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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1

       솔직히 말해서, 알렉스 선생님이 병가를 내셨다는 소리를 들은 직후까지만 해도 별 생각이 없었다.

         

       언제 어디서 무슨 일 당할지 모르는 게 사람 인생 아니겠는가. 과장 좀 보태서 그냥 길 가다가 ‘픽’ 하고 쓰러질 수 있는 것이 인간이다.

       

       이 사람이 왜 갑자기 아프느니, 사고는 또 왜 당한거니 하면서 따지고 들어도 의미없다. 생사와 관련된 일에 개연성을 따지면 머리만 복잡해진다.

         

       선생님이 편찮으시면 그냥 편찮으시구나, 하고 넘어가면 될 일일 것이다. 

         

       그래…. 분명 빙의자의 얼굴을 보기 전까지만 해도 그리 생각했는데.

         

       헤를라인 선생님이 알렉스 선생님의 병가를 고지한 직후, 사색이 된 버멜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나에게로 다가왔다.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는 사이 그가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반의 이목이 우리 둘이 있는 쪽으로 쏠렸다.

         

       그가 내민 건 특허 사용 허가서였다.

         

       “미안한데 지금 바로 작성해줄 수 있어?”

         

       바로 근처에 앉아있었던 로테나 프레이는 빙의자가 왜 이런 종이를 나에게 내밀었는지를 알지 못하는 눈치였다. 나조차도 처음엔 비슷한 반응이었는데, 친구들과는 달리 사태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를 금방 이해할 수 있었다.

         

       나뿐만이 아니다. 원래 세계에서도 비슷한 사태를 겪었던 지구인이라면 싫어도 머릿속에 떠오르는 가설이 하나 있기 마련이었다.

         

       이거, 팬데믹이다.

         

       팬데믹, 조금 더 느슨한 표현으로는 ‘전염병 아포칼립스’. 말 그대로 전염병 확산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사람이 픽픽 쓰러지고, 급기야 나라 자체가 흔들리는 걸 뜻한다.

        

       빙의자가 우려하는 건 분명 팬데믹일 것이다. 그리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근거는 차고 넘친다. 우선 버멜이 나에게 부탁한 특허출원이 모기 잡는 EMP였기 때문이다.

         

       본래 모기란 무엇이냐. 온갖 전염병의 온상이다.

         

       말라리아부터 시작해서 황열, 뎅기열, 일본뇌염에 뭐 기타 등등. 오래전 사람을 가장 많이 죽이는 동물이 모기라는 통계를 본 기억이 있다.

         

       이쪽 세계도 별반 다르지 않으리라. 그나마 다른 점이 있다면, 모기가 기계로 된 마수라는 것 정도? 살충제 대신 EMP를 맞춰야 절명하는 녀석들이다.

         

       나는 물리학도였기에 화학적인 구조를 따져가며 살충제 원료를 배합하는 법은 모른다. 그러나 이세계판 모기는 생명체가 아닌 마수다. 얘들을 잡아 죽이려면 살충제가 아니라 전자기파를 써야 한다.

         

       살충제 만드는 건 몰라도, EMP는 학창시절부터 장난삼아 몇 번 만들어 봤다. 이쪽은 내 전문분야였다.

         

       “물론이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빙의자가 준 양식에 따라 특허 출원을 작성했다. 그런 내 모습에 버멜은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내 반응이 의외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야 그렇다. 내가 버멜을 빙의자라고 생각하지 않았더라면 지금과 같은 그림은 나올 수 없었을 테니까. 우린 서로를 경계하고 있지만, 동시에 비슷한 생각을 하며 서로를 이용해먹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마 둘 중 하나가 자기 정체를 밝힌다면 이 미묘한 균형은 깨질 것이다.

         

       자, 우선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않기로 하고. 나는 EMP 스크롤을 대량생산해도 좋다는 서약을 써서 버멜에게 건네주었다.

         

       이건 결과적으로 호수(好手)가 되었다.

         

       “얘들아. 당분간은 등교하지 말고, 웬만하면 기숙사에서 나오지 마렴. 무슨 일 생기면 공계마도를 전공하는 친구들에게 핫라인을 놓아줄 테니까 선생님에게 연락하고. 알겠지?”

         

       예상이 맞아떨어졌다. 이번에 벌어질 일은 전염병 사태다.

         

       알렉스 선생님이 몸져 누우시고 정확히 사흘 뒤, 아카데미 전역에 휴교령이 떨어졌다. 식당이나 극장과 같이 사람이 많이 모여드는 다중 이용시설의 경우 단체로 문을 닫았다. 나는 혹시나 싶어서 로테에게 받은 과외비를 비말 마스크 사는데 몽땅 쏟아부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2인실을 쓰는 나와 로테는 꼼짝없이 기숙사에 갇혀버렸다.

