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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15

        

         

       폴리아후께서 묻는다.

       눈과 냉기로 시합을 연 사람에게 질문하기를.

         

       어째서 호루아 썰매가 있는데 그것에 탄 이가 없느냐?

         

       …라 하였다.

         

       아, 그 속삭임이란 은밀해서 겨울철 귓가에 불어오는 나무의 숨결만큼이나 앙상하고 미미한 것인지라 쉬이 알아들을 수는 없겠지만 어찌 눈의 여신을 존중하는 이로써 그 말을 듣지 못할 수가 있겠는가?

       손이 얼어붙는다고 할지라도 한 번이라도 쓰다듬고픈 그 아름다움을 어찌 거역할 수 있겠느냐?

         

       그리하여 그분의 말에 따라 썰매 시합을 할 수 있도록 호루아 썰매에 사람을 태우니 눈을 닮은 터럭을 쥐고 그곳에 얹어놓는도다.

         

       “커헉.”

         

       긴장하였느냐?

       혹은 썰매의 속도에 취할 생각에 기뻐 감히 몸을 겨누지 못하겠느냐?

         

       썰매에 탄 이여.

       덧없는 목숨 한 몸 바쳐 썰매를 타고자 하는 사람아.

       너는 추위에 입김을 하아 불어내며 늙은 몸을 덜덜 떠는구나.

       죽지는 아니하여 숨을 토해내었으니 기쁘고 기쁜 일이 아닐 수가 없다.

         

       그러니 식물을 조종하여 덩굴의 형태로 만들어 몸을 호루아 썰매에 꽁꽁 구속되는 몸뚱어리에 얼굴을 가져다 대고 눈을 마주치며 말하기를.

         

       “케네스. 재앙술사라 불린 가련한 작자야. 내가 누구인지 아느냐?”

         

       곧 떠나갈 이에게 묻는다.

       너는 내가 누구인지 아느냐?

       너는 내가 누구인지 진실로 알고는 있느냐?

         

       진성은 그 물음을 던지며 케네스를 바라보았고, 총기가 돌아왔다가 흐려지기를 반복하는 그의 눈빛을 보았다. 총기가 돌아온 눈에서는 지혜와 지식이 머물러 진성을 판단하였으나, 그 총기는 동이 틀 적 잠시 꼈다가 사라지는 안개만큼이나 허무하게 사라지는 것과 같아 금방 흐려지고 흩어지며 어리석음이 그 자리를 가득 메웠다.

         

       지혜로운 노인과 치기 어린 청년의 차이만큼이나 극명한 변화가 순식간에 이루어지니.

       아, 망(妄)이 들었구나.

       총기가 흐려지고 지혜가 흩어지며 그 자리에 망령이 들었으니 정말로 노망(老妄)이 들었구나!

         

       정신을 온전치 못하게 만드는 이 망령은 마땅히 태어났을 때 주어진 육체에서 비롯된 것도 아니요 그의 식생활에서 비롯된 것도 아니요 누군가의 원한을 샀기 때문도 아니다. 치료하고파도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망가졌으며 쉬이 그것을 정상으로 돌리기가 참으로 어려울 지경에 이르렀으니….

         

       아.

       이것이 바로 주술의 대가로다.

       홀몸으로 감당하기 힘겨운 대가를 안겨주는 대주술 의식의 대가로다….

         

       육신의 망가짐은 정신력으로 버틸 수 있었으련만.

       뇌가 망가지고 정신을 담는 그릇이 망가졌으니 정신 역시 온전치 못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시간이 뒤틀리기 전 주술도 아닌 무언가를 퍼뜨리고 행하여 죽은 이유를 알 수 있는 눈빛이라 할 수 있겠다.

       저런 눈빛을 가지고 있는 이가 세월을 머금으며 더더욱 육신이 망가지기를 반복하였으니 그때의 정신이 어찌 온전하다 자신할 수 있겠느냐?

