기는 하지만, 워낙 자주 본 레퍼토리라서.’

     하이레딘이라는 인간을 죽인 건 황태자의 수하거나, 혹은 황태자 본인이 직접 죽였을 가능성이 농후하니.

     궁극적인 목적?

     당연히 왕국으로의 침투다.

     

     궁극적으로는 군사력에 의한 정복 전쟁을 노리겠지만, 그전에 왕국에 관한 첩보를 수집하려면 평화적인 분위기가 중요하지 않겠는가.

     ‘아무것도 모르고 제국한테 다 뜯겨나가겠지. 병력 규모, 지휘관, 지형, 군사력 전부.’

     지형 정보 갱신.

     전쟁 발발 시 적이 될 이들에 대한 정보 수집.

     왕국에 불만을 품은 이들의 내란을 선동하기 위한 사전작업.

     왕국 백성들에게 제국에 대한 선망을 심어, 차후 정복을 한 뒤에도 제국을 선호하도록 하는 분위기 조성.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잠시, 매국노 그레이를 끌어올린다.

     ‘여기까지는 다 똑같이 움직였겠지만, 전제가 달라.’

     매국노 변경백이 이 계획을 주도했다면, 나는 분명 하이레딘을 살려뒀을 것이다.

     ‘세이레네 영애와 결혼을 시킨 다음, 아이를 낳게 했겠지.’

     죽이는 게 아니라, 살려두고 생명을 만들게 둔다.

     ‘최대한 섞이게 만들어서, 두 국가 사이의 혼혈을 늘리는 거지.’

     능력 있는 제국 남자들에게 왕국의 어린 미녀들과 결혼할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준 다음.

     ‘오랜 전쟁이고 나발이고, 사랑 앞에서는 국경도 없는 법이니까.’

     아버지는 제국인이고 어머니는 왕국인인 혼혈 가정이 수도 없이 나올 수 있게 판을 깔 것이다.

     그리고.

     왕국이냐, 제국이냐 선택의 갈림길에 섰을 때.

     ‘제국을 선택하도록 유도한다.’

     아버지의 나라든 어머니의 나라든, 왕국보다 제국으로 가는 게 더 낫다는 판단이 든다면 누구나 제국으로 갈 것이다.

     솔직한 말로.

     ‘객관적인 입장에서만 본다면, 무능왕이랑 황제 중 누구 국민 할 거냐고 물으면 답은 정해져 있잖아.’

     한 국가의 국민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황태자가 다스리는 나라의 백성이라는 건 딱히 나쁜 일이 아니다.

     제국에는 제국 나름의 문제가 많겠지만, 적어도 단편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왕국보다 제국이 훨씬 낫다.

     바로 이 점이, 내가 ‘매국’을 해야 할 포인트.

     “로버트 경.”

     “예, 도련님.”

     “자네의 월급이 얼마지?”

     “……400만입니다.”

     내 뒤에 서 있던 로버트가 뚱한 목소리로 묻는다.

     “그거, 계약된 액수인가?”

     “그렇습니다.”

     “세금 떼고 나면 얼마고?”

     “…60%가 날아가니까, 어, 음….”

     “세금만 240만에 거기에서 더 줄어들겠군. 이것저것 다 빼고 나면.”

     “그렇죠?”

     왕국의 세금은 상당히 센 편이다.

     정정.

     평균이라고 할 수 있거나, 혹은 딱히 이상할 일이 아니다.

     ‘왕국은 이상한 게 아니야.’

     농민들이 내야 하는 세금은 연수익의 약 6~8할이다.

     수학적으로 대략 얼마다, 라고 정의를 내릴 수는 없으나, 대략적인 비율만 따지고 보면 그렇더라.

     지대라거나, 부역이라거나.

     그렇다면 제국은 어떠한가?

     “제국에서 자네 같은 위치에 있는 자의 연 소득은 얼마 정도 되는지 알고 있나?”

     “……그런 것도 신문에 나옵니까?”

     “당연히 나오지. 군인 월급을 제국은 제법 중요시 여기거든.”

     “저는 기사입니다.”

     “알아. 기사와 군인은 결이 다른 존재라는걸. 대충 비슷한 직급이라고 치고.”

     정식으로 서임을 받은 기사가 제국의 매직 미사일 싸개와 같은 취급을 받았다는 것에 로버트 경이 잠시 언짢아했으나.

     “평균적으로 350만을 받는다고 하는군.”

     “하! 역시나. 제국이 그렇죠.”

     “세금은 한 15% 정도고.”

