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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1

       고양이의 사체를 앞마당에 묻어주고 난 이후, 세 사람은 피 묻은 상자를 가운데에 놓고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섬뜩한 경고. 예고된 습격은 지속적인 긴장 상태를 유발하는 법입니다. 전쟁이 벌어졌을 때, 적군이 휴식을 취하지 못하도록 게릴라 전술을 펼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렇기에, 가장 확실한 방법은 먼저 찾아내어 처리하는 것. 베네트는 경고문을 노려보면서 말했습니다.

       

       “발신자를 추적할 수 있겠나?”

       

       [정보가 조금 더 들어온다면요. 아직은 부족해요. 저택 앞을 오고 간 발자국을 분석해봤는데, 매번 사람이 달랐어요. 다들 체격이 어느 정도 있는 걸로 보이고요.]

       

       “종합하면, 신에 대해 언급하고, 사람을 여러 명 부릴 수 있는 단체인가. 너무 유력해서 오히려 의심스럽군.”

       

       니오레의 분석을 듣고 베네트가 고민에 잠기자, 옆에서 타라가 테이블을 탕탕 두드리면서 분노를 토해냈습니다. 

       

       “은의 황혼 교단인지 뭔지 하는, 그 녀석들 짓인 게 분명하잖아!”

       

       “속단하지 마라. 은의 황혼 교단은 연구를 방해할 만한 이유가 없어. 아브라함의 연구, 우주적 재해가 다가오는 속도를 계산해 내는 건, 종교적으로는 보이지 않잖아. 이 종교적인 메시지는 위장일지도 모른다.”

       

       “그러면 대체 누가 그랬다는 건데?!”

       

       “아브라함은 교수라고 했었지, 학자이고. 다른 학자와의 알력 다툼일지도 모른다. 연구를 빼돌리거나 방해할 만한 이유로는 그게 가장 가깝겠지.”

       

       [하지만, 경쟁 관계의 다른 학자가 일을 꾸몄다면⋯⋯ 이렇게까지 섬뜩한 수를 쓸까요? 저택에 감시까지 붙여가면서요. 굳이 신을 언급할 이유도 없을 거예요.]

       

       니오레의 의견은 타당했습니다. 베네트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하고, 이야기를 묶어서 자신의 결론을 내놓았습니다.

       

       “은의 황혼 교단이 수상하다는 건 나도 부정하지 않아. 하지만 결론을 내리는 건 확실한 증거가 발견된 후에 하라는 거다. 실수가 발생할 수 있으니까.”

       

       실수, 를 발음하면서 베네트는 타라를 지긋이 바라보았습니다. 불안의 시선이었습니다. 니오레는 정의감이 확실히 과한 편이었으나, 지금까지 불안 요소는 없었던 데에 비해. 타라는 아브라함에게 선명하게 애착을 품고 있었으니.

       

       그러나, 베네트의 시선은 닿지 않았습니다. 타라는 아브라함에게 악의적인 소포를 보낸 누군가를 떠올리며, 손톱을 물어뜯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어떤 자식인지 몰라도 잡기만 하면, 가만 안 둬!”

       

       “⋯⋯목소리를 낮춰, 타라.”

       

       “너는 화도 안 나?!”

       

       “그렇게 분개할 일도 아니지. 타인이니까.”

       

       만난 지 나흘밖에 안 된. 베네트는 뒷말을 삼켰습니다.

       

       심지어 아브라함은 다른 세계의 사람. 결국 정을 붙여서는 손해만 보게 됩니다. 또한, 아브라함 역시 의심스러운 정황이 있었습니다. 연구가 노인에게 있어서 무엇이기에, 이러한 협박을 받아 가면서까지 진행한다는 말인가요?

       

       “집중해야 할 부분은 따로 있어. 빛나는 부등변다면체 말이다. 그것이 어떤 물건인지, 어떻게 생겼는지, 누가 가지고 있는지를 조사해야 해.”

       

       [하지만, 어떻게 조사해야 할까요?]

       

       “미친⋯⋯ 마법사가, 보고서에서 그 존재를 언급했지. 그건 다시 말하자면, 마법사가 빛나는 부등변다면체에 대한 정보를 입수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어딘가에는 단서가 있을 거야.”

