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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1

       프란체는 의류점 앞에 서서 건물을 바라봤다.

         

       진의 주도하에 만들어진 외형과 내부 구조. 제국에서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독특한 생김새. 볼 때마다 감탄이 나온다.

         

       ‘이런 건 대체 어떻게 생각했는지…….’

         

       항상 느끼는 거지만, 진은 특이하다.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다고 해야 하나. 묘하게 이질감이 든다.

         

       ‘뭐든지 잘한단 말이지. 모르는 것도 없고.’

         

       바렌베르크의 왕족으로서 높은 교육을 받아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진이 특별한 것일까.

         

       ‘후자가 맞겠지.’

         

       진은 무려 대륙제일검, 최고의 소드 마스터라고 불린 자다. 하늘에게 선택받았다고도 말할 수 있는 사람.

         

       그런데 그 진이 죽을 수도 있다니. 초월 마법사가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무작정 욕할 수는 없었다.

         

       초월 마법사가 진을 잡아 왔기에 자신에게 올 수 있었던 게 아닌가.

         

       모순이 가득한 자신의 마음에 경멸을 느꼈지만, 고개를 휘저으며 마음을 다잡았다.

         

       “…매장 운영 준비나 하자.”

         

       곧바로 매장으로 들어섰다. 안에는 프란체 코퍼레이션의 직원들이 바삐 움직이며 의상들을 전시하고 있었다.

         

       “다들 열심히 하고 있구나.”

         

       프란체의 말에 직원들이 바로 고개를 돌렸다.

         

       “앗, 회장님!”

       “오셨습니까, 회장님!”

         

       부담스러울 정도로 격렬한 인사. 프란체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안드레아는 왔니?”

       “네! 부장님이시라면 위층에 계십니다!”

       “그래, 고맙구나.”

       “아닙니다!”

         

       기운도 좋다. 첫 만남 때는 의심과 불신으로 가득 차 있던 사람들이 이렇게 호의를 보이니 프란체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프란체는 피식 웃으며 계단을 올라갔다. 그러자 위층에서 특별 드레스들을 전시하고 있는 안드레아를 만날 수 있었다.

         

       “안드레아?”

       “아, 회장님! 오셨습니까!”

         

       무슨 문화라도 생긴 걸까? 그 조용하던 안드레아마저도 기운이 넘친다. 다소 의문이 들었지만, 좋은 게 좋은 거라 생각해 프란체는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현재 진행 상황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니?”

       “순조롭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현재 들어온…….”

         

       안드레아는 차근차근 매장의 상황을 알려주었다. 지금 들어온 의복은 어느 정도가 되는지, 매장을 어디까지 채울 수 있는지, 남은 작업은 얼마나 남았는지 등등.

         

       “이 정도면 괜찮을 것 같구나.”

       “그렇습니까? 다행입니다.”

         

       프란체는 팔짱을 낀 채 손가락을 두드렸다. 이제 가장 중요한 핵심을 얘기해야 할 차례다.

         

       “안드레아. 중요한 얘기가 있단다.”

       “중요한 얘기요?”

       “그래. 네게 맡길 일이 있어.”

       “어떤 건가요?”

         

       고개를 갸웃거리는 안드레아. 푸석푸석한 머리카락에 퀭한 눈 밑을 보니 프란체는 괜히 망설여졌다.

         

       하지만 해야 하는 일이니 어쩔 수 없는 법…….

         

       “안드레아. 이번에 해야 할 일은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해. 너의 이름을 알릴 기회기도 하고, 우리를 위한 거기도 해.”

         

       프란체는 유심히 안드레아의 반응을 살폈다. 괜히 이렇게 말했나. 움츠러든 어깨를 보니 부담감에 짓눌린 듯했다.

         

       “무슨 일인데요…?”

       “황족분들의 의상을 제작해야 해.”

         

       황족이라는 말에 안드레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입은 떡 벌어져서 턱이 올라올 생각을 안 했다.

         

       “화, 화, 황족분들의 의상을 제가요?!”

         

       매장에 울려 퍼지는 안드레아의 육성. 모든 직원이 일제히 이곳을 바라봤다. 황족이라는 말은 그만큼 파격적이었다.

