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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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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을 만나기 전의 아이리스는 정신이 완전히 무너져,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모든 감각을 차단해야 했다. 새카만 어둠 속에서 몸을 웅크리고 오늘과 내일을 구분하지 못한 채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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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그녀를 다정한 손길로 끌어내 준 것이 리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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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 대해 처음 배우기 시작한 아이처럼 아이리스는 리안의 손을 꼭 잡은 채 한 걸음씩 세상을 향해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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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를 만나기 전에 살았던 잔혹한 세계는 전부 꿈처럼 느껴질 정도로, 리안과 함께 하는 생활은 너무나 달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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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리스는 주변을 인지하는 걸 넘어 점차 자신이 어떠한 상황에 놓여있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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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에게 대가 없이 다정함을 쏟아부어 주는 리안과 자신이 남매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와 가족이라는 사실에 혐오감이 들던 제 하얀 머리카락이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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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끝이 간지러울 정도의 행복함에 잠기기 무섭게, 잔혹한 현실이 성큼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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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상 웃고 있지만 혼자 있을 때마다 늘어가는 흉터와 피 냄새, ‘큰손님’이라는 사람들에게 몇 번이고 불려갔다가 지독할 정도의 피 냄새를 묻히고 돌아오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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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눈을 꼭 감고 그의 웃음만을 보고 있기에 알지 못했던 현실이 아이리스의 숨통을 조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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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괜찮아. 리안이 괜찮다고 했으니까. 그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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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리스는 본인의 개인적인 생각을 어떻게든 머릿속에 지워버려 노력했다. 마치 살아 숨 쉬는 인형처럼 그렇게 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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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멍청하게 살고 싶은데, 어느 순간부터 아이리스는 잔혹한 현실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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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리스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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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나한테 이렇게 잘해줘? 가족은 원래 이런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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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리스는 가족이 무엇인지 몰랐다.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었기에 혼란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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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아프다고 안 해? 왜 원망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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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연하다는 듯이 웃고, 자신이 없는 곳에서 괴로워한다. 리안은 자신이 ‘오빠’라는 이유로 그 모든 것을 감내하고 있었다. 아이리스는 그런 리안을 이해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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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리스는 제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는 손길에 고개를 들었다. 리안이 애정과 걱정을 눈동자에 가득 매단 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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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리스 어디 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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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연하다는 듯 쏟아져 들어오는 걱정이 달콤하다. 그의 품에 안겨 아프다고 울며 매달리고 싶었다. 간지럽게 이마에 닿은 손길은 아이리스에게 열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다가 가볍게 볼을 쓸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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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은 안 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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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가에 맴돌던 말이 결국 꿀꺽 목구멍 안쪽으로 삼켜졌다. 리안이 꼭꼭 숨기고 있는 비밀을 입에 담으면, 그나마 유지되고 있는 관계가 깨져버릴까 두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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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의 입술이 자신을 향한 원망을 담고, 애정어린 눈동자가 산산이 부서져 눈물을 흘린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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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리스는 리안에게 미움받고 싶지 않았다. 그렇기에 이번에도 그녀는 머릿속을 하얗게 비워버렸다. 외면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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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응, 아냐. 괜찮아.”
   “그래? 정말로?”
   “응, 더 먹을래.”
   “그럴래? 많이 먹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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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 이거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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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의 굶주림도 피 냄새도 상처도 전부 없었던 일처럼 무시한 채, 그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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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은 리안 없이 살 수 없으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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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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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로운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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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뼈다귀 상태로 이를 딱딱 부딪치며 바닥에 쓰러져 몸을 덜덜 떠는 노인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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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헉,허어억,허억…”
   “괜찮으세요? 저…좀 부끄러운데…”
   “히이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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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만에 나를 호출한 노인은 이번에야말로 바닥을 기게 해준다면서 칼날로 내 피부를 벗겨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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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당 같은 표정을 지으며 내 피부에 칼을 대고 쭉 밀어낸 순간, 내 피부가 과일 껍질 처럼 벗겨지기 시작했다. 피부뿐만이 아니라 내 옷과 장기들까지 껍질처럼 벗겨져 바닥에 쌓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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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일을 잘 깎으면 껍질이 끊기지 않고 깎이지 않던가? 노인은 손재주가 좋은지 나를 딱 그렇게 깎아버렸다. 그 탓에 난 스켈레톤 꼴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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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건 다 괜찮은데, 온몸에 구멍이 슝슝 뚫려있어 뭔가 부끄러웠다. 그래서 옷을 달라고 했는데 노인이 철푸덕 바닥에 주저앉더니 계속 뒤로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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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켈레톤을 무서워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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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그 세계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었다. 좀비나 스켈레톤을 보면 비명부터 지르는 사람들. 노인이 딱 그런 사람인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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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만 약한 줄 알았는데 마음도 여리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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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속으로 그리 생각하며 몸을 웅크린 채 힉힉거리는 노인을 바라보았다. 그의 바지춤이 어쩐지 축축하게 -…나는 조용히 시선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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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용건은 이게 전부죠? 그럼 전 이만 가볼게요?”