       

       [⋯⋯⋯⋯.]

       

       니오레는 무릎을 당겨 앉고 곰곰이 생각하다가, 무언가가 떠올랐다는 듯 화이트보드에 급하게 문장을 적었습니다. 

       

       [아카데미, 아니, 대-학교에 정보가 있지 않을까요?]

       

       “대학교⋯⋯ 미스캐토닉? 아브라함이 교수로 있는 곳 말인가?”

       

       [네. 전문적인 교육시설이라고 들었어요. 책도 많구요.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라면 기록이 남았을 테고, 그렇다면 미스캐토닉 대학의 도서관에⋯⋯]

       

       “그래! 조사를 위해서라도 아브라함을 지켜야겠다, 그렇지? 아브라함은 교수니까! 대학교에 우리를 데려가 줄 수도 있을 거야!”

       

       니오레가 문장을 채 적기도 전에, 타라가 눈을 빛내면서 끼어들었습니다. 베네트는 의도가 뻔히 보이는 그 모습을 보고 혀를 쯧 찼습니다. 

       

       분기점이었습니다. 타라의 감정이라는 불안 요소를 남겨둔 채로 탐색을 이어 나가느냐, 혹은 여기서 지적하느냐. 해결해야 하는 일인가, 용납할 수 있는 일인가.

       

       베네트는 여러 가지를 저울에 달아 고민했습니다. 과목이라는 탈을 쓰고 이세계로 학생들을 보내는 미친 교수의 의도. 안전이 보장된 탐색. 선한 인간인 아브라함에 대한 호의와, 점차 윤곽을 드러내고 있는 리스크. 

       

       그리고, 치밀어오르는 짜증.

       

       베네트는 충동적으로 결론을 냈습니다.

       

       “아니면, 아브라함에게 알아봐달라고 부탁하자. 아는 게 많으니까 분명⋯⋯.”

       

       쾅!

       

       베네트는 테이블을 주먹으로 내려쳐 타라의 말을 끊었습니다. 그리고, 목소리를 내리깔고 독하게 내뱉었습니다.

       

       “중요한 부분을 착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뭐⋯⋯?”

       

       “우리들의 목표는 아브라함을 지키는 게 아니야. 오히려 아브라함이 죽는 편이 상황에 따라서는 이득일지도 모른다. 위험도 해소되고, 거점도 얻을 수 있으니까.”

       

       “뭐? 어떻,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어⋯⋯! 아브라함을 죽인다고?”

       

       우당탕.

       

       베네트가 극단적인 가정을 꺼내 들자, 타라는 튀어 오르듯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노려보았습니다. 그 서슬에, 밀려난 의자가 나동그라졌습니다.

       

       베네트는 이를 갈았습니다. 조용히 의자를 끌며 일어나, 피하지 않고 타라를 마주 노려보았습니다. 그는 목적을 이루어야만 했습니다. 그러니, 계획의 성공률을 낮추는 소꿉놀이를 가만히 보고 넘어갈 수는 없었습니다.

       

       언성을 높였습니다.

       

       “말은 제대로 들어라. 죽인다고는 하지 않았어. 죽는 편이 상황적으로는 이득이라고 했지. 인지는 하고 있으라는 소리다. 중요한 순간에 망설이지 않게!”

       

       “믿을 수가 없어, 아브라함이 우리한테 얼마나 잘 대해줬는데?!”

       

       목에 핏대가 서고, 눈동자에서 불꽃이 튑니다.

       

       “다른 세상 사람이다. 네가 살아가는 세상은 여기가 아니고! 아카데미에서 일어날 피바람을 막는다고 팀을 결성했던 게 아니었나?!”

       

       “다른 세계 사람이라면 죽어도 괜찮다는 소리야?! 너는 여기가, 환상이나 가짜라고 생각하기라도 해? 내가 생명은 소중하다는 당연한 소리를 해야 하는 거야?”

       

       나란한 평행선. 그 끝에서.

       

       “목숨에는 우선순위가 있는 거다⋯⋯!”

       

       “나한테서 가족을 빼앗아 가려고 하지 마⋯⋯!!”

       

       [그만!]

       

       우당탕-!

