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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11

        

       하지만 일찍이 그러한 일이 있지 않았던가.

       그 누구도 대적할 수 없었을 것 같은 거인에 맞서 싸운 왜소한 자의 이야기.

         

       그는 덩치가 컸으며 사나웠고, 무거운 갑옷과 창과 방패를 들고 있었다. 누구도 그와 싸우려 하지 않았으니 그 위엄이 감히 짐작될 것이라.

       하지만 계시받은 소년이 있어 매끄러운 돌을 품고 나가서 대적하였으니 그 돌팔매에 신의 도움이 있어 머리에 명중하여 쓰러졌으니 이것이 기적이 아니고 무엇이 기적이랴? 이것이야말로 위대한 오롯이 존재하시는 그분의 위업이며 은총이니 너희 사람들은 그분의 존재를 추호도 의심치 말지어다.

         

       후웅-!

       후웅-!

       후웅-!

         

       의심치 말지어다.

         

       후우웅-!

         

       바람을 가르는 소리.

       매끄러운 돌을 품은 기다란 천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저 높은 곳에 소년의 얼굴을 가진 이가 있어 돌을 품은 천을 빙글빙글 허공에 돌리고 있었으며, 그 바람을 가르는 소리는 회전이 더해질수록 점차 거세졌다.

       그리고 마침내 진성의 손이 아주 살짝 풀리고, 돌멩이를 붙잡고 있던 천의 한쪽이 풀리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와 함께 빙글빙글 돌고 있던 돌멩이는 관성에 따라 움직이며 허공을 가르며 어디론가 향하기 시작하였다.

         

       그 속도가 어찌나 빠르고 흉악하였는지 그것은 아까 전 같은 위치에서 쏘아 보낸 저격총의 그것과 비교해도 전혀 뒤지지 않을 것만 같았고, 돌멩이에 새겨진 문자는 강력한 충격을 주었던 총알보다도 더더욱 흉악한 것을 품고 있었다.

         

       그렇게 돌멩이는 빠르게 목표에 도달하였다.

         

       무인이었다면 기감이나 육감으로 어찌 깨달았으련만.

       주술을 쓸 줄은 알되 육체적인 능력은 일반인보다도 허약하였던 것이 흠이라.

       그래서 케네스는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돌멩이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다.

         

       그렇게 돌멩이는 아무런 방해 없이 목표물에 도달하였다.

         

       돌멩이가 일정 범위에 들어오자 역장이 생성된다.

       주술로 생성한 물리력을 가진 장막이 생성되며 돌멩이를 머리에 정통으로 맞는 것을 방어하였고, 출렁이며 형태를 조금씩 바꿔가며 투사체를 도리어 망가뜨리기 위해 움직인다. 앞서 총알을 방어할 때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높은 곳에서 쏘아진 돌멩이는 그런 방법으로 간단히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쩌어억-!

         

       역장에 부딪힌 돌멩이에 금이 새겨진다.

       그 금은 앞서 총알이 그랬던 것처럼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잘게 쪼개져 터져나갈 것이라는 미래를 암시하고 있었지만, 그 금이 사방으로 번지고 금이 가지 않은 부분을 찾기 어려울 정도가 되었음에도 돌멩이는 터지지 않고 형체를 유지하였다.

       대신에 돌멩이에 새겨진 글자가 빨갛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마치 아주 뜨거운 곳에 들어갔다 나오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글자의 색은 점점 빨갛게 변해갔다.

         

       이윽고 이 이상 빨갛게 변할 수 없을 것 같은 수준이 되었고….

         

       퍼어어엉-!

         

       터져버렸다.

         

       마치 전자레인지에 돌린 계란이 터지는 것처럼 말이다.

         

       “크윽!”

         

       그렇게 터진 돌멩이는 케네스에게 어마어마한 충격을 안겨주었다.

       앞서 터졌던 총알보다도 더더욱 큰 충격이었다.

