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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1

    <61 – 롯토의 합리적인 의심>

     

    플라톤 교수의 학대 아닌 학대에 시달리고 온 학생들은 점심시간 포함 3시간에 걸친 휴식을 취하고도 아직 안색이 창백했다.

    체력이 덜 회복되어서 그런 이들도 있는가하면 다가올 강의가 두려워서 그런 이들도 있었다.

     

    “교장의 강의는 얼마나 힘들까요?”

    “저 막장스러운 교수들을 모아온 장본인이니 분명 가장 힘들겠죠.”

    “오크노디는 2교시에 강의를 듣고 왔다던데요?”

    “…확신했어요. 저 아이는 오크와의 혼혈이 맞아요. 그게 아니면 저 체력은 납득이 불가능해요.”

    “종족차별적인 언사…라고 하고 싶지만 솔직히 저 정도 체력이면 오크 소리 듣는 게 당연하죠.”

    “그쵸? 롯토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어?! 그, 잘 모르겠는데…….”

     

    롯토는 오랜만에 말을 건 친구들에게 무심코 대답했다가 자신을 보고 앗차 하는 친구의 표정에 속으로 쌍시옷을 연발했다.

    자신이 근처에 서있으니까 실수로 무심결에 예전처럼 말을 건 것이다.

    후회를 할 거면 말이나 먼저 걸지 말던지.

    말을 걸 거면 표정관리나 똑바로 하던지.

    오크노디와의 대결 이후로 나락으로 처박힌 입장이 똑똑히 실감되었다.

     

    “우, 우린 이만 가볼게. 하하.”

    “아, 왠지 저쪽 자리가 맘에 든다. 그치?”

     

    어색한 대화를 나누며 자리를 옮기는 여학생들.

    조금 거리가 떨어졌다고 그새 목소리를 줄였지만 주의를 기울이면 다 들리는 애매한 크기로 말을 걸었던 학생을 힐난했다.

     

    “바보야. 롯토는 이제 우리 라인 아니잖아.”

    “왜 말 걸었어?”

    “미안. 왠지 구도가 예전이랑 같아서.”

    “그러다 우리도 같이 찍히면 어쩌려고 그래?”

    “맞아. 메스각키 황녀님은 제국귀족의 명예를 실추시켰다고 롯토를 아니꼽게 보고 오크노디도 좋은 감정은 없을 거 아냐. 롯토랑은 가까이 지내면 안 돼.”

    “알고 있다니깐…….”

     

    이럴 줄 알았으면 오크노디랑은 싸우지 말걸.

    후회를 하는 사이에 오크노디 패거리라 불리는 4인방이 강의실 한쪽에 모여 앉았다.

    기사학부 지망생인 롯토는 그중 손오천과 겹치는 강의가 몇 개 있어서 오고가며 본 기억이 있는데, 손오천도 오크노디만큼은 아니어도 인상적이었다.

     

    마나연공법.

    마나연단법.

     

    마나의 총량과 체질을 개량하는 두 비전기술이 없이도 타고난 통뼈와 무식한 힘, 터프한 체력으로 뭐든지 거뜬히 이겨내는 무식한 야만인.

    몸이 튼튼한 사람에게는 수련이나 단련 따위는 필요 없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만드는 정말 부러울 정도로 강한 원숭이수인이었다.

     

    “저기 봐. B그룹 수석이야.”

    “어떻게 우리랑 같은 교복을 입었는데 스타일이 저렇게 좋지?”

    “한쪽은 신에게 선택받은 용사고 다른 쪽은 12주신 중 하나가 고른 성녀잖아. 신의 사랑을 받을 정도면 우리 같은 사람이랑은 매력의 수준이 다르겠지.”

     

    미지의 원석인 오크노디나 손오천에 비하면 개인과외로 남들보다 좀 더 빨리 마나를 쌓고 체질을 개선했을 뿐인 자신은 밑천이 다 드러났다.

    실력도 지위도 어중간한 롯토는 대놓고 멸시까진 안 당해도 친애의 한 마디를 나눌 동료도 없는 어중간한 신세가 됐다.

    B그룹에서는 내쳐졌지만 그렇다고 A그룹과 붙기에는 자존심도 허락하지 않고 지금보다 더한 적대행위에 노출될 수도 있는 외톨이 신세.

    그것이 너무 서글펐다.

    자신을 흉보는 B그룹 옛 친구들의 대담을 듣기 싫어서 A그룹 학생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처지도,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외로운 신세도.

