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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1

     

    “결투 재판의 막이 열렸음을 지금 이 자리에서 선언하겠어요! 입회인은 제국의 2황녀, 저 라우가 폰 뷔르템펠트랍니다!”

     

    라우가의 싱글대는 외침과 함께 커튼이 열렸다.

     

    나와 아셀라는 망설임 없이 경기장의 환한 빛 아래로 걸어나갔다.

     

    “공자, 방패가 흘러내리잖아.”

     

    “무거워서 그래요. 결투가 시작하면 똑바로 들 테니 걱정 마세요.”

     

    아셀라는 콧방귀를 뀌고는 지팡이를 든 채 앞으로 걸어나갔다.

     

    그 바람에 높게 묶은 금발이 찰랑거렸다.

     

    결투를 위해 비장의 마법 예장을 입었다. 얼핏 보면 치마를 살랑대는 모습이 작은 요정 같기도 하다.

     

    나는 커다란 방패와 쇼트 소드를 들었다. 방어구는 경갑이다. 방어력은 낮아도 기동성이 높다.

     

    “꽁무니를 빼지 않은 점은 칭찬해주마, 아셀라!”

     

    반대편에서 화려한 문양이 잔뜩 들어간 풀플레이트 아머로 중무장한 게오르크가 걸어 나온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부 고급 인챈트가 된 전설급 무구다.

     

    돈은 진짜 많네. 저런 장비가 있었으면 좀 용사한테 입히지 그랬어.

     

    우리가 선 경기장은 작은 사이즈의 투기장 구조다. 바닥은 흙이다.

     

    양측 선수가 입장하니 관객석에서 점잖은 박수가 나왔다.

     

    황가의 일족이나 고위 귀족들이다. 어디까지나 황실의 재판이기에 구경거리 삼지는 않는 엄숙한 자리다.

     

    ‘그래도 승계권자끼리 피 튀기는 싸움을 벌이는 빅 이벤트지.’

     

    그들에게는 자극적인 장면임이 틀림없다. 분위기는 차분해도 속으로는 흥분하며 즐기고 있겠지.

     

    그 중엔 익숙한 얼굴도 있다.

     

    현 황제다.

     

    그는 근엄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는데, 자식들이 검과 지팡이를 들고 싸우는 일 자체는 당연하게 생각하는 태도였다.

     

    오히려 결투에서 얼마나 능력을 보여줄지 기대하고 있었다.

     

    라우가의 목소리가 확성 마법을 통해 경기장에 퍼진다.

     

    “슈바르츠슈바이크 공작 치하 파티에서 있었던 암살 사건의 진실을, 지금 이 자리에서 밝혀내겠습니다! 양 측, 준비를!”

     

    아셀라가 왼손을 지팡이를 들고 주문을 그릴 준비를 한다.

     

    게오르크는 신호와 동시에 이쪽으로 돌진하려는 듯, 도움닫기를 밟는 기세.

     

    “규칙은 간단, 양 측 중 먼저 목숨을 잃거나, 항복하는 자가 패배합니다!”

     

    나는 아셀라의 부속품이니 내 의사나 생존여부는 결과와 상관 없다.

     

    “왼손에 명예를, 오른손에 의지를. 투쟁하는 자만이 정의일 지어니!”

     

    라우가가 마법이 걸린 금화를 한 장 들어 키스하고는 경기장을 향해 집어던졌다.

     

    고요한 바람 소리 속에서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자그마한 투사체가 떨어지고는.

     

    ―퍼엉!

     

    연기를 일으키며 결투 개시를 알렸다.

     

    ―콰앙!

     

    게오르크가 지면을 박차며 돌진한 것도 동시였다. 예상보다는 꽤 빨랐다.

     

    ‘축복이야. 치유사를 한 트럭은 써먹었어.’

     

    축복을 쓸 줄 아는 치유사를 저만큼이나 섭외하기도 쉽지 않았을 텐데.

     

    그야말로 달려오는 돈 덩어리나 다름없다.

     

    “아이스볼, 마나 월!”

     

    아셀라가 빠르게 마법 시전에 들어간다.

    게오르크를 향해 쏘아지는 일격. 투박한 얼음 포탄이 메이저리거의 강속구보다도 빠르게 질주한다.

