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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1

       

       

       

       

       “기본 자세는 왼발이 조금 더 앞으로 나와 있어야 해요. 그래야 허리를 꼬았다 푸는 힘을 제대로 전달할 수 있거든요.”

       “이렇게요?”

       “네. 그리고 단검을 쥘 때는 이렇게….”

       

       내 자세를 봐 주던 실비아는 다가와 단검을 쥔 내 손을 직접 잡고 손가락의 위치를 바로잡아 주었다. 

       

       “이 상태에서 찌를 때는 이렇게, 벨 때는 이런 식으로 궤적이 나와야 해요.”

       

       실비아는 아예 내 뒤로 와서 밀착한 채, 마치 마네킹을 잡고 조종하듯 왼손을 왼손으로, 오른손을 오른손으로 각각 잡아 슉, 슈슉 하고 대략적인 궤적에 대한 감을 잡을 수 있도록 해 주었다. 

       

       “레온 씨, 집중하고 있어요?”

       “네? 네! 그럼요.”

       “아닌 것 같은데….”

       “…….”

       

       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지나치게 밀착된 신체 및 내 손을 잡고 있는 실비아의 손에 대한 감각을 다시 한번 최대한 무시하려 애썼다. 

       

       ‘…이 사람, 검사라면서 손이 왜 이렇게 부드러운 거야.’

       

       절대 사심이 있는 건 아니다. 

       애초에 실비아도 굳이 따지자면 나에게 사심이 있는 게 아니라 아르한테 사심이 있는 걸 거고. 

       

       하지만 아무리 그렇게 마음을 먹어도, 당장 이렇게 가까이서 이상형에 부합하는 여자가 내 손을 꼭 잡고 있는데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는 건 힘든 일이었다. 

       

       ‘아냐. 이럴 때일수록 아르를 생각해. 레온, 인마. 건실한 청년이 지금 딴 생각을 하고 있을 때야?’

       

       나는 나 자신을 다그치며, 짚더미에 앉아 있는 아르를 힐끗 바라보았다. 

       

       “쀼우!”

       

       초롱초롱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던 아르는 눈이 마주치자 날 향해 배시시 웃었다. 

       

       ‘크윽. 귀여워….’

       

       그런 아르의 얼굴을 보자, 나도 모르게 단검을 쥔 손에 힘이 불끈 들어갔다. 

       

       “오, 좋아요. 그렇게 꽉 잡아야 실제 목표물을 베거나 찔렀을 때 놓치지 않을 수 있어요. 그 상태에서 팔에만 조금 힘을 빼고 요렇게 슥!”

       “오오?”

       “훨씬 힘도 잘 실리면서 빠르게 베어지죠?”

       “네!”

       

       방금까지 감을 잡지 못하고 있던 나는 드디어 뭔가 실마리를 잡은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좋아. 역시 잡념을 지우는 데에는 아르를 보는 게 최고구만.’

       

       나는 실비아가 신경 쓰일 때마다 마치 굴비를 한 번 보고 밥을 한 숟갈 떠 먹는 가난한 선비처럼 아르의 순수한 미소를 바라보며 마음을 정화하고 잡념을 지웠다. 

       

       “마지막으로, 허수아비를 베고 찌르면서 실제 손에 오는 감각을 느껴 볼 거예요.”

       

       실비아는 여전히 내 손을 잡은 채, 별안간 바로 앞에 있는 허수아비의 심장 쪽으로 단검을 훅 내질렀다. 

       

       푹!

       

       안 그래도 상처투성이인 나무 인형에 단검의 끝이 박혀 들어갔다. 

       

       “전혀 다르죠? 이래서 파지법이 중요해요. 잘못 잡으면 이렇게 손이 미끌려서 힘 전달도 제대로 안 되고, 손이 밀려 들어가 날에 베일 수도 있거든요.”

       “오…. 무슨 느낌인지 알 것 같아요.”

       

       말로 설명만 들을 때는 그런가 보다 하고 들었던 것들이, 직접 해 보자마자 머릿속에 와서 팍 박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렇게 손을 직접 잡고 정확하게 감각을 알려 주니 확실히 빠르게 이해가 되네.’