     

    -내가 왔다!

     

    “꺄아악!”

    “으아악!”

    “진짜 교장이다!”

     

    악마라도 나타난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학생들 너머로 교단에 나타난 거대한 용의 머리.

    거칠게 뿜어진 콧김이 뜨겁게 공기를 달구며 강의실 전체를 휩쓸더니 학생들의 단추를 푼 교복재킷과 스커트자락이 정신없이 흩날렸다.

     

    -이번 강의명은 교장의 가르침. 너희에게 아카데미의 쓴맛을 가르쳐주마.

     

    교장의 커다란 입이 음흉한 뒤틀림을 만들었다.

     

    -지금부터 5인1조 조를 짜라. 이 강의는 모든 점수배점을 조별로 측정하는 조별과제 강의다!

     

    롯토는 그만 울어버릴 뻔했다.

    어떻게 첫 강의부터 조를 짤 수가 있지?

    나 같은 아싸는 어떡하라고?

    아싸는 학업도 수행하지 말라는 뜻인가?

     

    “교장님. 인원이 부족해서 5명이 되지 못한 조는 어떻게 되나요?”

     

    교장은 대답했다.

     

    -감점이다.

     

    “!!”

     

    학생들의 시선이 다급히 서로 오갔다.

    롯토는 더욱 울고 싶었다.

    기껏 가문의 지원을 받아 세계제일의 기프트 아카데미에 입학해놓고 몇 개월도 안 지나서 감점에 이은 낙제를 받고 가문으로 돌아온다면.

    과연 부모님은 어떤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자매들은 얼마나 하찮게 그녀를 멸시할까.

    주변 귀족가에서는 덜떨어진 자식이라며 비웃음을 짓고, 현역 아카데미 생활을 하는 자식들의 연락을 받고 그녀가 아싸라서 낙제했다는 이야기를 전하겠지.

    그 결과, 가문에서는?

     

    “신랑은 구해주마.” 나 “이 남자와 결혼해라. 아니면 평생 수녀원에 처넣어주마.” 같은 소리나 하겠지.

     

    격투가로서의 커리어는 시작해보기도 전에 끝장나고 ‘귀족여성’으로서의 가치를 살리기 위한 정략혼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 찾아온다.

    권세가의 집안에 생긴 것도 멀쩡하지만 여자를 때리거나 부인이 많은 쓰레기와 결혼을 하거나.

    한미한 가문에 배도 튀어나오고 흉한 생김새를 지닌데다가 자신을 음흉한 눈으로 보는 변태지만 사람은 착하다고 믿고 싶은 남자와 결혼을 하거나.

    불행한 미래.

    단절된 경력.

    자유 따위는 없이 누군가의 아내, 한 아이의 엄마로서 살아가는 미래만이 기다린다.

    가치를 잃은 귀족여자의 말로가 머릿속에 한편의 가극처럼 펼쳐졌다.

    그녀는 누군가의 아내도, 엄마도, 수녀도 되고 싶지 않았다.

    절대로 안 된다.

    그런 꼴만큼은 맞이하고 싶지 않았다.

     

    “저기! 우, 우리 같이 조 짜지 않을래…?”

     

    당당하게 말은 걸었지만 이내 쭈그리가 되어버린 롯토의 모습에 전 친구들은 서로 시선을 교환하고는 고개를 저었다.

     

    “미안해요. 우린 친한 사람끼리 합을 맞춰보고 싶어서요. 이해하시죠?”

     

    역시 손절이다.

    제국귀족 출신은 사교적인 미소로 무장한 채 모두 눈으로 그녀에게 말하고 있다.

    달라붙지 마.

    말 걸지 마.

    창피를 당하고 싶어?

    자신을 부추겨서 싸움을 붙였던 주제에 비겁하게 등을 돌리는 꼴에 화가 치밀었다.

     

    “매스각키 황녀님! 저흰 황녀님뿐인 거 아시죠?”

    “하~ 그렇게 내가 좋다니 어쩔 수 없네. 조금만 어울려줄까~?”

     

    2황녀 매스각키 파벌.

     

    “용사. 당신 실력은 소문이 실제의 반도 못 따라가더군. 괜찮다면 합을 맞춰보지 않겠나?”

    “좋아요.”

     

    B그룹 수석 용사파벌.

     

    “명가의 후계자끼리 힘을 합쳐 조별과제라는 위기를 타개하지 않겠나?”

    “거절한다. 치킨가의 애송이 따위와 손을 잡겠냐.”

