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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1

       “……그러니까, 다른 여자애들을 떼어내려고 우리한테 다가온 거라고?”

        

       앨리스가 웃어야 할지, 아니면 화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지금 우리가 앉아있는 곳은 근처의 한 식당.

        

       여차여차 옥신각신하며 걷는 사이에 끝끝내 우리 일행에 따라붙은 제이크 덕분에, 우리는 무려 총 7명이나 되는 일행이 한 번에 앉을 수 있는 테이블이 필요했고, 그 결과 큼지막한 원형 테이블을 둘러싸고 앉게 되었다.

        

       개개인이 마주 보는 거리가 꽤 멀었지만, 나는 차라리 이래서 잘 되었다고 생각했다. 조금은 덜 불편할 거 아니야.

        

       “솔직히 말하자면 그래.”

        

       결국 샤를로트와 앨리스의 경계를 풀기 위해 우리에게 자기 진짜 목적을 말한 제이크는 겨우겨우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위치는 나와 레오의 사이였다. 다른 여자애들이 제이크 옆에 앉는 것을 꺼렸으니까.

        

       아무래도 천성이 엄청나게 성실한 애들만 있다 보니 제이크 같은 양아치 스타일은 잘 맞지 않는 모양이다.

        

       정작 제이크도 성적은 상위권이고 매일 꾸준히 수련하는 성실한 성격이긴 했지만. 하긴, 그런 건 누가 일부러 관심 가지고 바라보지 않는 이상은 모르는 법이니까.

        

       참고로 로티가 가장 싫어하는 말이 바로 제이크를 무시하는 말이었다. 제이크가 남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열심히 수련 중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가장 잘 알고 있는 로티였기에 그 노력을 무시하고 헐뜯는 것은 참지 못했다.

        

       언제나 무표정이고 침착했지만, 그렇기에 그 감정을 읽는 것이 아예 불가능하지는 않은 캐릭터였다.

        

       “열차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어찌나 꺅꺅대며 달라붙던지.”

        

       제이크가 한숨을 푹 쉬며 그런 소리를 했다.

        

       여기가 제도가 아니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같은 반 애들이 없는 것도 아닌데. 아, 그래도 식당 안에서는 보이지 않았지만.

        

       “하긴, 공작가의 아들이니까. 게다가 들이대면 왠지 쉽게 넘어갈 것 같게 생기기도 했고.”

        

       “너무 평가가 박하시네.”

        

       앨리스의 평가에 제이크는 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기분이 상한 것은 아닌 것 같았다.

        

       하긴, 제이크는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이 넘치는 캐릭터였다. 자만심이 강하다는 소리가 아니고, 자기가 하는 행동과 계획에 망설임이 없다는 뜻이다.

        

       그리고 제이크의 계획은 언제나 로티를 향해 있었다. 결국 주변의 시선을 전부 쳐내고 둘이 행복하게 살게 되는 것. 그게 제이크가 바라는 일이었으니까.

        

       “그, 너무 심하게만 말하지는 말아.”

        

       이야기를 듣고 있던 레오가 말했다.

        

       “제이크도 고충이 많겠지.”

        

       “……그 고충을 네가 어떻게 아는데.”

        

       “…….”

        

       레오의 말에 클레어가 곧장 그렇게 반박해버리는 바람에, 레오는 순간 할 말을 잃고 말았다.

        

       하긴, 원작에서도 극 초반부터 인기가 엄청나게 많다고 묘사되지는 않는다. 에피소드를 하나하나 겪고, 인연 이벤트를 하나하나 다 겪으면서 천천히 공략해나가는 게 게임의 내용이니까.

        

       그렇다고 레오의 이미지가 일행에게 나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소리는 절대 아니었다. 지금까지 레오 아니면 남자가 한 명도 없는데도 일행 중 누구도 레오가 자신들 사이에 끼어있다는 것에 거부감을 보이거나 어색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것도 하렘물 도입부라고 할 수 있겠지.

        

       “그래서 실비아한테 접근했다?”

        

       앨리스가 제이크에게 그렇게 물었다.

