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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14

        

         

       머리채를 휘어잡고 걷는 길이 무겁고도 가볍다.

       젊은이의 발걸음은 춤을 추는 듯 가벼우나 끌려가는 이의 발걸음은 무거워 땅에 질질 끌리니 참으로 세월의 무게라는 것이 아쉽고도 아쉽다. 발이 끌려가는 자국이 남아 길게 선을 그리고 휘어잡은 머리채는 세월을 맞아 푸석하고 윤기가 흐르지 아니하니 옥수수의 그것과도 같으니.

       아, 노인의 머리채는 참으로 옥수수와 같은 것이구나.

       그리하여 옛적 이야기처럼 노인의 머리채를 잡고 걸어가는 걸음걸음 터럭이 떨어져 땅에 심기고 그것이 자라나 열매를 맺으며 노인의 것과 똑 닮은 머리카락을 늘어뜨리며 자신의 존재를 말하니 이것의 열매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하고 물으니 그 이름은 옥수수라 하였다.

         

       아, 청년의 발자국에는 그 무엇도 남지 않거늘.

       노인의 발자국에는 이리 옥수수가 자라나니 이것이 바로 노인이 젊은이에게 베푸는 환대가 아니고 무엇이랴?

         

       걷고 또 걷는다.

       오르락내리락.

       그 곡선이 인생의 그것과 참으로 닮았으니 마지못해 세월에 끌려가는 노인의 일생과도 닮고도 닮았다.

         

       그러나 어찌 여정이 영원할 수 있겠는가?

       출발이 있다면 목적이 있는 법이 아니겠는가?

         

       그리하여 둘은 목적지에 도달하였으니, 한 명은 꼿꼿이 허리를 세우고 한 명은 땅에 허리를 뉜 채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하고 있는 형상이라.

         

       화산이 말한다.

       아, 유망한 젊은이가 노인을 나에게 데려왔구나.

       곧 죽을 자를 이곳에 데려와 장례를 치르려 하는구나!

         

       “타오르는 불꽃은 영원할 수 없고, 끓어오르는 용암 역시 언젠가는 식기 마련이다. 다만 그것은 그 반대도 가능한 것이라. 식은 돌덩이는 녹아 용암이 되고, 불꽃에 장작이 되어 타오르는 모든 것이 있나니. 이것이 바로 순환이며 세상의 이치이니라.”

         

       젊은 주술사가 있어 늙은이를 내려다보며 말한다.

         

       키가 크고 마른 듯하지만, 노인의 머리채를 휘어잡은 팔에는 단단해 보이는 근육이 제 존재감을 드러내며 단단히 노인을 쥐고 있다. 목에는 핏줄이 꿈틀거리고 얼굴에는 땀이 조금 흐른다. 그 땀은 악취를 약간 담고 있으며 색은 검붉은색에 가까운 것이라, 흙먼지와 피를 반죽해서 땀에 섞은 것과 같은 느낌의 끈적한 그것은 진성의 땀샘에서 송알송알 맺혀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다.

       모세혈관이 터져 이렇게 되었으니 이것은 주술의 대가라.

         

       이것은 충분히 감내할 수 있는 고통이로다.

         

       “보아라. 스러질 자야. 너의 목적지를 보아라.”

         

       피 맺힌 땀으로.

       그 땀으로 새빨개진 손으로 머리를 쥐어 들어 올리며 말하노라.

         

       “이곳은 화산. 재난이자 재앙이며, 네가 목적을 이룰 그곳이니라….”

         

         

         

        * * *

         

         

         

       옛적.

       거대한 자연현상은 사람의 이해 밖에 있는 것이었다.

       특히나 그것이 흔히 볼 수 없는 것일수록, 그 규모가 거대할수록 더더욱 그러했다.

         

       그리하여 사람은 공포와 경외를 담아 숭배하였다.

       자연현상에 이유를 만들기 위해 이야기를 짜내었고, 그 이야기를 모아 신화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 신화는 종교가 되었고, 그 종교는 사람들의 생활방식이 되었다.