     

    ―퍼석!

     

    아셀라의 공격은 정밀했으나 게오르크의 갑주에 닿자 큰 피해를 주지 못하고 깨져버렸다. 그 모습을 본 아셀라가 당황했다.

     

    “마법 저항 인챈트…!”

     

    “속전속결로 끝내주마!”

     

    어느새 아셀라에게 거의 다 접근한 게오르크였다. 이 거리가 되면 전위가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그래서 내가 있지만.

     

    게오르크와 아셀라 사이에 끼어든다.

    그가 망설임 없이 나에게 검을 휘둘렀다.

     

    ―슈욱!

     

    직접 검을 맞대진 않았어도 마왕군 사천왕의 검도 요리저리 피해봤던 몸이다.

     

    반응속도는 자신 있다.

     

    ―챙!

     

    빠르게 반응해 휘두른 내 검이 게오르크의 예리한 롱소드를 흘려냈다.

     

    “뭣…!”

     

    게오르크가 예상치 못한 합에 당황했다.

     

    방어태다. 2주일 동안 타냐에게 배운 유일한 검술이다.

     

    요즘은 조깅도 열심히 하거든.

     

    본격적인 전투로 들어가면 못 이기겠지만 일합 정도는 주고받아야지.

     

    ―오오, 2황자의 공격을 막았소!

    ―3황녀의 주치의라 하지 않았는가? 전투에도 조예가 있을 줄이야!

    ―전염병을 치료한 주치의 아닌가? 문무를 양립하기는 쉽지 않았을 터인데.

     

    아유, 무슨 말씀을. 제가 고트베르크입니다.

     

    시원하게 웃어주고 싶지만 아쉽게도 관중석에게 대답해줄 여유까진 없었다.

     

    이격, 삼격, 이어지는 게오르크의 검을 방어해낸다.

     

    “치유사 따위가 어떻게 내 검을 흘려내는 것이냐? 축복을 받은 내 힘은 소드익스퍼트에 필적할 터!”

     

    “축복은 전하만의 특권이 아니죠.”

     

    “뭐라고?”

     

    퍼엉!

     

    신성력과 함께 폭발한 내 반격이 게오르크의 복부에 적중하며 그를 밀어냈다. 피해는 못 줬지만 자세는 무너트렸다.

     

    “같잖은 술수를… 크헉!”

     

    내가 만든 틈을 타 아셀라가 게오르크의 투구에 마법을 명중시켰다.

     

    “에잇…!”

     

    튼튼하기는 참 튼튼하다. 금방 고개를 털고 다시 검을 휘두르는 게오르크.

     

    아셀라가 눈송이를 던진 것도 아니고, 투포환에 맞은 강도였을 텐데.

     

    뇌진탕은 와야 정상이건만 마법저항 주문을 떡칠해놨다.

     

    게오르크가 투구 틈새로 눈을 이글거린다.

     

    “전사도 아닌 주제에 잡기 쓰지 말고 어서 쓰러져라. 더 기어오르면 용서 않겠다!”

     

    “토진궁은 올라갈 데도 없잖습니까. 3층밖에 안 되더만.”

     

    “주치의!!”

     

    쾅! 게오르크가 장화로 바닥을 찍었다.

     

    그러자 쿠르릉!

    경기장 바닥에 균열이 간다. 흙이 갈아엎어지더니 먼지가 흩날렸다.

     

    후욱! 뜨거운 기운이 올라오더니 주위가 후끈해졌다.

     

    “큭.”

     

    아셀라가 그려내던 마법진이 형태를 잃고 공중에서 흐물흐물, 녹아내리듯 떨어진다.

     

    방금 행동이 신호였나.

     

    바닥의 틈새로 반짝이는 돌멩이가 보였다.

     

    ‘마나 분해효과를 가진 반마석을 묻어놨어.’

     

    마계 산지에는 종종 화강암처럼 깔린 돌멩이다. 반마석이지만 마법사들이 주문을 시전해야 효과가 생기는 희한한 물건이다.

     

    게오르크는 이걸로 아셀라의 마법을 봉인할 작전을 세웠다. 준비해둔 그의 부하들이 효과를 발동시켰다.

