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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10

   르네가 떠나간 후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상황의 정리였다.

   

   문제의 근원이 떠나갔는데 굳이 상황을 정리할 필요가 있냐고?

   

   있지. 지금 바로 벌을 받아야 할 놈들을 정리하지 않으면 나중에 흐지부지되어 버리잖아.

   

   다시 훈련을 하러 돌아가겠다는 기사들의 앞을 가로막은 난 곤혹스러운 기색이 역력한 그에게 이렇게 물었다.

   

   “설마 지금 내가 무서워서 도망치는 거야?”

   “그럴리가요. 아가씨. 다만 저희들이 해야 할 일이 있어서.”

   “그게 나보다 중요해?”

   “그…렇진 않죠! 아가씨보다 중요한 게 어디 있겠습니까!”

   “그치이?”

   

   히죽 웃음을 지은 나는 고갤 까닥이는 걸로 포셀의 무릎을 꿇게 만든 다음 그의 귓가에 속삭이듯 말했다.

   

   “충성심 깊은 강아지가 되겠다고 약속하면 처량한 겁쟁이 하나는 넘어가 줄 수 있어.”

   “제가 뭘 하면 되겠습니까?”

   “난 충성하랬지 뇌를 비우라고는 안 했는데. 후훟. 우리 멍멍이. 많이 무서웠구나?”

   

   턱을 툭툭 두드리면서 웃었더니 포셀이 어깨를 떨었다.

   

   “저들에게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지옥을 선사하겠습니다.”

   “어설프게 하면 벌이야?”

   “…명심하겠습니다.”

   

   도망치는 녀석은 남자의 자격이 없다 판단하고 거기에 걸맞은 인간으로 만들어주겠노라 경고한 나는 다음으로 얼빠여우 앞에 섰다.

   

   내가 화났다는 걸 분명 알고 있을 터인데도 얼빠여우의 눈동자엔 기대감이 역력했다.

   

   “바보 파파?”

   “왜. 왜 그러니 루시?”

   “파파밖에 못 하는 일이 있어서 꼭 부탁을 하고 싶은데. 파파는 루시 말 들어 줄 거지?”

   “그럼 물론이지! 이 파파가 어찌 루시가 부탁하는 일을 거절하겠느냐!”

   “그럼 이거랑 일주일 동안 달라붙어 있어줘.”

   

   헤실거리고 있던 얼빠여우는 내 말을 곱씹다가 질겁하며 베네딕을 바라봤다.

   

   베네딕도 당혹스럽기는 마찬가지인 듯 했지만 그건 내 알 바 아니었다. 이번 일엔 베네딕의 잘못도 있었으니까.

   

   “만약 놓치면 나 한 달 동안 파파 얼굴 보지도 않을 거야.”

   “걱정마라! 이 파파는 대륙 최고의 기사니까!”

   “응. 기대할게. 바보 파파. 루시가 파파보고 역겹단 말 하지 않게 노력해줘?”

   “자. 잠깐. 이게 어떻게 벌이 되느냐! 벌이라는 것은 고통이 따라야 하는 법!”

   

   이런 상황은 생각하지 못한 듯 당황한 얼빠여우가 목소리를 높였지만 난 거기에 조금도 반응해주지 않았다.

   

   “어라아? 바보 파파. 왜 아직도 개가 짓는 소리가 들리는 걸까아?”

   “알겠다! 루시! 내가 데리고 가마!”

   “잠. 놔라! 내 몸에 손대지 마라! 나는 루시의 곁에 있어야 한단 말이다! 루시! 루시이이이이!”

   

   아무리 얼빠여우라도 베네딕이 눈에 불을 켜고 있으면 쉽게 빠져나올 수 없겠지.

   

   또 다른 분체를 만들어서 빠져나오면 어쩔 수 없긴 하다만 눈치가 있으면 거기까지 할리는… 없다고 말하고 싶지만 얼빠여우한테 눈치를 기대하는 게 맞나 싶기도 하고.

   

   에라 모르겠다. 그건 그 때가서 생각하자.

   

   이제 남은 건 메이스 안에 들어있는 할배 두 사람이지만 지금 내가 뭘 한다 한들 둘을 동시에 고통줄 순 없단 말이지.

   

   일단은 원한의 서에 기록만 해두자. 나중에 반드시 죄를 값게 만들겠어.

   

   “그래서 무능왕자님이랑 아줌마는 뭘 하러 오신 건가요? 생긴 것처럼 쓸모없는 일 때문에 온 거라면 부디 사라져주셨으면 하는데.”

   “조금이면 돼. 고용주님. 왕자님쪽은 모르겠지만 난 오래 걸릴 이야기가 아니거든.”

   

   항상 바쁘게 움직이는 카리아가 굳이 여기에 왔다는 건 무언가 중요한 용무가 있단 거겠지.