       

       니오레는 의자를 집어던졌습니다. 의자가 베네트와 타라 사이를 붕 날아서,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바닥을 굴렀습니다. 그제야 두 사람은 니오레를 돌아보았습니다.

       

       그녀가 내려놓은 화이트보드에는 싸우지 말아요, 라든가. 침착하고 대화하는 게 어떨까요, 등의 문장이 쓰였다가, 지워진 흔적으로 가득했습니다. 

       

       니오레는 숨을 깊게 빨아들이고, 한숨을 내쉰 뒤에.

       

       [타라는 제가 데려갈게요, 베네트. 타라. 내일 다시 이야기해요.]

       

       “⋯⋯그래.”

       

       “⋯⋯⋯⋯.”

       

       상황은 종료되었습니다. 니오레는 타라를 이끌고 방으로 올라갔으며, 베네트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어질러진 거실을 정리했습니다. 

       

       언성을 높일 일이 아니었습니다.

       

       좀 더 부드럽게 말할 수도 있었을 테고, 어쩌면 묵인하는 게 더 좋은 선택지였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돌이켜보면, 베네트는 화가 났던 것 같습니다. 솔직하게 누군가와 정을 나눌 수 있는 처지인 타라를 바라보면서, 그럴 수 없는 자신이 미웠는지도. 그렇다면 정말로 우스운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돌아가기에는 이미 한참이나 늦었을 텐데.

       

       베네트는 벽에 머리를 박고 웅얼거렸습니다. 자조의 쓴웃음이 송곳처럼 입술을 비집고 튀어나와, 마음을 찔렀습니다.

       

       “⋯⋯나는, 누구지.”

       

       동생을 되찾기 위해서 무엇이든지 하는.

       

       아카데미의 혼란과 공포를 조성하고, 끝내 수많은 학생을 죽음으로 몰아넣을.

       

       흑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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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사악의 방. 지금은 니오레와 타라의 방. 

       

       가구의 배치가 살짝 바뀌거나, 이불을 갠 모습이 달라지는 등. 이사악의 흔적은 조금씩 지워지고, 그 자리를 두 사람의 흔적으로 채워나가기 시작한 공간이었습니다. 

       

       타라는 침대 위로 올라가 몸을 웅크리고 앉았습니다. 그녀의 가느다란 속눈썹 끝에는 낮게 깔린 감정이 방울방울 매달렸습니다. 울적한 분위기가 이어졌습니다.

       

       니오레는 가만히 침묵을 들어주었습니다. 

       

       타라는, 벽면 한쪽을 바라보면서 중얼거렸습니다. 독백인 것 같기도 했고, 니오레에게 하는 말인 것 같기도 했습니다.

       

       “⋯⋯너도 내가 이상하게 보이지?”

       

       [네. 이상하다고 생각해요. 아브라함은 좋은 분이고, 저도 돕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타라는 아브라함을 벌써 가족으로 보고 있잖아요?]

       

       “⋯⋯⋯⋯.”

       

       [베네트의 말이 심했다고는 생각해요. 그는 모든 것을 버려야만 하나를 얻을 수 있는 것처럼 굴 때가 있어요. 그래도, 타라는⋯⋯ 정을 붙이는 속도가, 걱정될 만큼 빨랐던 것 같아요.]

       

       니오레는 염려 섞인 눈빛을 보냈습니다. 그녀의 따뜻한 눈빛이 꽁꽁 얼어버린 타라의 입술을 녹이기라도 한 것처럼, 두서없는 이야기가 한 방울씩 흘러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나, 가족이 없어. 있었는데, 없어졌어. 정말 사이가 좋았는데⋯⋯.”

       

       [듣고 있어요.]

       

       “아빠와 엄마는, 아침에 일어나서 눈을 마주칠 때마다. 행복에 겨운 눈으로 나를 바라봤어. 부모님의 눈동자에 비친 나도, 그런 표정을 짓고 있었지. 나는, 아직도 그 눈빛이 그리워.”

       

       [그랬을 것 같아요.]

       

       “이따금씩 아브라함의 눈빛에, 부모님의 눈에서 보았던 햇빛이 담겨. 나는, 그런 눈빛을 받으면, 가족들과 함께했던 시간이 떠올라서, 잠시나마 행복에 잠길 수 있어⋯⋯.”

