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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2

       이안이 검에 묻은 잔여물을 털어냈다. 지독한 밤이었다.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을 정도로.

         

       하지만 하루만에 끝날 리가 없다는 걸 이안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벗어날 수 없다면 적응해야만 한다.

         

       다행히, 전날밤에 죽은 이는 한 명도 없었다.

         

       "…이게 대체 무슨…"

       "죽지 않는 언데드라니. 들어본 적 없어요."

       "불로 태워도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더 달려든다니."

         

       허드슨이 허리를 숙였다. 지하로 도망가려는 살점 조각을 떼어 유리병 안에 담았다.

         

       "마법사. 대체 이게 뭐지?"

       "모르겠습니다…다만, 밤에 활동하는 건 확실하군요. 밤이 되면 주변이 빛 한 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어두워져서, 밖에서도 훔쳐볼 수 없었던 생명체입니다. 아니, 애초에 이걸 생명체라 부를 수는 있을지…일단 불을 두려워하는 건 아닙니다. 빛을 싫어하는 것도 아니더군요. 그냥 단순히 활동시간대가 밤인 것에 불과한 거 같습니다."

         

       기사 하나가 신음했다. 팔 깊숙이 침투한 썩은 살점을 억지로 뜯어냈다.

         

       마법사들이 달라붙어 치유마법을 연발했다. 허드슨이 이안을 쓱 돌아보았다.

         

       "쉬지도 못한 채 밤을 보냈습니다. 이안 경. 조금이라도 휴식을 취하는 게 맞습니다."

       "그럴 수는 없다."

         

       이안은 파라메르를 둘러보았다. 밤이 끝나자 그 썩은 생물체들은 마치 쥐새끼들처럼 도망갔다.

       뭔가를 살펴볼 기회는 오직 낮뿐. 빛이 어렴풋이 들어오는 지금이야말로 움직여야만 했다.

         

       "도시를 살핀다. 마법사. 길을 안내하도록. 의심스럽다고 했던 곳부터 살핀다."

       "…하지만…"

       "휴식은 나중에 취해도 된다. 조사를 끝내고 돌아가면서 잔다고 해도 3시간은 잘 수 있겠지."

       "너, 너무 가혹해요!"

       "조용히 해라. 마법사. 우리는 놀러 온 게 아니다. 도시 파라메르를 구하기 위해서 온 거다."

       "…하, 하지만 그래도 너무…"

       "반항한다면 버리고 가겠다고 보통 말하지만…"

         

       여기는 파라메르다. 마법사는 귀한 전력이고, 결코 버릴 수 없다.

       이안은 검에 손을 올렸다. 반쯤 뽑았다.

         

       "오늘만큼은 그럴 수 없겠군. 따라오지 않겠다면 억지로라도 끌고 가겠다."

       "……"

         

       어린 여마법사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허드슨이 한숨을 내쉬었다.

         

       "…상황이 이렇다면 나머지 조는 거의 전멸한 것이나 마찬가지겠군요."

       "2조는 아마 살아있을 거다. 영악한 엘프들은 비장의 한 수를 숨기기 마련이지."

       "…그렇다면 교단이 있는 곳은…"

       "이미 전부 죽었겠지."

         

       이안은 검을 탁 넣었다.

         

       "움직인다. 우리가 파라메르의 유일한 희망이다."

         

         

         

         

       . . .

         

         

         

         

       다니엘은 욕설을 내뱉었다. 내뱉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딜런! 정신 차려! 딜런!"

       "이미 시체나 다름없다."

         

       엘프가 벽에 박힌 화살을 뽑았다. 화살에 박혀 있던 썩은 생물체가 무너지듯 흩어져 도망갔다.

         

       "죽일 수도 없는 생명체군…대체 뭐지?"

       "축복받은 화살이 통하지 않아…정령들도 가까이하기를 거부해."

       "행동을 구속하는 게 최선인 거 같은데."

         

       엘프들 중 유일하게 후드를 쓰고 있던 여자가 걸었다. 쓰러진 용병 앞에 서서 천천히 손을 뻗었다.

       밝은 빛이 터졌다. 여자의 손에 휘감긴 정령이 노래하듯 속삭였다.