         

       “대민지원을 나가야 하지 않을까…?”

       “나가서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다고?”

       “뭐라도 해야만 해. 그게 귀족의 책무니까.”

       “그래. 나도 뭔가는 해야겠다.”

         

       아직 사태 파악을 못 하는 로테를 기숙사에 묶어두는 게 나의 책무였다. 난생처음으로 발목을 결박당한 로테는 당장 이것 좀 풀어달라며 기숙사가 떠나가랴 소리를 질러댔다.

         

       “선생님이 나가지 말라고 하신 말 못 들었어?”

       “으….”

         

       그래도 로테는 모범생이라 그런지 다루기 쉬운 편이었다. 얘를 설득하는 데에는 선생님의 숭고하신 말씀 한 마디만 있으면 충분하다.

         

       그래도 로테는 뭐라도 하고 싶어하는 눈치였다. 어떻게 보면 우직해서 좋고, 또 어떻게 보면 고집불통이라 피곤한 성격이다. 묘하게 하스펠트 교수와 닮았다.

         

       이런 애를 다루는 방법은 보기보다 쉽다.

         

       “지금 섣불리 밖에 나가면 다 죽을 수 있어. 가만히 있는 게 방역 당국자들을 도와주는 길이야.”

       “그건 알지만…!”

       “그래, 그렇게 사람들이 걱정되면 여기서 날 좀 도와줘.”

         

       바로 대체할 일감을 주는 것.

         

       내가 로테에게 내민 건 설계도였다. 모기 잡는 스크롤이 담긴 설계도.

         

       “이번 일의 원흉은 모기나 날벌레인 것 같거든.”

         

       내가 EMP 스크롤을 만들었을 때 로테는 그 자리에 없었다. 그러니 로테에겐 자세한 경위를 세세하게 설명해주어야만 한다. 내 설명을 모두 들자 로테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내 개인 브리핑이 끝나기 무섭게, 로테는 마전지와 남아있는 마석, 그리고 코일 따위를 가져와 EMP 스크롤을 조립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니 대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머리가 윙윙 울려댔다. 나는 침대에 몸을 눕힌 채로 잠시간 휴식을 취했다.

         

       오늘부터 사회와 잠시 단절되어야 할 듯하다. 그동안 정보를 얻으려면 신문을 구독하거나, 라디오를 들어야 한다.

         

       내가 선택한 방법은 후자였다.

         

       마침 황실 재난본부에서 내가 예측한 것과 비슷한 얘기를 하는 사람이 있었다. 나는 그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

         

         

       “…그래서 이번 일은 모기와 같은 소형 마수가 중간숙주로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소리입니다.”

       “마도학적으로 증명이 됐나요?”

       “네. 아카데미 근처 검은숲모기 500여 마리의 표본을 채취한 결과 그중 절반 정도가 흑사병을 매개로 하는 병원균을 지니고 있다는 걸 알아냈습니다.”

         

       글리스턴 교수의 브리핑을 들으며, 버멜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필리우트 제국의 의료체계와 건강보험제도가 주변 국가들 대비 잘 구축되어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SYSTEM : 해피 엔딩에 도달하려면 아카데미 내 사망자가 없어야 합니다.

         

       제국의 시대상은 20세기 초엽에서 중엽 정도. 시대상이 그보다 일렀더라면 해피엔딩은 요원했을 것이다. 항생제와 근대 의료체계가 도입된 제국의 모습은 그야말로 질서정연하게 돌아갔다. 이렇게만 보면 정계가 마수의 손에 떨어졌다고 도저히 생각해볼 수 없었다.

         

       “사실 저희 엘프들은 오래전 흑사병과 비슷한 역병으로 고역을 치른 바 있습니다. 그때 저희 선조들께서 관련된 치료법을 하나 내놓으셨습니다.”

       “무엇인지 알 수 있겠습니까?”

         

       다른 의사의 질문에 글리스턴 교수는 흔쾌히 책자 하나를 내밀었다.

         

       “라임이나 만다린오렌지와 같은 식물의 추출물을 약재로 사용한다라….”

         

       귤 같은 일부 열매나 나무껍질이 흑사병을 치료하는데 획기적인 도움을 준다. 저 내용은 오직 이 세상의 무대가 되는 게임을 해 본 빙의자만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이건 뭐 괴혈병도 아니고.’

         

       게임 속 가상의 질병이라는 건 참작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흑사병은 지구에서의 흑사병과 그 의미가 아예 다르지 않던가.

