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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1

       “염병하네, 진짜.”

       

       얼굴에 튀는 피와 살점을 닦아내며 디안이 욕을 쏟아냈다.

       

       그 사이 라이너스는 이미 인간연합군 지휘부에 도달해 드잡이질을 시작하고 있었다.

       

       “지금 뭐하는 겁니까! 사람을 투석기로 날려 보내다니요!”

       

       난데없이 들이닥친 젊은 남자에 군단장은 영문을 모르고 참모들을 돌아봤다.

       

       “이 새끼는 뭐야?”

       

       “얼마 전에 황성에서 말했던 그자들인 것 같습니다.”

       

       어느 참모의 보고에 군단장은 눈썹을 꿈틀하며 자세를 바로했다.

       

       “이거 미안하오. 겉으로는 어디 귀족가 샌님처럼 보여서. 황성의 특임대원이라고?”

       

       “방금 그거 뭡니까? 투석기에 왜 탄환 대신 마족을 날려보낸 겁니까?”

       

       “아, 저거 말이지.”

       

       군단장이 지금 또 한 차례 쏘아지는 마족들을 힐끔 보고는 말했다.

       

       “우리가 잡은 마족 포로들이오. 말단 병사들이라 어디 써먹을 곳도 없고 해서, 성에 틀어박힌 놈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려고 쏘아보내고 있소.”

       

       “저런다고 마족들이 성을 내줄 것 같습니까? 오히려 저쪽에서 우리 포로들로 대응하고 있는 거 안 보십니까?!”

       

       “으아아아아아악!”

       

       성 위쪽에서 대여섯 명의 인간들이 사정없이 추락해 터져 나갔다. 심지어 허공에서 피아의 포로가 서로 부딪히기도.

       

       “이런 씨발!”    “우웨엑!”

       

       터진 잔해를 뒤집어 쓴 병사들이 욕을 하거나 격한 구토를 하면서 황급히 물러났다.

       

       그것을 본 라이너스가 분노해 소리쳤다.

       

       “당장 멈추세요!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전쟁에 있을 수 있는 일은 뭐고 없는 일은 뭐요? 이길 수 있다면 뭐든 하는 거지.”

       

       “포로를 이런 식으로 처형하라는 법은 없습니다. 그리고 이런 방식은 저쪽에 잡힌 우리 포로들의 희생만 초래할뿐입니다!”

       

       “하하, 우리 특임대원께서 잘 모르시나 본데.”

       

       군단장이 낮게 웃으며 지휘봉으로 책상을 딱딱 두드렸다.

       

       “우리는 지금 마족과 싸우고 있소. 정상적인 상식과 도덕이 통하지 않는 뿔쟁이들과 승리 아니면 전멸의 두 가지 선택지뿐인 필사의 도박을 하고 있단 말이오.”

       

       “그렇다고 해서 우리까지 마족처럼 될 수는 없어요. 당장 멈추십시오.”

       

       “싫다면?”

       

       “황성이 허락한 범위 내에서 특임대의 권한을 행사하겠습니다.”

       

       당장 이런 급박한 전장에서 적군의 포로의 처우에 대해 논하며 따지는 것은 부적절하다.

       

       이곳 이브로니크 성은 마왕군에게나 인간연합에게나 너무도 중요한 요충지. 무조건 뺏어야만 하고 무조건 막아야만 하기에.

       

       하지만 정의로운 용사가 될 운명인 라이너스에게 저항을 포기한 포로를 투석기에 날려 보내 죽이는 일은 견딜 수 없는 악행이었다.

       

       “네가 뭔데 군단의 작전에 이래라 저래라야!”

       

       라이너스의 말에 돌연 군단장이 격노하며 버럭 소리쳤다.

       

       “웃기지도 않는 소리! 법이 어쩌고 포로가 어째?! 애초에 저것들이 먼저 시작했어! 저기 절벽 위를 봐라!”

       

       군단장이 가리키는 곳은 이브로니크 성벽.

       

       거기에 시체들이 줄줄이 엮여 길게 늘어져 있는 게 보인다.

       

       “저 새끼들이 먼저 저렇게 했다고! 네놈은 이제 막 와서 모르겠지만 처음부터 시체가 아니었어! 모두 살아 있었다!”

       

       “뭐라고요…?”

       

       “우리가 공성병기를 사용하지 못하게 살아 있는 포로들을 절벽에 저렇게 묶어 놓은 거야!! 저기 걸려서 죽어가는 포로들이 울부짖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면 닥치고 있어!!”

       

       라이너스는 말문이 막혀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군단장은 씩씩대면서 참모들에게 명령했다.

