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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17

        

         

       케네스의 질문에 진성이 답하기를.

         

       “가장 소중한 것을 바쳐라.”

         

       그 답은 고대의 사람들이 할법한 답이었으며.

         

       “가장 소중한 것을 돌려보내라.”

         

       참으로 신실한 말이었음이니.

         

       “가장 소중한 것을 바치고 모든 것에 감사하여라.”

         

       그 신실함에 어찌 반문하리오?

         

       “모든 것에 감사하라. 사소한 것에서부터 소중한 것까지 모든 것에 감사함을 느끼도록 하라. 행복을 실감하고 삶을 느껴라. 그리하여 모든 것에 겸손해지도록 하여라.”

         

       그러니 바쳐라.

         

       “너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이냐? 너를 이루는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이냐?”

         

       바치도록 하여라.

         

       “떠올렸느냐? 가장 소중한 것을 떠올렸느냐? 사막을 헤매다가 물 한 모금을 마시고 행복감을 느꼈던 기억부터 옥수수 알맹이 하나가 바닥에 떨어진 것을 주워 먹었을 적의 그 기억까지. 너는 삶을 회상하고 그 모든 것에서 너의 가장 소중한 것을 생각해내었느냐? 개념도 관념도 아닌 실존하는 것 중에 네가 가진 가장 소중한 것을 기억해내었느냐? 소중한 것을 떠올렸고 그것을 바칠 준비가 되었느냐? 너는 진실로 그것을 바칠 준비가 되었느냐?”

         

       “….”

         

       “가장 소중한 것은 대체할 수 없는 것이라. 타오를 것 같은 햇살 아래에서 모래를 헤치고 돌아다니다가 마시는 물 한 모금이 무엇과도 대체될 수 없는 것처럼, 찌는 듯한 더위 속 정글에서 굶주림에 고통스러워하다가 마침내 발견한 나무 열매를 베어 물었을 때의 그 감각이 소중한 것처럼. 너는 기억하였느냐?”

         

       “….”

         

       “너는 높은 산을 거닐어보았느냐? 올라갈수록 피부에 달라붙는 냉기를 느껴보았느냐? 그 냉기를 막기 위해 두르는 한 겹의 천의 소중함을 깨달았느냐? 발에 달라붙는 흙의 감촉을, 너의 발을 상하게 할 무엇도 없는 돌바닥의 그 감촉을 느껴보았느냐? 옥수수 한 알을 입에 물고 위로 위로 올라가며 땀을 방울방울 흘려대었을 때 마시는 물 한 모금. 너는 그 자그마한 행복과 함께 마침내 올라갔느냐? 냉기와 습기로 바뀐 구름 속에서 한 걸음 한 걸음 올라가 너는 마침내 정상에 닿았느니. 그 정상에서 네 머리 위로 내리쬐는 따스한 햇살과 탁 트인 풍경을 보고 감격에 젖어 눈물을 흘린 적이 있느냐? 그 감동의 순간을 네 두 눈으로 담은 적이 있느냐?”

         

       경험하지 못하였어도 된다.

       다만 머릿속에 그 풍경을 떠올렸다면.

       이 경험을 간접적이나마 경험하였고, 지금 머릿속에 그 정상의 풍경을 떠올리고야 말았다면.

         

       “바쳐라. 너 자신을!”

         

       너는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진실로 깨달았을 것이니!

         

       푸욱!

         

       지금 네 배에 꽂힌 흑요석 단검으로 자신을 공양하라!

         

         

         

        * * *

         

         

         

       “하. 하하….”

         

       케네스는 웃었다.

       배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등골을 오싹하게 만드는 그 감촉에 그는 웃었다.

         

       날카롭게 깨진 흑요석 단검이 배에 틀어박히고, 그 이물질을 배제하기 위해서 근육이 수축한다. 그와 함께 잘린 혈관에서 피가 스멀스멀 배어나오려 하지만, 본능적으로 피를 뿜어내지 않기 위해 한껏 몸이 움츠러들며 분수처럼 솟구치게 하는 대신에 스멀스멀 배어 나오는 정도로 그치게 한다.

