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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1

       내가 신전 쪽과 엮이기 싫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굳이 척지고 싶다는 소리는 아니다.

       

       그렇기에 리디아가 나를 지키듯 감싸고 나선 걸 넘어, 내 기사라는 핑계까지 대며 여차하면 검까지 뽑을 준비를 하자 순간 당황했다.

       

       아무리 그래도 둘이 싸우는 건 좀 그렇잖은가. 말싸움도 아니고 칼싸움이라면 더더욱.

       

       하여 리디아의 팔 사이로 머리를 내밀며 말했다.

       

       “카렌 심문관님! 저희 싸우지 말고 비밀 친구 할까요?”

       

       “…예?”

       

       “비밀 친구 말이에요 비밀 친구. 이렇게 가끔 남몰래 이야기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고….”

       

       곰곰이 생각해 봤지만, 이미 신전 측과 엮이지 않는다는 선택지는 날아갔다. 카렌이 나를 이 정도로 신격화하고 있을 줄은 몰랐단 말이지.

       

       그렇다면 결국 남은 방법은 하나뿐인가.

       

       “같이 이단자들을 때려잡기도 하고 말이죠.”

       

       “…….”

       “…….”

       

       흉흉하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고, 남은 것은 어이없다는 듯 시선을 교환하는 두 여자들뿐.

       

       물론 나름 생각이 있어서 꺼낸 말이다. 단순히 비밀 친구라는 어감이 꼴려서는 아니다.

       

       …정말로.

       

       기왕 이렇게 된 거 끝까지 내가 가진 정보를 숨길 필요는 없잖나.

        

       차라리 조금씩 풀면서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나와 카렌. 더 나아가서는 나와 신전의 관계를 정립하면 된다.

       

       카렌이 원하는 대로 성자(아님)가 되어 신전의 마스코트가 되는 것보다는 이쪽이 훨씬 낫겠지.

       

       “우선 확인할게요. 카렌 심문관님은 황혼을 삼키는 자를 어떻게 하고 싶으신가요?”

       

       “당연히 이 세상에서 하나도 남김없이 지워버리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얼마나 희생할 준비가 되어있죠?”

       

       “…필요하다면 제 모든 것을 바쳐서라도.”

       

       “좋아요! 그럼 이제 카렌 심문관님에게만 해드리는 비밀 이야기 차례네요.”

       

       히죽 입꼬리를 끌어올리고는 리디아의 뒤가 아닌 옆에 나란히 섰다.

       

       “교황 클라우디아 3세는 남몰래 황혼을 삼키는 자를 원조하고 있어요.”

       

       “……?”

       

       “그 미친년은 천 년 전에 그러했듯, 다시금 세상이 신의 이름으로 도탄에 빠진다면 사랑의 여신께서 강림하실 거라 믿고 있어요.”

       

       “자, 잠시만요. 교황 성하가 대체 왜….”

       

       “이유는 간단해요. 교황은 사랑의 여신을 사랑하거든요. 너무너무 사랑한 나머지 여신을 소유하고 싶어 할 정도로요.”

       

       “…….”

       

       너무 당황해 말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는 건지 입만 뻐끔대는 카렌. 그런 그녀를 향해 씁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래서 제가 신전과 엮이고 싶지 않았던 거예요. 가서 무슨 일이 생길 줄 알고요.”

       

       “…아.”

       “그래서….”

       

       충격에 몸을 떠는 카렌. 반면 리디아는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여기서 리디아까지 설득될 줄은 몰랐네. 뭐, 이건 전부 사실이니까 상관은 없지만.

       

       이단의 수장은 사실 교황이었다! 교황이 남몰래 사교도와 손을 잡고 교단의 영향력을 늘려왔다! 

       

       뭐, 이런 클리셰는 흔하지 않은가. 나 또한 거기에 따랐을 뿐이다. 그 이유는 조금 다르게 설정했지만.

       

       여신을 노리는 크싸레 교황이라니. 이거 좀 재밌잖은가.

       

       물론 크싸레 교황이 무슨 짓을 저지를지를 생각하면 도저히 웃을 수 없지만.