   “힉..! 꺼,꺼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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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락까지 받았으니 더 이상 여기 있을 이유는 없었다. 하얀 방을 빠져나와 복도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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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응? 이번에는 함정이 발동 안 하네? 아, 스켈레톤이라서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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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번과 달리 순식간에 하얀 공간을 빠져나왔다. 옷장을 뒤져 셔츠와 바지를 챙겨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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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할아버지 때문에 옷이 없어진 거니까. 이 정도는 이해해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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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직히 이 방법 말고는 밖으로 나갈 방법이 없었다. 어느새 몸이 원래대로 돌아와 있었기에 별문제 없이 노인의 방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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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가던 중 익숙한 얼굴과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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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앗,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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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번에 배부르게 식사를 하게 해줬던 남자가 눈앞에 서 있었다. 그는 조금 당황한 듯하다가 이내 사람 좋은 표정으로 인사를 받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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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고 보니 제 이름을 알려드린 적이 없군요. 제 이름은 앙쇼입니다. 편하게 불러주세요.”
   “네, 그럴게요. 앙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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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말에 앙쇼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지진이 난 것처럼 흔들리고 있다고 해야 하나?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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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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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앙쇼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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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짜 미친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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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리 앙쇼가 허락했다고 해도 노예 주제에 ‘님’자 조차 붙이지 않다니, 이런 일은 앙쇼도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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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육을 제대로 못 받았다기엔…투기장에 꽤 오래 있었던 걸로 아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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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앙쇼는 속으로 리안의 불쾌한 행동을 적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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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로 교육하라고 해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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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속으로 그리 생각하며 무너지려는 표정을 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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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나저나…반숙에게 불려갔다기에 엉망인 꼴로 나올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상태가 좋군. 옷도 멀쩡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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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앙쇼가 느릿하게 리안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반숙을 만나고 왔다기엔 너무나 멀쩡한 모습에 앙쇼는 짜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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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쯧, 평소처럼 고문이나 할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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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앙쇼는 리안이 반숙에게 불려갔다는 얘기를 듣자마자 한 가지 계획을 세웠다. 사람이 가장 마음이 약해지는 순간은 큰 고통을 느낀 이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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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별의 고통이든, 육체의 고통이든…그 이후에 다가와 위로해주면 대체로 큰 감명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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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앙쇼는 고문을 받고 나와 정신이 하나도 없는 그를 돌봐주어 호감도를 높일 생각이었다. 그런데, 반숙이 그답지 않게 노예에게 상처 하나 내지 않고 돌려보낸 탓에 계획이 어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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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번에 식사 정말 감사했어요. 덕분에 동생도 맛있는 음식을 배불리 먹을 수 있었어요.”
   “그렇군요. 그런데 -…오늘은 왜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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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앙쇼는 조금이나마 희망을 가지고 반숙과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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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어떤 손님이 저를 호출하셔서 이야기를 하고 온 참이에요. 아무래도 마음이 여리고 몸이 약한 노인분이신 거 같아요.”
   “마음이..여리고..몸이 약,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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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무나 당황스러운 말에 앙쇼가 말을 더듬었다. 리안은 이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계속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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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작은 일에도 금방 충격받으시고, 몸도 여기저기 많이 아프신 거 같더라고요. 왜 저를 부르시는지는 모르겠지만…아마 적적해서 그런 게 아닐까요?”
   “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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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이 잘 통하는 상대를 만났다고 생각했는지 리안이 줄줄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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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지? 반숙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만난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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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앙쇼가 혼란을 느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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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 오늘은 뭘 했나요?”
   “음, 오늘은 가죽을 깎았어요.”
   “…예?”
   “갑자기 그러실 줄은 몰라서 조금 당황했어요. 여기저기가 막 보이면 부끄럽잖아요. 아무래도.”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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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앙쇼는 결국 표정 관리에 실패했다. 그는 교수님의 설명을 듣는 학생처럼 멍한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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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여튼 그래서 -…아, 엘리베이터가 왔네요. 저는 이만 가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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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이 떠나고, 엘리베이터 앞에는 멘탈이 나간 앙쇼만 남게 되었다. 앙쇼는 멍한 얼굴로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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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건…도대체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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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름칠을 한 것처럼 부드럽게 돌아가던 머리가 완전히 굳어버린 것만 같았다. 앙쇼는 태어나 처음 마주하는 진정한 ‘미지’ 앞에 작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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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하하…더…재미있어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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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앙쇼는 두려움을 잊으려는 사람이 으레 그렇듯 두려움을 분노와 오기로 채워나갔다.
   
