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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1

       

       

       “···감상이 새롭네.”

       

       “그래?”

       

       “당연하지. 벌써 반년이라고, 반년.”

       

       

       아멜리아의 말에 그제야 시간의 흐름이 얼마나 빠른지 느낄 수 있었다.

       

       벌써 반년이구나.

       

       방학이라는 사실에만 집중했더니, 시간이 그만큼 흘렀다는 사실을 놓쳐버렸다.

       

       

       “분명 친구들도 잔뜩 사귀고 평범하게 보낼 거라고 생각했는데.”

       

       “꿈도 크네, 유시우.”

       

       “···아니, 그냥 평범하게 생활하는 게 꿈이 큰 거야?”

       

       “네 상황을 보면 맞는 말 아냐?”

       

       

       ···그래, 맞는 말이긴 하지. 내 학창 생활이 시작하자마자 이렇게까지 꼬일 거라고는 아무도 생각 못했으니까.

       

       도무지 정체를 파악할 수 없는 학생과, 도무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감도 잡히지 않는 학생과 이렇게까지 가까워질 줄은 생각도 못 했는데.

       

       내가 평범하지 못한 생활을 하는 이유 중의 절반이 아르테라면 절반은 아멜리아라는 사실을, 그녀는 알고 있을까?

       

       절대 모르겠지. 지금도 모르는 표정인데.

       

       한숨을 내쉬며 아멜리아에게 말을 걸었다.

       

       

       “결국 못 찾았네, 비밀의 방.”

       

       “애초에 반년 동안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게 실수였다고 너도 말했잖아.”

       

       “그래서 바꾼 계획도 엎어졌고?”

       

       “윽···.”

       

       

       반년간 이곳저곳 아카데미를 헤집어왔다.

       

       동아리 활동이라는 말을 변명 삼아 이런저런 위치를 모두 뒤집었다, 이 말이지.

       

       ···그런데, 없었다. 눈을 씻고 찾아봐도 비밀의 방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다고.

       

       

       “역시 비밀의 방 같은 건 사실 없는 거 아닐까? 부장도 처음에는 열심히 찾다가 지금은 의욕이 사라진 모양이던데.”

       

       “···부장한테만 뭐라 할 이야기는 아니잖아? 유시우. 너도, 나도 의욕을 잃어버린 지는 한참 지났어.”

       

       “그래, 뭐. 그렇지.”

       

       

       솔직히 말하자면, 처음에는 다들 열심히 뛰어다녔다.

       

       아카데미 재학 중에만 어떻게든 비밀의 방을 찾아내서, 그 위험한 아티팩트라는 걸 먼저 선점해버리면 된다고 생각했으니까.

       

       탐험 동아리에 들어간 것도 그것 때문이었으니 부장에게도 이런저런 말로 각색해서 그런 게 있었다고 말해주었다.

       

       잔뜩 흥분한 부장과, 어떻게든 비밀의 방을 찾아내야 하는 나와 아멜리아가 모여 몇 달간 열심히 찾아다녔다.

       

       ···그래, 찾아다녔다. 지금은 동아리의 그 누구도 찾아다니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후우, 조금이라도 진전이 있어야 뭘 하든가 하지. 제자리걸음이면 의욕도 꺾인다는 이야기를 실감했다니까.”

       

       “···나도 그런 기분은 처음이었어.”

       

       

       나와 아멜리아는 반년간 비밀의 방을 찾아다니며 깨달았다.

       

       도대체 사람들이 어째서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 걸 싫어하는지.

       

       왜 사람들이 수련을 싫어하는지.

       

       

       “진전이 없다는 게 이렇게까지 힘들 줄은 몰랐지.”

       

       “그래. 할아범이 수련을 싫어하는 사람이 많다고 했을 때, 솔직히 잘 몰랐는데. 이젠 알 것 같아.”

       

       

       나와 아멜리아는 같은 반 학생들이 수업을 듣기 싫어하고, 자신을 갈고닦는 걸 싫어하는 걸 숱하게 보아왔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볼 때마다 도대체 왜 싫어하는지 의문이었다. 그야, 며칠 연습하면 조금씩 불가능했던 게 가능해지는 그 성취감이 좋았으니까.

       

       ···그리고 그 의문에 대한 답변을, 우리는 스스로의 감정을 통해 깨달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싫어할 만하다고.

