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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2

       상황 파악을 해보자.

         

        일단 나는 자고 일어난 상황이다.

         

        자연스럽게 볼파이톤을 껴안고 있는 모양새가 되었고.

         

        내 모습이 저 뱀한테 어떻게 보였을까?

         

        아끼던 신도를 뺏어간 검은 도마뱀이 영약을 훔쳐 먹고 그 신도와 함께 잠을 자고 있는 상황.

         

        “사아아아아아아아악!”

         

        객관적으로 본다면 죽어 마땅한 상황이다.

         

        하지만 그럴 순 없다.

         

        침착하자.

         

        차가운 피.

         

        내 머리가 돌아갈 수 있게 도와줘.

         

        일단 내 앞에 서 있는 뱀 여왕.

         

        녀석의 정체는 바실리스크였다.

         

        그린 바실리스크 도마뱀 같은 게 아니라, 진짜 바실리스크.

         

        __________________________

        【바실리스크】

         

        용의 일종이라고도 불리는 신화 속 거대한 뱀입니다.

        왼쪽 눈은 맹독의 힘을 품고 있고 오른쪽 눈은 석화의 힘을 품고 있습니다.

        무한히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품고 있는 최상위 포식자입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

         

        히드라와 인면조 때와 달리 상태창이 보이긴 한다.

         

        그들보다 격이 낮은 존재일까?

         

        아니, 그럴 리가 없다.

         

        단지 내 야생의 눈이 레벨 업을 한 덕분에 보이는 것이다.

         

        5레벨이 되었음에도 종족 외의 것을 볼 순 없었다.

         

        상태는 물론이고 레벨조차 보이지 않는 상황.

         

        규격 외의 괴물이라는 거다.

         

        덩치는 또 어떤가.

         

        은룡굴에서 본 그 티타노보아보다 더 거대했다.

         

        지금의 나는 감히 갖다 댈 수도 없을 만큼 강한 존재.

         

        …그런데 대체 이 사원 안에는 어떻게 들어왔지?

         

        그동안 지나온 통로의 크기를 생각하면 저 거체가 들어올 수 있을 리가 없는데.

         

        지금은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었다.

         

        내가 살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가지고 있는 패를 생각해라.

         

        “게게게겍!”

         

        무력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내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건 바로 내 품에서 자고 있는 볼파이톤 하나뿐.

         

        이 작은 뱀은 바실리스크에게 소중한 존재일 거다.

         

        조금 비열한 방법일지도 모르지만, 파이톤을 최대한 이용 해야 했다.

         

        내가 잠에서 깰 때까지 공격하지 않았다는 건 나와 가까이 붙어 있는 파이톤이 다치지 않기를 원하는 것일 거다.

         

        이렇게 딱 붙어 있다면 제아무리 바실리스크라도 날 공격할 순 없을 터.

         

        [뱀 여왕이 당신을 응시합니다.]

         

        응시한다고?

         

        낌새가 이상했다.

         

        오른쪽 눈이 번쩍 빛나는 걸 보면….

         

        석화!

         

        쩌어어어어엉!

         

        석화 광선이 쏘아졌다.

         

        쩌저저적….

         

        파이톤과 붙어 있어서 공격하지 않을 거라 생각 했는데, 실수했다.

         

        이렇게 끝나는 건가.

         

        몸이 돌로 변하면서?

         

        이 사원을 지키는 하나의 석상이 되는 걸까.

         

        쩌저저적.

         

        몸이 서서히 돌로….

         

        변하지 않았다.

         

        겉 부분이 석화가 된다는 느낌이 있긴 한데 실시간으로 원래대로 돌아오고 있었다.

         

        뭐지?

         

        나도 모르는 석화 저항이라도 있던 걸까?

         

        바실리스크의 석화 광선이 끝났음에도 나는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았다.

         

        단지 주변에 바스라진 돌가루들이 떨어졌을 뿐.

         

        [뱀 여왕이 당신을 흥미롭게 생각합니다.]

         

        그래.

         

        이래 보여도 나도 바실리스크 출신이라고.

         

        석화에 면역일 수도 있지.

         

        “게게게겍!”

         

        뱀 여왕님.

         

        대화로 합시다.

         

        “겍게겍!”

         

        바실리스크에게 열심히 어필을 했다.

         

        독 모으기를 이용해 나도 어쩌면 바실리스크와 비슷한 종일지도 모른다는 걸 표현했다.

         

        그린 바실리스크 도마뱀이라고 들어는 보셨으려나.

         

        [뱀 여왕이 얼굴을 찌푸립니다.]

         

        망했다.