        

       어떤 원리인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나의 표정을 읽어낼 수 있는 앨리스였다. 적어도 내가 제이크에게 반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확신하는 모양이었다.

        

       “그래. 실비아는 주변에 다른 귀족 여자애들이 달라붙지 않으니까.”

        

       여자애들이 다가가는 존재는 남자 귀족들 뿐만이 아니다.

        

       학기가 시작한 지 3주차가 지난 지금 시점에서 교내에는 그룹이 두 개 형성되었다. 열다섯 밖에 되지 않는 반이었는데도 파벌이 생겨 나뉘었다는 말이다.

        

       사실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했다. 귀족들은 공작을 중심으로 힘을 모은다. 그리고 그 공작들도 자기네끼리 뭉쳐서 힘을 모으고.

        

       지금 당장은 황제가 절대권력을 휘두르고 있었지만, 그 권력의 콩고물을 받아먹거나 아니면 권력 자체를 빼앗아 오기 위해서는 혼자서의 힘으로는 부족하다.

        

       아예 황제에게 붙어버리거나, 아니면 주변의 힘 있는 공작가에 의지하거나.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 가장 좋은 방법은 어린 시절부터 서로 친한 사이가 되는 것이다.

        

       학창 시절에 함께 다니는 것도 그 과정 중 일부였고.

        

       그렇기에 공작가의 여식은 교내에서 여러모로 인기 있는 사람이 되곤 했다. 진심으로 그 여자애를 좋아할지 아닐지야 개인에게 달린 것이라 뭐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정치적인 목적도 어느 정도 포함되어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따지면 실비아 팬그리폰이라는 애는 명목상으로는 권력의 최정점에 서 있는 인간 중 하나가 되어야 했지만…… 뭐, 소문이나 분위기가 있지 않은가. 나에게 일부러 다가오는 여자애들은 거의 없었다.

        

       이렇게 생각하니까 제이크가 조금 부럽다. 나는 남자였을 때도 여자가 되어서도 여자한테 인기가 없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서.

        

       ……뭐, 그런 우울한 생각은 일단 접어두고.

        

       “아무리 그래도 사람을 그런 용도로……”

        

       하지만 여전히 자기 친구를 그런 목적으로 이용하려고 했다는 것에는 별로 기분이 좋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 마음은 솔직히 조금 감동이었다.

        

       사실 아카데미 들어오고 나서는 딱히 한 것도 없는데 말이다. 그냥 돌아다닐 때 따라다니고, 같이 식사하고 했던 것이 다였는데.

        

       그런데도 일단은 같은 무리 취급해주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일까. 그것도 내가 좋아하던 게임의 캐릭터들이.

        

       심지어 샤를로트 입장에서 나는 별로 좋게 볼만한 사람도 아니었는데.

        

       “괜찮습니다.”

        

       샤를로트에게 말했다.

        

       “특별히 해가 된 것이 아니니 크게 신경 쓰지 않습니다.”

        

       “그거 보라니까.”

        

       내가 기껏 변호를 해주는데도 제이크는 굳이 한마디를 더 해서 사람들의 눈총을 받았다.

        

       “그런 이야기는—”

        

       앨리스가 그런 제이크에게 뭔가 말하려고 하다가,

        

       “주문하신 식사 나왔습니다.”

        

       다소 딱딱한 점원의 목소리를 듣고 중간에 말을 끊었다.

        

       “…….”

        

       달각달각, 종업원 몇 사람이 우리 사이로 우리가 주문한 식사를 가져다 놓았다.

        

       따로 메뉴는 없었다. 이 식당에서는 아침, 점심, 저녁 메뉴가 정해져 있는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사업하는 사람들을 상대로 여관을 함께 운영하는 곳이라 그게 정해져 있는 모양이었지만……

        

       “…….”

        

       샤를로트와 앨리스를 포함하여, 테이블을 둘러싸고 앉아있는 사람들은 갑자기 말이 없어졌다.

        

       “그럼, 식사 맛있게 하십시오.”

        

       종업원은 우리의 표정을 보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그렇게 인사하고는 카운터 쪽으로 돌아가 버렸다.

        

       “어…….”

