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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1

       “수상한 사람이요?”

         

       학생회에서 성실히 일하던 파스텔은 손님을 맞이했다.

         

       고학년생이 도서관 내부 지도를 펼치더니 붉은 동그라미가 쳐진 부분을 가리켰다.

         

       “도서관 심야에 인기척이 생긴다길래 애들과 조사를 해봤는데 지하통로가 있었어. 확인 결과 하수도더라고. 깊어서 탐사하진 않았지만 아마 외부 통로가 따로 있어서 그걸 외부인이 아카데미에 숨어든 게 아닌가 싶어.”

         

       으잉.

         

       토너먼트 준비도 끝났는데 침입자라니.

         

       “저 거기 알아요. 기숙사 신축하다가 입구를 발견했거든요. 마족 성지의 잔재라고 하더라고요. 탐사를 좀 해보니 내부에 생태계도 형성돼 있었죠.”

         

       파스텔은 볼에 생쥐 수염을 손가락으로 슥슥 그렸다.

         

       “찍찍~.”

         

       찍찍이 친구들.

         

       고학년생이 생쥐 효과음에 살짝 당황하다가 물었다.

         

       “조치는 어떻게 됐어?”

         

       파스텔은 진지한 표정으로 팔짱을 꼈다.

         

       “교수회의에 의견을 타진했는데 너무 넓다 보니 완전 매립은 불가능하다네요.”

         

       응응.

         

       끄덕끄덕.

         

       “그래서 입구만 막기로 했어요. 외부 통로와 입구는 교수님들이 처리하기로 했는데…….”

         

       파스텔은 말하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입구가 멀쩡히 도서관에 남아 있네. 교수님들이 아직 조치를 덜 끝냈나? 하긴 워낙 넓으니.

         

       “알겠어요! 저희 학생회가 확인해 볼게요!”

         

       파스텔은 수상한 외부인이 있다는 도서관으로 혼자 향했다.

         

       큰 도서관 건물에 들어서자 높은 천장과 넓은 공간이 보였다. 천장까지 닿을 책장이 시야 저편까지 늘어섰다.

         

       분홍색 소녀는 입이 벌어졌다.

         

       “우와아, 공부공부의 냄새! 입학해서 한 번도 안 맡아봤는데!”

       『자랑이 아니야.』

         

       정장 차림의 악마가 둘러보며 말해왔다.

         

       파스텔은 손부채질을 했다. 도서관 냄새이 맡아졌다.

         

       “음~! 이 책 먼지의 퀘퀘함! 호흡기가 나빠지는 이런 공기를 맡으라고 하는 보호자는 나쁜 사람인 게 분명해요!”

       『공부하기 싫다는 말을 그런 식으로 하지 마라.』

         

       악마의 손바닥이 분홍 머리통을 눌렀다.

         

       “헛, 어떻게 아셨지?!”

         

       파스텔은 깜짝 놀란 얼굴이 됐다.

         

       그러다 지나가던 사서의 눈초리를 받곤 움찔했다.

         

       아앗, 맞아!

         

       도서관에선 정숙해야지!

         

       검지 손가락으로 입술을 누르곤 대뜸 손을 올려 악마의 입술을 꾹 눌렀다.

         

       정숙!

         

       악마가 입술이 뭉개지며 당황했다.

         

       『왜 나까지-』

       “아앗!”

         

       파스텔은 기본예절도 모르는 악마를 답답해하며 외쳤다.

         

       “쉬잇! 쉬잇! 정숙! 정숙!”

         

       소녀의 목소리가 공간에 울렸다.

         

       떠나던 사서가 끼기긱 걸음을 돌리더니 소녀와 악마를 번갈아 봤다.

         

       “도서관에선 정숙해 주세요.”

         

       허억, 혼났어!

         

       파스텔은 입이 벌어졌다. 사서가 떠나자 억울한 표정으로 악마를 돌아봤다.

         

       억울! 억울!

         

       악마가 기막혀했다.