         

        역효과가 나고 말았다.

         

        뱀 여왕이 나를 향해 다가왔다.

         

        석화는 내게 통하지 않는다.

         

        바실리스크의 독은 위험하겠지만, 백독불침으로 어느 정도 중화시킬 수 있다.

         

        그러나 저 물리력은 어떤 방법을 써도 막을 수 없는 것이었다.

         

        피하는 게 최선이다.

         

        그러나 피할 방법도 보이지 않는다.

         

        이대로 죽는 걸까.

         

        바실리스크의 대가리가 나를 향해 점점 다가왔다.

         

        최후의 발악이라도 해보기 위해 내공을 집중할 때였다.

         

        “…히엑?”

         

        곤히 자고 있던 볼파이톤이 잠에서 깼다.

         

        그 난리를 쳤으니 오히려 지금 깬 게 이상할지도 모른다.

         

        복덩이야.

         

        너라도 도망쳐봐.

         

        저 뱀은 네가 있든 말든 공격하는 아주 흉악한 놈이야.

         

        “게겍!”

         

        그러나 파이톤은 물러나지 않았다.

         

        꼬물꼬물 기어가더니, 바실리스크와 내 사이를 가로막았다.

         

        쩌억.

         

        파이톤이 입을 크게 벌렸다.

         

        …설마.

         

        “삐약!”

         

        귀여운 기합 소리와 함께 파이톤의 입에서 광선 한 줄기가 발사됐다.

         

        콰아아아앙!

         

        아까 보았던 것보다 더 강한 출력이었다.

         

        치이이익….

         

        물론 파이톤의 공격은 바실리스크의 비늘을 뚫을 수준은 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의미가 있었다.

         

        저 바실리스크의 눈빛이 달라졌으니까.

         

        [뱀 여왕이 당황해합니다.]

         

        “사아아악….”

         

        어쩐지 파이톤의 눈치를 보는 모습이었다.

         

        “삐야아아악!”

         

        파이톤은 매서운 기세로 뱀 여왕을 노려봤다.

         

        …이런 게 상식적으로 가능한 일인가?

         

        파이톤 백 마리를 가져와도 저 꼬리 한 마디에도 안 될 거 같은데?

         

        대체 이 복덩이의 정체가 뭐길래.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강화된 야생의 눈을 활성화했다.

         

        【볼파이톤 LV14】

        【특성】

        「공주」「말괄량이」「마비 면역」「독 면역」「개객신앙」

        【상태】

        「분노」「짜증」

         

        잠깐만.

         

        공주?

         

        공주라고?

         

        [뱀 여왕이 쩔쩔맵니다.]

       

       농담 삼아 했던 말인데, 정말 이 파이톤이 딸이라도 됐던 거야?

         

        “삐야아악!”

         

        볼파이톤은 화를 참을 수 없다는 듯 쉭쉭거렸다.

         

        “사아아아악….”

         

        바실리스크의 무섭게 생긴 얼굴이 점점 뒤로 물러났다.

         

        잘한다. 복덩이.

         

        어머니를 쫓아내 버려.

         

        [뱀 여왕이 당신을 원망의 눈으로 쳐다봅니다.]

         

        아니, 왜 그런 눈으로 봐요.

         

        물론 바실리스크의 입장에서는 귀한 딸내미가 처음 보는 검은색 도마뱀한테 홀라당 넘어가 버린 걸로 생각할 수 있을 거다.

         

        귀하게 자란 딸내미가 시커먼 도마뱀의 말을 듣고 부모에게 화를 내는 모습.

         

        내가 바실리스크의 입장이었다면 화가 날 거 같긴 하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나한테도 얘밖에 없단 말이야.

         

        “히에엑….”

         

        [【볼파이톤 LV14】이 부끄러워합니다.]

         

        [뱀 여왕이 당신을 노려봅니다.]

         

        에라이.

         

        모르겠다.

         

        파이톤 이겨라.

         

        “삐야아악!”

         

        파이톤은 오동통한 몸으로 날 감싸면서 바실리스크에게 화를 냈다.

         

        저 바실리스크의 표정을 봐라.

         

        레벨을 측정할 수 없는 괴수라고 해도 자식 앞에서는 한없이 약해지는 법이었다.

         

        “삐야아아악!”

        “사아아….”

         

        바실리스크의 흉포한 기세가 점점 줄어들었다.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다더니.

         

        장하다, 파이톤.

         

        “삐야아악!”

         

        그렇게 바실리스크를 충분히 혼내줬다고 생각했는지, 파이톤은 날 향해 헤실헤실 웃었다.

         

        아냐.

