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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16

        

       무엇을 깨달았느냐?

       무엇을 마음으로 깨닫게 되었느냐?

         

       깨달음이란 형상도 없고 형체도 없고 하나로 정의되기는 힘든 것이라.

       다만 그 자체로 내려와 앉아 모든 것을 뒤바꾸는 충격과도 같은 것이니 그것을 어찌 말 한마디로 갈음할 수 있으리오?

         

       다만 꺼내고자 한다면 그 극히 일부에 불과한 것이라.

         

       “너는 젊지 않구나!”

         

       그 깨달음을 단어로 정의하고자 한다면 ‘본질(本質)’에 가까운 것일 것이다.

         

       케네스는 자신이 얻은 깨달음을 담아 진성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 눈동자에는 불씨가 하늘거리며 날아다니는 것이 어두운 숲에서 반딧불이들이 이리저리 하늘을 무대로 헤엄을 치는 것만 같았으며, 요정이 춤을 추는 것만 같은 그러한 착각마저 불러일으켰다. 다만 멀리서 보아 아름다운 것은 가까이서 보면 참혹한 것들이 많은지라, 저 눈동자의 본질을 깨달은 지금은 저것이 단순한 불이 아님을 알겠다.

         

       오, 저것이 어찌 단순한 불일 것이냐?

       타오르는 현상을 불이라 정의한다고 친다면 저 멀리 우주에서 타오르는 별의 빛과 모닥불이 같은 것이냐? 행성의 크기로, 항성의 단위로 타오르는 불꽃과 손바닥 위에서 타오르는 자그마한 불꽃이 같다고 할 수 있겠느냐?

       불이란 무엇이냐?

       집어삼키고 몸집을 불리는 것이 바로 불이 아니더냐?

         

       그렇다면 자그마한 불과 거대한 별의 불의 것에 무슨 차이가 있을 것이냐?

       자그마한 불꽃과 별의 빛이 같다고 할 수 있느냐?

         

       아, 모르겠다.

       같음과 다름은 어쩌면 종이 한 장을 사이에 두고 있는 것이라.

       앞면과 뒷면이 그리 달리 보여도 그것이 그려진 것은 종이요 그저 뒤집기만 하면 그 극이 반대에 있는 것이니.

         

       거대한 차이가 있음에도 그것이 다르지 않음을 알겠다.

       거대한 차이가 있는 것이 같지 않음을 나는 알겠다.

       극과 극이 다르되 같으니 이것을 무어라 불러야 하는가?

       이 이치를 무어라 해야 하느냐?

         

       “케네스. 그것은 물극필반(物極必反)이로다.”

         

       눈으로 묻는 늙은 주술사에게 진성이 답하기를 그것은 물극필반(物極必反)이라.

       극과 극은 통하며 극에 다다른 것은 반전이 되니 세상 모든 것이 실로 제대로 구분이 되지 않고 연결이 되어있음을 그는 말하였다.

         

       타오르는 것이 식는 것처럼.

       반짝이는 것이 어둠에 잠겨 드는 것처럼.

         

       극과 극은 언제나 근처에 있는 법이라.

         

       “그래. 역시 너는 젊지 않아….”

         

       그래서 케네스는 느낄 수 있었다.

       저 젊어보이는 주술사의 뒤편에 무언가가 들어가 있음을.

       저 겉모습에서는 상상도 못 할 이질적인- 어쩌면 저 겉모습과는 정반대에 가까운 본질이 저 안에 잠들어 있음을 그는 직감할 수 있었다. 그것은 단단해 보이는 돌덩이에 불과해 보이는 행성의 안에 뜨거운 핵이 잠들어 있는 것 같았고, 우주의 검은 어둠 속에 가장 치명적인 블랙홀이 있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였다. 어쩌면 블랙홀의 안은 세상 그 무엇보다도 밝다는 가설과도—

         

       “너의 불꽃은 많은 것을 함의하고 있다.”

         

       케네스는 더 길어지려는 생각을 거기서 끊어버렸다.

       평소 같으면 이 주제에 깊숙하게 파고들며 궁리하고 또 궁리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겠지만….

       안타깝게도 이제 그에게 남은 시간은 거의 없을 것이 분명하였기에.