       

       교황이라는 자리에 오른 것도 여신과 가장 가까워지기 위해서고, 이마저도 부족해 여신을 강림시키기 위해 이단과 손을 잡은 년이다.

       

       말 그대로 무슨 짓을 저질러도 이상하지 않은 녀석. 

       

       재미로 끼적인 설정이 현실이 되면 이렇게나 끔찍한 것이다.

       

       한차례 어깨를 으쓱이고는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서? 괜찮으신가요 카렌 심문관님? 당신이 평생 몸담아 온 신전은 생각만큼 깨끗한 곳이 아닐지 몰라요.”

       

       “…….”

       

       입을 꾹 다문 카렌을 향해 한 걸음 다가갔다.

       

       “이단심문관은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교황 직속 부대였죠? 명령서도 교황에게서 내려받을 테고요.”

       

       “…….”

       

       파리한 안색으로 몸을 떠는 그녀의 팔을 잡았다.

       

       “당신을 직접 이단심문관으로 임명하고, 여신을 위해 모든 영광과 행복을 포기하고 기꺼이 손에 피를 묻히겠다는 그 맹세는 처음부터 잘못되었어요.”

       

       “…….”

       

       그리고는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괜찮다고 위로해 주는 것처럼.

       

       “어쩌면 당신은 여신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이단을 돕고 있었던 걸지도 모르죠. 당신의 전우는 사실상 이단에게 바쳐진 제물이었을지도 몰라요.”

       

       “…….”

       

       그러다 돌연 카렌의 팔뚝을 강하게 붙잡았다. 어디에도 도망가지 못하도록. 강하게.

       

       “아아. 불쌍한 사람. 차라리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아무것도 듣지 못하는 장님에 귀머거리로 남았으면 좋았을 텐데.”

       

       “…….”

       

       까치발을 들어 카렌의 귓가에 속삭였다.

       

       “자신의 신앙이, 지금까지의 헌신이 부정당한 건 어떤 기분인가요?”

       

       “…….”

       

       이제는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의 카렌. 그녀를 가볍게 끌어안고는 등을 토닥여 주었다.

       

       “분명 힘들겠죠. 세상이 무너진 것 같고 제 말을 믿고 싶지 않을 거예요. …저도 경험해 봐서 잘 안답니다.”

       

       천장에서 픽뚫이 나왔을 때의 배신감을 떠올리며 그리 말하자 그제야 허공이 아닌 나를 바라보는 카렌.

       

       그녀가 더듬거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 그럼 저는 어떻게 해야…성자님…왜 제게 이런 이야기를….”

       

       “당연히 카렌 심문관님이 원해서 그런 거죠. 말씀하셨잖아요? 모든 이단을 없애기 위해서라면 어떤 대가를 치러도 상관없다고.”

       

       “하지만 제겐 너무 짐이 무겁습니다. 저는 어찌해야…길을, 길을 알려주세요…제발….”

       

       이제는 숫제 흐느끼기 시작한 카렌. 이 정도로 격하게 반응할 줄이야.

       

       일단 포옹을 풀고 반걸음 물러나 그녀의 눈동자를 빤히 올려다보았다. 

       

       내 진심을 보여주려는 것처럼, 혹은 카렌에게 자신이 받은 여신의 가호를 상기시켜 주려는 것처럼.

       

       “간단해요.”

       

       내가 지금껏 본 그 어떤 조각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3성 여신 피규어…아니, 여신상을 꺼내 카렌의 손에 들려주었다.

       

       “당신이 믿어야 할 건 교황도, 신전도, 심지어는 저도 아니에요.”

       

       이단심문관이라도 이 정도로 잘 만들어진 여신상은 처음 본 걸까. 눈을 휘둥그레 뜬 채, 멍하니 여신의 형상을 바라보는 카렌.

       

       “오직 여신님과 당신의 가슴속에서 속삭이는 양심에 귀를 기울이세요.”

       

       “……!”

       

       “잊으신 건 아니죠? 여신님께서는 그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라 이르셨다는 걸.”

       

       여신상을 쥐고있는 카렌의 손을 부드럽게 감싸며 웃어주었다.