     

    “하하하! 이 게오르크 폰 뷔르템펠트의 위용에 겁을 먹어 마법 하나 쓰지 못하는 꼴을 보라지! 보십시오, 황제 폐하! 이것이 민중을 압도하고 황실을 이끌 저 게오르크의 카리스마입니다!”

     

    게오르크가 벌써 승리를 거머쥐기라도 했다는 듯 주먹을 들어 보였다.

     

    아셀라가 게오르크를 경멸하며 매도했다.

     

    “비겁하구나, 게오르크. 명예로운 결투로 승부한다고 선언한 주제에 경기장에 함정을 설치하다니.”

     

    “함정?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 자신의 무능함을 끝까지 숨기고 싶은가, 아셀라!”

     

    게오르크의 반격을 들은 친왕과 공주들이 수군댔다.

     

    ―2황자가 술수를 쓴 것 같긴 합니다.

    ―그것도 그의 능력이오. 자신이 가진 능력을 모두 활용하는 게 결투 아니겠소.

     

    우리를 지켜보던 황제 역시 동의했다.

     

    ―재력과 인력 역시 군주 본인의 능력이다. 그에 밀려 패배한다면 아셀라는 게오르크보다 무능력하단 뜻이다.

     

    아셀라는 계속 마법을 시전해 보지만 진은 연결되지 않는다.

     

    “반마석. 경기장을 채우기 위해 삼천백 골드 정도 드셨죠, 아마.”

     

    내 말에 게오르크가 눈썹을 찌푸렸다.

     

    “네놈, 어떻게 그걸….”

     

    “모르셨습니까? 각 궁의 예산은 보고서로 폐하께 올리게 되어있습니다. 공개정보죠.”

     

    적의 동향을 살피는 건 기본이다.

     

    최근 늘어난 토진궁의 예산량과, 운반되는 상자 크기를 통해 반마석을 세팅할 건 예상했다.

     

    그리고 경기장에 술수를 부릴 시간은 우리에게도 있었다.

     

    “알아봤자 소용… 흐음. 소용없다. 아셀라는 마법을 못 쓰고, 네놈의 실력으로는 짐을 이길 수 없… 푸헤취!”

     

    게오르크가 재채기를 시작했다.

    한 번 시작한 재채기는 멈추지 않고 얼굴이 콧물 범벅이 되어간다.

     

    ―경기장에 뿌연 무언가가 떠다니는군.

    ―흙먼지 아니오?

     

    게오르크를 보며 스킬을 쓴다.

     

    “진단.”

     

     

    [증상 : 국화꽃가루 알레르기]

     

     

    게오르크는 별다른 질병이나 부상은 없었지만 알레르기라는 약점이 있었다.

     

    월광궁 기사들에게 국화를 잔뜩 따오라고 시켜 경기장에 가루를 잔뜩 뿌려놨다.

     

    지금처럼 반마석의 효과가 발동하면 꽃가루가 하늘을 날아오르도록 말이다.

     

    “무슨 짓을, 푸헤취이! 했냐아아!!”

     

    “황궁에서 국화를 안 기르는 걸 다행으로 생각하십쇼.”

     

    “주치의!!”

     

    게오르크가 번쩍 빛나기 시작했다. 경기장 밖에서 치유사들이 추가로 축복을 떼거지로 감고 있다.

     

    ‘전부 근력 축복이야. 승부를 볼 생각이네.’

     

    나를 향해 돌진하는 게오르크.

    상황이 더 불리해지기 전에 완연한 힘 싸움을 걸어올 기세다.

     

    ‘나도 바라던 바야.’

     

    방패 뒤에 준비해놨던 주사기 하나를 떼어 손에 쥐었다.

     

     

    ―――――――――――

    상급 근력강화제

     

    투약 시 효과 : 3분간 근력이 많이 증가합니다. 부작용이 있을 수 있습니다.

     

    글쎄, 프로틴이 아니라니까요?

    ―――――――――――

     

     

    경갑을 덧대지 않은 허벅지 안쪽에 대고 톡, 근력 강화제를 주사한다.

     

    아드레날린이 분비하며 몸이 뜨거워지는 기분이 든다.

     

    ―콰앙!

     

    방패로 돌진하는 게오르크를 막아낸다.

