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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1

        

         

       그 불꽃은 제단에서 타오르는 불꽃과 흡사한 형태를 하고 있었으며, 비현실적으로 뚜렷한 색채를 가지고 있었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붉은색으로만 타오르는 성스러운 불과는 다르게 푸른빛과 하얀빛이 섞여 있었다.

       마치 세 가지 색으로 불꽃 그림을 그린 듯한 모습이었다.

         

       “-!”

         

       리세는 나루미가 활활 타오르자 비명을 질렀다.

       너무 놀랐는지 양손으로 입을 가리며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고,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진성의 얼굴만을 망연자실한 채 바라보았다.

       진성은 너무 놀랐는지 몸을 잘게 떨고 있는 리세를 향해 안심하라는 듯 말했다.

         

       “안심하거라. 이 불은 오직 비물질만을 태우니.”

         

       비물질만을 태우는 불꽃.

       물질과 비물질의 경계에서 타오르는 불꽃.

       의지에 따라 물질을 태우기도, 비물질을 태우기도 하는 불꽃.

       제단에 있는 성스러운 불과 비슷한 성질을 지니고 있지만, 사람에게서 비롯되는 불꽃.

         

       “이것이 바로 삼매진화(三昧眞火)이니라.”

         

       삼매(三昧, Samādhi)의 경지에 이르러서야 피울 수 있는 불꽃이었다.

         

       오랜 수행의 끝에 정신의 깊숙한 곳, 혹은 정신의 높은 곳에 도달하면 삼매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

       그곳에서는 관념과 무의식 같은 형체가 없는 것의 본질을 깨달을 수 있으며, 사물과 같은 실체가 있는 것의 진정한 본질을 볼 수 있다.

       그 본질 중 하나는 반드시 불꽃의 형상을 하고 있는데, 그것은 제 무의식에 자리 잡은 불꽃이기도 하고 자신을 이루고 있는 관념과 개념이 불꽃의 형태로 피어오른 것이기도 하였다.

       그것을 목격한다면 물질과 비물질, 가시(可視)와 비가시(非可視) 모두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불꽃을 피워올릴 수 있게 되는데, 이를 삼매진화(三昧眞火)라 한다.

         

       정신의 단련으로 도달할 수 있는 경지이기 때문에 널리 퍼진 기술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정신이 부족하면 아무리 힘이 강하다 한들 절대 사용할 수 없는 기술이기도 했다.

       그래서 일정 경지에 이른 무인이나 주술사, 구도자, 수행자, 연금술사, 성직자 같은 이들이 사용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지만, 반대로 마법사나 과학자, 소환사 같은 이들은 삼매진화를 사용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았다.

         

       ‘삼매, 진화라고?’

         

       하지만 삼매도 단계가 있고, 삼매진화도 급이 있는 법.

       진성이 사용하는 삼매진화는 가끔 볼 수 있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일반적인 삼매진화는 기껏해야 성냥불, 강해 봐야 모닥불 수준이었는데 진성이 피워내는 것은 사람 하나를 집어삼킬 정도로 커다랬다.

       게다가 다른 이들의 삼매진화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뚜렷한 색채를 가지고 있었고, 물질과 비물질의 경계마저 태워버리겠다는 듯 불꽃 주변을 왜곡시키며 타오르고 있었다.

         

       그렇게 타오르는 불꽃은 나루미를 장작 삼아 활활 타올랐고, 붉은빛과 파란빛, 하얀빛으로 번갈아 빛나며 타올랐다. 그리고 이윽고 라피스 라줄리(Lapis Lazuli)로 만든 울트라마린과 같은 선명한 푸른색으로 바뀌었고, 매캐한 냄새를 풍기기 시작했다.

         

       “—!”

         

       단백질을 태우는 듯한 냄새.

       사람의 머리카락을 태웠을 때 나는 듯한 냄새였다.

       거기에 강한 노린내도 같이 풍겼고, 진한 지린내 역시 풍겼다.

         

       빈말로라도 좋다고는 할 수 없는 냄새였다.

         

       “옳지!”

         

       냄새가 풍기자 진성은 기뻐하며 신체(神體)를 허공에 띄워 가져왔다.

