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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2

        

         어디까지나 게임 시절의 스토리와 사건만으로 한정한다면, 파라다이스 코퍼레이션은 주인공. 플레이어의 주된 적이라고 보기 어려웠다.

         

         진행 도중에 마주치는 그들의 징수 부대나 기계화 사단이 비적대적이라거나 사연 있는 악당이라는 얘기가 아니고.

         배경이 되는 도시 자체에 본사가. 주력병력이 위치하지 않았기 때문에, 갈등의 중심은 될 수 없었다는 뜻이다.

         

         그야 세세하게 따져보면 다른 세 메가 코프에 비해 엘리시움과 파라다이스는 무력적인 측면에서는 한끗 뒤처처는 게 사실이었고, 나중에는 정상회담에 참석하고자 방문한 파라다이스 회장이 직접 여기저기 머리를 들이밀며 혼란을 가중시켰지만….

         

         회장 본인이 여러가지 가능성과 장래, 신념을 고려해 이득이 되는 방향을 골랐다고는 해도. 결과적으로는 미묘한 동맹에 가까운 관계를 맺게 되는 인물이었으니 마냥 싫어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도 다 내가 주인공이던 때나 가능한 미래지.

         지금 그런 안일한 생각을 품은 채로 크레딧 좀 벌어보겠답시고 넙죽 적진 한복판으로 걸어 들어갔다가는 벌집이 되는 게 나은 꼴을 당할지도 모른다.

         

         더군다나… 파라다이스의 독재를 막을 만한 대항세력도 마땅치 않은 이곳에서?

         나는 가망은 없지만 실낱 같은 희망이 있는 것과 절대 불가능한 것 정도는 구분할 줄 안다.

         

         그러니 아직 호의적으로 대해주는 참에 결판을 짓기로 마음먹었어도.

         만일의 경우를 대비한 보험, 그것도 여의치 않다면 최소한의 정보는 알고 가고 싶었다.

         

         “……고객님? 이전 의뢰에 대한 보수도 아직인데, 이런 식의 일처리는 조금 납득이….”

         

         “터무니없는 걸 먼저 부탁한 건 그쪽이잖아? 세상에 어느 정보상이 의뢰의 대가로 고객을 다른 의뢰에다 써먹으려 들어? 그러니까 내가 일할 차액만큼의 자료를 넘겨주던가, 그게 싫으면 나도 크레딧으로 해결할 거야.”

         

         곤란하다는 듯이 뒤로 내빼려는 치사한 인간을 다그쳤다.

         

         내가 바란 건 아는 바가 전혀 없는 파라다이스 본사 건물에 대한 대략적인 개요와 당장 맞상대해야 하는 인물, 아론 드레이퓨스라는 거물에 관해 알려진 사실.

         설마 자사 고위층의 요청을 받아 찾아온 손님에게 엿을 먹일까 싶었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었다.

         

         반면… 우리 중성 마녀 씨가 내민 청구서는 어처구니가 없었으니.

         

         눈에는 눈이라고, 근래 계속 들어오는 사이버 엔지니어 알선 요청이 있다며 나를 붙여주고 얻는 중개 수수료만 가지시겠다고.

         

         …정식으로 공고를 내기엔 꺼림칙하고, 용병을 고용하는 것조차 눈에 띈다고 판단해 이런 방식으로 사람을 구한다라. 솔직히 수상한 냄새가 진동을 해서 도저히 관련되고 싶지 않았지만, 나에겐 형편이 좋았다.  

         

         의뢰주가 접선 장소로 지목한 메트로폴리스가 무려 네오 헤이븐이었기에, 말로는 관심 없다고 하면서도 내심 모른 척할 수가 없었다.

         

         어차피 내가 알던 스토리와 묘하게 어긋나기 시작한 김에, 무책임하게 시나리오를 더 꼬아버려는 건 아니고. 그저 한시라도 빨리, 나라는 존재를 너무 명확하게 인지한 파라다이스의 관리 권역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을 뿐이다.