       

       “죄책감을 느끼지 말라는 소리는 하지 않을게요. 다만, 여신께서는 아무에게나 자신의 가호를 내려주지 않는 것 또한 기억해 주시길.”

       

       마지막으로 소리를 먹는 발걸음의 원리를 정확히 반대로 재현해 보았다.

       

       나의 존재를 숨기는 것이 아닌, 세상에 드러내는 방식.

       

       숨소리가 몸짓이, 시선의 흐름이, 나를 구성하는 모든 것이 카렌에게 강하게 각인된다.

       

       여신의 가호를 통해 얻은 은은한 체취까지 말이다.

       

       “이 냄새는….”

       

       작게 중얼거리며 혼자만의 생각에 빠진 카렌. 그녀를 뒤로하고 몸을 돌리자 그곳에는 무척이나 두려운 것을 보았다는 듯 몸을 벌벌 떠는 리디아가 있었다.

       

       아차차! 리디아의 눈에는 조금 전의 ‘설득’이 전부 보였겠구만.

       

       어쩔 수 없다. 리디아는 하지 말라고 했지만, 그만큼 효과가 좋은 필살기를 꺼내는 수밖에.

       

       “쉿!”

       

       검지를 입가에 가져다 대고 입 모양으로만 한마디 덧붙였다.

       

       ‘비밀이에요 나의 기사님?’

       

       “…….”

       

       흠칫하면서도 빠르게 평정을 되찾는 리디아. 다만 어째서일까. 오늘따라 무표정한 얼굴에 후회와 한탄이 가득한 것 같았다.

       

       …뭐! 기분 탓이겠지!

       

       애써 대수롭지 않게 흘려넘기고는 리디아의 옆으로 돌아가 카렌이 생각을 정리하기를 기다렸다.

       

       ***

       

       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 생각을 마친 카렌이 평소의 굳은 신앙이 담긴 눈으로 고개를 꾸벅였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에이. 말했잖아요? 비밀 친구 하자고. 친구끼리는 서로 돕는 거죠.”

       

       “서로 돕는다라…제가 무엇을 해드리길 원하십니까 성자님.”

       

       “우선 그 성자라고 부르는 것부터 그만두죠.”

       

       “네 요나 님.”

       

       고분고분 호칭을 수정하는 카렌.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우선 이번에 받은 임무가 무엇인지, 어쩌다 지금에 이른 건지 알려주실 수 있나요?”

       

       잘만 하면 지금쯤 황혼을 삼키는 자들의 계획이 어디까지 진행됐는지, 그 근황을 알 수 있으리라.

       

       그런 생각으로 물어본 것이었다만….

       

       “황혼을 삼키는 자가 미궁의 1층에서 무언가 꾸미는 것 같으니, 놈들의 목적을 알아내고 가능하면 저지하라는 임무였습니다.”

       

       “네? 1층이요?”

       

       그게 말이 되나. 1층은 모험가가 가장 많이 오가는 층인 만큼 숨어서 활동하기 지극히 어려운 곳이다.

       

       이를 뻔히 알면서도 1층을 드나든다는 것은 그만한 뭔가가 있다는 뜻.

       

       “혹시 1층에서 황혼을 삼키는 자를 찾으셨나요?”

       

       “예. 녀석들은 세계수의 환영 앞에서 몬스터를 죽이고 있었습니다.”

       

       “미궁에서 몬스터를 잡는 게 특이한 일은 아니잖아요.”

       

       “특이하게도 아주 잔인하게 죽이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죽인 뒤에는 보란 듯이 전시할 뿐, 마석을 회수하지도 않았고요.”

       

       “…….”

       

       그 말을 듣는 순간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 되었다.

       

       대체 어디서 알게 된 지식인지는 모르겠지만, 놈들은 1층의 계층 수호자를 소환하려 하고 있다.

       

       “돌겠네.”

       

       소원권 스틸은 용서하지 않아요!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슬픈소식 하나…

    제가 요즘 따로 해야하는 일이 하나 더 있어서 앞으로 일일연재는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처음에 공지에 올렸듯이 주 5일 이상 연재는 지킬 테니 걱정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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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1

EP.61





       내가 신전 쪽과 엮이기 싫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굳이 척지고 싶다는 소리는 아니다.