         

        아직 그럴 때가 아니야.

         

        “게게겍!”

         

        저 뱀은 조금 틈만 보여도 날 죽일 수 있을 거란 말이야.

         

        하지만 내 예상과 달리 공격이 이어지진 않았다.

         

        “사아아아….”

         

        바실리스크는 거리를 둔 채 나와 파이톤을 관찰할 뿐이었다.

         

        …일단은 지켜보겠다는 걸까.

         

        그래.

         

        파이톤이 힘 써줬으니 열심히 쓰다듬어주자.

         

        “히에엑….”

         

        혀를 내밀면서 이리저리 움직이는 파이톤.

         

        고생했어.

         

        …그런데, 장모님.

         

        눈빛이 너무 따가워요.

         

        석화 광선이 조금씩 새어 나오는 거 같은데요.

         

        바실리스크가 물끄러미 날 바라봤다.

         

        [뱀 여왕이 소중한 딸을 돌려받고 싶어 합니다.]

         

        “게겍!”

         

        안된다.

         

        이걸 주면 내가 무슨 꼴이 당할 줄 알고.

         

        당신 딸은 내가 데려갈 거야.

         

        “히엑….”

         

        파이톤은 기분이 좋아졌는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사아아아악….”

         

        바실리스크는 혀를 날름거리면서 날 노려봤다.

         

        조금 무섭긴 하지만, 파이톤이 내 편을 들어주는 이상 날 공격할 수 없다는 걸 알아냈다.

         

        날 죽일 수 있더라도 소중한 딸한테 평생 원망을 듣겠지.

         

        소중한 딸이면 간수를 잘했어야지.

         

        그런 삼류 양아치 같은 생각을 하며 파이톤의 꼬리를 꽉 잡았다.

         

        “사아아아아악!”

         

        바실리스크의 눈이 흔들렸다.

         

        [뱀 여왕이 당신과 대화하기를 원합니다.]

         

        그래.

         

        진작에 이렇게 나왔으면 얼마나 좋아.

         

        처음부터 석화 광선이나 쏴대고.

         

        바실리스크의 이름이 울겠다.

         

        “게게게겍!”

         

        대화로 풀어봅시다.

         

        물론 쉽게 되진 않을 거다.

         

        저 뱀이 내 게겍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다는 보장도 없었고 상태창이 주는 단편적인 정보로 저 뱀의 의도를 전부 알 수도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뱀 여왕이 고민합니다.]

         

        그런데 뱀 여왕은 사람 말을 하지 못하나?

         

        새의 왕은 어설프지만 사람의 말을 하고 그랬는데.

         

        하긴 새의 왕은 얼굴이 인간이니까 가능한 거겠지.

         

        뱀의 얼굴을 하고 있는데 어떻게 인간의 말을 하겠나.

         

        나름 거미와 뱀과도 의사소통을 원활히 했던 나다.

         

        바실리스크도 결국 좀 커진 뱀일 뿐.

         

        충분히 대화를 할 수 있을 거다.

         

        “게겍.”

         

        대화를 하기 위해 게겍거렸을 때였다.

       

       바실리스크의 몸 주변에 뿌연 안개가 생성되었다.

       

       얼핏 보이는 실루엣으로 뱀 여왕의 크기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래.

         

        어쩐지 이 사원 안에 들어와 있는 게 이상하더라.

         

        크기를 줄일 수 있는 거구나.

         

        그게 아니면, 방금이 거대화 같은 걸 사용했던 거라던가.

         

        뭐가 됐든 상관없다.

         

        크기가 작아진 만큼 내 안전이 보장될 테니까.

         

        “이 모습을 보이는 건 오랜만인데.”

         

        난 작은 모습이 더 좋아.

         

        …가만, 방금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나?

         

        그것도 인간의 목소리.

         

        새의 왕과 달리, 꽤 유창한 소리.

         

        어쩐지 백연영이 생각나는 조금 무미건조한 목소리.

         

        설마.

         

        바실리스크를 감싼 안개가 서서히 옅어졌다.

         

       

       “내 딸을 데려가다니. 참으로 고얀 녀석이로다.”

       


           


I Became an Evolving Lizard in a Martial Arts Novel

I Became an Evolving Lizard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지 속 진화하는 도마뱀이 되었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I reincarnated as a lizard in a martial arts world. “Roar!” “He’s using the lion’s roar!” “To deflect the Ten-Star Power Plum Blossom Sword Technique! Truly indestructible as they say!” “This is… the Heavenly Demon Overlord Technique! It’s a Heavenly Demon, the Heavenly Demon has appeared!” It seems they’re mistaking me for something el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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