       이제 그의 시간은 마음껏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닌 극히 한정된 자원이었기에.

       그렇기에 케네스는 사유를 이어가는 대신에 진성에게 말을 하는 것으로 그 시간을 사용하기로 마음먹었다.

         

       “그것은 집착이요, 열정이요, 전쟁이로구나. 너는…. 너는.”

         

       그것은 분명히 가치 있는 것이었다.

         

       저 젊은 주술사를 보라.

       아니, ‘젊어 보이는’ 주술사를 보라….

       저 눈동자 속의 불꽃은 화염술사의 그것만큼이나 끔찍하고 격렬하다.

       그것은 어쩌면 불의 성질에 가장 가까웠고, 어쩌면 가장 멀었으니-

         

       “너는….”

         

       이걸 무어라 말해야 하는가?

       이걸.

       이걸 무어라….

         

       “…하하하. 정의할 수가 없겠군. 적당한 단어를 생각할 수가 없어…. 어쩌면 라틴어를 조합해서 비슷한 단어를 만들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시간이 조금만 더 있다면 분명 그렇게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분명 그럴 것이다.

       시간이 있다면.

       시간이 조금만 더 있다면 분명 그리할 수 있겠지.

         

       하지만 그럴 수는 없다.

         

       저 눈동자.

       저 무심해 보이는 눈동자는 그를 살려둘 생각이 없음을 말하고 있었으니까.

       망자를 지켜보는 것 같은 저 시선은 그의 안에서 이미 케네스가 죽은 목숨이나 다름이 없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저 심상 속에서의 케네스는 사신과 어깨동무를 한 임종을 앞둔 이였으며, 삶의 목적을 이루고 화려하게 산화해버릴 존재에 불과하였다.

         

       그리고 저 생각은 변함이 없겠지.

       불꽃이 제 안으로 들어온 것을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는 것처럼 케네스 역시 그리될 것이 분명하니까.

       그 역시 저 불꽃을 옮겨 받아 제 몸을 정작 삼아 열과 빛을 내뿜으며 사라지고, 종국에는 잿더미로 변하고 차갑게 식어가리라.

         

       이것은 그의 운명이었으니.

         

       “…신이시여.”

         

       하늘을 바라본다.

       텅 비어있는 하늘은 그를 무심하게 바라본다.

       천사의 날갯짓 소리도, 그들의 시선 역시 들리지 않는다.

         

       “자아. 가자, 이제 여신에게 바쳐져야 할 것이니라….”

         

       아.

       시간이 되었다.

       이제 그는 평범한 하나의 영혼이 되어 그분의 앞에서 심판받게 되리라.

         

       분명 그렇게 될 것이다….

         

         

         

         

        * * *

         

         

         

         

       케네스의 몸을 덩굴에 단단히 묶는다. 그러고는 기이한 자세로 썰매를 타는 것처럼 몸을 비틀어 자세를 취하게 만들고, 그 썰매를 천천히 끌고 목적지로 향한다.

       그 목적지는 경사진 비탈이라.

       얼어붙은 땅은 단단하였고, 그 단단한 땅 사이에는 용암으로 만들어진 강이 흐른다.

         

       강이라 하기에는 너무 좁고 가늘어 개울이라 부르는 것이 걸맞겠지만….

       뭐 그것이 그리 중요하지는 않다.

         

       진성의 주술에 호응하여 지표면까지 힘들게 솟아났는데 고작 강으로 불러주지 못할 이유가 있겠는가?

       그러니 저것은 강이다.

       용암 개울이 아닌, 용암의 강이다.

         

       화아악.

         

       봐라.

       용암의 강 역시 호응하고 있지 않은가.

       자신은 강이라고, 강이라고 불리기에 충분하다고 저렇게 열기로 말하고 있지 않은가.

       위협적인 소리와 조용한 움직임, 모든 것을 태우면서 나아가는 저 묵직함.

       과연 강이라고 불리기에 모자람이 없는 기세로다.

       참으로 기세가 대단하니 보기가 그렇게 좋았도다….

         

       “재앙술사야. 너는 어찌 주술의 길에 들었느냐? 어떤 심정으로 재앙을 막고자 그렇게 몸을 던지게 되었느냐?”