       다만 그것은 배에 꽂힌 흑요석 단검의 감각을 또렷하게 느끼게 하는 것이라서.

       그래서 그 살고자 하는 몸의 움직임과 함께 고통이 그에게 삶을 실감하게 해주고 있었다.

         

       삶은 고통이라고 하였던가.

       살아가는 것은 고통의 연속이라고 하였던가.

         

       반대로 말하자면 고통은 곧 삶이라.

         

       그렇다면 케네스가 지금 삶을 또렷하게 실감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은 일일 것이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가 없다.

       배에 흑요석 단검이 꽂히고, 몸 곳곳에 타박상이 생기고.

       심지어 썰매에 묶여있기까지 하다.

       누가 보더라도 죽음의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을 그 모습이건만….

         

       “하하하….”

         

       빛이 밝으면 그림자도 짙은 법이라.

       짙은 어둠 속에서 조명 하나가 태양보다도 밝게 느껴지듯이, 그가 느끼는 감각 역시 그러하였다.

       죽음을 앞에 두니 살아있다는 실감이, 삶에 대한 강렬한 감각이 깨우쳐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게다가 고장이 났던 것처럼 제대로 작동하지 않던 뇌 역시 지금이 위기라고 판단한 것인지 팽팽하게 돌아가고, 이 자리를 벗어나는 방법을 수없이 많이 떠올리려 하고 있었다.

       고통과 출혈 때문에 으슬으슬해지고 몽롱해지는 그 순간에도 말이다.

         

       눈을.

       눈을 깜빡여본다.

         

       고통 때문에 어질어질한 정신이지만 시야가 또렷하게 들어온다.

       마치 눈에 주술이라도 건 것처럼 저 멀리까지 보인다.

       저 멀리, 하늘에 떠 있는 저 별….

         

       아니. 별이 아니다.

       저것은 사람의 손으로 쏘아 올리고 사람의 손으로 조각한 인공물.

       저것은 별인 척하는 인공위성이다.

         

       그것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

         

       저 인공위성의 렌즈와 자기 눈이 마주쳤음을 알았다.

       케네스가 인공위성을 바라보았고, 인공위성이 케네스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은 투명하고 무기질적이어서, 마치 겨울철 얼어붙은 호수를 연상케 만든다.

       저 시선은 전기신호로 변환되고, 그를 영상으로 담아 그의 최후를 기록하겠지.

         

       그렇다면 그의 최후와 함께 저 주술사 역시 기록할 것인가?

       그를 끌고 와 사지로 밀어 넣고, 그 대신에 그의 목적을 이루어주겠다고 속삭이는 저 존재 역시 기록할 것인가? 하는 말 하나하나가 악마보다도 달콤하고, 손속은 지옥의 짐승을 생각하게 만드는 저 존재를 기록할 것인가? 젊은 주술사의 가죽을 뒤집어쓴 채 어찌 자신에게 찾아왔는지 모를 저 기묘한 존재를 영상에 담아놓을 것인가?

         

       아니.

       그것이 가능하기나 하는가?

         

       “….”

         

       케네스는 진성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진성 역시 케네스를 바라보았다.

         

       둘의 눈이 뒤엉킨다.

       그와 함께 진성의 눈동자 안의 불꽃이 서서히 움직인다.

       일렁일렁 춤을 추고, 불씨가 타오르며 위로 솟구친다.

       그것은 날개를 펼치듯 양옆으로 퍼지기도 하고, 민들레가 씨앗을 뿌리는 것처럼 하늘로 솟구치기도 하였고, 폭포가 떨어지듯 바닥으로 쏟아지기도 한다. 폭풍처럼 휘몰아치며 나선을 그리며 위로 솟구치기도 하였고, 행성의 움직임이 그러하듯 원을 그리며 맴돌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것들이 움직일 때마다 저 주술사의 주변 에너지가 미미하게 움직이며 호응하였으니….

         

       “너는 기록되지 않겠구나.”

         

       “그러하다.”

         

       케네스는 저 주술사가 인공위성에 걸리지 않기 위해 주술을 두르고 있음을 알았다.

