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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1

       “아가씨, 조금 전 출발 준비가 끝났다고 차장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짐은 다 챙겼나요?”

        “트렁크 세 개 분에 아가씨께서 입으실 드레스와 장신구를 가득 담았습니다. 필요하다면 본가에서도 지원을 보낼 것이라는 답신을 보내왔습니다.”

        “호호, 좋네요. 극채색에서 저희 셀루시아의 입지를 굳히는데는 실적만한 게 없어요. 이번 급행에서 반드시 그 성과를 낼 것이에요.”

       

        손목시계가 출발 시각이 가까워졌음을 알려왔다.

        도로시는 프릴 달린 양산을 접으며 열차에 탑승하기 위해 대기실에서 나왔다.

        목적지는 무려 66층이라는 엄청난 난이도를 자랑하는 곳이었지만 승무원이 가져 온 발판에 올라설 때까지 그녀의 걸음에 망설임은 없었다.

        오히려 하인인 피터가 꺼림칙한 표정으로 열차에 타기를 주저했다.

       

        “헌데 아가씨, 악의의 층에 마족이 출현했다는 정보는 확실한 겁니까?”

        “그게 무슨 소리죠?”

        “만약 제대로 된 조사를 하지도 않고 일을 벌인 거라면 분명 추후 문책이 있을 겁니다. 급행은 한 번 여는데도 마탑의 자원이 상당히 소요되는 행위…….”

        “하아, 피터. 정보의 출처는 더없이 확실해요.”

       

        도로시는 정령문이 새겨진 자신의 쇄골 부근을 부채로 탁! 치며 하인의 불안을 종식시켰다.

        다른 이도 아닌 정령이 말한 것이니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정령의 회랑에서 계약을 채결한 어둠의 정령은 이런 종류의 정보 수집에 매우 유능한 면을 보여왔다.

        계약자보다 그녀가 가진 위치노트에 더 집착하는 것만 빼면 완벽했다.

       

        “제 이름을 걸고 말하는 것이니 믿어도 좋아요.”

        “허면 저희끼리 갈 게 아니라 증원이라도 부르는 게 어떻습니까. 66층에서는 저희 학파 외에 모든 이들이 적입니다. 자칫 잘못하면 돌아오는 차편에 탑승하지 못할 수도…….”

        “하! 저는 제 오라비 같은 겁쟁이가 아니라는걸 잊었나요?”

       

        차가운 돌바닥을 향해 시선을 던지며 도로시가 말했다.

        베티 크로우.

        셀루시아의 직계랍시고 거들먹거리던 남자는 정확히 이 장소에서 난동을 피우다 정보부에 의해 체포되었다.

       

        가문 내에서는 마족에게 습격 당한 거라며 적당히 사건을 덮었지만 내막은 따로 있었다.

        탑승 명단에도 없던 그가 플랫폼을 서성이던 이유는 테러 사건을 자행했던 조직의 일원이었기 때문.

        그렇다면 지레 겁을 먹고 중간에 발을 뺀 게 분명해 보였다.

       

        “그 인간이 있는대로 추태를 부린 덕분에 셀루시아는 백가 내에서도 입지가 상당히 약해졌어요. 글레시아에게 단단히 찍힌 건 덤이고.”

       

        비나 네타니아 의장의 성격이 순혈 마법사 치고도 좀 이상했기에 망정이지 일반적으론 두 사람 다 절대 극채색에 합격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쫓겨나지 않으려면 실적을 내야 한다는 불안은 여전해서, 도로시는 누구보다 마족의 출현을 기다리고 있던 것이었다.

       

        “테스트에서 만났던 그 이상한 마족만 아니라면 어떻게든 될 거에요.”

        “아, 킹룡말이군요.”

        “그런 이름이었나요……? 어쨌든 다른 이들이 오기 전에 타요. 경쟁자는 적을수록 좋으니까.”

        “알겠습니다.”

       

        플랫폼은 한적했다.

        조사위처럼 대규모 인원이 출석 통지를 받은 것이 아니고 급행이 출발한다는 소문 자체가 퍼지기 전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두 사람이 티켓에 적혀 있는 이등석 객실에 도착했을 때.

        그곳에는 이미 다른 두 명의 선객이 타고 있었다.

       

       

       

        *

       

        “당신들은 누구죠? 여긴 66층으로 가는 급행이에요.”

        “티켓은 가지고 계신 겁니까?”

       

        극채색의 로브를 입고 있는 두 사람이 나와 릴리벨을 향해 경계의 눈빛을 보냈다.

        어쩐지 급행을 열어달라고 비나에게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이미 열차가 떠날 준비를 하고 있더라니.

        갤러리에 올린 글을 보고 누군가 먼저 선수를 쳤다는 내 가설이 맞아 떨어졌다.