         

       『왜 네가 성내는 거지?』

         

       파스텔은 어서 몸을 숙이라는 손짓을 했다. 악마가 몸을 숙여줬다. 귀에 대고 입을 열었다.

         

       “악마님 때문에 혼났잖아요.”

         

       소녀는 속닥속닥.

         

       『그게 왜 내 탓이냐.』

         

       악마가 어이없어했다.

         

       “그건, 그건…….”

         

       파스텔은 설명하려다가 마땅한 이유를 모르겠어서 멍해졌다.

         

       정적이 흘렀다.

         

       슬쩍 떨어져 양팔을 휘저었다.

         

       “모, 몰라요! 몰라요! 어서 지하통로나 확인하러 가요!”

         

       악마의 팔을 잡아채고 달렸다.

         

       물론 그러다 사서에게 다시 혼나서 걸어가야 했다.

         

       “으아, 또 악마님 때문에!”

         

       완전 억울!

         

       『그러니까 그게 왜 내 탓이냐.』

       “그걸 모르시는 게 문제예요!”

         

       외부인과 학생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일반 열람실을 지나 깊은 내부로 들어갔다.

         

       학생회 신분으로 출입 권한을 따내고 지하로 내려가자 여러 서적이 빽빽하게 보관된 서고에 당도했다.

         

       안내해 준 사서가 떠나자 파스텔은 주변을 경계했다. 날카로운 시선으로 각종 서적을 훑어봤다.

         

       “이곳이 금기 지정 마도서가 보관된 0급 기밀 서고인가요.”

         

       으으윽!

         

       강력한 마법력이 느껴져……!

         

       악마가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설렁설렁 대답했다.

         

       『그냥 평범한 책 창고다. 인기가 없어 이용 횟수가 너무 적은 책을 쌓아두는 곳이지.』

       “기밀 서고가 아니라고요?!”

       『뭘 바라는 거냐.』

         

       으아.

         

       전혀 모험 분위기가 안나.

         

       실망하며 구석으로 걸음을 옮기자 바닥 타일이 치워진 구멍이 보였다.

         

       고개를 빼꼼 내밀어 살펴봤다. 누가 삽질해서 판듯한 구덩이는 깊게 이어지다가 하수도 지면에 당도했다. 하수도 냄새가 났다.

         

       “누가 봐도 침입하기 딱 좋은 개구멍이네요.”

         

       아카데미 보안, 이래도 괜찮은가?

         

       도대체 왜 멀쩡한 하수도를 매립하지 않고 그 위에 아카데미를 지은 걸까.

         

       분명 나쁜 의도가 있어서 그랬을 거야. 본인들이 비밀통로로 이용하려고 그랬다던가. 각종 범죄와 비리를 위해서 말이야.

         

       파스텔은 생각하다가 하수도 매립을 안 하고 그냥 건설해 버린 건 크래프트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본인들 범죄와 비리를 위해 미래 거주자의 안전을 팔아버린 크래프트 가문.

         

       선조님들……!

         

       으아아.

         

       가만히 있다가 양심이……!

         

       안절부절못하자 악마가 바라봤다.

         

       『왜 그러지?』

       “아, 아니에요. 그냥 찍찍이 친구들이 너무 그리운 나머지.”

         

       악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찍찍이 친구들도 널 그리워할 거다.』

         

       오잉.

         

       파스텔은 눈이 동그랗게 됐다.

         

       “정말요?!”

         

       악마가 겁주듯이 얼굴을 가까이 들이댔다. 붉은 눈동자가 번뜩였다.

         

       『바로 네 피와 살을 먹기 위해서 말이지.』

       “허억, 피와 살!”

         

       그러고 보면 찍찍이 친구들은 거대한 뱀도 순식간에 냠냠 쩝쩝했지. 나 정도는 정말 눈 깜짝할 새일 거야.

         

       소녀는 덜덜덜.

         

       “서, 설마 지난번에 나이프 친구로 찍찍이 친구들을 학살한 원한을 아직도 가지고?”