   

   고갤 끄덕인 나는 두 사람을 알른의 응접실로 안내했다.

   

   얼빠여우와 르네의 다툼 탓에 어질러져있던 응접실은 어느새 깔끔하게 복원되어 있었고 심지어는 우리가 올 것을 기다렸다는 것마냥 따뜻한 연기가 피어오르는 차가 우리 앞에 놓였다.

   

   “집사장께서 준비하라 하셔서요.”

   

   에린의 말을 들은 난 이 저택에 아직 양심이 남아있단 사실에 감동했다.

   

   베네딕이나 얼빠여우는 말할 것도 없고. 기사들은 하나 같이 뇌가 근육으로 되어 있고. 칼은 바보견이고. 에린은 점점 나한테 하늘하늘한 옷을 입히려고 그러고. 최근 가문에 감금되어서 일하는 방계들은 날 보면 깜짝 놀라서 도망치고.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나 왜 이렇게 신세가 처량한 것 같지? 이게 맞나?

   

   “본론으로 들어갈테니까 집중해. 고용주님.”

   

   아. 넵. 말씀하세요.

   

   “사라졌던 교황의 행적을 포착했어. 강자사냥과 함께 대륙 외각을 돌아다니고 있더라. 단순한 관광은 아닌 것 같던데. 뭔가 아는 바 있어?”

   

   카리아가 말한 것처럼 단순한 관광일리는 없다. 자신의 염원이 이루어지기 직전인 상황에 시간낭비를 할 녀석은 아니니까.

   

   분명 교황의 목적과 관계있는 일일 텐데.

   

   으으음. 정보가 부족해. 뭔가 더 없어?

   

   “정보라고 해봐야 자신의 목을 노리고 달려든 놈들을 처리했단 것 정도가 끝이야. 조용하게 뭔갈 하는 걸지도 모르겠지만 이 쪽도 얼마 전에 행적을 붙잡은 거라 아는 게 적어.”

   

   나도 추측이 가는 부분은 없다. 당장 지금처럼 교황이 오랫동안 교회를 비운 것 자체가 이레귤러니까.

   

   머리가 핑그르르 돌다가 하늘로 승천해버릴 것 같은 놈의 생각을 어떻게 추측하겠어.

   

   “아. 참. 한 가지 아는 게 있긴 해. 교황이 고용주님 장신구를 잔뜩 사들였거든. 행적을 붙잡은 것도 그 덕분이고.”

   

   …뭐? 그 미치광이가 예술 교단의 장신구를 사들였다고!?

   

   교황의 광기어린 웃음을 떠올리던 난 저도 모르게 어깨를 떨었다.

   

   굳이 알고 싶지 않은 진실이었어. 가끔은 거짓말이 필요하다는 게 이럴 때 하는 말인가.

   

   “추측 가는 게 없다면 이걸로 나는 끝. 왕자님. 할 말 있으면 하세요.”

   

   차례를 넘겨받은 아서는 잠시 고민하다 카리아를 향해 목소리를 냈다.

   

   “설명하기가 복잡합니다만. 카리아님. 1왕비님의 출생과 성장에 대해 어디까지 알고 계십니까?”

   “그 미친 년에 대해서요? 어지간한 내용은 알죠. 검증을 맡았던 입장이라서.”

   “부디 그에 대해 알려줄 수 있겠습니까? 바라는 대가가 있다면 당연히 지불할 생각입니다만.”

   “아뇨. 괜찮아요. 고용주님의 친구분께 돈을 받았다간 나중에 험한 소리 들을 것 같거든요.”

   

   아서의 진중한 어투에 손을 내저은 카리아는 소리가 제대로 차단되고 있는지 다시 한 번 확인한 후에 입을 열었다.

   

   “일단 1왕비님의 출생은 불명이에요. 정보가 없어요.”

   “…예? 볼로시 자작가에서 태어난 게.”

   “그렇게 알려져 있긴 한데요. 당시 라흐비 공작가문과 친했던 현 왕께서 1왕비를 볼로시 가문의 양자로 들이게 만든 거라. 정확한 출신은 현 왕을 제외하면 누구도 모른다고 봐야죠.”

   

   아서는 당혹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자신이 알고 있던 진실이 왜곡된 내용이란 걸 알면 누구라도 저럴 수밖에.

   

   당장 나도 그런 걸.

   

   아니. 1왕비한테 그런 비밀이 있었다고!?

   

   그 년이 판타지 트럼프가 된데에 납득이 가는 사연이 존재했단 말야!?

   

   단순한 미치광이였던 게 아니었어?!