       

        ====

        ㅇㅇ(1.1)

        [갸아악 66층에 마족이 나타났어요]

       

        사교장 뒤뜰과 골목에서 밤마다 사람을 해치고 다닌데요

        마법사라면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공격해 벌써 사상자가 여럿 나왔어요 갸아악

       

        마탑 유일의 마족 퇴치 전문 기구이며 구성원 한 명 한 명이 정의감을 가지고 있는 모 조직(정보부 아님)이 필요한 순간인 것 같아요

        단원들이 이 글을 꼭 볼 수 있도록 널리 퍼뜨려 주세요~

       

        [추천 3 / 비추천 145]

       

        — 비추

        — 어쩌라고

        — 알빠임?

        — 66층이면 불야성(不夜城)이네. 거기 사교장은 아직도 개판일려나

         ㄴ 마족 없어도 위험한 데긴 함 ㅋㅋㅋ 미친놈들이 꼭 자기 흔적 남겨놓고 가서

        ====

       

        본래 직접 하려던 수고를 덜어준 것이니 불만은 없었다.

        둘은 나를 만난 적이 없어 누군지 모르겠지만 이쪽은 프리나에게 들은 바가 있었다.

        분명 셀루시아의 방계였던가.

       

        “저희도 극채색의 단원입니다. 여기 티켓도 제대로 가지고 있고요.”

        “정말이에요? 어째 더럽고 추잡스러운 마나의 기운이 느껴지는데…….”

        “여기 손수건이 있습니다, 아가씨.”

        “사용인 없이 둘이서 중층에 올라가려 하다니, 어리석네요.”

       

        1층의 플랫폼, 출발하기 직전의 열차, 그리고 정령사 특유의 타인을 깔보는 시선까지.

        익숙한 누군가의 얼굴이 전두엽 안쪽을 간지럽혔지만 끝끝내 떠올리진 못했다.

        보나마나 선량한 나를 음해하려던 나쁜 녀석이었겠지.

        해주술사로서 서러운 점은 이것 뿐만이 아니었다.

       

        “보아하니 정령학파는 아닌 것 같은데, 그렇다면 같은 극채색이라도 66층에선 적이나 다름없어요.”

        “…….”

        “옆에 있는 쪽도 마찬가지. 저희는 마족에 대한 조사를 따로 진행할 테니 그런 줄 아세요.”

       

        시엔이 사라진 66층은 그야말로 학파들의 전쟁터였다.

        제국의 수도처럼 무도회나 사교장이 늘어선 거대한 도시지만 그곳에서도 안전을 담보하는 건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불야성에는 ‘악의의 층을 통과하려는 자’ 뿐 아니라 ‘악의의 층을 이미 통과한 자’도 있기 때문.

       

        일종의 복제체(複製體)에 해당하는 존재들이 층에 머물 당시 본체의 행동과 사고방식을 그대로 간직한 채 돌아다닌다.

        예를 들어 내가 모든 일을 끝마치고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면 66층에는 시엔을 찾으려는 나의 복제체가 만들어지게 된다.

        지금도 가문끼리의 잡음이 끊이질 않는데 과거에는 학파간의 전쟁도 심심하면 벌어질 정도로 갈등이 극심했다.

        그 흔적이 지금도 짙게 남아있기에 60층을 악의의 층이라고 부르는 것이었다.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한 마디도 하지 않은 도로시는 급행이 멈추자 피터와 함께 곧장 바깥으로 나갔다.

        짐을 챙기며 휘황찬란한 도시의 모습을 차창 밖으로 구경하던 내게 릴리벨이 말했다.

       

        “제가 알기로 해주학파 출신 중 66층을 넘어간 이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슴다. 제대로 된 구심점도 없고 수배 명단에 올라 있는 이들의 과거이니만큼 굳이 만날 필요는 없을 검다.”

       

        그녀는 자신이 정보 2과에 접선하고 올 동안 안전하게 숨어있을 곳을 알려주겠노라고 했다.

        내가 시엔의 행방을 아냐고 묻자 잠시 망설이는 듯 하더니, 이내 한 인물에 대한 정보를 털어놓았다.

       

        “공략대, 라고 알고 계심까?”

        “아니.”

        “현재 상층에서 활동하는 마법사들이 등반을 위해 조직한 모임을 뜻함다. 칼레이도스의 전 칠현자가 이끄는 파티부터 해서 유명한 곳이 여럿 있는데, 그 중 하나의 우두머리에 대해 조사 중임다.”

       

        연금학파 출신으로 추정되는 마법사가 검은별을 마탑에 불렀을 가능성이 있다.

        시엔은 그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 불야성에 잠입한 것이었다.

        상층, 혹은 최상층에 있을 마법사의 소재는 파악할 수 없지만, 그자가 악의의 층에 머물렀던 흔적은 그대로 남아있을 테니까.

       

        호텔에 도착해 짐을 푼 내가 잠시 화장실에 다녀오자, 릴리벨은 어두운 정보부의 정복으로 갈아입은 뒤였다.

        나갈 채비를 마친 그녀는 내게 66층에서의 주의사항에 대해 설명했다.