       망가지고 망가져 옛적의 모습은 파편으로밖에 볼 수 없는 모습이 되었을 것이요, 그것은 숫제 광인이나 다름이 없어 무언가를 완벽히 행할 수 있을 수도 없을 것이다. 지식은 벌레에게 파먹혀 군데군데 구멍이 나고 사라져 어설픈 무언가가 되었을 것이요, 쌓아두었을 지혜는 제대로 활용조차 할 수 없는 신체가 되었을 터이니.

         

       아, 안타깝고 가엾은 자야.

       일찍이 세웠던 대업을 이루지 못하고 사라진 가련한 목숨아.

         

       “나를 보아라. 너는 진실로 내가 누구인지 알고 있느냐?”

         

       세웠던 목표를 향하다가 죽었으면 미련이라도 가지련만.

       별을 따라 걷고 배를 타다가 객사하였으면 운이 없어 목적지에 다다르지 못했다고 스스로 위로라도 하련만.

       아, 목적이 무엇인지 목표가 무엇인지도 흐린 안개 속에서 보는 풍경처럼 제대로 떠올리지도 못한 채 방황하고 방황하다가 덧없이 스러지게 되니 이 어찌 안타깝다고 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그러니 지금 이 자리에서 진성은 케네스에게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케네스는 그 물음에 힘겹게 입을 달싹여 답하기를.

         

       “…젊은…주술사….”

         

       …라 하였다.

         

       하지만 진성은 그 답변이 만족스럽지 않다는 듯 표정을 찌푸리며 고개를 살짝 저었다.

         

       “아니다.”

         

       답한 것이 오답이라면 무엇이 정답일 것인가?

         

       “나를…인신공양 하려는가…?”

         

       대체 무엇이 정답인가?

       그 호기심이, 궁금증이 머리를 메운다.

       일찍이 그를 학자의 길로 향하게 했던 성정이 머리를 치켜든다.

         

       “나를 제물로…삼아 무엇…을 하려고…?”

         

       그리하여 질문을 던진다.

       옛적 대학을 다닐 때 교수에게 하였듯이.

       학구열에 불타 수없이 많은 질문을 던지고 다녔던 그때처럼.

         

       “폴리아후…나는 알고 있다…. 화산의 여신 펠레의 대적자…. 화산 일부를 자기 영지로 삼은 여신…. 펠레와 대적하는 눈의 네 여신 중 가장 아름다운 여신….”

         

       질문을 던질 때마다 총기가 서서히 돌아오기 시작한다.

       몸 곳곳에 퍼져있는 고통이 그의 뇌를 강제로 각성시키고, 고통을 경감시키고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온갖 물질을 분비한다. 그리고 그 난리 속에서 흐려진 총기가 서서히 돌아오고, 뇌가 쥐어짜는 활력 속에서 그의 지혜가 서서히 어리석음을 몰아내고 자리를 채우기 시작한다.

         

       “추위, 얼음, 눈. 젊은 주술사…. 너는 아이워히쿠푸아와 마우이 공주가 그러했던 것처럼 나에게 저주를 걸 것이냐? 뼈를 얼어붙게 만들고 그것을 열기로 바꾸어 나를 고통 속에서 죽게 할 것이냐? 나를 얼어 죽게 할 것이냐?”

         

       총기와 함께 입이 풀린다.

       부드럽게 움직이는 혀는 입 안을 헤엄치며 말을 내뱉고, 고통에 겨워 힘겹게 달싹였던 입술은 힘이 들어가 또박또박 말을 뱉어낸다.

         

       그 모습은 마치 죽기 전의 생물이 가장 활발하게 움직이는 것과 같아서.

       죽기 직전의 불꽃이 힘을 쥐어짜 가장 밝게 빛나려고 하는 것만 같아서.

       그래서 케네스는 내심 자신의 최후를 예지할 수가 있었다.

         

       아.

       나는 이곳에서 죽는구나.

       이 젊은 주술사에게 나는 죽는구나.

         

       그것은 빈말로라도 쉬이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그래서 케네스는 미련이 담긴 눈으로 진성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더란다.

       돌아온 총기가 그렇게 아쉬움을 눈빛으로, 말투에서 묻어나오는 감정으로 표현을 할 수밖에 없었더란다.

         

       “틀렸다.”

         

       하지만 케네스의 생각을 부정하듯 진성은 말한다.