       

       [무슨 일이 있었나요?]

       

       그 물음에, 타라는 눈동자를 크게 떨고. 과거의 일을 되짚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여전히 그녀의 마음에, 타르처럼 찐득하게 들러붙어 있는 원망(怨望)의 기억. 

       

       어느 따뜻한 여름에 있었던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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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 타라의 기억

       

       작은 도시에서 살아가던 옷 가게 소녀 타라가 바라던 것은, 단 하나. 가족들과 행복하게 사는 것이었습니다. 동화 속의 공주님처럼 화려하고 부유하게 사는 건 바라지도 않으니까, 딱 남들처럼만. 

       

       평범하게 아침에 일어나서, 오늘 하루도 힘내자며 허리를 펴고, 내걸린 옷들의 주름을 펴고, 유행에 맞는 옷들을 눈에 띄게 진열해 놓고, 도매상을 만나러 나가는 아빠를 배웅하고.

       

       옷 가게를 지키다가, 저 태양이 시계탑 끝에 걸리면 엄마와 교대해서 산책하러 나가고, 해가 저물 즈음에는 집으로 돌아와서⋯⋯ 엄마 아빠와 정답게 식사를 하는.

       

       그런 일상이 언제까지나 이어지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불행이란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법이었습니다.

       

       

       여름, 따스한 태양이 만물을 내리쬐는 여름에는, 벌레와 구더기들이 끓기 적당한 때입니다. 부패와 오염은 따뜻한 햇살이 지켜보는 가운데 활발하게 일어났습니다. 

       

       여름 더위에 힘들다며 시체의 처리를 게을리한 묘지기의 탓인지, 굳이 뒷골목까지 순찰을 들어가려고 하지 않는 경비대의 탓인지, 딱딱한 빵 한 조각을 위해서 이웃을 찔러 죽인 거지의 탓인지, 굳이 하층민들을 돌보려 하지 않는 영주의 탓인지.

       

       도시에 역병이 돌았습니다. 

       

       많은 사람이 고통에 신음했고, 타라의 부모님 또한 피해갈 수 없었습니다. 푸른 반점을 전신에 피워올린 채로 하루가 다르게 죽어갔습니다. 

       

       타라는, 어째서인지 역병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엄마와 아빠를 구하기 위해 사방으로 발품을 팔았습니다. 우선은 사제를 찾아갔습니다.

       

       신전은 인파로 가득했습니다. 살려달라는 구슬픈 애원으로 가득했습니다. 그 틈바구니 속에 타라도 있었습니다.

       

       돈이 많거나 권력 있는 이들은 치료받을 수 있었으나, 그렇지 않은 이들을, 사제는 문전박대했습니다. 타라는 쫒겨났습니다.

       

       이후에는 연금술사를 찾아가고, 마법사를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돌아온 답은 모두 부정적이었습니다. 본 적도 없는 질병이라 시간이 걸린다, 마탑까지는 역병이 닿지 않을 테니 내 알 바는 아니다 등.

       

       간절히 노력한들 방도가 없었습니다. 타라는 하루가 다르게 수척해지는 부모님의 모습을 지켜보기만 해야 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옷 가게 소녀 타라는 성녀 후보로 간택 받았던 것입니다.

       

       가족을 구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습니다.

       

       그녀는 집으로 찾아온 사제들에게, 자신이 성녀가 될 테니까, 여신님을 섬기는 데에 평생을 바칠 테니까, 단 한 가지 소원을 이루어달라고. 가족을 살려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들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성녀 후보께서 정식으로 성녀가 된다면, 가족분들도 마땅히 예우해야지요.”

       

       기뻤습니다. 가족을 구할 수 있다는 사실이 그저 기뻤습니다. 타라의 심장이 터질 듯이 뛰었습니다. 성녀가 된다면⋯⋯ 이전처럼 한 집에서 살 수는 없을 테지만. 그래도, 서로 건강히 살아있으며, 가끔씩은 만나서 정다운 시선을 나눌 수 있을 겁니다.