    원, 갑주가 좋아서 그런지 무쇠 코뿔소와 충돌한 느낌이다. 양팔이 저릿저릿했다.

     

    다리가 흙밭에 밀려 주르륵 미끄러진다. 그래도 간신히 버텨낸다.

     

    “왜! 에취, 왜 안 넘어져?!”

     

    게오르크가 당황했다. 체격이나 장비 차이로 보면 대형 버스가 자전거를 치는 것과 다름이 없다.

     

    희한하겠지.

     

     

    ―――――――――――

    근력 : 63 (+50)

    체력 : 19

    마력 : 1

    마나 : 28

    신성력 : 22

    신앙심 : 100

    ―――――――――――

     

     

    C랭크까지 오른 연금술로 강화한 근력 강화제는 근력을 50이나 늘려준다.

     

    지금 내 힘은 어지간한 중급 기사와 맞먹는다.

     

    “으윽…! 이놈만 쓰러트리면!”

     

    나만 돌파하면 주문 시전이 막힌 아셀라는 쉽게 이길 수 있다는 계산이다.

     

    게오르크는 알레르기 때문에 마음이 급해져서 제대로 자세를 잡지도 못하고 무작정 힘으로 눌러댄다.

     

    눈물 때문에 앞도 잘 안 보이고, 슬슬 팔에 힘도 잘 안 들어갈 터.

     

    대치 상황. 게오르크가 다시 한 번 크게 재채기를 했다.

     

    “푸헷췌에!!”

     

    나는 그 틈을 타 몸을 옆으로 뺐다.

     

    “어엇?!”

     

    게오르크가 자기 힘에 밀려 균형을 잃는다.

     

    이 상황이 필요했다.

     

    내가 게오르크의 등 뒤를 잡은 각도에서, 그가 방심해 마법도 적중당할 상황.

     

    내가 외쳤다.

     

    “황녀님, 지금입니다!”

     

    아셀라가 지팡이를 놓고는 양팔을 교차시킨다.

     

    접는 손가락은 하나.

     

    주문진을 그릴 필요도 없다. 마나는 그녀의 체내에서 즉시 마법으로 변해 시전된다.

     

    “무장해제.”

     

    ―철그렁!

     

    “뭣?!”

     

    ―퍼엉!

     

    게오르크의 화려한 갑주가 산산히 터져나가며 조각조각 그의 몸에서 벗겨진다.

     

    ―쿠웅!

     

    완전히 몸의 중심을 놓친 게오르크가 자리에서 넘어졌다.

     

    나는 품에서 주사기를 꺼내 훤히 드러난 그의 장딴지를 향해 힘차게 내리꽂았다.

     

    “허어억!”

     

    동시에 게오르크가 눈을 까뒤집으며 바닥에 쓰러졌다.

    부들부들 팔다리를 떨며 흙밭을 갓난아기처럼 굴러다닌다.

     

    “주, 주치… 의이이!!”

     

    기개가 좋다. 거품을 무는 와중에도 나를 노려보며 이빨을 갈아댄다.

     

    “공자.”

     

    아셀라가 묶은 머리를 꼬리처럼 살랑대며 내게 다가왔다.

     

    “예, 황녀님.”

     

    “자승자박. 좋아하는 전략이야. 기회 있으면 또 생각해 봐.”

     

    하여간 악취미셔.

     

    나는 아셀라와 함께 게오르크를 쳐다보며 주사기를 들어 보였다.

     

    “황자님, 방금 황자님께 주입한 건 암살자가 가지고 있던 흑마술 독입니다. 공작이 당했던 그거죠.”

     

    “뭐, 뭐라… 고!”

     

    바스락.

    나는 품에서 장미 사탕을 꺼내 물었다.

     

    다른 주사기를 하나, 게오르크에게 보여주며 질문했다.

     

    “해독제는 저한테만 있는데, 어쩌실래요?”

     

    게오르크가 눈동자를 굴렸다.

    왼쪽에는 아셀라, 오른쪽에는 나.

     

    아이고, 울려버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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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주치의는 악녀를 고치고 도망쳤다
Score 3.6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Becoming the physician of the villainess who brought about the world’s destruction, I tried to escape to survive, but the reactions were st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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