        

       조금 전까지만 해도 능글맞은 표정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꺼내던 제이크도, 이 음식을 보고는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그러니까, 이건.”

        

       나는 다른 아이들을 따라서 내 자리에 올라온 음식을 보았다.

        

       얼핏 보면 엄청나게 뚱뚱한 소시지를 보는 것 같은 모양이었다. 솔직히 소시지보다는 공 모양에 가깝긴 했지만, 이 세계관에서 소시지는 제국의 지역 음식이기도 했으니 이상할 것은 없었다.

        

       사실 소시지라고 하기에는 조금 이상한 음식이기는 했지만.

        

       “해기스입니다.”

        

       내 말에 다들 나를 보았다가, 다시 음식을 내려다보았다.

        

       내가 이쪽으로 오기 전에 알고 있던 영국 음식 중에서 꽤 유명한 편이던 음식이었다. 유럽 각국의 사람들이 ‘괴식’으로 치는 음식인 것 같지만……

        

       기본적으로 이 세계관은 무근본 판타지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지역 음식 같은 것은 그럭저럭 위치를 맞추기 위해서 노력했다. 아무래도 ‘영국’이 모티브가 된 국가의 ‘북쪽’이었으니 스코틀랜드를 모티브로 한 모양이었다.

        

       다들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음식을 보고 있던 사이에 나는 포크와 나이프를 들었다.

        

       뭐, 그래도 다른 해괴한 음식이 나오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내가 해기스를 먹어본 적은 없지만, 일단 그래도 소문은 들어봤다. 해기스는 블랙푸딩과 함께 한국인 기준으로는 그럭저럭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고 했으니까.

        

       맛은 순대와 순대 부속물을 섞어서 짜게 만들어 둔 느낌이라고 했던가.

        

       오랜만에 고향의 맛을 느낄 수 있겠구만.

        

       *

        

       “그러니까…….”

        

       나는 맛있게 먹었고, 앨리스, 클레어, 레오는 그래도 그럭저럭 다 먹을 수 있었고, 제이크와 미아는 조금 남겼고, 샤를로트는 음식의 절반도 채 먹지 못했다.

        

       “……북부의 음식은 거의 다 이런 식인가요?”

        

       차마 식당에서 음식을 두고 뭐라고 하지는 못했던 샤를로트다. 특히 내가 꽤 맛있게 먹고 있었으니 더욱더 뭐라고 할 수 없었을 거다.

        

       빵과 빵이라면 제국이 더 맛없다고 디스할 수 있겠지만, 이 음식은 빵은커녕 아예 겹치는 음식조차 아니었으니까.

        

       왕족으로서 매너를 배운 샤를로트라면 지역의 토착 음식을 비하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북부에도 빵은 있습니다.”

        

       “그거 다행이네요…….”

        

       나의 대답에 샤를로트는 진심을 담은 한숨을 푹 쉬었다.

        

       평소라면 맛없는 제국 빵을 먹어야 한다는 말에 인상이 별로 좋지 않았겠지만, 샤를로트에게는 적어도 해기스보다는 낫다고 느껴진 모양이다.

        

       뭐, 벨부르의 모티브는 프랑스와 벨기에니까 어쩔 수 없지.

        

       정작 프랑스에도 똥냄새 나는 소시지가 있다고 들었지만, 굳이 여기서 그런 것을 지적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코코와넨네 님, 후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요즘 글 쓰는 것이 무척 즐겁습니다. 이렇게 많은 분들께서 저의 글을 읽어 주신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라서요. 처음에는 이번 소설은 얼마나 많은 분들께서 읽어주실지 걱정을 많이 했는데, 지금은 그 걱정이 많이 사라졌습니다. 제가 쓴 글 중에서 가장 많은 분들께서 읽어주신 글이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조금 기대가 될 정도로요. 감사합니다. 독자 여러분께서 저의 글을 재미있게 읽어주시기에 저는 오늘도 이렇게 글을 쓸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꾸준히 이 글을 읽어 주실 수 있도록 재미있는 글을 쓸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저는 매일 두 화씩 올리는데, 화수는 홀수인 부분이 조금 거슬리기는 하네요…

    다음화 보기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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