         

       “그래. 황후 폐하와 제2 황자, 제3 황녀님께서 오실 거야. 할 수 있겠니?”

         

       황족의 옷을 제작해야 한다는 게 부담이었을까? 안드레아의 손이 덜덜 떨려오는 게 프란체의 눈에 들어왔다. 여기선 위로를 해주는 게 좋겠다고 생각한 프란체는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안드레아, 너무 부담가질 필요는…….”

       “흐흐, 흐흐흣.”

         

       움찔. 너무나도 음습한 웃음에 프란체는 순간적으로 소름이 돋았다.

         

       “드디어! 제게 기회가 왔군요! 저라는 존재가 이 세상에 나타났다는 것을!”

         

       원래 이런 성격이었나? 생각지도 못한 당돌함에 프란체는 적응이 되지 않았다. 처음에는 이런 인상이 아니었던 거 같은데…….

         

       “공녀님, 제게 맡겨주시지요. 그 어떤 의상보다 완벽하게 만들겠습니다. 이 세상에 그런 의상은 저만이 만들 수 있다는 걸 알리기 위해서요!”

         

       프란체는 눈을 끔뻑이며 고개를 주억였다.

         

       “어, 어. 그러렴. 무리는 하지 말렴?”

       “무리요? 제게 무리는 없습니다…!”

         

       불타오르는 것 같이 일렁이는 눈빛. 안드레아는 주먹을 꽉 쥔 채 눈을 부릅떴다.

         

       “회장님! 그럼 저는 곧바로 아이디어를 생각하러 가겠습니다! 제가 필요한 작업은 끝마쳤으니 나머지 준비는 부탁드립니다!”

         

       그러곤 속사포를 내뱉은 뒤 서둘러 매장을 나갔다. 어찌나 빠른지 나가자마자 마차의 바퀴가 굴러가는 소리가 들렸다.

         

       “…….”

         

       프란체는 뚱하니 창밖을 바라봤다. 안드레아가 저런 야망을 품고 있었을 줄이야…….

         

       “내 일에나 집중하자.”

         

       고개를 휘젓곤 바로 상황을 살피는 프란체. 매장을 살피며 비어있는 곳을 찾는다. 그리고 드레스의 품질과 분위기. 그리고 냄새까지 확인.

         

       ‘좋아. 적당하네.’

         

       밝기도 좋다. 황실의 궁정 마법사가 직접 만든 발광석을 사용했기에 어두운 곳은 없었다. 프란체는 고개를 끄덕인 후 소리쳤다.

         

       “자, 다들 잘 들어! 오늘은 귀중한 손님이 많이 오실 거야! 그동안 우리가 준비한 걸 확실하게 보여주자!”

         

       직원들의 표정이 굳세게 변했다. 다들 결의를 다친 얼굴. 오늘이 승부의 날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성공하자! 성공하자!”

       “프리다를 이기자!”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다들 의욕이 좋다. 프란체는 만족스럽게 미소를 지었다.

         

       “좋아. 이제 매장을 열자.”

         

       프란체 코퍼레이션의 첫 사업, 의류점이 열렸다.

         

         

       * * *

         

         

       【속보! 프리다, 위기를 맞이하나?】

         

       【현재, 제국 최대의 의류점 프리다에서는 의복 판매를 멈췄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새로운 의류점의 등장!】

         

       【의류점의 주인은 데카르트 공녀로 밝혀져……】

         

       【모두가 놀랐다! 충격적이면서 매혹적인 디자인의 드레스! 황후 폐하께서도 관심을……】

       

       【페르시아 공작가의 후계자, 파티장에서 역모를 저질러 판옵티콘에 수감……】

       

       【카서스 페르시아, 그는 정말로 동성애자인가?】

       

       【충격적인 소식! 진 바렌베르크가 데카르트 공녀의 호위기사로 황실 파티에 등장하다!】

       

       …

       …

       …

         

       “젠장, 젠장!”

         

       프리다 마담, 주크오 신나는 신문 기사를 바라보다 분노를 참지 못하고 쾅! 책상을 내려찍었다.