       


       그렇기에 리디아가 나를 지키듯 감싸고 나선 걸 넘어, 내 기사라는 핑계까지 대며 여차하면 검까지 뽑을 준비를 하자 순간 당황했다.


       


       아무리 그래도 둘이 싸우는 건 좀 그렇잖은가. 말싸움도 아니고 칼싸움이라면 더더욱.


       


       하여 리디아의 팔 사이로 머리를 내밀며 말했다.


       


       “카렌 심문관님! 저희 싸우지 말고 비밀 친구 할까요?”


       


       “…예?”


       


       “비밀 친구 말이에요 비밀 친구. 이렇게 가끔 남몰래 이야기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고….”


       


       곰곰이 생각해 봤지만, 이미 신전 측과 엮이지 않는다는 선택지는 날아갔다. 카렌이 나를 이 정도로 신격화하고 있을 줄은 몰랐단 말이지.


       


       그렇다면 결국 남은 방법은 하나뿐인가.


       


       “같이 이단자들을 때려잡기도 하고 말이죠.”


       


       “…….”


       “…….”


       


       흉흉하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고, 남은 것은 어이없다는 듯 시선을 교환하는 두 여자들뿐.


       


       물론 나름 생각이 있어서 꺼낸 말이다. 단순히 비밀 친구라는 어감이 꼴려서는 아니다.


       


       …정말로.


       


       기왕 이렇게 된 거 끝까지 내가 가진 정보를 숨길 필요는 없잖나.


        


       차라리 조금씩 풀면서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나와 카렌. 더 나아가서는 나와 신전의 관계를 정립하면 된다.


       


       카렌이 원하는 대로 성자(아님)가 되어 신전의 마스코트가 되는 것보다는 이쪽이 훨씬 낫겠지.


       


       “우선 확인할게요. 카렌 심문관님은 황혼을 삼키는 자를 어떻게 하고 싶으신가요?”


       


       “당연히 이 세상에서 하나도 남김없이 지워버리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얼마나 희생할 준비가 되어있죠?”


       


       “…필요하다면 제 모든 것을 바쳐서라도.”


       


       “좋아요! 그럼 이제 카렌 심문관님에게만 해드리는 비밀 이야기 차례네요.”


       


       히죽 입꼬리를 끌어올리고는 리디아의 뒤가 아닌 옆에 나란히 섰다.


       


       “교황 클라우디아 3세는 남몰래 황혼을 삼키는 자를 원조하고 있어요.”


       


       “……?”


       


       “그 미친년은 천 년 전에 그러했듯, 다시금 세상이 신의 이름으로 도탄에 빠진다면 사랑의 여신께서 강림하실 거라 믿고 있어요.”


       


       “자, 잠시만요. 교황 성하가 대체 왜….”


       


       “이유는 간단해요. 교황은 사랑의 여신을 사랑하거든요. 너무너무 사랑한 나머지 여신을 소유하고 싶어 할 정도로요.”


       


       “…….”


       


       너무 당황해 말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는 건지 입만 뻐끔대는 카렌. 그런 그녀를 향해 씁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래서 제가 신전과 엮이고 싶지 않았던 거예요. 가서 무슨 일이 생길 줄 알고요.”


       


       “…아.”


       “그래서….”


       


       충격에 몸을 떠는 카렌. 반면 리디아는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여기서 리디아까지 설득될 줄은 몰랐네. 뭐, 이건 전부 사실이니까 상관은 없지만.


       


       이단의 수장은 사실 교황이었다! 교황이 남몰래 사교도와 손을 잡고 교단의 영향력을 늘려왔다! 


       


       뭐, 이런 클리셰는 흔하지 않은가. 나 또한 거기에 따랐을 뿐이다. 그 이유는 조금 다르게 설정했지만.


       


       여신을 노리는 크싸레 교황이라니. 이거 좀 재밌잖은가.


       


       물론 크싸레 교황이 무슨 짓을 저지를지를 생각하면 도저히 웃을 수 없지만.