     “…….”

     내가 직접 신문에 나온 수치를 손으로 가리키며 말하자, 로버트의 표정이 심각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

     심지어 아무 말조차 하지 않았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뻔하다.

     “이것저것 다 공제하고 나면, 월에 약 270 정도 남는다고 보면 될 걸세.”

     “으, 으음….”

     “그런데 그건 순수하게 제국에서 군인으로 올라갔을 때의 이야기고.”

     나는 제국 일보를 다시 펼쳤다.

     “자네가 만일 제국으로 전향한다고 한다면, 제국에서는 최소한 월 700은 주려고 할걸.”

     “헛.”

     로버트가 단숨에 헛바람을 들이켰다.

     “치, 칠백이요?!”

     “그래. 물론 제국은-”

     “700에 15%면, 거의 월 600이라는 거 아닙니까?!”

     “…이런 건 계산이 빠르군. 아쉽게도 제국은 소득이 누진세라, 소득이 높으면 세금도 많아.”

     “아….”

     “그래봐야 대략 30% 정도겠지만.”

     “…그래도 이득 아닙니까?”

     “그렇지.”

     나는 솜누스 가루를 빈 잔에 스푼으로 퍼낸 다음, 따뜻한 물을 부어 저었다.

     “그래서 어떻게, 제국으로 전향할 텐가?”

     “으음….”

     “제국은 돈이 많아. 왕국보다 인구도 많고, 내수시장도 활성화되어 있지.”

     가볍게, 솜누스 차를 마시며 안에 든 마나를 몸속으로 끌어당긴다.

     “제국 입장에서는 정말이지 이 거지 같은 지형만 아니었으면, 왕국은 진작 멸망했을 거야. 최소 200년 전에.”

     “하, 하하…. 그, 그래도 그렇게 되었다면, 저는 도련님 곁에 없었겠죠?”

     로버트가 주먹을 불끈 쥐며 자기 가슴을 두드렸다.

     “저는 월에 100이 남아도, 도련님을 지키겠습니다!”

     “감동적인걸. 그런 말을 한다고 월급 올려주거나 그러지는 못하는데.”

     “그러면 휴가를 주십시오!”

     “그게 목적이었군. 왜?”

     “어, 음, 사실은.”

     로버트가 은근한 목소리로 내게 속삭였다.

     “저, 세이레네로 구경을 가보고 싶습니다.”

     “…….”

     “아, 그, 그러니까! 제국에서 사람들 오는 거 궁금한 거지, 그들에게 몰래 접촉해서 전향한다거나 그런 건 아닙니다!”

     “당연히 알지. 왕국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궁금해할걸?”

     사교계를 통해 소문이 퍼졌다.

     “제국의 황태자가 직접 노스트럼에 온다고 하는데, 그 배짱이 궁금한 거겠지.”

     제국 황태자, 합스베르크 폰 테르시안의 세이레네 항구 방문.

     “크흠.”

     “남자다워서 좋다고 생각하나?”

     “뭐, 그건 좀 그렇잖습니까? 적진 한 가운데에, 그것도 황태자가 호위 하나도 없이 오겠다는 거니까요.”

     아직 왕국은 황태자의 진면모를 모른다.

     “듣자하니 상급 기사 수준보다는 강한 실력이라고 하던데.”

     “상급기사보다야 강하겠지.”

     그는 철저히 자기 전력을 숨기고 있으니까.

     “제국인이기는 하지만, 완전 상남자 아닙니까! 하하.”

     “소문만 놓고 보면 상남자긴 해.”

     자신이 만들어 낼 제국을 위해서라면 가족도 죽이는 철혈의 인간이니까.

     “사실은 다른 게 보고 싶어서 그런 거지?”

     “크흠.”

     내가 신문에 올려진 그림-사진 삽화를 가리키자, 로버트가 헛기침하며 시선을 피한다.

     “배에 바퀴를 단 게 어떻게 움직이는가.”

     “그, 그냥 궁금할 뿐입니다! 정말로 마차처럼 바다를 다닐 수 있는 건지!”

     사진에는 캐러벨의 옆에 바퀴가 여러 개 달려있었다.

     “저게 그 ‘평화의 상징’이라는 거 아닙니까! 하이레딘 장군이라는 자가 더 이상 군함은 쓸모가 없으니, 이제는 바다가 아니라 육지에서 사람들을 위해 쓰자고 한 대형 운송수단!”

     “하긴. 나도 궁금해서 직접 보고 싶기는 해.”

     배가 땅을 달린다.