   
   앞서 패배한 두사람과 같은 절차를 그대로 밟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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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후원해주신 익명F님! 혈소연님 감사합니다 ! 연재 열심히 하겠습니다! ‘0’9
Ilham Senjaya님! 오늘도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되세요 :3

나이든 노인을 바닥에 기게 만들다니…무서운 리안…

추천과 선작은 사랑입니다!다음화 보기

리안을 만나기 전의 아이리스는 정신이 완전히 무너져,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모든 감각을 차단해야 했다. 새카만 어둠 속에서 몸을 웅크리고 오늘과 내일을 구분하지 못한 채 시간을 보냈다.

그런 그녀를 다정한 손길로 끌어내 준 것이 리안이었다.

세상에 대해 처음 배우기 시작한 아이처럼 아이리스는 리안의 손을 꼭 잡은 채 한 걸음씩 세상을 향해 나아갔다.

그를 만나기 전에 살았던 잔혹한 세계는 전부 꿈처럼 느껴질 정도로, 리안과 함께 하는 생활은 너무나 달콤했다.

아이리스는 주변을 인지하는 걸 넘어 점차 자신이 어떠한 상황에 놓여있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자신에게 대가 없이 다정함을 쏟아부어 주는 리안과 자신이 남매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와 가족이라는 사실에 혐오감이 들던 제 하얀 머리카락이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발끝이 간지러울 정도의 행복함에 잠기기 무섭게, 잔혹한 현실이 성큼 다가왔다.

항상 웃고 있지만 혼자 있을 때마다 늘어가는 흉터와 피 냄새, ‘큰손님’이라는 사람들에게 몇 번이고 불려갔다가 지독할 정도의 피 냄새를 묻히고 돌아오는 모습.

두 눈을 꼭 감고 그의 웃음만을 보고 있기에 알지 못했던 현실이 아이리스의 숨통을 조여왔다.

‘괜찮아. 리안이 괜찮다고 했으니까. 그러니까…’

아이리스는 본인의 개인적인 생각을 어떻게든 머릿속에 지워버려 노력했다. 마치 살아 숨 쉬는 인형처럼 그렇게 살고 싶었다.

..그렇게 멍청하게 살고 싶은데, 어느 순간부터 아이리스는 잔혹한 현실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아이리스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생각했다.

‘왜 나한테 이렇게 잘해줘? 가족은 원래 이런 거야?’

아이리스는 가족이 무엇인지 몰랐다.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었기에 혼란스러웠다.

‘왜 아프다고 안 해? 왜 원망하지 않아?’

당연하다는 듯이 웃고, 자신이 없는 곳에서 괴로워한다. 리안은 자신이 ‘오빠’라는 이유로 그 모든 것을 감내하고 있었다. 아이리스는 그런 리안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이리스는 제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는 손길에 고개를 들었다. 리안이 애정과 걱정을 눈동자에 가득 매단 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이리스 어디 아파?”

당연하다는 듯 쏟아져 들어오는 걱정이 달콤하다. 그의 품에 안겨 아프다고 울며 매달리고 싶었다. 간지럽게 이마에 닿은 손길은 아이리스에게 열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다가 가볍게 볼을 쓸어주었다.

“열은 안 나는데?”