       


       교황이라는 자리에 오른 것도 여신과 가장 가까워지기 위해서고, 이마저도 부족해 여신을 강림시키기 위해 이단과 손을 잡은 년이다.


       


       말 그대로 무슨 짓을 저질러도 이상하지 않은 녀석. 


       


       재미로 끼적인 설정이 현실이 되면 이렇게나 끔찍한 것이다.


       


       한차례 어깨를 으쓱이고는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서? 괜찮으신가요 카렌 심문관님? 당신이 평생 몸담아 온 신전은 생각만큼 깨끗한 곳이 아닐지 몰라요.”


       


       “…….”


       


       입을 꾹 다문 카렌을 향해 한 걸음 다가갔다.


       


       “이단심문관은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교황 직속 부대였죠? 명령서도 교황에게서 내려받을 테고요.”


       


       “…….”


       


       파리한 안색으로 몸을 떠는 그녀의 팔을 잡았다.


       


       “당신을 직접 이단심문관으로 임명하고, 여신을 위해 모든 영광과 행복을 포기하고 기꺼이 손에 피를 묻히겠다는 그 맹세는 처음부터 잘못되었어요.”


       


       “…….”


       


       그리고는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괜찮다고 위로해 주는 것처럼.


       


       “어쩌면 당신은 여신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이단을 돕고 있었던 걸지도 모르죠. 당신의 전우는 사실상 이단에게 바쳐진 제물이었을지도 몰라요.”


       


       “…….”


       


       그러다 돌연 카렌의 팔뚝을 강하게 붙잡았다. 어디에도 도망가지 못하도록. 강하게.


       


       “아아. 불쌍한 사람. 차라리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아무것도 듣지 못하는 장님에 귀머거리로 남았으면 좋았을 텐데.”


       


       “…….”


       


       까치발을 들어 카렌의 귓가에 속삭였다.


       


       “자신의 신앙이, 지금까지의 헌신이 부정당한 건 어떤 기분인가요?”


       


       “…….”


       


       이제는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의 카렌. 그녀를 가볍게 끌어안고는 등을 토닥여 주었다.


       


       “분명 힘들겠죠. 세상이 무너진 것 같고 제 말을 믿고 싶지 않을 거예요. …저도 경험해 봐서 잘 안답니다.”


       


       천장에서 픽뚫이 나왔을 때의 배신감을 떠올리며 그리 말하자 그제야 허공이 아닌 나를 바라보는 카렌.


       


       그녀가 더듬거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 그럼 저는 어떻게 해야…성자님…왜 제게 이런 이야기를….”


       


       “당연히 카렌 심문관님이 원해서 그런 거죠. 말씀하셨잖아요? 모든 이단을 없애기 위해서라면 어떤 대가를 치러도 상관없다고.”


       


       “하지만 제겐 너무 짐이 무겁습니다. 저는 어찌해야…길을, 길을 알려주세요…제발….”


       


       이제는 숫제 흐느끼기 시작한 카렌. 이 정도로 격하게 반응할 줄이야.


       


       일단 포옹을 풀고 반걸음 물러나 그녀의 눈동자를 빤히 올려다보았다. 


       


       내 진심을 보여주려는 것처럼, 혹은 카렌에게 자신이 받은 여신의 가호를 상기시켜 주려는 것처럼.


       


       “간단해요.”


       


       내가 지금껏 본 그 어떤 조각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3성 여신 피규어…아니, 여신상을 꺼내 카렌의 손에 들려주었다.


       


       “당신이 믿어야 할 건 교황도, 신전도, 심지어는 저도 아니에요.”


       


       이단심문관이라도 이 정도로 잘 만들어진 여신상은 처음 본 걸까. 눈을 휘둥그레 뜬 채, 멍하니 여신의 형상을 바라보는 카렌.


       


       “오직 여신님과 당신의 가슴속에서 속삭이는 양심에 귀를 기울이세요.”


       


       “……!”


       


       “잊으신 건 아니죠? 여신님께서는 그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라 이르셨다는 걸.”


       


       여신상을 쥐고있는 카렌의 손을 부드럽게 감싸며 웃어주었다.