       『그럴지도 모르지.』

         

       악마가 픽 웃었다.

         

       으아아.

         

       만나면 꼭 사과할게 찍찍이 친구들……!

         

       파스텔은 사과할 겸 구덩이로 내려갔다. 구덩이는 깊었지만 홈이 파여 있어서 의외로 내려가기 수월했다.

         

       구덩이를 거의 다 내려와서 하수도를 내려봤다. 하수도 천장에 뚫린 구덩이라서 하수도 상황이 제대로 안 보였다.

         

       아마 주변에 아무도 없는 거 같지?

         

       폴짝 뛰어 하수도 지면에 착지했다. 연료비가 완전 비싼 마석 랜턴을 켜자 마법 광원이 어둑한 하수도를 밝혔다.

         

       허리춤의 마검을 향해 속닥였다.

         

       “아무도 없는 거 같죠?”

       『광원을 줄여라. 코너 근처에 가지도 않았는데 다른 코너에서 광원을 알아챌 정도가 되어선 곤란해.』

         

       마석 랜턴을 조정하고 조심스럽게 주변을 살폈다. 하수도 자체가 습한 곳이다 보니 찐득한 바닥에 남은 사람 흔적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외부 침입자라.

         

       “발자국이 많네요. 여러 명 같죠?”

         

       무슨 목적이려나.

         

       광원을 더 줄이고 흔적을 따라 조용히 걸음을 옮겼다. 아지트를 찾아볼 생각이었다. 매번 외부에서 침입해 이 넓은 하수도를 위험하게 돌파할 거 같진 않으니까.

         

       찍찍이 친구들 무섭다구.

         

       긴장한 파스텔은 나이프를 꺼내 꼭 끌어안았다. 좀 무서운 사람들이면 나이프 타고 슝~ 도망쳐야지.

         

       얼마 안 가 아지트 같은 곳을 발견했다. 본래 하수도의 관리자를 위한 곳인지 통로 벽 한편에 철제문이 달려 있었다. 철제문이 달린 곳이었다. 문은 녹슬었지만 튼튼해 보인다.

         

       『문틈이 훼손돼 있군. 너무 오래 방치돼 열리지 않으니 열려고 작업한 흔적이다.』

         

       오잉.

         

       진짜 제대로 된 아지트네?

         

       하수도의 갈라진 틈이나 그런 곳에 임시로 만든 거처일 줄 알았는데 제대로 된 시설을 이용하고 있다.

         

       파스텔은 속닥였다.

         

       “일반적인 침입자가 아닌가 봐요.”

       『우연일 수도 있겠지만 사전 조사가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높겠지.』

         

       완전 수상수상 사악사악.

         

       파스텔은 눈을 가늘게 뜨고 철제문을 주시했다.

         

       문득 철제문이 소음을 냈다.

         

       엇?

         

       파스텔은 후다닥 랜턴을 껐다.

         

       완전한 어둠이 찾아오고 철제문이 열렸다. 내부의 밝은 광원이 천천히 드러났다.

         

       문을 잡은 사람이 흥분한 목소리를 냈다.

         

       “공작 영애의 경호 일정을 파악하는 게 어디 쉬운 줄 알아?! 그렇게 불만이며 니들이 나가서 확인해 보던가!”

         

       손가락이 하수도를 가리켰다. 하필 파스텔이 있던 방향이라 파스텔은 얼어붙었다.

         

       “내가 몇 번 나가서 확인한 것보다 못한 걸 가져오면 죽을 줄 알아!”

       “야야! 알겠으니까 진정해! 소리치면 쥐새끼들 오잖아! 일단 문부터 닫아!”

         

       안쪽에서 말리자 문가의 사람이 거센 숨소리를 내며 말을 멈췄다. 그리곤 문을 거칠게 닫았다. 문이 소음을 내며 닫혔다가 슬며시 다시 열렸다. 얇은 문틈으로 빛이 새어 나왔다.

         

       오잉.

