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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16

   “정말 안 들킬 수 있을까.”

   “어둠의 신이 지닌 권능입니다. 인간이 알아차릴 수 있는 게 아니죠.”

   

   불안해하는 르네는 너무도 태연한 알새틴을 신기하게 바라봤다. 평온함을 가장하는 것 같진 않은데, 이전에 신의 권능이 얼만큼의 힘을 지녔는지 체감할 일이라도 있었나.

   

   그 평온함에 르네가 긴장을 떨치고 난 후 여왕이 방 안에 들어섰다. 일단 흔적은 모두 지워두었다만 정말 1왕비님을 완벽히 속여넘기는 것이 가능할까.

   

   저 분의 성미를 생각해보면 자그마한 의심으라도 생기는 순간 철저히 확인을 하려 할 터인데.

   

   숨을 참아가며 1왕비가 움직이는 걸 지켜보던 르네는 그녀가 망설임 없이 침대 옆으로 향하는 걸 보고 안도했다.

   

   다행이다. 이 녀석이 말했던 것처럼 어둠의 권능이 제대로 된 효과를 발휘한 모양이야.

   

   이 곳에 매일 오는 것일까. 익숙한 몸놀림으로 침대 옆에 착석한 1왕비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미라가 된 시체를 가만 바라봤다.

   

   그녀의 눈빛은 잠에 든 사람을 보는 것처럼 평온했다.

   

   그래서 르네는 등줄기에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내 어머니임에도 저 사람을 이해할 수 없노라 여긴 적은 몇 번이나 있었다.

   

   허나 지금만큼이나 불가해하단 감정을 절실히 느낀 건 처음이다.

   

   최소한 여태까지의 1왕비님이 보인 행보는 왕국의 부흥을 위한다는 명분 하에서라면 나름의 합리를 지니고 있었다.

   

   사적인 감정을 완벽하게 배제한 채 왕국을 위해서만 움직이는 기계라는 건 섬뜩했지만 이해하려고 한다면 이해하는 건 가능했다만.

   

   오늘은 아니다. 국왕폐하께서 승하하실 것은 예정된 일이었다. 모두들 언제 돌아가셔도 이상하지 않다 생각하고 그 후를 대비하고 있었단 말이다.

   

   국왕폐하의 승하가 알려진다면 자그마한 혼란은 존재하겠지만 왕국이 뒤흔들릴 여파는 생겨나지 않는다.

   

   오히려 지금 1왕비님께서 하고 계신 행동이 문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

   

   왕의 죽음을 숨기고 시체를 미라로 만들어 보관한 여자라니.

   

   이런 사실이 알려졌다면 1왕비님께서 여태 해온 많은 일들이 부정당하는 것은 물론이고, 타국에서 왕국을 비난할 여지를 만들게 되는 데다가, 최악의 경우 이단으로 지정 당할 여지까지 생긴다.

   

   1왕비님께서 이를 모르지 않을 터인데 저 분이 어째서 이런 일을.

   

   납득 가능한 이유를 찾아 필사적으로 생각을 거듭하던 르네는 1왕비가 일어나는 소리를 듣고서 다시금 현실로 돌아왔다.

   

   “모든 건 솔라딘을 위해.”

   

   다짐하듯 내뱉은 말을 끝으로 1왕비가 방을 빠져나간 후 르네는 떨리는 눈동자를 부여잡느라 필사적이었다.

   

   “이제 이해하시겠죠. 1왕비님께서 정상적인 상태라 아니란 것을.”

   “…언제부터?”

   

   르네는 오랫동안 1왕비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왕궁의 안에서 왕이 되기 위한 교육을 받아왔으니 1왕비와 떨어져 있는 시간이 없다 해도 무방할 지경이었지.

   

   그런데도 르네는 1왕비가 언제 미친건지 짐작하지 못했다. 그가 아는 그의 어머니는 어떤 일을 겪어도 나라밖에 생각하지 않는 인간이었으니까.

   

   “1왕자님.”

   “알겠네. 정말 1왕비님께서 폐하의 시체를 이용할 계획이라면 막아야겠지.”

   

   현재의 국왕은 단언컨대 좋은 사람이었고 좋은 왕이었다.

   

   이 두 가지가 양립되기 쉽지 않다는 걸 생각해보면 르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유능한 사람이었을 테지.

   

   당장 현 왕이 왕성하게 활동할 무렵에 겉으로나마 1왕비와 2왕비가 서로 존중했단 것만 봐도 그의 유능이 보인다.

   

   성격 강한 여자 둘을 어르고 달래가며 부드러운 분위기를 만드는 게 어디 쉬운 일이었겠는가.

   

   둘 사이에서 식은땀을 흘리면서도 물러서지 않던 아버지를 떠올린 르네는 침상에 잠깐 시선을 줬다가 입술을 깨물었다.