         

         짧은 경찰 직업체험도 끝났겠다. 졸지에 거주지 불명 노숙자 신세도 되었겠다.

         시민이 새 일자리를 찾아서 떠나는 건 그다지 의심스럽지 않은 경우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알겠습니다. 우리 고객님은 아리따운 외모만큼이나 한 고집 하시는군요.”

         

         “그냥 얌전히 크레딧이나 입금 받으면 끝날 일을 굳이 찾아와 달라니, 기다리고 있겠느니 하며 복잡하게 만든 댁만 하려고?”

         

         쓸데없는 수식어로 사람 열받게 하는 능글맞은 대꾸를 한 귀로 듣고 다른 귀로 흘려버렸다.

         

         이제 내 장부에 빚처럼 달려있는 건 곧 마주할 드레이퓨스와의 약속뿐.

         홀가분해진 마음으로. 건네 줄 자료를 찾는 듯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거리는 그를 구경했다.

         

         “으음… 파라다이스 본사와 미스터 드레이퓨스의 정보라… 어렵네요. 어려워.”

         

         “…….”

         

         까닥거리는 손가락이나 명멸을 반복하는 피부 밑의 임플란트가 시선을 잡아 끈다.

         …이쪽 업계 종사자라고 표현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다른 해커 비슷한 사람이 몸 안에 설치된 부품만을 활용해서 뭔가를 작업하는 건 처음 봤다.

         

         내가 보유한 기술이나 능력이, 단순히 정상급인 걸 넘어 탐욕의 대상이 될 수 있다면. 최대한 감추는 건 기본이고 다른 이들을 흉내 낼 줄도 알아야할 것이다.

         

         “…이 정도면 곤란한 일을 맡아주신 차액은 얼추 메꾸겠군요.”

         

         그런데, 뭐 따로 시간을 들여서 조사해달라는 것도 아니고. 그냥 이 도시에 터를 잡은 사업자라면 알고 있을 만한 내용이나 좀 풀어 달라니까 무슨 생색을 이렇게 내는지 모르겠다.

         

         기다리다 지친 내가 한마디 하려던 순간.

         엄선된 데이터 폭탄이 사이버웨어를 타고 쏟아져 들어왔다.

         

         “……어라?”

         

         건물의 하층부 설계도면, 각 층별로 담당하는 업무, 대략적인 경비인력과 병력규모, 심지어는 드레이퓨스의 내부 정적이나 사내 정치구도까지.

         

         “잠깐! 이게 다 뭐야?!”

         

         “? 그야 고객님의 원활한 산업 스파이 활동을 기원하는 제 성의입니다. …아, 혹시 이미 알고 계시던 내용일까요?”

         

         “아오…!!”

         

         남의 정체를 간파하고 싶어하는 저놈의 집착은 여전한 모양.  

         가만 두었다가는 얼마나 비약할지 감도 안 잡히는 억측을 나는 아주 확실하게 잘라냈다.

         

         “날 대체 뭐라고 생각하는거야?! 그냥 단순히…… 저쪽에 헤드헌팅 같은 걸 당한 것뿐이야.”

         

         “…그건 그것대로 대단하군요. 역시 그제 있었던 관문 쪽 스캔들에도 한몫 끼신 건 아닐지 궁금해지는군요…!”

         

         “…난 아무 관련 없어.”

         

         …존나 날카로운 새끼. 사실 자꾸만 이쪽을 기업 소속 취급하는 것도 내 다른 신분증을 몰래 훔쳐본 건 아닐까 의심되기 시작했다.

         

         

         

         

         – 가장 안락한 직장, 가장 편안한 일터. 파라다이스 코퍼레이션의 그늘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

         

         “…그러시겠지.”

         

         아치형 입구를 지나치자, 초장부터 자연스러운 거짓부렁이 흘러나온다.