       

        “돌아다닐 때는 가면은 꼭 쓰고 학파는 되도록 밝히지 않는 편이 좋을 검다. 어느 소속인지 모르면 함부로 건들지 못하니 말임다.”

        “사칭하면 되지 않아?”

        “신비를 테스트하는 법이 너무 간단함다. 뭐, 선배처럼 좀 특이한 케이스면 모를까 대체로 추천하진 않슴다.”

       

        그녀가 떠나고 나자 나는 호텔 침대에 털썩 누웠다.

        그러고 보니 이틀째 밤을 꼬박 세웠군.

        갤질이 72시간을 향해 다가가자 분탕들이 숨막혀하며 좀 가서 자라는 글을 신문고에 잔뜩 올렸지만 시엔이 걱정되는 마음에 눈이 감기질 않았다.

        허나 이 넓은 도시를 일일히 뒤져서 찾는 건 비효율적이었기에 우선 릴리벨이 정보를 물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나는 다시 몸을 일으켜 협탁에 세워두었던 살살이에게 물었다.

       

        “살살아, 너도 여기 왔었어?”

        — ㄷㅏㅇ연, ㄴㅏ ㅅㅏ교계의 ㅇㅕ왕

        “그럼 네 복제체도 있겠네. 가서 인사 시켜줄까?”

        — 주ㄷ닥 악ㅁㅏㅇㅑ

       

        비록 소환학파긴 하지만 본인을 데리고 있는 내가 부탁하면 뭔가 도움을 주지 않을까 해서였다.

        그러나 스스로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살살이는 소용 없을거라 말했다.

       

        — 도움 받ㅇㅡㄹ ㄱㅏ능ㅅㅓㅇ 없ㅇㅓ

        “어째서?”

        — ㄷㅗㄴ 안 돼ㄴㅣㄲㅏ?

       

        너도 참 애가 꼬였구나.

       

        여전히 시엔의 위치노트는 신호가 잡히지 않는다.

        살살이의 본체, 아니 복제체인 헤르헤 소롯을 만나는 건 무의미하더라도 여기 가만히 죽치고 있는 것보단 나았다.

        도시의 지리도 익힐 겸 밖으로 나가려던 내게 살살이가 말했다.

       

        — 주ㄷ닥

        “왜, 또 연봉협상이야? 달마다 포인트를 올려달라고 하는데 올해는 경기도 나쁘고 내 창도 바꿔야 되서 힘들어.”

        — ……그ㄱㅔ ㅇㅏ니ㄹㅏ, 밤ㅇㅔ 돌ㅇㅏ다니는 ㄱㅓ 위험

       

        위험하다라.

        살살이는 내가 강함이 어느 정도인지 가장 가까이서 봐 온 녀석이다.

        기사단을 데리고 검은별과 싸울 때도 아무 말도 않았기에, 경고를 그냥 흘려들을 수만은 없었다.

       

        — 주ㄷ닥ㅇㅣ 쓴 글

        “66층에 마족 있다는 그거? 그야 당연히 거짓말이지.”

        — 진ㅉㅏ 있ㅇㅓ ㅁㅏ족은 ㅇㅏ니지만

        “뭐?”

       

        녀석은 삐뚤빼뚤한 글씨를 천천히 노트에 써내려갔다.

       

       — ㅇㅏㄱ의의 층, ㅁㅏ탑 역ㅅㅏ를 통틀ㅇㅓ ㄱㅏ장 ㅁㅣ친 괴물 ㅇㅕ기 있ㅇㅓ

       

        검 끝을 바들바들 떠는 모습은 누군가를 극도로 두려워하는 것처럼 보였다.

       

       — ㅇㅣ명은

       — ㅁㅏ법 살ㅎㅐㅈㅏ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와, 어느새 선작 1만을 넘었네요.
    시간이 어느 정도 걸릴거라 생각해 확인하지 않고 있었는데 오늘 보니 갑자기 껑충 뛰어 있었습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새로 보러 와주신 독자분들 모두 반갑습니다.
    오랜만에 작가의 말을 길게 쓰는 김에 몇 가지 공지사항이 있습니다.

    연재주기를 조정하려 합니다.
    사실 크게 달라질 것까진 없고요, 매번 컨디션이 나쁠 때마다 쉰다고 공지를 올리는 게 죄송스러워 그냥 요일을 정하지 않고 주 6회 연재하도록 하겠습니다.

    추가로 소제목이 변경되었습니다.
    내용은 똑같으니 편하게 봐주시면 되겠습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월하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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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이세계 마탑의 갤주가 되었다
Score 3.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10 years since transfer to another world

What I do inside the Ivory Tower of Truth isn’t much different from what I did on Ea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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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you missed today’s attendance for the ‘Principles and Understanding of Dimensional Glass’ course, you’ll get a penalty] If you want to kill the professor who suddenly changed the classroom with a phase transition 2 minutes before the start of class, go ahead. Haha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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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t why does everyone think I’m the Tower M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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