         

       “정말 효과가 있는 겁니까?”

       “네. 흑사병의 주요 증상 중 하나인 ‘철화’를 완화하기에는 좋은 수단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도 정령에게 친화적인 엘프들이 하는 말 아닙니까? 믿어 볼 가치는 충분합니다.”

       “일단 시험적으로 사용해보도록 합시다. 그리 해가 되는 것도 아닐 테니까요.”

         

       버멜과 글리스턴 교수, 두 엘프가 지금 있는 곳은 황성 내 재난대책본부였다. 이곳에선 어떻게 하면 흑사병의 전파를 저지할 수 있는지를 두고 열띤 토의가 이어졌다.

         

       의사도 아니고, 학부생에 불과한 버멜이 이곳에 들어올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였다. 아카데미 보건교사인 세피아 글리스턴이 자신을 이곳에 출입할 수 있도록 도와줬기 때문이다.

         

       그 덕에 버멜은 지금 빙의자로서 게임에선 보기 어려웠던 광경을 모두 볼 수 있게 되었다. TV도, 대국민 재난 브리핑도 없는 시대에서 정부 대응을 직접 보고 듣는다는 건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으니까. 라디오가 있긴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이런 세세한 현장감을 모두 살피기 어렵다. 잡음도 적당히 있어야지.

         

        어쨌건.

       

       ‘앞으로 어떻게 일이 돌아갈지 알 수 있겠네.’

         

       “그러면 마지막으로 브리핑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방금 들어온 역학조사 자료까지 합치면 병원균은 호수나 저수지, 기타 물웅덩이와 같은 지대에서 많이 발생하는 양상을 띠고 있습니다. 이는 모기와 그 유충의 주된 서식지가 물가라는 것과 정확히 맞아떨어집니다.”

       “감염자와 위중증환자 수는 어떻게 되죠?”

       “아직 정확한 진단은 어렵습니다. 다만 감염자는 3만 명…. 위중증으로 간 환자는 1만 2천여 명 안팎인 걸로 조사되고 있…습니다. 아마…. 앞으로 더 늘어날 것으로… 집계됩니다.”

       “사망자는요?”

       “……사망자는, 항생제의 도움 덕에 아직까지 집계되지 않고… 있습니다.”

         

       사망자 수라. 적어도 아카데미 사망자 수라면 버멜도 알고 있다.

         

       ─ SYSTEM : 현재 시련 진행도(30%)

       

       ─ SYSTEM : 아직 해피 엔딩으로 가는 조건은 폐쇄되지 않았습니다.

         

       아카데미 내 인물 중에선 아직 아무도 죽지 않았다. 학생이나 교수진 대부분이 의료 보험의 혜택을 받는 고위 계층인 것이 사망자를 낮추는 것에 한몫 한 셈이다. 무엇보다도 의약학의 발달로 인해 성도 내부에선 죽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어차피 이번 시련을 일으킨 주체가 원하는 건 시간을 끄는 것. 일부러 독성을 조절하고 있을 가능성도 없잖아 있어.’

         

       첫 번째 시련. 흑사병 에피소드를 깨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

         

       첫째, 병마가 모두 걷힐 때까지 악으로 버티거나.

         

       둘째, 흑사병을 퍼뜨린 주범… 구천지대계를 찾아 수도에서 내쫓게 하거나.

         

       ‘둘째 방법도 나쁘진 않은데… 도박 가능성이 조금 있기도 하고.’

         

       여기서 선택해야만 한다. 버멜이 뒤에서 턱을 괸 채 생각에 잠겨있던 때였다.

         

       “우선 사안이… 사안이니만큼 글리스턴 교수의 말씀을 따라 방역지침을 정…합시다. 보다 세부적인 건 공관과 폐하께 맡기기로 하고, 저희는….”

         

       풀썩.

       

       브리핑을 하던 의사가 어지럼증을 호소하며 자리에서 쓰러졌다.

         

       “이봐요, 무슨 일이요?”

       “여기 모이시는 분들 모두 체온 검사 하지 않았나요?”

       “흑사병의 잠복기는 만 하루라고 그러지 않았소! 이 사람은 멀쩡하게 지낸 지 일주일이 다 되어간다고!”

         

       대책본부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맞다.’

         

       지나친 현실성 때문에 이 병을 부리는 절멸급 마수의 가장 큰 능력 중 하나를 간과하고 있었다.

       

       게임 난이도 중 가장 어려운 <나이트메어> 모드의 경우….

       

       …이 병은, 그 마수의 의지에 따라 잠복기가 제멋대로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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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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