   

   “머리가 아프군. 어디서부터 시작을 해야 하는 거지?”

   “1왕자님께서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당신께서는 그저 당신이 필요할 날이 왔을 때 움직여주시면 되니까요.”

   

   알새틴의 답에 잠시 멈칫한 르네는 머리를 만지작거리다가 길게 숨을 내뱉었다.

   

   “그것 참 미묘한 말이군.”

   “모든 걸 말할 수 없는 점 부디 이해해주십시오.”

   “무어. 그래. 이해해야지. 그대가 보여준 광경이 있는데 말이야.”

   

   어둠의 권능을 빌려 바깥으로 나온 후 방에 복귀한 르네는 문이 닫힌 것을 확인하자마자 알새틴의 목을 붙잡았다.

   

   “넌 누구냐.”

   “와. 왕자님?”

   “연기하지 마라. 카리아가 사용하는 신호를 못 알아차린 이상 네 놈은 그 녀석의 제자가 아냐.”

   

   위화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만 수상한 자에게 에르기누스님께서 권능을 빌려주실 리 없으니 일단 어울려 줬다.

   

   실제로 이 자가 보여준 광경은 의심을 잊을 만큼 경악스러운 것이었다.

   

   헌데도 다시금 의심을 하게 된 건 이 자가 꺼낸 말 때문이었다.

   

   모든 걸 확인시켜 주고서 한단 말이 때가 되었을 때 적당히 움직여달란 것이라니.

   

   카리아는 그런 걸 부탁하지 않는다.

   

   부탁할 이유가 어디 있나.

   

   어떤 상황이 닥치더라도 거기에 맞춰 움직일 게 훤한데.

   

   그래서 확인을 해볼 겸 카리아가 썼던 암호를 머리를 쓰다듬으며 보여줬더니 아니나 다를까 전혀 알아차리질 못하더군.

   

   “어둠의 권능을 이용해 빠져나갈 수 있을거라 생각하진 마라. 이미 네 놈의 몸에 내 마력을 박아 넣었다. 다른 감각은 무의미해져도 이것만큼은 사라지지 않아.”

   

   도주를 하려는 순간 두 발목을 자르고 시작하겠다며 르네가 눈을 치뜨자 벌벌 떠는 체 하던 남자가 히죽 웃음을 지었다.

   

   “네 놈… 허?”

   

   그와 동시에 남자의 몸이 진흙이 되어 무너져내리더니 르네의 뒤 편에서 다시금 결합된다.

   

   불길한 기운 속에서 생겨난 형체는 여성의 것이었다.

   

   “…요정여왕님?”

   

   숲에서 보았던 미의 극치에 르네가 할 말을 잃어버리자 요정여왕이 쿡쿡 웃음을 흘린다.

   

   “중간까지는 제대로 홀렸다고 생각했었는데.”

   “홀…려요?”

   “요정의 장난에 대한 전승은 전해지지 않았나요?”

   

   요정의 장난. 요정의 존재가 흐릿해진 지금은 불가사의한 현상을 이야기할 때 비유처럼 등장하는 단어.

   

   “저한테 장난을 치신 겁니까?”

   “네.”

   “어째서?”

   “전 사랑 이야기를 정말 좋아하거든요. 특히 꼬이고 비틀려서 다음이 보이지 않는 이야기는 더 좋아해요.”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주시겠습니까.”

   

   뜬구름 잡는 소리에 르네가 곤두선 어투로 따져 물었지만 요정여왕은 웃음을 지을 뿐 제대로 된 답을 해주지 않았다.

   

   “물결 속에서 흘러가야 할 당신에게 역할이 생겼어요. 이제는 당신이 하는 것에 따라 많은 게 바뀌겠죠.”

   “신탁입니까.”

   “아니라고는 말 못하겠네요. 지금의 저는 신의 일각이니.”

   “해석은 제 몫이겠군요.”

   

   제대로 된 신앙을 품은 적도 없는데 사제가 되어 신의 말을 해석하게 되다니.

   

   “그런데 말입니다. 당신이 진짜라는 건 어떻게 믿죠?”

   “우우음. 에르기누스님의 부끄러운 비밀이라도 알려드릴까요?”

   “…예?”

   “이틀 전에 있었던 일인데요. 권능의 연구에 몰두하느라 제게 소홀하시길래 조금 삐졌었거든요. 툭툭 건드려도 반응을 안 하시길래 제가.”

   “됐습니다. 믿죠. 믿겠습니다. 그러니 그만해주십시오.”

   “에. 지금부터가 재밌는 부분인데요. 계속하면 안 될까요? 자랑할 사람이 필요해서.”

   “파트란 가문의 영애께 찾아가보시지요. 분명 흥미진진해하면서 들어줄 겁니다.”