       

       

       “아무런 성과도 없이, 그저 시간을 보낼 뿐이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을 때의 그 감각이란···. 히익.”

       

       

       아멜리아가 소름 끼친다는 듯 팔뚝을 문질러댔다.

       

       그래, 그래서 우리는 포기했다. 우리가 오만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서.

       

       ···아카데미의 창시자가 죽을힘을 다해 숨겨서 수백 년 동안 아무도 찾지 못한 비밀의 방을, 고작 반년도 지나지 않았는데 학생 따위가 찾을 수 있을 리가.

       

       심지어 아무런 단서도 없는 상태로.

       

       그래서 먼저 찾아내는 건 포기하고 아르테가 아티팩트를 찾아내길 기다렸다.

       

       그 아티팩트를 가져가기 직전에 어떻게든 탈환하려고.

       

       그녀는 학생 수준의 강함을 벗어났고, 비밀의 방에 대한 단서도 가지고 있으며, 정확한 인원은 모르겠지만 동료마저 있었다.

       

       그러니 어떻게든 강해져서 그녀가 아티팩트를 손에 쥐기 직전에 기습하여 제압하는 방향으로 노선을 변경했다.

       

       그것도 어제 폐기되었지만 말이야.

       

       

       “···아, 도로시다. 여기! 여기야!”

       

       

       아멜리아가 손을 번쩍 들어 흔들어대며 소리쳤다.

       

       그제야 멀리서부터 갈색빛의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도로시가 허겁지겁 달려왔다.

       

       

       “헤엑, 헤엑···. 아, 안녕하세요.”

       

       “천천히 와도 괜찮았는데.”

       

       “그, 그래도. 방학을 기념해서 같이 놀자고 했는데 늦게 오면 조금 그렇잖아요.”

       

       

       싱긋 웃는 도로시의 모습이 눈부셨다.

       

       이 얼마나 상식적인 발언인가.

       

       아멜리아라면 분명히 그래? 그럼 다음부터 조금 늦어도 괜찮겠네? 하고는 정말 조금씩 지각하기 시작하겠지.

       

       

       “···뭐야, 그 기분 나쁜 시선은?”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무심코 그녀를 이상한 눈동자로 쳐다봤던 걸까.

       

       의문스러워하는 아멜리아에게 아무것도 아니라고 변명한 뒤 얼버무렸다.

       

       이대로 계속 물어보면 조금 곤란하니까.

       

       

       “슬슬 시작할 것 같은데, 자리나 잡자.”

       

       “좋아요. ···그런데 아르테는요?”

       

       “···어? 조금 전에 저쪽에 보였는데. 어디 갔지···?”

       

       

       어떻게든 아르테를 찾으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우리는 아르테를 찾을 수 없었다.

       

       도무지 어디로 사라졌는지···.

       

       아멜리아는 아르테를 향한 불평을 쏟아냈다.

       

       

       “같이 방학식 끝나고 어디 놀러 가자니까···. 어디로 사라진 거야, 도대체.”

       

       “글쎄. 끝나고 전화해도 괜찮을 테니까, 일단 앉자.”

       

       “후우···. 내가 참는다, 참아···.”

       

       

       ···솔직히 말하자면, 나와 아멜리아는 아르테를 향한 경계심이 많이 낮아졌다.

       

       그녀가 아라크네의 일원이라는 심증은 거의 확실하다.

       

       나와 아멜리아는 그게 정답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실제로 보지 않아서일까? 그녀를 향한 경계심이 점차 희미해졌다.

       

       영웅을 목표로 하는 사람이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게 조금 그렇기는 하지만···. 죽은 사람들은 잘 모르겠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라고 봐도 되겠지.

       

       그저 뉴스로 죽었다는 소식밖에 전해 듣지 못했을 뿐, 나와 아무런  관계없는 사람들이니까.

       

       게다가 피해자도 선량한 시민들도 아니다.

       

       그 시민들을 줄기차게 괴롭히던 빌런들이었다.

       

       죽어버린 빌런 중에 전직 수사관을 살해하고 민간인을 30명 가까이 살해한 뒤 출소한 범죄자도 있었다는 뉴스도 나왔던가.

       

       죄를 짓지 않았을 수도 있다. 죽어버린 빌런이 누명을 쓴 사람일 수도 있다.