         

       하지만 꿀렁거리며 피를 토하던 용병은 결국 눈을 감았다. 다시 뜨지 못했다.

         

       …죽었다.

         

       다니엘은 딜런의 눈을 직시했다. 풀린 동공. 사라져가는 온기.

         

       "왜…왜…하필 네가…"

       "플로라님!"

       "가까이 가시면 안 됩니다!"

       "독이 있을 수 있습니다!"

         

       엘프들이 즉시 후드를 뒤집어쓴 엘프를 뒤로 끌고 갔다. 다니엘이 으드득 하고 이를 갈았다.

         

       "우리가 시발…병균이라도 되는 거야? 애초에 너희가 우리 뒤를 제대로 봐줬으면…!"

       "멋대로 따라오겠다고 한 건 너였다. 우리는 거부했을 텐데."

       "개 같은 년들이…지금 뭐라고…"

         

       엘프가 화살에 손을 올렸다. 용병 중 하나가 한숨을 내쉬었다.

         

       "단장. 진정해. 우리끼리 싸워봤자 아무런 의미 없어."

       "하지만…딜런이…"

       "보내 줘. 죽은 자는 살릴 수 없어."

         

       다니엘이 천천히 시체에서 손을 뗐다. 벽에 등을 붙이고 얼굴을 쓸어내렸다.

         

       "…시발."

         

       침묵이 흘렀다. 다니엘은 후회하고 있었다.

         

       의뢰금. 평소의 열 배는 되는 양.

         

       많을 때부터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긴 했다. 하지만 듣기로 한 이상, 파라메르 수색전에 참가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용병업계에서 구르고 구르던 실력자들만 있었기에, 아무도 죽지 않으리라 생각했는데…

         

       뚜껑을 뜯어보니 파라메르는 더욱 끔찍했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를 정도로 엉망이었다.

         

       "…단장."

       "알아."

         

       다니엘은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썩은 내가 코 안으로 빨려 들어왔다. 구역질이 날 정도로 더러운 냄새였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용병업계란 그런 곳이다. 아무리 소중해도 한순간에 잃어버리고 마는 것.

         

       "…잠시만 시간을 줘."

         

       그와 함께 한지 벌써 5년이 지났다. 초보 용병 시절부터 쭉 함께했던 녀석이었지. 다니엘은 품에서 동전을 꺼냈다. 오랜 용병의 풍습대로, 시체의 입에 돈을 끼워 넣고 닫았다.

         

       "…먼저 가 있어라. 새끼야."

         

       다니엘의 눈에 불이 붙었다.

         

       "이 망할 도시를 전부 불태워버릴 테니."

         

       엘프들이 떠났다. 다니엘은 꺼냈던 검을 천천히 검집 속에 집어넣었다. 그에게 조언을 건넸던 용병 마법사가 조심스레 물었다.

         

       "어떻게 할 거야?"

       "엘프들을 쫓아가자. 어쩔 수 없어. 저 새끼들이 빌어먹을 씨발년이라고 해도, 저들 또한 우리의 도움이 필요할 테니 내치지는 않을 거야."

       "그렇게까지 해야 될…"

       "봤잖아. 여기의 밤이 얼마나 끔찍한지. 동료가 필요해. 지금이라도 뒤늦게 1조를 쫓아갈 생각이 아니라면."

         

       마법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제국 기사를 쫓아가 봤자 고기 방패로 쓰이겠지."

       "차라리 저 엘프년들이 낫기는 해."

       "시발…왜 이런 좆같은 곳에 하필 들어와서."

       "잡담은 그만."

         

       다니엘이 멀어져가는 엘프들의 등을 쫓았다. 장난기 넘치고 가볍던 시선은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가자."

         

       문득 용병 중 하나가 궁금하다는 듯 다니엘에게 물었다.

         

       "1조는 어떻게 됐을까?"

       "살아있겠지. 기사와 마법사가 있는데, 죽었을 리는 없어."

       "3조는…?"

       "교단이라면…"

         

       다니엘은 묵묵히 발걸음을 옮겼다.

         

       "…죽었겠지. 전부. 그들이 이겨낼 만한 시련이 아니었으니까."