       케네스의 고막이 터져버리면서 귀에서 피가 흘러나왔고, 금방이라도 기절할 것처럼 눈이 미친 듯이 흔들렸다. 그의 코에서 코피가 주륵 흘러나왔으며, 혀라도 깨문 것인지 입가에도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몸 역시 쉽게 가누지 못하겠는지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휘청거렸고, 손에 들고 있던 묵주는 힘없이 바닥에 떨궜다.

         

       “됐군.”

         

       진성은 뇌진탕이라도 당한 것처럼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케네스를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무표정한 얼굴로 조금 전 돌멩이를 던졌던 천을 가슴께로 들어 올린 후, 양손으로 천의 끝을 잡고는 비비 꼬기 시작했다.

         

       한 바퀴 회전할 때마다 천은 가늘어진다.

       가늘어지는 만큼 질겨지고 단단해진다.

       그렇게 펄럭거리던 천은 밧줄이 되었다.

         

       진성은 그 밧줄의 끝과 끝을 묶어 고리를 만들고, 매듭 부분을 한 손으로 잡고는 손목을 천천히 위아래로 움직였다.

         

       그리고 그 손목의 움직임은 행위가 계속될수록 빨라졌고….

         

       파앙-!

       파앙-!

         

       파공음이 날 정도가 되었다.

         

       수건을 터는 것 같기도, 채찍으로 허공을 때리는 것 같기도 한 그 소리는 손목의 움직임이 이어질수록 그 간격이 짧아졌다. 그리고 그 짧아진 간격만큼 매듭에 충격이 가하는 속도 역시 가속도가 붙기 시작하였고, 엉성하게 묶여있었던 매듭은 천천히 풀려갔다.

         

       그리고 마침내 끝과 끝을 이어주던 매듭이 풀렸고, 짧은 고리의 형태였던 밧줄은 풀려 채찍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렇게 채찍이 된 밧줄은 맨땅을 때렸고, 그 충격으로 비비 꼬인 몸을 풀고 다시 펄럭이는 천으로 돌아왔다.

         

       “보아라. 수풀에 숨은 뱀은 이것과 다르지 않으니, 너는 이것을 명심하도록 하여라.”

         

       그 짧은 순간.

         

       진성은 기다렸다는 듯 주언을 내뱉으며 천을 허공에 그대로 집어 던졌다.

         

       그리고 천은 뱀이 되었다.

         

         

         

        * * *

         

         

         

       하늘을 나는 뱀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있는가?

       신화나 전설에서 나오는 깃털 달린 뱀이나 날개가 달린 뱀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실존하는 동물 중에는 정말로 하늘을 나는 뱀이 존재한다.

         

       동남아시아의 열대우림에서 볼 수 있는 ‘Chrysopelea paradisi’라는 학명의 뱀.

       파라다이스 나무 뱀(paradise tree snake)이라고 불리는 이 뱀은 나무와 나무 사이를 날아다닌다. 정확하게 말하면 날아다닌다기보다는 활공하는 것에 가깝기는 하지만, 최대 46m까지 활공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날개도 달리지 않은 뱀이 어찌 이게 가능할까 의문이 절로 들게 만든다.

         

       현대인의 시선으로 봐도 신비로우며, 이 뱀이 활공하는 방법에 대해서 최근에 밝혀질 정도였으니- 과거의 사람들의 시선으로 보았을 때는 오죽했을까?

         

       옛적 사람들은 하늘을 날아다니는 이 뱀을 신기하게 여겼다.

       보이지 않는 날개가 있다고 여기기도 했고, 신비한 힘을 품고 있어 하늘을 날아다닐 수 있다고 생각하기도 했고, 신의 축복을 받아서 날아다닐 수 있다고도 했다. 혹자는 보이지 않는 거인이 저 뱀이 날아갈 때 받쳐주어 가능한 일이라고도 하였고, 나무와 친해져 나무와 나무 사이를 날아다닐 수 있도록 허락받았다고 여기는 이들도 있었다.