    “같은 공신가문이라고 대접해줬더니 분수를 모르는군. 포테이토피자 가문의 애송이 녀석. 조별결투가 벌어지거든 가장 먼저 탈락시킬 조는 너희다!”

     

    신성중앙제국의 3대공신가문 중 둘.

    치킨가문파벌과 피자가문파벌.

    치열한 경쟁 속에서 롯토는 차라리 눈을 돌렸다.

    B그룹의 모두가 자신을 버렸다면 그녀도 B그룹에 구애받을 때가 아니다.

    눈치만 보다가 낙오자가 되어 가문에 돌아가 롯토 개인으로서의 인생과 자유가 끝난다면 그것보다 더한 수치는 없다.

    필요하다면 평민과의 합작도 감내해야만 한다!

     

    “너, 너희들! 원한다면 격투에 조예가 있는 이 롯토님이 동료가 되어줄 수도 있어.”

     

    A그룹에 속한 변방귀족들이라면 중앙귀족인 자신의 제안에 껌뻑 죽겠지.

    A그룹 여학생들의 수장이라던 아카디아 공녀부터 타국의 문물에 관심이 많다지 않은가.

    제국귀족인 자신이 한 편이 되어준다면 기꺼이 받아줄 것이 틀림없다.

     

    “하아? 당신은 염치라는 것도 없나요? 우리 귀여운 디를 모욕했던 사람을 받아줄 리가 없잖아요.”

     

    틀림없었을 계획은 곧바로 무너졌다.

    A그룹 여학생들의 정신적 지주인 아카디아만이 그녀에게 적대적인 것이 아니다.

    A그룹 남학생들의 정신적 지주인 안데르센 대공자 또한 아니꼬운 얼굴로 재수 없게 말했다.

     

    “오크노디는 우리 서귀연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학생이다. 그녀를 적으로 돌린 사람과 손을 잡을 사람이 A그룹에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

    “왜 존나 니 멋대로 말하냐? A그룹이면 다 니들 부하야?”

    “지고쿠. 또 너냐? 가끔은 협조성이라는 것을 가져보는 게 어떠냐.”

    “응? 쏴달라고?”

    “……해적에게 협조를 구한 내가 어리석었지.”

     

    동료 한 명 구하지 못하고 탈락이라 생각했던 자신에게 한 명이나마 동료가 생겼다.

    여자도 아닌 남자에 B그룹도 아닌 A그룹이고 정상인도 아닌 약간 똘기가 보이는 트리거해피지만, 아무튼 조원이 생겼으니 다행이지 않은가!

     

    “…나도 해주마.”

    “헤스티아! 나, 난 너한테 심한 말을 했는데. 그런데도 조원이 되어주는 거야?”

    “딱히 네가 좋아서 되어주는 건 아니다. 달리 갈 팀이 없었으니까…….”

     

    헤스티아의 말에 기겁하며 주변을 돌아보는 롯토.

    아니나 다를까.

    44명의 상급반 학생들 중 대부분이 이미 조를 구하고 5명씩 뭉쳐있었다.

    심지어 A그룹과 B그룹에서 모두 배척되는 미지의 C그룹도 자기들 5명이 전부 모여 있다.

     

    “오 머야. 우리 떨거지 조야? 그럼 마지막 한 명은 누구인데?”

     

    지고쿠의 흥미진진한 물음에 생각지도 못한 인물이 그녀의 옷깃을 잡아당겼다.

     

    “저요!”

    “응? 오크노디?”

     

    가장 인기 있을 조원후보 중 한 사람이 떨거지 4인방 중 한 명이 되었다.

     

    -조 결성은 이상으로 마친다.

    -조원을 모두 구하지 못한 4명은 벌점으로 400포인트 삭감!

    -그리고 위로차원에서 500포인트 위로금을 지급하겠다!

     

    “???”

    “얏호!”

     

    왠지 모르게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듯이 웃고 있는 오크노디.

    그녀의 얼굴을 보며 롯토는 떠올렸다.

    대련 때에도 아카데미 훈련장에 의도적으로 정전사고를 일으킬 수 있을 정도로 이 아이의 뒷배는 영향력이 보통이 아니라고.

     

    ‘설마 포인트를 추가로 받을 걸 미리 알고?’

     

    그게 아니면 늘 같이 다니던 멤버를 웬 숲지기 꼬마애랑 그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남자와 엮어주고 본인만 낙오자 조로 나왔을 리가 없지 않은가.

    합리적인 의심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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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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