         그래도 외형만 본다면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다. 촌스러운 황금색 제복과는 다르게 로비 천장은 장엄함을 느낄 정도로 높았고, 유리를 통해 새어 들어오는 햇빛은 거룩한 색채를 조성했으니까.

         

         그리고 실컷 씹어 놓고 이런 말을 하기는 뭐하지만, 상호명만 들어도 숨이 턱 막히고 당장이라도 위험한 일이 생길 것 같은 인상이 확실히 파라다이스는 적긴 했다.

         

         웬만한 생필품이나 의약품, 가전제품 등을 총망라하여 다루는 것도 그렇고.

         도시 상층부와 중층부에 조성된 여러 환락가와 유흥가의 밝고 산뜻한 분위기는 네오 헤이븐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복지의 상징이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버젓이 공중파로 기업을 비판하거나 분석하는 방송이 흘러나올 수 있다는 건, 모순되지만 시민들에게 한정된 자유를 제공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지랄은!”

         

         하지만 그런 순진해 빠진 생각은, 직접 겪은 하층부의 실태와 중층부에 장기간 체류하면서도 거의 들어본 적 없는 밑 동네 사람들의 비애가 억눌렀다.

         

         끽해야 복권에 당첨된 누군가가 이사를 왔더라… 하는 소문만이 도는 철저한 계급사회에서, 비교적 혜택을 누리는 측인 내가 정당함을 판별할 수는 없었다.

         

         실속 없게 약점을 보이지 말자 아나스타샤. 빈틈을 찔릴 여지를 주지 마.

         넌 지금 억울하게 죽은 가족을 대신해서 여기 온 거야. 정신 차려!

         

         아마 방문객이 압도되기를 바란 건물 디자인으로부터 눈을 돌려 중앙에 위치한 안내 데스크로 발길을 옮겼다.

         

         따로 시간을 정하거나 찾아가겠다고 연통을 넣지는 않았다.

         그러나 내가 드레이퓨스의 권유에 강제성을 느낀 것처럼, 그도 어련히 손님맞이를 준비해 놨으리라.

         

         “그린 등급 시민권자 아나스타샤 발렌타인님, 반갑습니다! 어떤 용무로 본 파라다이스 타워를 찾아 주셨는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기업 과실로 인해 사망한 직원의 유족에게 지급되는 위자료…를 신청하러 왔습니다.”

         

         안드로이드가 아닌 사람이 근무하는 걸 본 것만으로도 괜한 상상을 하게 된다.

         인건비가 더 싸서 그런 건지, 혹은 첫인상을 결정하는 로비여서 더 신경을 썼다고 봐야 하는지.

         

         “아나스타샤 발렌타인님의 위자료 지급 신청 및 심사라면… 47층으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그것도 아니라면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일부러 배치된 건지.

         

         “…이런 민원처리는 10층보다도 훨씬 낮은 층에서 해결해준다고 들었는데요.”

         

         건물에 들어오기 직전까지도 몇 번이고 확인했으니 결코 착각일 리가 없었다.

         이렇게 노골적으로 파인 구덩이에 발을 내딛는 건 절대 취미가 아니었으나….

         

         “부디, 47층으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괜찮으실까요?”

         

         “……네.”

         

         귀에 꽂힌 인이어 이어폰에서 무슨 말이 실시간으로 오가는 건지는 몰라도, 쾌활한 첫인사와는 달리 떨리는 목소리로 다시금 물음이 돌아왔다.

         

         애꿎은 말단 직원을 괴롭혀봐야 달라질 건 없었으니 이만 올라가보도록 하자.

         

         권력자의 둥지로.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길을 열어라!

    Glacia샤샤 님이 비축분을 해킹해 가시면서 10코인을 후원해주셨습니다!
    하지만 텅 빈 주머니는 또 털 수 없답니다(…).

    휴재공지 생각이 간절했는데… 그래도 휴재보다는 지각이 낫다는 생각에 가져왔습니다.
    항상 재밌게 봐주시고 추천에 댓글까지 써주시는데 빌빌거려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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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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