입가에 맴돌던 말이 결국 꿀꺽 목구멍 안쪽으로 삼켜졌다. 리안이 꼭꼭 숨기고 있는 비밀을 입에 담으면, 그나마 유지되고 있는 관계가 깨져버릴까 두려웠다.

그의 입술이 자신을 향한 원망을 담고, 애정어린 눈동자가 산산이 부서져 눈물을 흘린다면…

아이리스는 리안에게 미움받고 싶지 않았다. 그렇기에 이번에도 그녀는 머릿속을 하얗게 비워버렸다. 외면해버렸다.

“으응, 아냐. 괜찮아.”

“그래? 정말로?”

“응, 더 먹을래.”

“그럴래? 많이 먹어.”

그래, 이거면 된다.

리안의 굶주림도 피 냄새도 상처도 전부 없었던 일처럼 무시한 채, 그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면 되는 것이다.

자신은 리안 없이 살 수 없으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

평화로운 오후.

나는 뼈다귀 상태로 이를 딱딱 부딪치며 바닥에 쓰러져 몸을 덜덜 떠는 노인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헉,허어억,허억…”

“괜찮으세요? 저…좀 부끄러운데…”

“히이익…!”

며칠 만에 나를 호출한 노인은 이번에야말로 바닥을 기게 해준다면서 칼날로 내 피부를 벗겨버렸다.

악당 같은 표정을 지으며 내 피부에 칼을 대고 쭉 밀어낸 순간, 내 피부가 과일 껍질 처럼 벗겨지기 시작했다. 피부뿐만이 아니라 내 옷과 장기들까지 껍질처럼 벗겨져 바닥에 쌓이게 되었다.

과일을 잘 깎으면 껍질이 끊기지 않고 깎이지 않던가? 노인은 손재주가 좋은지 나를 딱 그렇게 깎아버렸다. 그 탓에 난 스켈레톤 꼴이 되었다.

다른 건 다 괜찮은데, 온몸에 구멍이 슝슝 뚫려있어 뭔가 부끄러웠다. 그래서 옷을 달라고 했는데 노인이 철푸덕 바닥에 주저앉더니 계속 뒤로 물러났다.

‘스켈레톤을 무서워하나?’

개그 세계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었다. 좀비나 스켈레톤을 보면 비명부터 지르는 사람들. 노인이 딱 그런 사람인 듯했다.

‘몸만 약한 줄 알았는데 마음도 여리구나.’

속으로 그리 생각하며 몸을 웅크린 채 힉힉거리는 노인을 바라보았다. 그의 바지춤이 어쩐지 축축하게 -…나는 조용히 시선을 돌렸다.

“오늘 용건은 이게 전부죠? 그럼 전 이만 가볼게요?”

“힉..! 꺼,꺼져!”

허락까지 받았으니 더 이상 여기 있을 이유는 없었다. 하얀 방을 빠져나와 복도를 걸었다.

‘응? 이번에는 함정이 발동 안 하네? 아, 스켈레톤이라서 그런가?’

저번과 달리 순식간에 하얀 공간을 빠져나왔다. 옷장을 뒤져 셔츠와 바지를 챙겨입었다.

‘그 할아버지 때문에 옷이 없어진 거니까. 이 정도는 이해해주겠지?’

솔직히 이 방법 말고는 밖으로 나갈 방법이 없었다. 어느새 몸이 원래대로 돌아와 있었기에 별문제 없이 노인의 방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가던 중 익숙한 얼굴과 마주쳤다.

“앗,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저번에 배부르게 식사를 하게 해줬던 남자가 눈앞에 서 있었다. 그는 조금 당황한 듯하다가 이내 사람 좋은 표정으로 인사를 받아주었다.

“그러고 보니 제 이름을 알려드린 적이 없군요. 제 이름은 앙쇼입니다. 편하게 불러주세요.”

“네, 그럴게요. 앙쇼.”

내 말에 앙쇼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지진이 난 것처럼 흔들리고 있다고 해야 하나?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

앙쇼는 생각했다.

‘진짜 미친놈인가?’

아무리 앙쇼가 허락했다고 해도 노예 주제에 ‘님’자 조차 붙이지 않다니, 이런 일은 앙쇼도 처음이었다.

‘교육을 제대로 못 받았다기엔…투기장에 꽤 오래 있었던 걸로 아는데?’

앙쇼는 속으로 리안의 불쾌한 행동을 적어놓았다.

‘따로 교육하라고 해야겠어.’