       

       시범을 보여 주는 대신 굳이 내 손을 직접 잡고 시연을 해 주는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

       

       그냥 나 혼자 검을 쥐고 했다면, 같은 동작을 했더라도 이게 맞는 느낌인 건지 어떤지 알기가 힘들었으리라. 

       

       “지금은 그냥 뺄 수 있지만, 단검이 예상 외로 너무 깊이 박혔다 싶으면 이렇게 왼손 엄지와 검지로 이쯤을 살짝 밀면서 빼면 돼요.”

       

       실비아는 내 왼손을 허수아비에 대고 오른손의 단검을 쑥 뽑았다. 

       

       “그리고 베기는 이런 느낌이죠.”

       

       슉, 슈슉. 슉.

       

       연속으로 세 번의 베기를 시연해 준 실비아가 물었다. 

       

       “어때요, 차이를 느끼셨나요?”

       “으음. 첫 번째는 아주 얕게, 그 다음은 좀 더 깊게, 그 다음은 거의 손잡이 부근까지 사용해서 크게 베었어요.”

       “그 셋의 차이는요?”

       “음…. 벨 때 뭔가 조금 각도가 달랐던 것 같기도 하고….”

       “오오, 맞아요! 제대로 짚으셨네요. 역시 재능이 있으시다니까.”

       

       실비아는 방금 했던 세 번의 베기를 공중에서 끊어 보여 주었다. 

       

       베기 전, 벨 때, 그리고 벤 후.

       

       총 아홉 개의 구분 동작을 보여 준 실비아가 그제야 내 손을 놓았다.

       

       “이제 확실히 알겠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얕게 벨 때는 단검 끝을 좀 더 상대 쪽으로 향해서 빠르게 베고, 깊이 벨 때일수록 손목을 조금 뒤로 꺾어서 단검의 안쪽이 먼저 닿도록 해야 되는 거네요.”

       “정답이에요. 깊이 벨수록 검끝보다는 손과 가까운 쪽부터 상대에게 검날을 묻힌다는 생각으로 베면 돼요. 그렇게 날을 강하게 묻히면서 균열을 만들고, 상체를 회전하는 힘으로 그곳을 강하게 찢으며 벤다는 느낌으로요.”

       “검날을 묻히면서 찢어 벤다는 느낌…. 무슨 느낌인지 알 것 같아요.”

       

       뭔가 많은 걸 배워 머릿속에서 열심히 정리하고 있는 내 멍한 표정을 바라보며 실비아가 싱긋 웃었다. 

       

       “지금 배운 기초는 사실 디테일이 조금 다르다 뿐, 일반 검술에도 적용할 수 있는 원리예요. 이해하고 있으면 상대의 동작을 보는 데에도 도움이 될 거고요.”

       “그렇군요.”

       

       기초라고는 하지만, 평생 이런 진검을 휘둘러 볼 일이 없었던 나로서는 굉장히 신선한 내용들이었다. 

       

       ‘한국에서 진검을 휘둘러 볼 일이 있으면 그게 더 문제긴 하지만…. 여튼.’

       

       이런 검과 마법의 세계에서, 암습과 피 튀기는 전투가 언제든지 벌어질 수 있는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제 이런 내용을 배울 때가 된 것이었다. 

       

       “그럼 이제 그걸 기반으로 기본 응용 동작들을 배워 볼 거예요.”

       

       그 이후로 나는 횡베기, 종베기, 그리고 사선 베기 등의 동작을 배웠고, 찌르기에도 정면 찌르기와 측면 찌르기, 사선 진입, 역수로 잡고 찌르기 등의 세세한 분류가 있다는 걸 배우게 되었다. 

       

       “하압!”

       “좋아요, 방금 괜찮았어요.”

       “허억, 헉.”

       

       각 동작을 반복 숙달하는 동안, 어느새 내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생각보다도 더 빨리 배우시는데요?”

       “정말요?”

       “네. 정말로요. 첫날에 이 정도까지 따라오신 거면 진짜 잘 하신 거예요.”

       “다행이네요.”

       

       단검술 관련 특성 같은 게 하나도 없어 걱정했는데, 다행히 완전히 젬병은 아닌 모양.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인가요?”

       

       나는 약간의 기대가 담긴 눈으로 물었다. 

       

       수련장의 시계를 흘긋 보니 벌써 세 시간 중 두 시간이 지난 시점. 