         

       그리고 그 열기의 앞에서 진성은 묻는다.

       썰매에 묶인 채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노인에게 묻는다.

         

       너의 인생은 무엇이었느냐고.

       네가 주술사가 된 것에는 어떠한 이유가 있었느냐고.

         

       “케네스야, 재앙을 쫓아다니는 주술사야. 너의 나라에는 재앙이 참으로 많다. 건조하여 산에 불이 나고, 수많은 벌레가 창궐하여 떼로 몰려다니고, 바람이 휘몰아치다 못해 하늘로 역으로 솟구치며 모든 것을 빨아들이고 박살을 내었지….”

         

       “….”

         

       “옛적 로키산메뚜기(Melanoplus spretus)가 절멸하기 전에는 그것들이 떼거리로 몰려다니며 작물을 갉아먹고 사람들을 굶주리게 했고, 숲과 들을 황폐하게 만들고 다녔다.”

         

       “….”

         

       “강이 범람하기도 하였으며, 가물기도 하였지.”

         

       “….”

         

       “그 모든 것은 재앙이다. 사람을 괴롭게 하고 그들의 목숨을 거두어가는 끔찍한 재앙이다.”

         

       “….”

         

       “너는 그것을 보고 일어섰느냐? 아무리 떠들어도 사람들이 귓등으로도 떠들지 않는 연구 결과 대신에, 그저 학자들 사이에서만 돌아다니고 기업들은 그냥 쓱 훑어보고 말 논문 대신에, 너는 즉각적으로 그 재앙을 없애 사람들을 지키기 위하여 주술사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이 아니더냐?”

         

       꿰뚫어 보는 눈.

       진성은 하늘하늘 불씨가 떠다니는 눈동자로 케네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음의 장벽을 불사르며 안에 닿으려 하는 것 같은 저 불꽃이란.

         

       저 눈동자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면 저 주술사가 정말로 마음을 읽을 수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만든다. 마음을 정말로 읽는 것은 그러한 능력을 갖춘 초월종과 계약한 존재가 아니면 불가능한데도, 뇌가 비정상적으로 발달하여 무의식을 읽을 수 있게 되어버린 초능력자가 아니면 불가능한 일일 텐데도…. 그렇게, 그렇게 생각하고 마는 것이다.

         

       그러니 입이 가벼워지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닐 것이다.

         

       사람을 꿰뚫어 보는 것 같은데 어찌 그 앞에서 입이 가벼워지는 것이 흠이 될 수 있겠는가.

         

       “…그렇다.”

         

       그러한 이유로 케네스는 입을 열었다.

       쉬이 떠벌리고 다녔다가는 퇴색될 것만 같았던 자신의 목적을, 자신이 주술사가 된 이유를 말하기 위하여.

         

       “멀리 보는 이는 많은 것을 얻을 것이요 내일을 보는 자에게는 복이 있을 것이니….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아 멀리 만을 바라보면 가까이에 있는 것을 놓치게 되고, 내일을 바라보기만 한다면 오늘을 즐길 수가 없게 된다. 그것은 눈이 두 개밖에 없는 인간의 어리석음이요 잔혹함이다….”

         

       “….”

         

       “그래서 나는 주술사가 되었다. 탄소 배출을 줄여야 한다고 목이 터질 듯 외쳐도, 환경오염 때문에 땅이 오염된다고 외쳐도, 과한 개발이 지반 침하를 불러온다고 논문을 써도 거들떠보지 않는 이들 사이에서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 그저 연구만으로 구할 수 없는 불쌍한 이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나는.”

         

       “….”

         

       “…나는. 나는….”

         

       케네스는 거기까지 말하고는 잠시 눈을 감았다.

         

       눈을 감자 어둠이 들어차고 감각이 곤두선다.

       용암의 열기와 비정상적으로 추운 공기, 그리고 자신을 바라보는 주술사의 시선이 느껴진다.

         

       “…그래. 빛바랜 지혜가 그것을 퇴색시켰지.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하게 하였어.”

         

       “….”

         

       “그래. 그러니.”

         

       케네스는 다시 눈을 뜨고 진성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물었다.

         

       “…내가 무엇을 하면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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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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