         

       내리쬐는 번개는 하늘에 계신 신의 행사라.

       수없이 많은 번개가 짧은 시간에 한 지역에 수없이 내려오는 저 번개의 비는 제우스 신의 행사요.

       저 섬을 뒤집고 해안가를 쓸어버리는 상상을 초월하는 거대한 파도는 포세이돈의 분노가 담긴 것이라.

         

       그리하여 사람들은 그 분노를 가라앉히기 위해 귀한 것을 바치기 시작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제물이다.

         

       사람은 귀한 것을 신에게 바쳤으며 그것으로 자신의 안전을 얻거나 더더욱 귀한 것을 신께 내려받고자 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그들이 주술 의식을 치르는 이유가 되었다. 그리고 그 주술 의식에서 사용하는 귀중한 것들은 구하기 힘든 것일 때도 있지만, 때로는 사람의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지만 동시에 그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 될 수 있는 것도 있었으니-

         

       아, 그것은 이웃이요 자식이요 부모였으니.

         

       그렇게 수많은 종교는 신의 분노를 가라앉히기 위하여 사람을 제물로 바치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 여기 한 사람이 바쳐지려 한다.

         

       “눈의 네 여신 중 하나이시여. 마우나 케아에 기거하시는 가장 아름다운 여신이시여. 이곳에 시선을 두어 당신의 아름다움을 찬양하는 제사장을 지켜보소서….”

         

       걷는다.

       킬라우에아와 마우나 로아를 지배하는 펠레의 여신의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끝자락에 있는 폴리아후(Poliʻahu)의 영지가 있는 방향으로 향한다. 케네스를 질질 끌며 자국 자국마다 옥수수를 피워내며 그렇게 걷고 또 걸어 쌀쌀한 공기가 가득한 곳을 찾는다.

       그곳은 충분히 경사가 져 있고 굴곡져 있는 곳이라.

         

       목적지에 도착하고 난 뒤에야 진성은 머리채를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그러고는 자세를 취한다.

         

       오른발은 앞으로.

       왼발은 뒤로.

       양손은 주먹을 쥐고는 검지를 들어 올린다.

       손바닥이 바깥을 향하도록 한 뒤 한 손은 정수리의 위쪽에 오도록, 한 손은 명치께에 오도록 한다.

       검지를 살짝 굽혀 갈고리의 형상으로 만들고는 허공에 있는 무언가에 거는 듯 움직이고는 다시 주먹을 쥔다. 갈고리에 걸린 것을 주먹의 안쪽에 밀어 넣고 꾹꾹 눌러 담고는 주먹을 쥔 네 손가락에 그것을 거는 것처럼 동작한 뒤 손바닥을 펼치고….

         

       스윽.

         

       움직인다.

       두 팔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인다.

       한 팔은 아래로 내려가고 한 팔은 위로 올라가며 그렇게 원을 그린다.

       원이 그려지는 속도는 빠르지는 않으나 유려하였으며,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그렇게 천천히 밤공기를 일그러뜨리며 원을 그리고 또 그린다. 손이 원을 그리고 같은 궤적을 지나쳐 갈 때마다 그 원은 존재감이 뚜렷해지며, 눈으로 볼 수 없으나 분명히 손이 지나는 그 길은 끝도 없고 시작도 없는 도형 그 자체이니 이것이 바로 세상의 이치를 담고 있는 움직임이 아니겠는가.

         

       한 손의 끝에는 밝고 따뜻한 기운이 걸려서 움직이니 그 손바닥에 걸려있는 부분은 뭉툭하고 지나간 자리에는 꼬리를 남긴다.

       한 손의 끝에는 어둡고 추운 기운이 걸려서 움직이니 그 손바닥에 걸려있는 부분은 뭉툭하고 지나간 자리에는 꼬리를 남긴다.

       다만 따스함 가운데에는 차가움이 있어 밝은 곳에 어두움이 존재하는 줄 알았고, 추움 가운데에는 따스함이 있어 어두운 곳에는 밝음이 있는 줄을 알았나니.