         

       그리고 신비는 숭배와 확대 해석을 낳고, 그것은 곧 주술적 의미를 지니게 되는 것이라.

       그렇게 이 뱀을 따라 하거나 뱀을 이용해 주술적 힘을 얻기 위한 시도가 자연스럽게 생겼다.

         

       파라다이스 나무 뱀과 닮은 무늬를 옷에 새기기도 하고, 파라다이스 나무 뱀의 껍질을 벗겨서 옷을 만들어 입기도 하였다. 비늘의 색과 닮은 물감을 어딘가에서 구해와서 몸에 칠하기도 하였고, 파라다이스 나무 뱀의 식생활을 따라 하기도 하였다.

       그렇게 유사성을 만들어 파라다이스 나무 뱀이 받은 축복을 자기 몸에 받아들이고자 하였고, 그들처럼 나무 위를 뛰어다니고 나무 사이 사이를 활공하며 동물을 잡을 수 있기를 소망하였다.

         

       어떤 이들은 이 파라다이스 나무 뱀을 주술적 효과를 몸에 받아들이는 대신에 물체에 적용해 그 효과를 받고자 하였으니, 투창과 화살에 그 무늬를 새기고 비늘을 첨가하여 울창한 나무 사이에서도 무사히 사냥감을 잡을 수 있도록 하고 더 멀리 투사체가 날아갈 수 있도록 소망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어떤 이는 교훈을 얻기도 하였으니.

       밤중에 펄럭이는 천과 땅에 놓인 밧줄과 뱀이 크게 다르지 않았음을 이로써 깨달았다.

         

       깨달음으로, 마음으로 말하나니.

         

       어둠에 가려져 있다면 그 실체는 쉬이 가려지는 것이라.

       천과 밧줄은 다르지 않고.

       밧줄과 뱀 역시 다르지 않다.

       천이란 이로운 것이고 밧줄 역시 이로운 것이라.

       그렇다면 단지 어둠에 가려져 있다고 하여 이로운 것과 이롭지 않은 것의 본질 역시 달라지는가?

         

       달빛이 스쳐 지나가며 윤곽을 드러내고, 햇빛이 세상에 퍼지며 그 실체가 드러난다고 한들 그 본질이 달라지는가?

       감각으로 받아들이는 게 다르다고 한들 본질은 달라지는 것이 아닌지라.

       그리하여 지혜를 내리나니, 제자들아 너희는 본질을 꿰뚫어 보는 눈을 가지고 잠시 눈을 가린 어둠에 현혹되어 잘못된 판단을 하지 않도록 함이 옳도다.

         

         

         

        * * *

         

         

         

       깨달음의 전승은 이야기가 된다.

       이야기는 구전으로 전해지며 바뀐다.

       장소가 있어 전설로 남고, 장소가 없어 민담으로 남으며 그렇게 구전되어간다.

         

       그리고 지금, 그 이야기가 진성의 손에서 주술이 되어 발현되었다.

         

       어둠에 가려져 있을 적 천과 밧줄과 뱀이 다르지 아니하다면.

       보아라.

       내가 던진 것이 천이냐 뱀이냐?

         

       샤아악-!

         

       어둠이 실체를 모호하게 만드매 그 윤곽이 뭉개져 구별할 수 없게 되고.

       사람은 인식에 따라 물체를 인지하는 생물이니.

       지금 여기 천이 뱀이 되었다.

         

       하늘을 나는 뱀이 활공하여 날아간다.

         

       아가리를 쩌억 벌린 채 몸을 이리저리 뒤틀며 활공하며 날아간다.

         

       그리고 마침내 케네스의 몸에 착 하는 소리를 내며 붙고, 순식간에 몸을 타고 올라가 귓가에 속삭이기를.

         

       [ Verene praecepit vobis Deus, ut non comederetis de omni ligno paradisi? ]

         

       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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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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