         

         

         

         

       . . .

         

         

         

       나는 귀를 후볐다. 로즈메리가 날 돌아보았다.

         

       "뭐 해요?'

       "아니 누가 개소리 하는 거 같아서."

         

       우리는 아침에 말했던 대로 빈스모크의 술집을 뒤졌다. 지하창고에서 이상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확인해보려던 파블로를 뒤로 끌어냈다.

         

       "저거 확인하지 마세요. 안 건드리면 안 뭅니다."

       "저거 설마…"

       "라튼이에요. 밤에 실컷 본 녀석들. 지하만 내려가지 말고 싹 다 뒤져요."

       "뭘 찾아야 해요?"

       "이상한 게 있으면 전부 들고오세요. 직접 보고 판단할게요."

         

       우리는 점심 내내 술집을 뒤졌다. 오래된 술이 들어있는 술병을 뒤지고, 가구들을 뒤집었다. 먼지를 푹 뒤집어쓴 분홍 머리가 내게 쪼르르 달려왔다.

         

       "이건 어때요?"

         

       그냥 종이다. 내용도 별거 없었다. 영수증이었다.

         

       나는 뒤로 쓱 던졌다.

         

       "이런 거 말고 좀 특이한 걸 가져와요."

       "특이한 게 어떤 건데요?"

       "그냥 딱 봐도 특이한 게 생긴 게 있어요."

       "아니, 그러니까 그게 뭔데요?"

       "특이한 게 있다니까요?"

       "그게 뭔 개소리야!"

         

       나는 설명을 할 수 없었다. 아니, 그러니까 진짜 특이하게 생긴 게 있다니까?

         

       나는 로즈메리의 어깨를 탁 짚었다.

         

       "본능을 믿어요."

       "더 모르겠거든요?!"

         

       툴툴거리던 로즈메리가 다시 방을 뒤지기 시작했다. 나는 2층 선반에 꽂혀있던 책을 와르르 쏟아냈다.

       여기도 없고…저기도 없고…

         

       뭔가 진짜 눈에 띌만한 게 있는데. 여기가 아니라 다른 곳인가?

         

       빈스모크의 술집에서는 끝내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로즈메리가 작게 기침했다.

         

       "에츄."

       "기침 귀엽네."

       "닥쳐요."

       "이동하죠. 여긴 아닌 거 같네요."

       "이게 뭔 개고생이야…"

       "고양이 고생이죠."

       "아 좀!"

         

       루카스 마커스 형제가 슬쩍 내 옆에 따라붙었다.

         

       "피곤하지 않나? 형제."

       "전투도 좋지만, 휴식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만."

       "벌써 피곤해요?"

       "우리가 아니다."

       "뒤에 형제 때문이지."

         

       파블로가 어기적어기적 따라왔다. 거의 머리가 땅에 붙을 듯이 가까웠다. 허리는 제대로 펴지지도 않았다.

         

       "정신적인 피로가 쌓여서 몸까지 영향을 끼친 거 같군."

       "모두가 형제처럼 강인하지는 않네."

         

       누가 성기사 아니랄까 봐, 타인부터 챙기네.

         

       뭐, 맞는 말이다. 그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 또한 티를 안 내고 있었을 뿐, 눈에 그늘이 져 있었다. 나도 마찬가지지.

         

       "한 군데만 더 뒤져보죠."

         

       빈스모크의 술집이 아니라면, 근처의 벨스티나의 카페를 들리면 될 뿐.

         

       어떻게든 단서는 있기 마련이었다. 모든 시나리오에서 대부분 그랬으니.

         

       우리는 열심히 가게를 뒤졌다. 다행히 이번에는 수확이 있었다.

         

       로즈메리가 떨떠름해 하면서 편지 조각을 들고 왔다.

         

       "…유일하게 먼지가 안 묻어 있었어요. 이상한 기운이 감돌고 있기도 했고요. 2층 서랍 안에 숨겨져 있었어요."

       "내가 말했죠? 특별한 게 있다고."

       "대체 이런 건 어떻게 알아낸 거예요?"

       "…감?"

       "그걸로 말이 될 리가 없잖아요."

       "제가 불합리하고 말도 안 되는 존재이긴 해요."