   “그런가요? 수줍음 많은 아이 같아서 조심스러웠는데 한 번 해볼게요!”

   

   환히 웃으며 고갤 주억거린 요정여왕은 두 손을 끌어 모으고 정중히 고갤 숙였다.

   

   “부디 힘내주세요. 전 당신이 싫으면서도 좋으니까요.”

   

   한 여름밤의 꿈처럼 요정여왕이 흩어지고 홀로 남은 르네는 서류더미를 내버려 둔 채 방 바깥으로 나왔다.

   

   저것보다도 중요한 일이 생겼다.

   

   *

   

   “이렇게 찾아와줘서 고맙네! 솔직히 여기에 사람이 올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어! 이 곳이 워낙에 괴악해야 말이지!”

   

   이상하다. 분명 할아버지는 용사를 정신을 반쯤 놓은 미치광이라고 그랬는데 왜 여기엔 사람 좋은 바보가 있는 거지?

   

   무슨 말을 하더라도 호쾌하게 웃음을 흘리는 남자를 보고 있자니 마음에 잔뜩 쌓여있던 독기가 빠져나갔다.

   

   “자네는 그걸 어떻게 통과한 겐가? 솔직히 말해 나도 엄두가 안 났다만.”

   “에. 당신 용사라면서 그런 것도 못 해? 개허접이구나?”

   “하하하! 부정할 수 없군! 예전부터 던전을 공략하는 일에 서툴렀거든! 동료들에게 잔뜩 잔소리를 들어도 성장하질 못해서 곤란했어! 정말 그 녀석들이 있어서 다행이었지!”

   

   그런 그와 대화를 나누면서 느낀 것은 용사가 극한의 긍정을 지닌 남자란 것이었다.

   

   어떤 소리를 듣더라도 제 좋은 방식으로 해석하고, 과거의 잘못에 대해 이야길 하면서도 그 잘못마다 나름의 의미를 지녔노라 웃었고, 일부러 살짝씩 신경을 긁어도 그의 웃음에는 한 치 흐트러짐이 없었다.

   

   할아버지가 뭔가 잘못 알고 있었던 거 아닐까?

   

   이런 사람이 반쯤 미쳐서 이상한 소리를 할 것 같지는 않은데.

   

   차라리 호구처럼 사기를 당하다가 밑바닥에 떨어지고 나서도 웃으며 좋은 게 좋은 거라 이야기했다는 편이 더 설득력 있을 것 같아.

   

   “음. 후대여.”

   “왜? 빙구 아저씨?”

   “빙구?”

   “병신 같이 착한 호구. 줄여서 빙구. 잘 어울리지?”

   “자네가 그리 생각한다면 뭐 그것대로 좋겠지. 어쨌건 말일세. 자네 나에게 무언가 궁금한 것이 없나?”

   “없는데?”

   “…없다고? 왜? 내가 여기에 있는 이유라거나, 자네가 넘어선 던전에 대한 것이라거나, 자네가 보았던 것에 대해서라던가.”

   “당신 면상처럼 멍청한 이유일게 뻔하잖아.”

   “그게 무슨 뜻이지?”

   “그러니까 당신 말야. 희생이니 대업이니 하는 지루한 소리를 지껄일 생각이지?”

   

   내 말을 들은 용사는 여태까지의 활달함을 잃어버린 채 그대로 굳어버렸다.

   

   안 봐도 뻔해.

   

   할아버지가 용사라는 걸 인정할 만큼 선한 인간이라면, 자신이 업을 남겼단 사실을 견디지 못해 반쯤 미쳐버렸던 인간이라면, 그리고 그 업을 해결할 방법을 찾아 평생을 돌아다닌 인간이라면, 자신의 흔적을 남길 이유는 하나뿐이잖아.

   

   “여자아이도 상상할 수 있을만큼 뻔한 이야길 뭐 대단한 것처럼. 한심하네.”

   “어. 그게.”

   “이런 게 왜 내 선배인 거야? 존재 자체로 쪽팔리잖아.”

   “그.”

    “그냥 사라져주면 안 돼? 내 기억에서 지워버리고 싶어서.”

   “…잠시만 아무 말 말고 내 이야기를 들어주면 안 되겠나?”

   

   식은땀을 흘리는 걸 보면 마냥 머리가 순수한 사람은 아닌가.

   

   마음 같아선 당장 섬을 빠져나가서 썅년 하나를 조져놓고 싶지만 그랬다간 전대 용사가 진짜 엉엉 울 것 같으니. 팔짱을 낀 채 턱 짓을 했더니 용사가 어색하게 웃음을 지었다.

   

   “크흠. 고맙네. 먼저 결론만 말하자면 자네의 예상이 맞네. 난 업을 다음 세대로 미루지 않기 위해 이 곳에 남았어. 위대하신 주신께 소망을 빌어서 말이야.”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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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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