       

       타라는 순종적으로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성녀가 되기 위한, 기나긴 의식이 시작되었습니다. 화려하게 장식된 마차에 타고, 여신교 본단으로 향했습니다. 일주일간 성수로 몸을 씻어내고, 성서에 적힌 내용들을 머릿속에 쑤셔 넣었습니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향유로 머리카락을 관리하고, 여사제들이 타라의 손톱을 섬세하게 갈아 다듬었습니다. 초조해진 타라가, 자신은 언제쯤 성녀가 될 수 있는 것이며. 이런⋯⋯ 것들이 필요한 행위인지를 물으면.

       

       오랜 전통이기에, 지켜져야 한다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초조해졌습니다. 벌써 한 달이나 지났습니다. 가족들은 괜찮을까. 사제님들이 돌봐주신다고 하셨으니까, 괜찮을 거야. 왜냐하면.

       

       옷가게 소녀 타라를 문전박대했던 사제들은, 성녀 타라를 정성껏 섬겼습니다. 만개한 웃음을 띠며, 성녀의 축복을 바랐습니다.

       

       그들의 내려다보는 시선을 기억하던 타라는 구역질이 났지만, 한편으로는 확신을 얻었습니다.

       

       저 꼿꼿한 사제들의 태도를 손바닥 뒤집듯이 바꿀 권위가, 성녀라는 직함에는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괜찮지 않을 리가 없었습니다. 성녀의 가족인걸요. 무언가 이상한 것에 씌기라도 하지 않는 이상, 극진히 보살피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잘 지내고 있겠지. 분명히 그럴 거야.

       

       되뇌었습니다. 하루가 갈수록 타라의 낯빛은 창백해지고, 걱정으로 눈가는 퀭해졌으나. 사제들은 저들의 종교에 도취된 채로, 성녀의 탄생을 그저 기뻐하고 감격했습니다.

       

       종교적 열의에 교단이 고취될수록, 타라는 시들어갔습니다.

       

       길고 긴 허례허식이 끝나고. 타라는 황금으로 장식된 꽃잎을 맞으며, 많은 사람의 환호성과 함께, 신성한 티아라를 수여받았습니다. 정식으로 교단에 인정받아 성녀가 된 것입니다.

       

       금의환향이었습니다.

       

       꿈꾸기도 힘든 부와 명예를 손에 넣었으니, 이제는 가족들에게 베풀 차례였습니다. 함께 맛있는 것도 먹고, 무려 성녀의 가족이니, 아프면 사제들을 팍팍 부르고. 내가 성녀가 된 것은 부모님의 덕분이라면서 명예도 드리고⋯⋯.

       

       하고 싶은 것, 해주고 싶은 것들은 정말, 산더미처럼 있었습니다.

       

       옷 가게 아가씨 타라는 성녀 타라가 되어 가족들의 곁으로 돌아왔습니다.

       

       가족들은 역병에 시달려 죽어 있었습니다.

       

       성녀 타라는 비뚤어졌습니다.

       

       

       

       

       짧은 이야기를 끝낸 타라는, 말라붙은 목소리로 웅얼거렸습니다.

       

       “교단은 단 한 가지 부탁도 들어주지 않았어. 가족들을 살려달라는 거. 빌어먹을 금은보화나, 영광 같은 게 아니라, 고작 그것 하나를⋯⋯ 바랐는데.”

       

       [⋯⋯⋯⋯.]

       

       “그 역병, 신성력으로 치유할 수 있더라. 나를 모시러 집으로 찾아온 사제들이, 성녀를 보필해서 본단으로 가야 한다고 소리를 꽥꽥 질러 댈 시간에, 주문 한 번만 외웠으면, 가족들은 살았어.”

       

       타라의 눈동자에는 분노가 묻어났지만, 어조는 덤덤했습니다. 화를 내기도 힘들다는 것처럼. 잔뜩 지친 목소리로.

       

       “신성력은 여신님과 가까이 있다는 증거. 그들은, 성녀 탄생의 순간을 여신님과 함께, 온전하게 즐기기 위해, 신성력을 사용하지 않은 거야. 종교적인 기쁨을 누리려고. 누구 한 명이 대신해 주겠지, 이렇게 생각하면서⋯⋯.”

       

       자신들의 믿음에 사로잡혀서. 자신들의 종교적 희열을 위해, 그들은 그 이외의 무엇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으므로.

       

       그래서. 그녀는 여전히 원망하고 있었습니다.