       "…이걸 확 그냥."

         

       [‘첫 번째 편지’를 획득하셨습니다.]

         

       나는 편지 조각을 펼쳤다. 다행히 첫 번째다. 어지럽게 꼬아서 갈 필요는 없겠군.

         

       {안녕하세요. 저는 ###입니다.}

         

       이름은 지워져 있었다. 글씨도 삐뚤빼뚤했다. 하지만 한 자 한 자 열심히 정성을 담아 적은 듯, 글씨가 무척 눌려 있었다.

         

       "안녕하세요…?"

       "그 괴물이 꺼내던 말 아닌가?"

       "쉿. 조용히."

         

       나는 편지를 쭉 읽어내려갔다.

         

       {오랜만입니다. 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사실은 잘 지내고 있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이 편지를 적어도, 당신이 보지 못한다는 걸 알지만 그럼에도 적고 싶었습니다. 시간은 많지만, 제가 언제까지 편지를 적을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오늘은 조금 화창했습니다. 어제보다 조금 더 맑았습니다. 사실 여기서 올려다보는 하늘은 언제나 맑을지 모르겠습니다. 지하는 무척이나 어두웠고, 올려다보아도 땅밖에 없었으니까요.}

         

       {정신을 차린 것도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음식을 조금 먹고 나서야 이성이 들었습니다. 오랜 잠에서 깨어나니 무척 배가 고프더군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손을 댔습니다. 죄송합니다. 먹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먹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늘 꽃을 심는 어린아이를 봤습니다. 조막만한 손으로 열심히 화단을 가꾸더군요. 무척 귀여웠었습니다. 먹# 싶# 죄송합니다. 아직 배가 고픈 모양입니다. 그래도 참을 수 있을 때까지는 참아볼 예정입니다.}

         

       {편지를 보내는 이유는 하나입니다. 당신이 죽은 걸 알면서도, 보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오늘 이상한 것을 봤습니다. 어쩌면 잘못 봤을지도 모릅니다. 당신과 똑 닮은 누군가가 탑 위에 있었습니다. 파라메르의 가장 위. 똑딱거리는 태엽이 인상적인 곳.}

         

       {세상은 몰라보게 달라졌습니다. 생각해보니, 세상이 달라졌는데 당신만 없다는 사실이 조금 이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날 탑 위에서 당신을 보았다 생각했습니다. 당신이 다시 살아나, 나를 반겨주리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니더군요. 그녀는 당신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저 또한 옛날의 제가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무서워했고, 저는 도망쳤습니다.}

         

       {같은 관계는 두 번 다시 제게 이어지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 당신과 처음으로 마주쳤던 곳에 가볼 생각입니다. 예전에는 공터였던 곳이, 이제는 '아멜다'라는 공동묘지로 바뀌어 있더군요. 그래도 일단 찾아가 볼 생각입니다.}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이만 적겠습니다. 나머지는 다녀온 다음에 적겠습니다.}

         

       "…아멜다?"

         

       나는 유일하게 나온 지명을 지도에서 찾았다. 있다. 아멜다. 있다.

       여기에 첫 번째 녀석이 있겠군.

         

       "바로 가…"

         

       아니다. 바로 갈 수는 없겠지. 나는 피곤함에 찌든 일행을 쓱 돌아보았다. 아직 해가 지지 않았지만, 조금 일찍 쉴 곳을 정리해도 괜찮겠지.

         

       "쉬러 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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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aladin Monopolizes the Sacred Relics

The Paladin Monopolizes the Sacred Relics

성기사가 성물을 독차지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 world where magic reigns supreme and the influence of gods wanes, a young boy finds himself unexpectedly thrust into the role of an acolyte in the declining Sun God’s Temple. Blessed with the divine stigma of the Sun God, he must navigate the temple’s internal politics, the hostility of his fellow acolytes, and the challenges that come with his newfound powers.

As he delves deeper into the mysteries of the temple, he discovers hidden secrets and powerful artifacts that could change the course of his destiny. With the guidance of an enigmatic senior acolyte and the unwavering faith in his own abilities, he sets out to prove his worth and carve his own path in a world that has all but forgotten the true power of the div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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