         

       “범인은 그년이야. 데카르트 공녀.”

         

       프리다의 핵심 인력, 안드레아가 사라졌다. 다른 직원들도 마찬가지였다.

         

       경비를 맡던 용병들의 말에 의하면, 정체를 알 수 없는 한 남자가 와서 모두를 쓰러트렸다는데.

         

       ‘망할년.’

         

       공장을 직접 본 인간은 고용된 용병들과 프리다의 수뇌부. 그리고 데카르트 공녀밖에 없다.

         

       “으아아!”

         

       쾅! 다시 한번 책상을 내려찍는 마담. 주먹이 덜덜 떨려왔다.

         

       안드레아를 데려간 범인은 데카르트 공녀가 확실하지만, 증거가 없다. 게다가 재판까지 가면 그동안 해온 착취 때문에 자신이 불리할 터.

         

       지금으로서는 프리다가 데카르트 공녀를 상대로 이길 방법이 없다. 안드레아를 데려올 방법도 없다.

         

       ‘어쩔 수 없겠어.’

         

       마담은 곧바로 전서를 펼쳤다. 그리고 무언가를 적기 시작했다.

         

       【암흑 길드, 젠부코로스에 맡기고 싶은 임무가 있습니다. 대금은 후하게 치르겠습니다. – 프리다 마담, 주크오 신나.】

         

       “감히, 감히 내 사업을 망가트려? 사람 잘못 건드렸어, 데카르트 공녀. 직위가 전부가 아니라는 걸 내가 보여주지.”

         

       현재 프리다는 의류를 취급하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의상 제작을 지휘했던 안드레아가 빠졌기 때문이다.

         

       간신히 장신구와 보석으로 어떻게든 연명하고 있지만, 프리다가 이렇게 커질 수 있었던 건 의류 덕분이다. 보석과 장신구는 부가적인 것에 불과했다.

         

       ‘시간이 얼마 없어. 이대로면 손님을 전부 빼앗기고 프리다는 몰락할 거야.’

         

       한시라도 빨리 안드레아를 데려와야 한다. 그래야 이 위기를 벗어날 수 있을 테니까.

         

       “젠부코로스라면 일을 해결하고도 남을 거야. 제국에서 두 번째로 강한 암흑 길드니.”

         

       프리다의 마담, 주크오 신나는 씨익 웃었다.

         

         

       * * *

         

         

       나는 프란체에게 가기 전에 잠시 도서관에 들렀다. 바렌베르크 왕국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기 위함이었다.

       

       진과 관련된 정보를 접하면 내가 지금 얼마나 침식됐는지 확실하게 알 수 있을 거라 판단했다.

         

       공작령의 도서관은 무료로 이용할 수 있었다. 데카르트 공작의 영지 운영 방침이었다. 지식을 추구하는 자에게 돈을 받으면 안 된다나, 뭐라나.

         

       “흠.”

         

       내부는 평범한 도서관. 나는 적당히 고개를 두리번거리다가 사서에게 물었다.

         

       “바렌베르크 왕국의 역사서는 있습니까?”

         

       내 말에 미간을 찌푸리는 사서.

         

       “…그런 책은 왜 찾으시는지요?”

       “제가 모시는 주인님께서 알아보라 하셨습니다.”

         

       사서는 나를 유심히 지켜보더니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숙였다.

         

       “죄, 죄송합니다! 데카르트 공작가의 기사님이셨군요!”

       “사과하실 필요는 없고요.”

       “바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저를 따라오시지요.”

         

       사서를 따라 걸었다. 도착한 곳은 도서관의 사각지대. 이곳에 숨겨진 문이 하나 있었다.

         

       철컥. 사서는 열쇠를 꽂고 문을 열어주었다.

         

       “이곳에 바렌베르크 역사서가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아닙니다. 저야말로 아까는 실례했습니다.”

         

       사서는 다시 고개 숙여 사과한 뒤 자리로 돌아갔다. 데카르트 공작가의 기사 직위가 대단하긴 하군.

         

       “그럼, 어디 한번 확인해볼까.”