     바다, 아니 강 위에 떠다니는 나룻배만 보더라도 이 말을 들었을 때는 이게 무슨 미친 소리인가 싶겠지.

     “세상에. 흐흐. 배가 땅을 달린답니다. 그냥 배를 해체하기 귀찮아서 양옆에 바퀴를 달고 굴리는 거나 다름없잖습니까? 하하.”

     “우습게 보이기는 해.”

     하지만 제국에서는 그걸 진짜로 가능하게 만들었다.

     “평지에서 노를 저어서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그게 제일 궁금한가보군.”

     누구나 궁금해할 수밖에 없다.

     특히 남자라면 더더욱 참을 수 없다.

     ‘바퀴 달린 무언가가 쌩쌩 달리고, 그 위에 탄다고 생각하면 누구나 해보고 싶어지는 법.’

     뭔가 미친 발상처럼 느껴지지만, 그게 실제로 가능하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그래서 휴가 중에 그걸 보러 가겠다는 건가.”

     “헤헤. 도련님?”

     로버트가 답지 않게, 어수룩하게 웃으며 고개를 숙인다.

     “다녀오면 꼭 말씀드리겠습니다! 제발, 보내주십시오!”

     “그런가. 그래. 구경시켜주지.”

     “우오오오!!”

     로버트가 주먹을 움켜쥐며 두 손을 들었다.

     “만세!”

     “그런데 휴가는 안 돼.”

     “…예?”

     로버트는 손을 든 그대로 굳었다.

     “호, 혹시 출장인 겁니까?! 그런 거죠? 직접 보고 오라는 게 업무인 거고, 출장비도 주시는 겁니까?!”

     “아니.”

     “……도련님?”

     “경의 업무는 계속 내 호위야.”

     나는 로버트를 향해, 움켜쥔 주먹을 뻗었다.

     “내가 갈 거거든.”

     “…우오오오!!”

     로버트가 환호성을 내지르며 나를 향해 주먹을 뻗었다.

     “역시 도련님! 제가 직접 마부석에 앉아, 도련님의 마차를 끌어드리겠습니다!”

     “그럴 필요는 없어. 경은 말에 타서 따라오면 되고, 마부는 전문가가 붙을 테니까.”

     “…도련님.”

     주먹을 부딪친 로버트의 표정이 굳어지기 시작했다.

     “설마, 지브롤터 전체가 가는 겁니까?”

     “아니. 나만.”

     남부에 가는 건 오직 나뿐이다.

     “대신, 따라가는 거야.”

     “누구를?”

     “마침, 저기 왔네.”

     창문 너머, 지브롤터 저택 정문에 익숙한 검은 마차 한 대가 멈춰 섰다.

     “아.”

     로버트는 마차의 장식을 보자마자 바로 인상을 찌푸렸다.

     “이건 진짜로 일이잖아요, 도련님.”

     외무대신, 헥스 자작의 마차가 지브롤터에 도착했다.

     “하아아…. 모처럼의 휴가가.”

     “참고로 제국과 왕국의 차이점 하나. 제국에는 유급휴가라는 개념이 존재한다고 하더군.”

     “…휴가를 쓰는데 돈을 준다고요?”

     “그래.”

     왕국은 여러모로, 제국보다 뒤처져 있다.

     “제국과 교류가 시작되면, 이런 것도 하나둘 왕국 사람들에게 크나큰 충격으로 다가오게 될 거야.”

     “…….”

     “미리 익숙해지게. 앞으로의 왕국은 크게 변할 테니.”

     사실, 진작에 변했어야 했다.

     “500년 동안 협곡을 막고 쇄국만 해서 고일 대로 고였으니, 바뀔 때도 되었지.”

     그리고 그 변화의 중심에는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이 아닌, 나리아가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자네가 지켜야 하는 건 나뿐만이 아니라-”

     * * *

     “그레이 지브롤터. 카르멘 왕비께서 너만 오라고 하셨다.”

     “…….”

     “왜. 뭐.”

     헥스 자작은 나를 만나자마자, 이상한 소리를 지껄였다.

     “그.”

     나는 그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귀족으로서, 메이드 하나 정도는 데리고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메이드?”

     헥스 자작은 내 질문에 콧방귀를 뀌더니.

     “카르멘 왕비께서 어머니처럼 챙겨주고 보살펴 주실 텐데, 뭐 하러?”

     

     내 말을 단칼에 잘랐다.

     “짐 챙겨. 카르멘 왕비께서 너를 필요로 하신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후

    거짓말은 하지 않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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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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