       그러자 기절해있는 나루미가 무언가 괴로운 듯 신음을 흘리기 시작하더니, 켁켁 거리며 양손으로 목을 부여잡았다. 그리고는 몇 번 헛구역질하더니 입에서 반투명한 하얀 연기 같은 것을 뽑아내기 시작했다.

         

       “-!”

         

       하얀 연기는 나루미의 몸에서 빠져나오기 무섭게 근처에 있는 신체를 향해 날아가려고 했지만, 진성은 그것을 막겠다는 듯 삼매진화로 신체를 감싸 연기가 들어가지 못하게 막았다. 그리고 우왕좌왕하는 연기를 보이지 않는 손으로 움켜잡듯이 꽉 붙잡아 한군데로 모아 구체의 형상으로 만들었고, 그것을 리세에게 내밀었다.

         

       “자, 먹거라.”

         

       먹으라고요? 이걸?

         

       리세는 제발 농담이었으면 좋겠다는 표정으로 진성을 바라보았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얼굴은 단호했다.

       진성은 리세의 머리 절반 크기는 되는 구체를, 그것도 방금 나루미가 토해낸 하얀 연기로 만들어진 구체를 어서 먹으라는 듯 그녀에게 가까이 가져다 댔다.

         

       ‘냄새!’

         

       더 끔찍한 것은 구체에서 냄새가 난다는 것.

       다행히 지린내는 나지 않았지만, 머리카락 타는 냄새와 노린내는 강하게 나고 있었다. 아니, 연기가 아예 냄새 그 자체였다.

         

       리세는 진성이 시킨 것이기에 어떻게든 먹으려고 입을 열었지만, 코를 파고드는 지독한 냄새에 헛구역질해댔고, 한참 구역질을 하다가 숨을 고르기 위해 들이쉬는 그 순간.

         

       “—–?!”

         

       진성이 연기를 그대로 리세의 입에다가 집어넣었다.

         

       연기가 리세의 몸으로 들어가자 조금 전까지 풍기던 냄새는 거짓말처럼 사라졌고, 하얀 연기는 아무 맛도 아무 냄새도 나지 않게 되었다. 연기는 그녀의 몸속으로 들어와 리세의 온몸 구석구석으로 퍼졌고, 얼마의 시간이 지나자 그녀의 입을 통해 다시 밖으로 나오더니 그녀의 몸 주변을 맴돌았다.

         

       진성은 그 모습을 보고는 그녀의 품 안에 여우 조각상을 안겨주었다.

         

       그러자 연기는 여우 조각상과 그녀를 왔다 갔다 하더니 리세의 머리와 엉덩이 부근으로 이동해 자리를 잡고 형상을 이뤘다.

         

       이윽고.

         

       “성공했구나.”

         

       연기는 반짝반짝 빛나며 색을 품었고, 홀로그램처럼 형상을 만들어냈다.

         

       ‘꼬리?’

         

       연기가 만들어낸 형상은 여우 귀와 여우의 꼬리였다.

       리세의 머리 위에는 여우 귀가 쫑긋 솟아나 있었고, 그녀의 엉덩이에는 복슬복슬한 세 갈래의 여우 꼬리가 흔들리고 있었다.

       리세는 자신의 몸에 생긴 꼬리가 신기한지 그것을 만져보았고, 그러자 그 어떤 옷감보다도 부드러운 촉감이 손에 느껴졌다. 게다가 꼬리 자체에도 감각이 있는지 손으로 쓰다듬는 느낌이 그대로 느껴졌다. 그 느낌은 머리카락을 쓰다듬을 때의 느낌과도 흡사해서 약간 간지러웠다.

         

       “이제 이것은 제물의 역할을 다했으니, 더는 필요가 없느니라.”

         

       진성은 리세에게 귀와 꼬리가 생기자 삼매진화를 거둔 후 나루미를 그대로 바닥으로 집어 던졌다.

       

       리세는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지는 나루미의 모습에 흠칫 놀라 쳐다보았다가 이상함을 느꼈다.

         

       ‘신력이 느껴지질 않아.’

         

       조금이나마 느껴지던 신력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리세는 의구심을 담아 나루미를 쳐다보았고, 진성은 그녀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입을 열었다.

         

       “네 생각이 맞느니라. 이것은 이제 무녀가 아니고, 신력을 모조리 잃어버렸느니라.”

       ‘무녀가 아니라고요?’