       

       종교에 심취해서 타라의 가족들을 등한시한 사제들을. 그리고 그들의 언행을.

       

       평민으로 태어나서 극적인 신분 상승을 누렸으니 감사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을.

       

       신께서 어여삐 봐주시는데 어찌 사사로운 인간의 감정으로 거부할 수 있느냐는 말을.

       

       어차피 기왕 이렇게 된 거, 흘러가는 대로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지나간 것은 돌아오지 않으니 어쩔 수 없는 게 아니냐는 말을.

       

       지독히도, 원망했습니다. 그리고 원망은 들불처럼 번져, 자신에게도 향했습니다.

       

       그들이 하는 말을 들을 게 아니라, 가족에게 달려갔어야 했던 걸까. 어째서 나는 사제들의 말을 믿었을까. 누구 한 명이라도 신경을 써 줬더라면 어땠을까. 한 달 동안 자신은 온갖 사치를 누렸는데, 그동안 엄마와 아빠는 얼마나 고통스러우셨을까.

       

       그녀가 교단의 지침을 어기고 있는 것은, 그녀의 양심이 허락하는 한 최대한의 반항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녀 자신도 그 무의미함을 알았습니다.

       

       “나도 알아. 이런다고, 엄마랑 아빠가 돌아오지는 않겠지⋯⋯.”

       

       타라는 주먹으로 침대를 내리쳤습니다. 몇 번이나. 그러다,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담아, 마침내 속내를 토해내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하지만⋯⋯. 다른 세계에서나마 잠깐이라도, 행복했던 그때를, 떠올려 볼 수도 있는 거잖아⋯⋯.”

       

       [⋯⋯⋯⋯.]

       

       니오레는 말없이 타라의 등을 두드려주었습니다. 타라는 니오레의 품 안에 안겨 울었습니다. 

       

       니오레의 눈동자 안, 희끄무레한 문양이 잠깐 빛났다가, 사라졌습니다. 

       

       그날 밤은, 이따금 훌쩍거리는 소리가 울리며, 고요히 지나갔습니다.

       

       ===============================================================

       

       베네트는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복도를 지나가다가 우연히 들은 훌쩍거림 탓인지, 마음속에 자라나는 번뇌 탓인지. 그러다가 문득, 밤하늘 생각이 났습니다. 그는 트랩도어의 계단을 타고 올라 옥상으로 향했습니다.

       

       별을 헤아리던 아브라함이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누구인가? 아, 자네로군.”

       

       “⋯⋯⋯⋯.”

       

       베네트는 노인의 시선을 피했습니다.

       

       어쩌면 마음에 남은 부채감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아무리 당사자가 없었다고 한들, 타라에게 목표를 상기시켜 주려는 목적이 있었다고 한들.

       

       아브라함을 죽이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고 입 밖으로 내뱉은 것이, 베네트의 가슴 한구석에 남아 양심을 찌르고 있었습니다. 노인은 선의로 그들을 대했으니까.

       

       노인은 수염을 몇 번 쓰다듬다가, 조용히 말했습니다.

       

       “타라와 니오레 양이 방에서 나오지 않던데, 무슨 일 있었나?”

       

       “⋯⋯싸웠습니다.”

       

       “무슨 일인지는 묻지 않겠네. 하지만, 자네에게도 기분 전환이 필요한 것 같군. 옆에 앉겠나?”

       

       “⋯⋯예.”

       

       베네트는 동그란 의자를 하나 끌어다가, 아브라함 옆에 앉았습니다. 선선한 바람도 불어오고, 별도 반짝반짝 빛나니 썩 보기 좋았습니다. 그러나 유난히 하늘이 칙칙해 보이는 건, 마음가짐의 문제일 터.

       

       아브라함은 망원경을 바라보며 침묵으로 말했습니다. 바다에 낚싯대를 드리우는 것처럼, 침묵은 대화를 끌어내기에 아주 좋은 미끼였으니까요. 고요 속에서, 문득 베네트는 물었습니다.

       

       “소포를 봤습니다.”

       

       “노인의 충고를 귀담아듣는 젊은이는 드물지. 이해하네. 이미 보았다니 묻겠는데⋯⋯ 어땠나?”