       네가 한 말은 틀렸다고 말이다.

         

       무엇이 틀렸는가?

       진성이 말한 ‘틀린 것’이 무엇인가?

         

       처음 답했던 젊은 주술사라는 것?

       질문에 질문으로 답한 태도가 잘못되었다는 것인가?

       아니면 그가 질문을 한 내용이 틀렸다는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아쉬움이 틀렸다는 것일까?

         

       과연 무엇이 틀린 것인가?

       케네스의 무엇이 틀린 것일까?

         

       케네스는 쉼 없이 머릿속을 맴도는 상념 속에서 헤엄치며 고개를 든다.

       눈동자를 굴려 진성과 눈을 마주 보고, 그 눈동자에 깃든 답을 읽어내려 한다.

         

       하지만 자신과 마주 보고 있는 저 젊은 주술사의 눈동자는 텅 비어있어서.

       내면을 밖으로 드러내는 저 마음의 창에는 그 어떠한 감정도 담기지 않고 있어서.

       그래서 도저히 케네스는 그 답을 알 수가 없었다.

         

       마치 난제를 앞에 둔 수학자가 그러하듯이, 그는 답이 있음을 알면서도 그 답에 다가갈 수가 없어 무지의 고통 속에서 헤엄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저 눈동자.

       텅 비어버린 듯한 저 눈동자가 보인다.

       세월 속에서 바람에 깎이고 비에 조각된 암석이 보인다.

       기나긴 시간 속에서 자연의 일부로 녹아든 무언가가 보인다.

       한낱 깨달음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그 텅 비어버린 느낌이 저 눈동자 안에 존재한다.

         

       그것은 내면에서 솟아나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의 형태라 할 수 있는 것이라.

       저 마음은 대체 무슨 형상으로 깎여나간 것인가?

       아무것도 품지 않은 채 대관절 어찌 저런 형태를 취하고 있는 것인가?

         

       “아….”

         

       아니다.

       아무것도 품고 있지 않은 것이 아니다.

         

       보인다.

       불꽃이 보인다.

         

       숲속에서 피워낸 작은 모닥불이 그러하듯이.

       습기를 머금은 장작을 태우며 탁탁 튀며 발하는 불티가 그러하듯이.

       자그마한 불씨가 저 주술사의 눈동자에서 헤엄을 치고 있다.

       헤엄을 치며 이곳에는 불꽃이 있음을, 불이 타오르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그것은 필시 저 마음 깊숙한 곳에서 무언가가 타오르고 있음을 말하는 것이라.

       아, 저 마음의 창은 말 그대로 마음의 극히 일부밖에 비춰주지 아니하였구나.

       마음의 극히 일부밖에 없었기에.

       마음이 너무나도 거대하고 광활하였기에 감히 추측조차 할 수 없도록 하였던 것이었구나….

         

       “…불…너는 불이다….”

         

       그래서 케네스는 그것을 입에 담았다.

       그 불꽃조차도 저 주술사의 편린에 불과할지도 모르지만.

       아니, 필시 그러할 것이 분명하였지만.

         

       그는 그 사실을 입에 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저 마음속에서 타오르는 불꽃을 자기 입으로 정의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너는 다른 불꽃이로구나….”

         

       그가 극히 일부나마 느낀 불꽃은 다른 주술사의 것과는 참으로 다른 것이었다.

       그것은 모든 것을 함의하는 듯 보였지만 본질에 가까운 것 같았으며, 반대로 본질에는 멀고 개념과 관념만을 가진 채 타오르는 무언가로 보이기도 했다. 환상처럼 일렁이다 사라질 오로라와 같이 느껴지기도 했고, 만질 수도 없고 느낄 수도 없는 빛이 산란하여 만들어진 허상처럼 보이기도 했다.

         

       저것은 무엇인가?

       저 주술사는 어찌 저런 것을 품고 있는가?

         

       그리고….

         

       아.

         

       알았다.

         

       “아, 그렇구나.”

         

       케네스는 불꽃을 떠올리고 진성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마음으로 깨달았다.

         

       “네 말이 옳다! 틀렸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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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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