       “대신에 가지고 있던 자격과 신력은 모조리 너에게 갔으니, 이제 너는 무쿠리코쿠리노이누가미의 무녀이자 이나리의 무녀이며, 동시에 둘의 무녀가 아니기도 하다.”

         

       진성은 리세의 의문에 그렇게 답해주었다.

         

       ‘무쿠리코쿠리노이누가미와 이나리. 둘을 모시는 무녀이자, 둘 모두를 모시지 않는 무녀.’

         

       리세는 왠지 그 말의 뜻을 알 것 같았다.

         

       그녀는 무쿠리코쿠리노이누가미에서 비롯된 신력을 사용하지만, 그것을 주는 것은 무쿠리코쿠리노이누가미가 아닌 진성이 만들어낸 슬라임이다.

       그녀는 이나리에서 비롯된 신력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것을 주는 것은 이나리가 아닌 슬라임이 될 것이다.

       그러니 그녀는 둘의 무녀이자 둘의 무녀가 아닌 셈이다.

         

       그렇다고 그녀가 슬라임을 모시는 것도 아니고, 그녀가 본 것을 영시로 구현해내 만든 빛의 구체를 신앙하니 참으로 기이하다 할 수 있었다. 진성이 내려준 신은 그녀가 모시는 신이되 신력을 주지 않고, 신력을 주는 것은 진성의 피조물이나 신이 아니니.

         

       이를 기묘하다 하지 않으면 뭐라 할 수 있을까.

       굳이 말한다면 리세는 존재하지 않는 허신(虛神)의 무녀이자 우상을 숭배하는 이단의 무녀라 표현할 수 있으리라.

         

       그것도 다른 신을 잡아먹고 힘을 키우는, 참으로 기묘한 무녀라 할 수 있으니.

         

       “개와 여우가 본질이 비슷하니 잘 되리라 예측하긴 했지만, 생각 이상으로 좋은 결과가 나왔다. 아주 좋구나, 좋아.”

         

       존재 자체가 이질적인 진성과는 참으로 잘 어울린다 할 수 있었다.

         

       진성은 주저앉아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는 리세를 향해 걸어가 그녀의 머리를 만져보았다.

       신력이 가득 담긴 머리카락은 실크를 만지는 것처럼 부드러웠고, 그사이에 쫑긋 솟아있는 귀는 부드러우면서도 폭신한 감촉이었다. 게다가 귀는 말랑하면서도 탄력이 있었고, 만질 때마다 감각이 느껴지는지 조금씩 움찔거렸다.

         

       그리고 위로 흔들리는 여우 꼬리들의 털은 그야말로 극상의 감촉 그 자체.

       게다가 이나리의 신력을 그대로 담고 있어서 최상의 주술재료가 될 것 같았다.

         

       ‘물질이자 비물질.’

         

       게다가 신력으로 이루어진 귀와 꼬리는 만지거나 털을 뽑을 수 있는. 다른 말로는 ‘간섭이 가능한’ 형태의 물질이었지만, 동시에 의지에 따라 비물질의 형태로 변화가 가능한 것으로 보였다.

       원한다면 비물질의 형태로 변화시켜 비가시화 할 수도 있으리라.

         

       ‘다만 이나리의 신력이 귀와 꼬리에 담긴 것으로 보아 비물질의 형태로 변환한다면 신력을 사용하는데 제약이 생길 것 같구나.’

         

       비유하자면 기존에 가지고 있던 무쿠리코쿠리노이누가미의 신력은 내장 하드, 이나리의 신력은 외장 하드라 할 수 있으리라.

         

       진성은 눈을 감은 채 자신의 손길에 몸을 맡기고 있는 리세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훌륭하다.”

         

         

         

        * * *

         

         

         

       밤의 축제가 끝났다.

         

       “간밤에 신사에 불이 나서 키시모토 요시아키 신관님과 키시모토 나루미 무녀님이 다쳤습니다. 다행히 큰 부상은 아니지만, 안정을 취해야 하는 상황이라 부득이하게 제가 대행으로 나서 축제를 관리하게 될 책임자가 되었습니다.”

         

       불꽃이 있었고, 의식이 있었다.

         

       “예기치 못한 사고로 참석하지 못하는 두 분을 위해, 이 축제를 성공적으로 끝내봅시다!”

         

       제물도 바쳐졌으며,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모든 것이 완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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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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