       

       “⋯⋯어째서 연구를 계속하시는 겁니까? 그건, 협박으로 끝날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수입원이 필요한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이 늙은이가 목숨 걸고 연구하는 이유가 궁금한 모양이군?”

       

       아브라함은 껄껄대며 웃었습니다. 노인은 망원경에서 눈을 떼고, 몸을 돌려 베네트와 마주보고 앉았습니다. 주름진 두 손을 삭삭 비비면서 생각을 정리하곤.

       

       “살날 얼마 안 남았다고 고집을 부리는 건 아니라네. 나는 여전히 오래 살고 싶어. 못 해본 일도 많은 데다가, 아직 딸과 화해를 못 했으니까.”

       

       “그렇다면 더더욱 그만두셔야죠.”

       

       “하지만 말일세, 이 연구는 인류에게 분명히 도움이 될 게야. 상정할 수 있는 최악의 결과가 나온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을 선물해 줄 수 있겠지. 운이 좋아서 앞으로 몇억년의 유예가 주어진다면, 우주의 내밀한 비밀을 캐낼 단서가 되어 줄 테고.”

       

       “⋯⋯그 인류가, 아브라함을 위협하고 있지 않습니까. 고양이 사체 따위를 보내면서.”

       

       베네트가 보기에 세상은, 악의투성이였습니다.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남을 죽이는 일은, 정말로 셀 수 없을 만큼. 저 밤하늘의 별만큼 많이 일어났습니다. 베네트 자신 또한, 그런 불길한 별 중 하나였습니다. 

       

       각박한 세상이니, 자신을 위해서 살아가면 그만이었습니다. 어째서 타인을 위할 필요가 있다는 말입니까? 그 물음에, 아브라함은 이빨을 드러내며 씨익 웃었습니다.

       

       “나도 안다네. 사람들은 좆같지. 그게 누구의 시체건 신경쓰지 않고 알을 까놓는 파리 같아.”

       

       “⋯⋯⋯⋯.”

       

       인자한 아브라함의 입에서 나온 과격한 언사에, 베네트는 잠깐 굳었습니다. 노인은 껄껄 웃으면서 말을 이었습니다.

       

       “이 나이 먹도록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만났겠나. 거의 대부분이 한 치 앞만 보면서 살고, 서슴없이 칼을 찌른다는 것도 안다네. 하지만, 남들이 그런다고 똑같이 똥을 뿌리면⋯⋯ 이 세상에 슬픈 사람만 더 생겨나지 않겠나. 이건 수학적인 이득과 손해의 영역일세. 그리고⋯⋯.”

       

       “⋯⋯⋯⋯.”

       

       “인류의 도약에 큰 공헌을 한다는 건, 멋있지 않은가?”

       

       “멋⋯⋯ 말입니까?”

       

       “그래. 학자라면 누구나 꿈꾸는 일이지. 내가 만든 이론으로, 세상을 구하는 것. 어릴 때부터 꿈이었네.”

       

       베네트는 농담인가 싶어 바라보았지만, 아브라함의 눈동자는 솔직하고 투명했습니다. 노인의 눈동자는, 마치 꿈꾸는 소년처럼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유치하다면 유치한 이유였으나⋯⋯.

       

       베네트는, 뭔가. 알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모든 소년이 그러하듯, 베네트 또한 어렸을 때 용사를 꿈꾸었기 때문입니다. 칼 한 자루 차고 다니며, 악당을 무찌르고, 공주를 구하는. 

       

       세월에 휩쓸려, 상황에 휩쓸려, 깎여나가 부스러졌던 순수하던 시절의 편린을, 베네트는 노인의 눈동자에서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꿈 말입니다.

       

       여전히 그의 목적은 다르지 않았습니다. 여동생을 구하기 위해서 뭐든지 할 것입니다. 설령 아카데미의 많은 사람들을 다치게 한다고 해도. 그러나⋯⋯.

       

       만약에, 자신에게 한 번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빛나는 부등변다면체라는 물건이, 남을 해치지 않아도 되는 길을 제시해 준다면. 어쩌면. 그 길을⋯⋯ 걸어보고 싶어질지도 모른다고. 베네트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어깨에서 힘이 조금 빠져나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베네트는 약간이나마 가벼워진 마음으로 아브라함과 대화했습니다. 노인은 기꺼이 청년의 대화에 어울려주었습니다. 이야기가 오갔습니다.