       

       ···하지만, 너무나 적나라한 정황증거 탓에 잘 죽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 건 내가 편협하기 때문일까?

       

       아르테가 사람을 죽였을 거라는 생각이 듦에도 그렇게까지 거부감이 들지 않는 건 내가 잔인한 사람이기 때문일까?

       

       잘 모르겠다.

       

       

       “아, 아. 곧 있으면 방학식이 시작되오니, 학생 여러분들께서는 자리에 앉아주시고···.”

       

       “하아.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거야?”

       

       

       아멜리아만 해도 처음의 그 적대감은 어디로 사라진 건지, 아르테를 향해 친근감을 느끼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녀는 나와 아르테, 그리고 최근에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한 도로시를 제외하고는 대화를 나누는 사람이 손에 꼽으니까.

       

       어쩌면 그녀도 아르테를 막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정말로 친구라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점점 그녀를 허물없이 대하기 시작하고 있었으니 아마 확실하겠지.

       

       

       “야, 진짜 시작하겠다. 앉아, 앉아.”

       

       

       아르테가 없다는 사실에 허전함을 느끼고 있는 나도 별로 다르지는 않을 거다.

       

       그녀가 위험한 것도 맞고, 무슨 배경을 가졌는지도 잘 모르겠고, 나를 지켜보며 위험한 행동을 꾸미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아르테라도 반년뿐이지만 친하게 지냈던 경험이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

       

       나도 어느새 아르테를 소중한 친구라고 생각하게 되었으니까.

       

       아멜리아의 계획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방학 동안에 좋은 경험을 쌓기를, 마음속으로 바랬다.

       

       

       

       ***

       

       

       

       “그리고 마지막으로, 여러분들이 반년간 아카데미에서 배운 여러 가지···.”

       

       “또 시작이네요.”

       

       

       도무지 끝날 생각을 하지 않는 교장 선생님의 훈화 말씀이 벌써 십 분이 넘도록 지속되고 있었다.

       

       끝날 거라고 생각했는데 끝나지 않고, 이제 정말로 끝날 거라고 생각했는데도 또다시 이어지는 발언.

       

       한 시간은 지났을 거라 생각해 시계를 바라보아도 십여 분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에 절망하고, 또다시 귓가에 꽂히는 목소리.

       

       그 영원할 것 같은 지루한 시간에 도로시가 불만을 토해내고 있었다.

       

       

       “아멜리아는···. 기절했네.”

       

       

       반쯤 축 늘어진 채로 멍때리는 그녀의 모습이 평소와는 딴판이었다.

       

       그렇게 활발하던 사람이 이렇게 되어버리다니.

       

       슬슬 몸이 굳어간다고 느낄 때쯤, 문득 떠올렸다.

       

       ···여기, 이 자리.

       

       낯이 익었다.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자리였다.

       

       어디였지? 이 강당에서 기억에 남는 건 마수 습격···.

       

       덜컹.

       

       

       “시, 시우야?”

       

       “거기 학생! 무슨 일입니까! 어서 자리에 앉으세요!”

       

       

       저 멀리서 선생님들이 나를 타박하며 다가오는 걸 개의치 않고, 입학식 날 아르테가 있던 장소를 바라보았다.

       

       아르테는 없다. 하지만 기시감이 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불안감을 지울 수가 없었다. 머리가 깨지는 것 같은 착각이 일 정도로.

       

       아르테는 어디로 사라진 거지?

       

       황급히 닫힌 창문을 열어 강당 밖을 확인해보았다.

       

       

       “···미치겠네.”

       

       “학생! 자리에 앉···뭐야, 저거.”

       

       

       비바람을 몰고, 수백 명의 사람이 아카데미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어제 댓글을 읽어보다가 문득 깨달아버린 점이 있습니다.

    이대로라면 방학식까지 화수가 엄청나게 늘어질 느낌이다! 라는 생각에 시간대를 스킵해버렸더니 해야하는 묘사까지 스킵해버렸더라구요···.

    그래서 설명을 추가했습니다.

    다들 안녕히 주무세요.

    오늘따라 졸리네요.

    다음화 보기


           


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실눈이라고 흑막은 아니에요!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Why are you treating only me like this!

I’m not suspicious, believe me.

I’m a harmless person.

“A villain? Not at 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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