         

       보아라.

       이것이 음양(陰陽)이로다.

       이것이 태극(太極)이다.

         

       이것이 양이요 이것은 음이라.

       둘이 꼬리를 물고 움직이며 원을 그리니 이것은 태극의 형상이라.

       다만 음의 안에 양이 있고 양의 안에 음이 있으니 그 구별이 쉽지 않으니.

       이것이 바로 세상의 이치이니라.

         

       쩌적-!

         

       그리하여 음과 양의 기운을 건 손바닥에도 그 이치가 꽃을 피우기 시작하였으니.

         

       진성의 한 손에는 얼음으로 만들어진 꽃이 피기 시작하였다.

       음기가 모이며 하늘하늘 피어오르기 시작하였는데, 이것은 꼭 냉기로 만들어진 꽃과 같아 제 손에 모이는 수분을 그러모아 꽃처럼 피워내는 성질을 가졌다. 그것은 겨울철 강에서 피어나는 얼음꽃과 닮은 것이었고, 눈 내린 뒤 나무에 걸려 하얀 아름다움을 뽐내는 눈의 꽃과도 닮은 것이었다.

         

       진성의 한 손에는 열기로 만들어진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이것은 열기를 품고 있으며 약간의 빛을 품고 있어 어두운 곳에서 볼 때는 도깨비불처럼 보이게 만드는 형상이라. 다만 그것은 원을 그리는 손의 움직임에 거부하지 않고 움직이니, 마치 사람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혜성과도 참으로 닮아 있었다.

         

       쩌적-!

         

       꽃이 피어난다.

       걸려있는 것을 털어내듯 움직이는 팔의 움직임에 음기가 땅바닥에 꽂히고, 땅에 하얀 서리를 끼게 만든다. 나무는 얼어붙게 만들고, 수분을 끌어모아 얼음 알갱이와 눈을 만들어 이 장소 곳곳에 놓이게 만든다.

       이파리를 얼리며 튀어나온 얼음꽃은 그들의 몸을 찢고 나오는 날카로움만큼이나 차디찬 추위를 사방에 퍼뜨리고, 숨을 내뱉을 때 하얀 입김이 같이 나올 정도로 주위의 기온을 낮아지게 만든다.

         

       화악-!

         

       혜성이 땅에 떨어진다.

       양기를 머금은 혜성이 땅에 떨어지니 얼어붙은 땅은 순식간에 녹이고, 땅을 달아오르게 만들며 빨갛게 달아오른다. 그 온도는 순식간에 800도를 넘기니 그것은 용암 온도와 닮아 있는 것이라.

       그리하여 호응하듯 땅에서 용암이 송알송알 솟구치기 시작하니 아, 이것이 바로 불의 강이요. 옛적 여신들이 놀았던 바로 그곳이로다….

         

       “옛적 사람들과 어울려 살던 때가 있어 그들과 시합을 함께하였나니 그것의 이름은 헤 호루아(heʻe hōlua)라. 가장 아름다운 여신이시여, 화산의 여신인 펠레를 적대하시는 신이시여! 당신을 기리나니 이곳에서 낯선 이에게 썰매를 주겠나이다!”

         

       양기로 용암을 불러 강을 만들었다.

       눈의 여신이 기거할 만한 정도로 주위의 온도를 낮추었다.

       거기에 얼어붙은 나무들이 스스로 가지를 내밀어 좁은 나무 썰매를 만들어내었으니 그것은 옛적 낯선 이에게 썰매를 주어 자신과 시합하게 하였던 폴리아후의 일화와도 걸맞은 것이었다.

         

       그리고.

         

       “자아, 가련한 목숨아. 네 목적이 이루어지도록 도움을 주리니….”

         

       여기 그녀와 썰매 시합을 할 낯선 이가 있으니.

       아, 그 머리채가 옥수수의 그것과 참으로 닮았다.

       늙은 그 모습이 참으로 옥수수와 닮았구나….

         

       마치 옥수수로 빚어진 인간과도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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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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