         

       “불과 같은 자. 너는 거울을 아느냐?”

         

       “….”

         

       “동양과 서양에서 말한다. 거울에 비치지 않는 것과 거울에 다르게 비치는 것을 경계하라고….”

         

       “….”

         

       “주인의 허락이 있어야만 집 안에 발을 디딜 수 있는 존재를 아느냐? 흐르는 물을 건너지 못하고 주님의 상징을 두려워하며 거울에는 제 모습이 비치지 않는 존재를 아느냐?”

         

       “….”

         

       “현실에서는 보이지 않는 존재를 아느냐? 두 눈으로는 볼 수 없지만 거울에는 비치는 그 존재를 아느냐? 그 존재는 현실과 비현실의 사이에 존재하며 오직 거울만이 경고할 수 있으니, 너는 그 존재를 알고 있느냐?”

         

       “….”

         

       “너는. 너는 그와 같다.”

         

       “….”

         

       “불이지만 빛을 발하지 아니하고, 불과 같이 집어삼키며 타오른다. 다만 그것이 거울에 비치지 않고 기록되지도 아니한다면. 너는 무엇이냐?”

         

       “….”

         

       “하하하….”

         

       케네스는 진성을 보며 웃었다.

         

       “확인되지도 않고 인지되기도 원하지 아니하지만, 그 결실을 취하고 가장 맛있는 부분을 빼앗아 먹고자 하니. 아, 너는 뱃속의 벌레와 다름이 없구나. 제 살을 찌우되 남의 눈에 띄지 않으니 이것을 어찌 짐승이라 하리오? 너는 참으로 그것과 같다. 너는 불이되 몸속의 불이로다….”

         

       그 말에는 어떤 감정이 담겨 있는가?

       목적을 이뤄주겠다고 하였던 진성에 관한 호의?

       그것도 아니면 자신을 죽게 만드는 자에 대한 원망?

       자신을 이리 만든 주술사에 대한 냉정한 평가?

       그것도 아니면 저 주술사의 본질에 대한 공포?

         

       모른다.

       알 수가 없다.

       감정이란 물감과도 같은 것.

       섞이고 섞여 검은색이 된 후, 어떤 색들이 섞여 검은색이 되었는지 알 방법이 있는가?

         

       케네스가 한 넋두리 역시 검은색 물감과도 같아 수많은 감정이 섞였지만, 섞인 후에는 분리할 수도 구별할 수도 없게 되었으니 참으로 그것과 같았다.

         

       그러하니 케네스는 그 말을 남긴 채 두 눈을 감았다.

       그리곤 각오가 되었다는 듯 긴 한숨을 후우- 하고 내뱉고는 주언을 외우기 시작하였다.

         

       진성이 흑요석 단검을 그의 배에 꽂은 후 알려주었던 주언이었다.

         

       “마우나 케아의 동쪽에 가장 아름다운 여신이 있어 그 아름다움이 눈과도 닮았으니, 발걸음을 옮겨 여신을 배알하였음이니 조아리며 말하기를 ‘가장 아름다운 여신이여. 들은 바가 있어 이곳까지 발걸음을 옮겼나니 이곳에 가장 아름다운 여신이 그 외모만큼이나 대단한 용암 썰매 실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하니 그 실력을 보고파 먼 길을 걸어온 나그네의 청을 거절하지 말고 시합하여 주십시오.’ 라 하였도다…. 다만 먼 길을 걸어오고자 무거운 짐을 들고 올 수가 없어 썰매가 없었으니 폴리아후께서는 자비를 베풀어 썰매를 베풀었나니 그 길이는 사람 둘의 키와 같고 그 폭은 손목에서 손끝까지 잰 것과 길이가 같으니 썰매 시합을 하기에 참으로 알맞았도다….”

         

       주언이 읊어진다.

       썰매에 묶여있는 당사자 케네스의 입에서 주언이 흘러나온다.

         

       그 모습은 체념과 각오가 섞여 있는 것이어서.

         

       아, 진성이 보기에 참으로 좋았다.

       참말로 좋았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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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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