         

       나는 곧장 안으로 들어가 책장을 뒤졌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바렌베르크의 역사를 볼 수 있었다.

         

       “…….”

         

       딱딱하면서도 까슬거리는 역사서의 질감. 묘하게 펼치기가 두려웠다. 내 의지와는 관계없이 손이 덜덜 떨려왔고, 눈 밑이 꿈틀거렸다. 

         

       ‘진의 인격이 주는 영향이군.’

         

       진 바렌베르크와 관련된 정보라서 그런지 현재 내 상태를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쯧.”

         

       누군가 나와 공존하고 있다는 불쾌감에 나도 모르게 혀를 차 버렸다. 쓰잘데기 없는 마음을 떨쳐내기 위해 고개를 휘젓곤, 책을 펼쳐 그 자리에서 읽기 시작했다.

         

       책의 내용은 이러했다.

         

       바렌베르크는 약소국이었다. 타국의 눈치를 보고 비위를 맞춰야 했으며, 불평등한 외교를 당해야 했다.

         

       하지만 진 바렌베르크라는 인물이 등장하고 판도가 바뀌었다.

         

       그 어떤 국가도 더이상 바렌베르크를 무시할 수 없었다. 진의 존재만으로 보복성 침략을 하기에도 무리였다.

         

       ‘혼자서 국가를 상대로 위협할 수 있다니, 괜히 최종 보스가 아니야.’

         

       처음부터 이 힘을 제대로 사용할 수 있었다면 무사히 탈출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쉬울 따름이다.

         

       과거를 생각하니 후회가 좀 들었지만, 금방 떨쳐냈다. 인제 와서 이걸 생각해봤자 달라지는 건 없으니까. 당장 중요한 것도 아니고.

       

       그러던 그 순간.

       

       찌릿! 옅은 두통이 몰려오며 한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초월 마법사…….」

       「킬킬킬, 나를 너무 원망하지 마.」

       「비키지 않으면 죽이겠다.」

       「할 수 있다면. 킬킬킬.」

       

       이건 전쟁 당시에 있었던 상황이군. 프란체와 크게 관계가 없는 기억이라 그런 걸까? 크게 고통이 심하진 않았다.

       

       ‘진과 프란체의 관계에 뭐가 있었길래 이러는 건지.’

          

       이후에 핵심적인 부분만 더 살펴보고, 탁. 책을 덮었다. 바렌베르크 왕국의 역사서를 보니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진의 인격이 전보다 더 강해지긴 했지만, 아직은 내가 더 강하다. 시간이 충분히 남아있다는 걸 알아서 그런 걸까. 방금까지만 해도 불안감에 두근거렸던 가슴이 안도감에 젖어 평상시로 돌아왔다.

         

       ‘확인도 끝냈으니 프란체가 잘하고 있나 보러 갈까.’

         

       그대로 도서관을 나와 매장으로 가려던 그때.

         

       “진 바렌베르크.”

         

       누군가 나를 불렀다. 고개를 돌려보니 검은 복면을 쓴 사내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까부터 누가 나를 미행하는 느낌이 들더니만.’

         

       내가 경계하며 그를 응시하고 있자 검은 복면의 사내는 품속에서 편지지 하나를 꺼냈다.

         

       “엑시드에서 왔다. 마스터께서 직접 전해달라고 하시더군.”

         

       셀다스가 보낸 인물이었나. 얘가 직접 편지를 보낼 줄이야. 의외였다. 나는 말 없이 다가가 편지지를 받았다.

         

       “내 임무는 끝났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검은 복면의 사내는 그림자 속으로 사라졌다.

         

       ‘솜씨가 대단하네.’

         

       뭐, 얘네 솜씨야 원래 알고 있던 거니 넘어가고. 나는 즉시 편지지를 뜯었다.

         

       편지의 내용은…….

         

       【프리다 마담이 암흑 길드에 연락을 보냈다.】

         

       ‘올 게 왔군.’

       

       아직까지 조용하다 싶더니, 드디어 마담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감사함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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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악역 영애를 키우고 도망쳤다
Score 8.6
Status: Ongoing Author:
I made a villainess destined for death into the most powerful person in the empire and then f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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