       

       “포로들을 계속 쏘아보내! 특임대고 나발이고 다 무시해!”

       

       “자자, 라이너스. 진정해라.”

       

       그때 막 지휘부에 도착한 디안이 라이너스의 어깨를 두드렸다.

       

       “지금은 서로 싸울 때가 아니야.”

       

       “넌 또 뭐야? 딴지를 걸 생각이라면 당장 꺼져!”

       

       군단장이 침을 튀기며 소리치자 디안이 웃으며 양손을 들어 올렸다.

       

       “딴지 거는 게 아니라 이 지랄 같은 상황은 빨리 종결시키려고 하는 겁니다. 그러니 다들 제 이야기를 좀 들어보시죠.”

       

       디안은 지휘부로 오면서 생각한 작전에 대해 빠르게 모두에게 설명했다.

       

       “우리가 절벽으로 침투해 내부를 소탕하고 성문을 개방하겠습니다.”

       

       군단장과 참모들은 정신나간 소리하지 말라며 경악했고 디안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런데 이거 말고 방법 있어요? 여기 오기 전에 듣기로 저 새끼들, 독기에 지뢰까지 쓴다면서요? 진입로는 하나뿐이고 거기로 보병을 밀어넣는 건 말도 안 되고. 혹시 기발한 생각 또 있으신 분?”

       

       디안이 과장되게 손을 들며 두리번거렸지만 거기에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모든 접근로가 막힌 상황에서 절벽을 기어오르는 것 말고는 이렇다 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

       

       “그런데… 절벽을 대체 어떻게 기어오른단 말이오? 그것을 고려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저 높은 곳을 어떻게…?”

       

       “그거야 우리가 할 일이니 신경쓰지 마시죠.”

       

       “좋소. 밑져야 본전이지. 하지만 우리 군단의 작전에 대해 왈가왈부할 생각은 마시오.”

       

       “그러십쇼.”

       

       군단장은 디안의 작전에 수긍했고 그날 자정을 기해 라이너스와 디안은 절벽으로의 침투를 감행했다.

       

       

       # # # # #

       

       

       “야, 라이너스. 어쩔 수 없어.”

       

       절벽에 오르기 전 디안이 라이너스의 어깨를 쳤다.

       

       “네 눈에는 정상이 아니겠지만 어쩌겠냐. 지금 군단에서는 복수심 때문에 눈이 완전히 멀어버렸는데.”

       

       “이해하지 못하는 바가 아니다. 그냥… 내가 견딜 수 없는 것뿐이다.”

       

       “그럼 얼른 올라가자. 우리가 빨리 끝내는 수밖에 없어.”

       

       절벽으로의 침투는 순탄치만은 않았다. 애초에 순탄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절벽에 형체를 알 수 없는 피떡이 되어 늘러붙은 시체를 뚫고 올라가야만 했으니까.

       

       그 와중에 양측에서는 여전히 투석기로 포로들을 서로에게 집어 던지고 있었고.

       

       퍼어억-!

       

       조준을 잘못해 던져진 마족 병사 하나가 머리 바로 위에 부딪혀 터지며 입속으로 피와 함께 뭔가 이상한 덩어리가 섞여 들어왔다. 

       

       다소 물컹하고 미끌거리는 기묘하고 불쾌한 촉감의 무언가였다.

       

       입안에서 꺼내어 보니 핏줄과 살점이 덜렁거리는 눈알이 디안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것을 시작으로 잘게 찢긴 신체의 조각들이 끈적한 피와 함께 라이너스와 나를 덮쳤다.

       

       피와 시체의 폭포를 뚫으며 올라간 성벽에서 우리는 내걸린 시체들을 발판 삼는 수밖에 없었다.

       

       “윽! 죄송합니다…!”

       

       오랫동안 바람에 노출되어 우리의 하중을 견디지 못한 시체들이 우두둑 찢어져 떨어질 때마다 라이너스는 눈을 질끈 감으며 망자에게 사죄했다.

       

       이후 그들은 기어코 성벽을 넘어 방어병력을 몰살시키고 투석기에 던져질 순서만 기다리던 인간연합의 포로들을 구출했다.

       

       생존자는 극소수. 그나마도 모진 학대로 벙어리가 되는 등 영구적인 장애를 입은 상태였다.

       

       그것을 본 라이너스의 표정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참담했다.

       

       “디안…. 나는 잘 모르겠다….”

       

       짙은 절망감이 드리운 얼굴로 라이너스가 디안에게 물었다.

       

       “내가… 군단장에게 마족 포로들에 대해 항의한 게 과연 옳은 일이었을까…?”

       

       “옳고 그르다 할 문제는 아니지. 사람에게는 각자 추구하는 가치와 이상이 있는 거고 종종 상충되기도 하는 법이니까.”