       

       그렇게 밤이 기울었습니다.

       

       ===============================================================

       

       아침, 복도. 베네트는 타라와 마주쳤습니다. 서로 간에 불편한 침묵이 흘렀습니다. 니오레는 뒤에서, 또 싸우면 이번엔 뭘 집어던져야 하나 고민했습니다.

       

       잠깐의 신경전이 벌어진 뒤에, 베네트가 먼저 입을 열었습니다.

       

       “내 말이 극단적이었던 것 같아. 사과하지, 타라.”

       

       “⋯⋯뭐 잘못 먹었어?”

       

       베네트는 심호흡하고, 생각을 정리한 뒤에. 내뱉었습니다.

       

       “여전히 내 생각은 변하지 않았어. 누군가를 희생시켜야만 하는 상황이 온다면, 나는 너희들보다는 아브라함을 희생시킬 생각이다. 그러니까⋯⋯.”

       

       “⋯⋯⋯⋯.”

       

       “그렇게 되지 않도록 잘해 보자. 이 정도면 납득할 수 있겠나?”

       

       “⋯⋯그래, 뭐, 응.”

       

       베네트가 손을 내밀었고, 타라는 잡았습니다. 기념비적인 화해에 니오레는 기립박수를 쳤습니다. 이제 마음을 한결 놓아도 되겠구나, 생각하며.

       

       그날의 아침 식사 테이블은 화기애애했습니다. 베네트도 한 단계 풀어진 듯, 아브라함과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눴고. 타라 또한 분위기를 즐겼습니다. 그들의 모습은 멀리서 보면 가족으로 보일 것처럼, 퍽 단란했습니다.

       

       “슬슬 설거지 정도는 해야 하지 않겠나? 여태 나와 니오레가 번갈아 가면서 했는데.”

       

       “나는 접시 두 개만 쓰는데, 너는 세 개를 쓰잖아. 공평하게 하려면⋯⋯.”

       

       그때.

       

       끼이이익. 하고. 저택의 문이 열렸습니다. 

       

       또각. 또각. 구두 굽 소리. 순백의 드레스를 갖춰 입은 여성이, 새하얀 백발을 찰랑이며 집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복장의 탓인지, 아니면 어딘가 머나먼 곳을 바라보는 듯한 눈동자의 탓인지. 마치 다른 세상을 거니는 듯한 신비함이 느껴졌습니다.

       

       아브라함의 눈동자가 전에 본 적 없이 크게 뜨이고, 입이 벌어졌습니다.

       

       “⋯⋯이사악.”

       

       “못 본 사이에 가족이 늘었네요, 아버지.”

       

       아브라함의 딸, 이사악이 돌아왔습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지각⋯⋯! 후기는나중에추가하겠습니다!

    +(1 : 11)
    요새 욕심을 부리고 뭐 넣고 뭐 넣고 하느라, 계속 딜레이되는 이 시점⋯⋯!
    한 번 늦으면 애교이지만, 서너번쯤 늦으면 그것은 꿀밤 각이기에. 사죄드립니다 마이 프렌즈⋯⋯!
    연재 시간은 독자와 작가의 견고한 약속인데, 약속을 자꾸 어기니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정진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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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herworld TRPG Game Master

Otherworld TRPG Game Master

Another World TRPG Game Master, 이세계 TRPG 게임마스터
Score 8.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a wizard of the Illusion Magic School and decided to create a virtual reality with illusion magic to play a tabletop role-playing game (TRPG). It was great to create a virtual reality, but I was in trouble because there were no suitable players. During that time, I received an offer to be the professor from the Royal Academy. The offer was to use illusion magic to fill the students’ lack of practical experience safely. And so, I became a professor at the academy. “Send me back, send me back to that world right now-!” “Outer god, someday an outer god will be our doom, we’ll all die!!” “I am not the bastard of the Redburn Ducal Family. I am the foremost disciple of the Great Namgung Clan, Namgung Qinghui!” But it seems there is a bit of a misunderstanding. This isn’t a spell for dimensional travel, kids. It’s fi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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