         

       완전히 얼어 있던 파스텔은 주춤주춤 다가갔다. 문틈 사이로 내부를 살폈다.

         

       적당히 넓고 가구까지 갖춘 사각 방에 대여섯 명 정도의 인원이 있었다. 모두 귀가 뾰족한 게 마족 같았다.

         

       귀를 기울이자 대화가 들렸다.

         

       어차피 앨시어를 독살하면서 아카데미 식수원에 독을 타 인간 학생들도 죽일 거니 경호 파악을 재촉하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공작 영애 암살과 무차별 학살.

         

       파스텔은 눈이 동그랗게 됐다.

         

       으에에?

         

       지, 진짜 무서운 사람들이잖아.

         

       몸이 떨렸다.

         

       으아아.

         

       이, 일단 도망쳐야.

         

       주춤주춤 뒷걸음치다가 멈칫했다.

         

       그런데 이런 위험한 사람들을 잠시라도 내버려 둬도 괜찮은 걸까?

         

       그새 도망쳐서 무차별적인 독가스 살포라도 하는 거 아니야? 독 같은 건 딱 그런 짓할 나쁜 사람들이나 쓰는 거잖아.

         

       우아우아.

         

       싸워서 친구들을 지켜야 해.

         

       정신이 빙빙 돌았다.

         

       저런 무서운 사람들이랑 싸워야 한다고?

         

       왜 내게 이런 시련이……!

         

       으아아.

         

       머리를 부여잡던 파스텔은 손을 떨며 유리병을 꺼냈다. 노란색 액체가 찰랑였다.

         

       눈을 질끈 감았다.

         

       악마님 제게 용기를!

         

       마음속으로 외치고 문을 벌컥 열었다. 분홍색 소녀가 광원에 휩싸이고 시선이 쏠렸다.

         

       “도, 독가스 살포나 할 나쁜 사람들!”

         

       파스텔은 눈을 질끈 감은 채 외쳤다.

         

       “권선징악!”

         

       유리병을 힘껏 던졌다. 노란색 액체가 회전하며 기화됐다.

         

       유리병이 땅에 부딪히고 노란색의 마비 독가스가 폭발했다. 실내가 순식간에 가스로 뒤덮였다.

         

       갑작스러운 가스 테러에 마족들이 콜록대며 비명을 질렀다. 정신 차린 일부가 병장기를 챙겨 문가로 달려왔다. 서슬 퍼런 기색이었다.

         

       으아아!

         

       파스텔은 겁에 질린 채 몸을 떨었다.

         

       싸워야 돼?

         

       무차별 학살쯤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상대로 싸워야 해?

         

       “사, 살려주세요!”

         

       떨리는 손으로 문을 거칠게 닫았다. 문이 굉음을 내며 완전히 닫혔다. 달려온 마족들이 문을 열려는 듯이 부딪혔다.

         

       “으아아!”

         

       파스텔은 문을 밀며 비명을 질렀다. 문이 덜컥이다가 소녀의 괴력에 강제로 닫혔다.

         

       “죄송해요오! 살려주세요!”

         

       안에서 마족이 부딪히자 문이 거칠게 덜컹였다. 그때마다 틈새로 독가스와 비명이 새어 나왔다.

         

       으아아!

         

       파스텔은 혼비백산하며 문을 다시 닫았다. 굉음이 일었다. 문을 밀치려던 마족이 튕겨 나가고 문이 닫혔다.

         

       우아아!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앞으로 착하게 살게요!

         

       아니, 앞으로 나쁘게 살게요……!

         

       나쁜 짓만 하고 살게요오!

         

       정신없는 시간이 흘렀다.

         

       얼마 뒤 문 너머가 잠잠해졌다.

         

       지친 파스텔은 털썩 주저앉았다.

         

       흐아아.

         

       완전 나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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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It’s Mental Immunity

No, It’s Mental Immunity

Status: Ongoing Author:
The guardian demonic sword is troubled and in distress, believing it has been ruined because of me. Does striving for advancement through consuming demonic energy seem too ev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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