   

   “원래는 출신 때문에라도 비의 자리에 오를 수 없어야 할 인간입니다만 지닌 능력이 뛰어나기도 했고 현 왕께서 자신이 출신을 보증하겠다고 강력하게 주장한 것도 있어서 그 분이 1왕비가 될 수 있었죠.”

   

   심지어 1왕비와 왕의 결혼에 적극적이었던 게 왕 쪽이었다고?!

   

   말도 안 돼! 소울 아카데미 커뮤니티에서 주류로 퍼진 이론은 판타지 트럼프한테 왕이 잡아먹혔다는 거였는데!

   

   누가 헛소리처럼 하던 강한 여자. 왜곡된 성욕이란 농담이 진짜였단 말야?!

   

   충격적인 진실 앞에 눈을 뻐끔거리고 있으려니 아서가 목을 가다듬었다.

   

   “그럼 다른 질문입니다만, 카리아님께선 감시자라는 존재에 대해 알고 계십니까?”

   “비유적인 의미는 아닌 것 같은데. 정확하게 설명해주시겠어요?”

   “솔라딘의 왕이 맹약을 이행하는가 감시하는 존재입니다.”

   “그건… 모르겠네요. 죄송합니다. 예전에 왕국 정보부에서 일을 할 때도 그에 대한 건 들어본 적이 없어서. 고용주님도 모르시는 눈치네요.”

   

   당연히 모르지! 그건 게임에 안 나왔단 말야!

   

   개허접주신! 너 게임 제대로 안 만들래?! 왜 이렇게 누락된 정보가 많은 거야!

   

   이렇게 설정이 많으면 DLC를 내서 풀어야지! 왜 모드나 만들면서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었냐!

   

   다른 건 몰라도 이건 절대 용서 못 해!

   

   나중에 봐! 어디 감금해놓고 군만두만 먹이면서 게임을 만들게 할 거니까!

   

   “고용주님. 요정을 통해서 에르기누스님과 연락 가능해? 그 분에게 물어봐야 뭔가 나올 것 같은데.”

   

   카리아의 말을 듣고 눈을 위 쪽으로 올렸더니 내 머리카락 사이에 숨어있던 요정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 할 수 있어!

   – 여왕님께선 항상 우리 이야기를 듣고 계시거든!

   – 여왕니이이임!

   “그렇게 소리치지 않아도 다 들린다.”

   

   방의 그림자 속에서 불쑥 튀어나온 에르기누스는 요정의 머리를 꾸욱 눌러줬다.

   

   요정여왕의 부마 같은 입장이라 그런 걸까. 요정들은 신이 나서 에르기누스에게 달라붙었다.

   

   <뭐야? 저 녀석은 왜 멀쩡히 살아 있어?>

   <우리와 함께하던 에르기누스가 아니다. 그 녀석이 만든 인형이지.>

   <인형이라고? 저게?>

   <지금은 아니다. 신격을 얻었으니까.>

   <…그건 뭔 미친 소리야.>

   

   가라드가 끊임없이 의문을 토해내는 동안 에르기누스는 아서 옆의 허공을 바라보며 고갤 주억거렸다. 저번에 듣기로 아서한테 요정 비스무리한 게 달려있다고 그랬던가.

   

   “상황은 이해했다. 출생도 의아하고 생각하는 것도 비슷해서 의심할만하군. 일단 내가 판단하기엔 감시자와 아무런 연관이 없는 것으로 보였다. 마법의 흔적이 없었어.”

   

   에르기누스는 아닐 것이라고 말했지만 그 대답은 단호하지 않았다. 무언가 여지를 남겨 둔 듯한 태도에 우리가 의문을 표하자 그가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다시 확인해보겠노라 말하려했다만 제약에 걸린다는군. 신격이 이럴 때는 참 귀찮다니까.”

   

   미안하다 사과한 그는 자신의 아공간에서 망토를 꺼내 내게 건네줬다.

   

   어라? 이거 내 기억이 맞다면 과거의 용사가 썼던.

   

   “요정을 통해 전해듣기로 루엘의 인형이 망가졌다지 뭐냐. 그래서 인형을 확인할 겸 그 곳의 보수를 가지고 왔다.”

   “동정찐따님은 절차라는 게 있단 걸 모르시나요?”

   “인정받는 과정에 대해 말하는 거냐? 너에 한해서는 필요 없는 일이다. 용사가 널 긍정하지 않을 리 없으니까.”

   

   그에게서 망토를 받아든 나는 무어라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으로 성물을 바라보다 웃음을 흘렸다.

   

   뭐. 됐다. 귀찮은 일 하나를 대신 처리해줬다고 생각하자고.

   

   그럼 이걸로 섬에 갈 준비는 끝난 건가.

   

   좋아. 가보자.

   

   루시의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왜 르네가 루시한테 저렇게 집착하는 건지.

   

   모두 다 확인하고 오는 거야.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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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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