       

       이론적인 설명을 먼저 듣고, 천천히 기초 동작부터 배운 시간을 빼더라도 족히 한 시간 이상은 각종 찌르기와 베기 동작을 반복 숙달하는 데에 사용했다. 

       

       중간 중간 쉬는 시간이 있었기에 엄청나게 빡세진 않았지만, 이렇게 아예 새로 배운 걸 몸에 배도록 익히는 과정이라 그런지 운동량에 비해 상당한 피로감이 몰려왔다. 

       

       ‘아르도 피곤해하는 것 같고.’

       

       처음에는 초롱초롱한 눈으로 내가 훈련하는 모습을 바라보던 아르도 한 시간, 두 시간이 되어 가자 짚더미 위에서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쀽.”

       

       눈이 감기고, 고개가 툭 떨어지자 아르는 졸다 깬 오리처럼 머리를 번쩍 들었다. 

       

       그리고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었다. 

       

       하지만, 그와 함께 실비아도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아직 남은 시간이 있잖아요. 기왕 빌린 거 알차게 써야죠.”

       “윽….”

       “대신.”

       “대신?”

       

       실비아는 빙긋 웃으며, 언제 준비했는지 모를 짚 인형 하나를 꺼내 보였다. 

       

       “…?”

       

       짚 인형의 목에는 실이 달려 있었는데, 실비아는 그 실을 잡고 대뜸 목에 걸었다. 

       

       그러자 짚 인형은 실비아의 가슴께에 대롱대롱 매달렸다. 

       

       실비아는 짚 인형을 가리키며 말했다. 

       

       “레온 씨가 만약 이 짚 인형을 아주 조금이라도 베거나 찌르는 데에 성공한다면, 오늘 수련은 여기서 마칠게요. 물론 저는 피하거나 막기만 할 거고요.”

       “…조금이라도요?”

       “네. 짚 한 가닥이라도 베어 내면 레온 씨의 승리예요.”

       

       나는 살짝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으음…. 근데 혹시 그러다가 잘못해서 실비아 씨를 찌르기라도 하면….”

       

       물론 실비아 씨의 실력이 뛰어난 건 알고 있었지만, 격투 게임의 고수를 상대로 초보자가 막 누르는 공격이 의외의 타격을 입힐 때가 있듯, 짚 인형을 노리고 한 공격이 이상하게 빗나가 실비아 씨를 다치게 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한 말이었다.

       

       하지만 실비아는 다시 한번 빙긋 웃었다. 

       

       “…방금 그거 비웃으신 거죠?”

       “그럴 리가요. 어쨌든 그런 걱정은 안 하셔도 돼요.”

       “정말이죠?”

       “그럼요.”

       “좋아요. 해 볼게요.”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실비아는 자리에서 딱 한 걸음 물러나, 허리춤 뒤쪽에서 단검 하나를 뽑아 들었다. 

       

       ‘…실비아 씨도 단검이 있었네?’

       

       하긴, 단검술을 가르쳐 준다고 할 정도니 보조 무기로 지니고 다닐 만도 하지.

       

       ‘대충 어깨 너머로 본 검술만 해도 대단한데, 거기다 단검술까지 할 줄 알다니. 얼마나 평소에 수련을 독하게 하는 거야.’

       

       역시 보통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시작하기 전에 아르 쪽을 바라보았다. 

       

       아르는 아까는 앞으로 졸더니, 이제는 고개를 뒤로 젖히고 졸다가 그대로 뒤로 넘어가 짚더미에 뒤통수를 박고 말았다.

       

       “쀽!”

       

       허둥지둥 일어난 아르는 나와 눈을 마주치더니 찔린 듯 손으로 마른세수를 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쀼우!”

       

       그러고는 실비아 앞에서 자세를 잡은 나를 보며 주먹을 꼬옥 쥐어 보였다. 

       

       “그래, 아르야. 조금만 기다려.”

       

       내가 금방 저 짚 인형을 두 동강 내고 오늘의 수련을 끝내 줄 테니까.

       

       “언제든 먼저 시작하셔도 돼요.”

       “하아아압!”

       

       슈왁!

       

       나는 사양하지 않고, 실비아의 말과 함께 단검을 내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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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Picked Up a Hatchling

I Picked Up a Hatchling

해츨링을 주웠다
Status: Ongoing Author:
But this guy is just too c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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