속으로 그리 생각하며 무너지려는 표정을 갈무리했다.

‘그나저나…반숙에게 불려갔다기에 엉망인 꼴로 나올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상태가 좋군. 옷도 멀쩡하고.’

앙쇼가 느릿하게 리안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반숙을 만나고 왔다기엔 너무나 멀쩡한 모습에 앙쇼는 짜증이 났다.

‘쯧, 평소처럼 고문이나 할 것이지.’

앙쇼는 리안이 반숙에게 불려갔다는 얘기를 듣자마자 한 가지 계획을 세웠다. 사람이 가장 마음이 약해지는 순간은 큰 고통을 느낀 이후이다.

이별의 고통이든, 육체의 고통이든…그 이후에 다가와 위로해주면 대체로 큰 감명을 받는다.

앙쇼는 고문을 받고 나와 정신이 하나도 없는 그를 돌봐주어 호감도를 높일 생각이었다. 그런데, 반숙이 그답지 않게 노예에게 상처 하나 내지 않고 돌려보낸 탓에 계획이 어그러졌다.

“저번에 식사 정말 감사했어요. 덕분에 동생도 맛있는 음식을 배불리 먹을 수 있었어요.”

“그렇군요. 그런데 -…오늘은 왜 여기에?”

앙쇼는 조금이나마 희망을 가지고 반숙과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물었다.

“아, 어떤 손님이 저를 호출하셔서 이야기를 하고 온 참이에요. 아무래도 마음이 여리고 몸이 약한 노인분이신 거 같아요.”

“마음이..여리고..몸이 약,한?”

너무나 당황스러운 말에 앙쇼가 말을 더듬었다. 리안은 이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계속 말을 이었다.

“네! 작은 일에도 금방 충격받으시고, 몸도 여기저기 많이 아프신 거 같더라고요. 왜 저를 부르시는지는 모르겠지만…아마 적적해서 그런 게 아닐까요?”

“아아…”

말이 잘 통하는 상대를 만났다고 생각했는지 리안이 줄줄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뭐지? 반숙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만난 건가?’

앙쇼가 혼란을 느끼며 말했다.

“그…럼 오늘은 뭘 했나요?”

“음, 오늘은 가죽을 깎았어요.”

“…예?”

“갑자기 그러실 줄은 몰라서 조금 당황했어요. 여기저기가 막 보이면 부끄럽잖아요. 아무래도.”

“아…”

앙쇼는 결국 표정 관리에 실패했다. 그는 교수님의 설명을 듣는 학생처럼 멍한 표정을 지었다.

“하여튼 그래서 -…아, 엘리베이터가 왔네요. 저는 이만 가볼게요.”

리안이 떠나고, 엘리베이터 앞에는 멘탈이 나간 앙쇼만 남게 되었다. 앙쇼는 멍한 얼굴로 생각했다.

‘저건…도대체 뭐지?’

기름칠을 한 것처럼 부드럽게 돌아가던 머리가 완전히 굳어버린 것만 같았다. 앙쇼는 태어나 처음 마주하는 진정한 ‘미지’ 앞에 작아졌다.

“하,하하…더…재미있어지네.”

앙쇼는 두려움을 잊으려는 사람이 으레 그렇듯 두려움을 분노와 오기로 채워나갔다.

앞서 패배한 두사람과 같은 절차를 그대로 밟고 있었다.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나 혼자 장르가 다르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n the world of comedy anime, I was living an ordinary life until I became possessed by a dark fantasy novel I was reading before falling asleep. ‘Hahaha! Don’t hold a grudge -..!’ ‘Ugh, cough cough…seriously…my clothes are ruined.’ ‘…!?’ Though I was stabbed in the stomach, I calmly stood up and pulled out the spear. Originally, residents of the comedy world are a race that can be torn into 100 pieces and still come back to life the next day. ‘Stop it! Stop now! How long do you plan to sacrifice me?’ ‘No…I mean..’ ‘I’ve become strong to protect you…what have I become?’ Residents in the comedy world are just a race that vomits blood even if they stub their toe. I never made any sacrifices..but my delusion deepens and my obsession grows. One day, while I was half-imprisoned and taking care of some pitiful kids… ‘Are you the boss?’ ‘Excuse me?’ Before I knew it, I had become the behind-the-scenes boss of a huge underworld organ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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