       

       “그런가….”

       

       “그게 아니라면 전쟁 같은 게 왜 일어나겠냐. 그냥 황제랑 마왕이랑 서로 사이 좋게 차 한 잔 마시고 악수하고 끝날 일 아니겠어?”

       

       라이너스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내가 틀린 것 같다…. 지금 여기서는 군단장이 옳았던 거야….”

       

       “글쎄. 우리가 비단 이브로니크 성 탈환만 하고 멈출 건 아니잖아? 나중에 마왕의 모가지까지 따고난 후에 그때 다시 생각해 보자고.”

       

       디안이 웃으며 손에 쥔 마왕군의 군기를 갈가리 찢어 던져 버렸다.

       

       “이제 그만 내려가자. 가서 생존한 병사들을 돌봐야지.”

       

       디안과 라이너스는 피칠갑을 한 첨탑의 계단을 나란히 내려갔다.

       

       

       # # # # #

       

       

       “여기가 바로 그 첨탑입니다! 라이너스 경께서 성을 탈환한 직후 마왕군의 군기를 찢어버리신 곳이지요.”

       

       첨탑에 선 가이드가 설명했다.

       

       “이제 성 안쪽에서 보실 이브로니크 탈환기념 벽화에 그 모습이 웅장하게 나와 있어요. 이동하시겠습니다.”

       

       눈 씻고도 그때의 혈흔은 찾을 수 없는 깔끔한 돌계단을 내려가 내성으로 들어가고 있으려니 저쪽에 노인 몇 명이 전정가위로 성 안뜰의 나무를 다듬고 있었다. 여기 관리인들인 듯하다.

       

       “마왕군이 성을 점령하며 당시 여기 남아 있던 사람들은 모두 포로가 되었는데요.”

       

       가이드가 안뜰에 잠시 멈추며 설명했다.

       

       “당시 마왕군은 전쟁법을 준수하지 않고 포로를 학대하거나 처형하는 일이 다반사였습니다. 그래서 이브로니크 성의 포로들 중 생존하신 분들은 극소수. 바로 저기 저분들입니다.”

       

       가이드는 정원손질을 하는 노인들을 가리켰다.

       

       “참전용사들께서는 극적으로 생환하셨지만 마왕군의 학대로 말씀을 하실 수 없게 되었고 이에 우리 이브로니크 성 관리과에서는 보훈차원에서 당시 생존용사들 중 희망하시는 분들을 여기 성의 관리인으로 고용하여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가이드가 소개하자 노인들이 이쪽을 돌아보고는 푸근한 미소와 함께 밀짚모자를 벗으며 살짝 고개를 숙였다.

       

       “목숨 바쳐 싸워 지금의 우리를 있게 해주신 참전용사님들께 감사의 박수를 부탁드립니다.”

       

       학생들이 박수를 치자 참전용사들는 더욱 깊게 허리 숙여 화답했다.

       

       “그럼 모두 이쪽으로 와주십시오! 다음 순서는 마왕군의 군기를 찢는 라이너스 경의 벽화입니다.”

       

       학생들은 가이드를 따라 성의 안쪽으로 들어갔다.

       

       “어, 어, 어!”

       

       그 후미에서 막 나도 참전용사의 앞을 지나쳐 가는데 갑자기 참전용사 한 명이 소리를 내면서 나를 가리켰다.

       

       “예? 저요?”

       

       “어! 어! 어어!”

       

       그러자 다른 참전용사들이 나를 보고는 허겁지겁 몰려들기 시작했다.

       

       “어어! 어어…. 으흐흑….”

       

       닭똥 같은 눈물을 후두둑 흘리며 참전용사들이 굳은살 가득한 거친 손으로 내 손을 덥썩 움켜 잡았다.

       

       잠시 어리둥절하던 나는 이내 상황을 깨닫고는 미소를 지었다.

       

       이 사람들, 아직 내 얼굴을 기억하고 있구나.

       

       “오랜만입니다. 잘 지내고들 계시는군요.”

       

       팔을 펼쳐 어깨를 끌어 안자 참전용사들은 더욱 서럽게 울며 고개를 떨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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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etired Supporting Character Wants To Live A Quiet Life

The Retired Supporting Character Wants To Live A Quiet Life

The Retired Supporting Character Wants to Live Quietly 은퇴한 조력캐는 조용히 살고 싶다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stead of causing chaos with my knowledge of the original work, I assisted the protagonist.

I successfully completed the story and now planned to retire and live peacefully.

However, it seems the protagonist still needs my help.

An academy professor? That’s nothing much.

But why is the state of the academy so st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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