       


       “죄책감을 느끼지 말라는 소리는 하지 않을게요. 다만, 여신께서는 아무에게나 자신의 가호를 내려주지 않는 것 또한 기억해 주시길.”


       


       마지막으로 소리를 먹는 발걸음의 원리를 정확히 반대로 재현해 보았다.


       


       나의 존재를 숨기는 것이 아닌, 세상에 드러내는 방식.


       


       숨소리가 몸짓이, 시선의 흐름이, 나를 구성하는 모든 것이 카렌에게 강하게 각인된다.


       


       여신의 가호를 통해 얻은 은은한 체취까지 말이다.


       


       “이 냄새는….”


       


       작게 중얼거리며 혼자만의 생각에 빠진 카렌. 그녀를 뒤로하고 몸을 돌리자 그곳에는 무척이나 두려운 것을 보았다는 듯 몸을 벌벌 떠는 리디아가 있었다.


       


       아차차! 리디아의 눈에는 조금 전의 ‘설득’이 전부 보였겠구만.


       


       어쩔 수 없다. 리디아는 하지 말라고 했지만, 그만큼 효과가 좋은 필살기를 꺼내는 수밖에.


       


       “쉿!”


       


       검지를 입가에 가져다 대고 입 모양으로만 한마디 덧붙였다.


       


       ‘비밀이에요 나의 기사님?’


       


       “…….”


       


       흠칫하면서도 빠르게 평정을 되찾는 리디아. 다만 어째서일까. 오늘따라 무표정한 얼굴에 후회와 한탄이 가득한 것 같았다.


       


       …뭐! 기분 탓이겠지!


       


       애써 대수롭지 않게 흘려넘기고는 리디아의 옆으로 돌아가 카렌이 생각을 정리하기를 기다렸다.


       


       ***


       


       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 생각을 마친 카렌이 평소의 굳은 신앙이 담긴 눈으로 고개를 꾸벅였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에이. 말했잖아요? 비밀 친구 하자고. 친구끼리는 서로 돕는 거죠.”


       


       “서로 돕는다라…제가 무엇을 해드리길 원하십니까 성자님.”


       


       “우선 그 성자라고 부르는 것부터 그만두죠.”


       


       “네 요나 님.”


       


       고분고분 호칭을 수정하는 카렌.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우선 이번에 받은 임무가 무엇인지, 어쩌다 지금에 이른 건지 알려주실 수 있나요?”


       


       잘만 하면 지금쯤 황혼을 삼키는 자들의 계획이 어디까지 진행됐는지, 그 근황을 알 수 있으리라.


       


       그런 생각으로 물어본 것이었다만….


       


       “황혼을 삼키는 자가 미궁의 1층에서 무언가 꾸미는 것 같으니, 놈들의 목적을 알아내고 가능하면 저지하라는 임무였습니다.”


       


       “네? 1층이요?”


       


       그게 말이 되나. 1층은 모험가가 가장 많이 오가는 층인 만큼 숨어서 활동하기 지극히 어려운 곳이다.


       


       이를 뻔히 알면서도 1층을 드나든다는 것은 그만한 뭔가가 있다는 뜻.


       


       “혹시 1층에서 황혼을 삼키는 자를 찾으셨나요?”


       


       “예. 녀석들은 세계수의 환영 앞에서 몬스터를 죽이고 있었습니다.”


       


       “미궁에서 몬스터를 잡는 게 특이한 일은 아니잖아요.”


       


       “특이하게도 아주 잔인하게 죽이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죽인 뒤에는 보란 듯이 전시할 뿐, 마석을 회수하지도 않았고요.”


       


       “…….”


       


       그 말을 듣는 순간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 되었다.


       


       대체 어디서 알게 된 지식인지는 모르겠지만, 놈들은 1층의 계층 수호자를 소환하려 하고 있다.


       


       “돌겠네.”


       


       소원권 스틸은 용서하지 않아요!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슬픈소식 하나...

    제가 요즘 따로 해야하는 일이 하나 더 있어서 앞으로 일일연재는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처음에 공지에 올렸듯이 주 5일 이상 연재는 지킬 테니 걱정마세요!
    다음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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